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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왜 한국의 형제국가라 부르는가...
 알자고    | 2018·03·23 06:22 | 조회 : 171
터키를 왜 한국의 형제국가라 부르는가...


돌궐과 함께한 터키 역사
[이 이야기는 2십수년전 역사를 전공한 터키친구에게서 감명깊게 들었던 고구려와 돌궐에 관한 이야기를 인터넷상에 올렸던 이야기를 제탕 삼탕 하여온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고대사이야기를 외국친구에게 자세히 들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반성하는 마음으로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터키와 대한민국은 왜 형제국가인가?

[시작하는 말]
2002년 한일월드컵이후, ‘터키’하면 형제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어지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키가 6.25 때 미국, 영국에 이어 1만4936명이라는 세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하여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21명 전사에 2147명이 부상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또 전사했을까요? 라는 질문을 하면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건 궁극적인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릅니다. 세계가 대한민국를 ‘코리아(고구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단군의 건국기원을 함께한 돌궐]
역사를 배웠다면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突厥)’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몽골과 함께 중국에서 흉노(匈奴)라 불리던 민족의 하나로, 6세기 중엽부터 8세기 중엽까지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을 했지요.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우리 한민족과 같은 우랄 알타이족으로 고구려 전성기엔 글안, 여진(숙신)과 마찬가지로 일부는 고구려의 기층(基層)민중에 속했습니다.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 돌궐은 고구려의 유민(遺民)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우리 민족과 특별히 긴밀해졌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부분의 서민들은 초기엔 당(唐), 후엔 신라의 지배를 받으면 한반도에서 살아갔습니다. 또 귀족계급 등 중상류층 가운데 일부는 당에 포로로 잡혀갔지요.
나머지 고구려 유민은 몽골, 글안, 돌궐 등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 682년 동돌궐이 올란바토르(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제2제국」을 수립할 때, 바로 여기에 참여합니다. 참여한 유민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절반인 20만명이 넘었다니 돌궐 제2제국은 고구려의 후예라 하여도 될 판이지요.
돌궐이 고구려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역사적 사실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우선, 돌궐의 왕은 선우(單于) 또는 가한(可汗)이라고 불리며 그 아래에 좌현왕(左賢王)과 우현왕(右賢王)이 있었습니다. 돌궐 제2제국의 선우는 인구의 절반인 고구려 유민을 우대하여, 고구려 왕족의 일원이며 유민의 수장인 고문간(高文簡)이라는 사람을 고려왕(高麗王)으로 봉했답니다.
좌현왕과 우현왕, 둘 밖에 없는 것이 돌궐의 전통이었는데, 고구려 유민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 고구려유민들을 통치하기 쉽도록 왕을 한명 더 늘려 고구려 유민을 앉히고 고려왕이라 칭했다는 겁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돌궐은 특히 고구려 유민 가운데 여성을 뽑아 종교의 수장(首長)인 제사장에 임명을 합니다. 고조선 시대부터 제사장을 단군이라 호칭한 전통을 인정하여 돌궐말로 탕구르 또는 탱글리라고 했다고 하니 이들은 우리와 건국기원을 같이한 셈이지요.

[역사적 증거자료]
돌궐은 7세기에 톤유크라는 사람이 중앙아시아 소그드언어 계통의 문자를 만들어 역사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구려와 돌궐의 자세한 관련내용이 고대 터키어로 기록된 돌궐 비문(碑文)들이 몽골 오르혼강(江), 남시베리아 예니세이강(江) 상류와 서북 몽골지방에 세워져 있답니다.
특히 오르혼강(江) 비문은 1893년 덴마크의 언어학자 톰센이 현대 터어키어로 해독을 함으로써 터키의 기원과 고구려와 관계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종식시켰답니다. 그 이유로 터키의 역사책 가운데 고대사 부분을 보면 고구려와 흉노 그리고 돌궐족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구요.
자신들의 조상이 고구려, 흉노, 돌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 비문(碑文)이 발견되지 않았거나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다면 많은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현재의 터키에서 수천리 떨어진 몽골고원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 겁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흥망]
당나라의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된 돌궐은 8세기 무렵, 사라센제국의 용병으로 남하(南下)하여 서방으로 이동을 합니다. 사라센은 이슬람교 창시자 모하메트의 후계자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에 걸쳐 이룩한 대제국이었지요. 용병에 불과했던 돌궐은 11세기 무렵, 사라센제국을 멸망시키고 셀주크투르크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셀주크투르크 제국은 징기스칸의 몽골에 패하여 몽골의 지배를 받습니다. 몽골의 지배를 받던 투르크는 13세기 말, 다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세워 20세기 초반까지 무려 7세기를 이어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국민혁명으로 멸망을 하지요.
동서양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던 터키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을 들다가 독일이 패망하는 바람에 많은 영토를 잃고 오늘날의 소국으로 전락했지요. 아랍과 발칸반도를 지배하며 강성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19세기 중반부터 쇠퇴하면서 주변의 소수민족들이 모두 독립하는 바람에 영토를 잃고 지금의 터키만 남게 된 겁니다.

[인식의 차이]
원래, 나라와 나라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데에는 이처럼 터키가 한때는 고구려의 기층민중이었고, 고구려멸망후에는 우리가 돌궐 제2제국의 기층민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거지요.
그렇다면 의문점 하나. 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요?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역사 교과서의 차이입니다. 우리나라의 중,고 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지요.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합니다.
하지만 터키는 다릅니다. 7세기를 이어온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 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상세합니다.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한국을 사랑합니다. 설령 한국이 그들을 몰라줄지라도. 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는 거지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88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었답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는군요.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답니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고 합니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습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던 거지요.
터키는 과거 고구려의 기층민중이었으며, 「돌궐 제2제국」을 같이 한 우리 한민족에 대해 깊은 유대감과 함께 형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6ㆍ25때 북한이 남침하자,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군대(1만4936명, 전사 721명, 부상2147명)를 파견해 우리를 도왔던 것이지요.
파병이 늦어지자, 터키의 고등학생들이 『왜 형제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느냐』면서 데모를 벌였답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흔적 찾기]
터키의 언어에는 순우리말과 비슷한 단어가 참 많습니다. 말뿐 아니라 음식, 문화, 습성, 국민정서도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구요. 터키인은 민족적 우월주의에, 감정적으로 다혈질이면서도 반대로 다정다감하고, 거나하게 놀기 좋아하고, 성질 급한 것까지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유럽인치고는 흔하지 않게 몽고반점도 있습니다.
과거 ‘돌궐’과 ‘고구려’는 그냥 우방이 아니라, 이와 잇몸 같은 관계였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하였을 정도구요. 한민족은 유전적으로 열성입니다. 혼열아가 태어나면 한민족의 특성보다는 상대민족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지요. 육안으로 터키인에게서 한민족의 특성은 찾을 수 없을지는 모르나 유전자 DNA검사를 한다면 형제로 판명이 나겠지요. 아무튼 터키의 혈통이 고구려와 혼혈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 돌궐을 다루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돌궐의 위치 때문이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사서에는 고구려와 돌궐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당시 돌궐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영토가 중앙아시아, 즉 실크로드가 있는 서안부근까지가 영토라는 이야기가 되지요. 그리고 돌궐은 만주 지역에까지 영토를 넓힌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의 영토가 만주와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앙 아시아 까지, 돌궐과 맞닿은, 매우 방대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중국이 동북공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터키’라는 나라는 과거 청동기시대에는 ‘배달국’과 ‘고조선’에 속해 잇었습니다. 그리고 부여 시대에는 ‘동이족’에 속해 있다가 고구려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고구려가 부여를 정벌하자 그곳에 살던 원주민인 예맥 동이족들이 요하를 건너가 이루게된 민족이지요.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 한국은 중국의 영향으로 한문을 사용하였고, 터키는 아랍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는 언어는 전혀 다르게 발전하게 됩니다.
유전학이나 인류학적으로도 터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몇개 안되는 북방계 몽골리언국가 중 하나이지요. 북방계 몽골리언국가는 몽고, 한국, 일본, 에스키모 인디언, 북미 인디언, 헝가리입니다. 이중 헝가리는 터키와 함께 북방계 몽골리언의 유전자가 많이 남아있는 유럽국가이지요.
물론 터키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은 고학력의 터키인들에게 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코리아’의 어원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영문표기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 흐르는 대단한 형제사랑이라 할수 있지요.

[터키와 북한]
그렇다면, 북한도 같은 민족인데 어째서 한국과 형제인 터키가 6.25 때 남한편에만 병력을 파병했을까요?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큼이나 아르메니아인들과 터키는 견원지간입니다. 아니, 원수지간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겁니다.
터키가 중앙아시아에서 수나라와 당나라에 밀려 서쪽으로 갔으니,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같은 영토분쟁과 종교분쟁이 없을수는 없을 겁니다. 과거, 돌궐을 용병으로 불러드려 멸망을 자초한 아르메니아인인 오스만 기독교인들이 터키의 영토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고토를 이스라엘처럼 탐하다 투르크 이슬람교도인 터키인에게 대학살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오스만터키에서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하면서 투르크의 쇠약해진 국력을 틈타 고토회복의 기독교 민족주의 투쟁을 벌이다 터키와 분쟁이 일어나 아르메니아인 수천명이 죽임을 당하는 1차 대학살의 참사가 벌어집니다.
이는 유럽으로 남진하려하는 러시아의 힘을 얻은 루마니아와 세르비아가 독립을 하게되고 ‘오스만터키’의 아르메니아 영토 대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하게 되지요. 이와 맞물려 투르크인들이 러시아와 붙어먹은 아르메니아인들 이라 칭하며 그들을 표적으로 인종청소라는 대학살을 감행한 겁니다.
1차 대학살이 일어난지 20년후, 또 다시 ‘오스만 터키’ 정부의 도움을 받은 투르크 이슬람교도들은 아르메니아인 5만명에 대한 대학살을 자행하는 2차 대학살을 일으킵니다. 게다가 오스만터키정부는 학살된 아르메니아인 외에도 175만명을 추가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로 추방하고 그 추방하는 과정에 또 아르메니안 60만명이 사막에서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그로인하여 1894년부터 1915년까지 21년간 250만명이였던 아르메니아인은 30만명만이 살아남게 되어 러시아의 남유럽 진출 야욕으로 인한 소용돌이 속에 무려 22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터키인들에 의해 지구상에서 사라집니다.
1912년 발칸전쟁 때, 몬테니그로, 불가리아, 그리스가 오스만터키에서 독립할 때도 알게모르게 러시아가 개입하여 아르메니아인을 도와주어 러시아와 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지요.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터키는 그 반대 쪽인 남한에만 병력을 파견한 것입니다.
물론, 혹자는 당시 터키가 미국과의 우방인 관계로 말미암은 국제적 이득을 노린 선택일 뿐이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범주에서 바라본다면, 터키가 2차 세계대전 때, 우리의 동맹국 중의 하나였던 이유가 필연적으로 러시아와 적대 관계일 수 밖에 없는 과거사 때문이였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형제의 나라]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 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지닌, 자기 나라로부터 수백만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는 의리와 애정을 받는 나라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중국의 동북공정 획책이 날로 가속화 되어가는 마당에 대책없이 고구려 역사에 두서없이 보이는 한국의 냄비근성을 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Andrew Won님!
<출처 : https://www.facebook.com/groups/100108606991621/permalink/58464356520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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