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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우리역사 자유게시판


동명성왕은 고주몽이 아니다. 고구려 동명[夫餘] 갈취 (1)
 알자고    | 2019·01·09 01:07 | 조회 : 224

夫餘란 국호로 대부여[大夫餘]로 기원전 425년 ~ 기원전 238년의 고조선 후기의 국호입니다.


"잘못된" 역사, 고 추모/주몽은 東明帝가 아닙니다, 즉 우리는 우리역사에 대한 개념으로 "천자국"에 대한 기본 개념을 잃어버렸습니다.

우선 대부여[大夫餘]에 대한 역사인식이 전혀 없는 가운데 夫餘와 扶餘의 개념이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고조선의 후기에 대부여로 국호를 개칭하다

丙辰周考時 改國號 爲大夫餘 自白岳 又徙於藏唐京 仍設八條 讀書習射 爲課 祭天爲敎 田蠶是務 山澤無禁 罪不及孥 與民共議 協力成治 男有常職 女有好逑 家皆蓄積 山無盜賊 野不見飢 絃歌溢域 檀君王儉 自戊辰統國 傳四十七世 歷二千九十六年


병진년(丙辰年, 기원전 425년) 주(周) 고왕(考王) 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시고 도읍을 백악(白岳)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셨으며, 여전히 8조(條)를 세우셨다.

독서와 활쏘기를 일과로 삼으시고, 하늘에 제사지냄을 가르침으로 삼으셨으며,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고 산과 못을 일반 백성에게 개방하셨다. 죄를 지어도 처자는 벌하지 않고 당사자에게만 미치게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다스리셨다.

남자에게는 일정한 직업이 있고 여자에게는 좋은 배필이 있었다. 집집마다 재물이 풍부하고 산에는 도적이 없으며, 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고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온 나라에 넘쳐흘렀다.

단군왕검께서 무진년(戊辰年, 기원전 2333년)에 나라를 통일하셔서 다스리신 이래 47세를 전했고, 2096년을 지냈다. [환단고기 삼성기전. 상.]


고조선은 수 1908년 -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426년

고조선의 수 2096년 -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38년


대부여 기원전 425년 ~ 기원전 238년 수 188년 44대 구물단군에서 47대 고열가단군


간략하게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기원전 426년, 을묘년의 일로 43세 물리단군시 맥족장 융안 우화충이 거란족 등 마한의 일족을 이끌로 신한 북부 36개군과 수도 백악산을 점거하는 대반란이 있었습니다, 이에 신한조선의 "구물장군"이 신한의 제후국들의 도움으로 백악산의 "우화충"을 잡아 목베고 대반란을 진압하고 물리단군이 붕어하자 기원전 238년 병진년에 국호를 고조선에서 '대부여"로 개창하고 신한조선으로 대부여로 하고 마한조선을 철폐합니다 변한조선의 이름을 '番韓"으로 개창하였다고 나옵니다, 이 맥족이라는 거란과 합께 몽고토착민인 맥족은 고조선기에서 수도 없이 나오는 "다루기 힘든 족으로 나옵니다.


戊申四十一年時有猰猶之亂【猰猶卽蒙古土民乃獫狁之屬是也】洪水之際僥倖得免而反看水土未定州里蕭然乃乘釁東侵其勢頗猛


戊申(무신, BC2293) 41년. 이때에 설유(猰[24]猶)의 난리가 있었다【설유猰猶는 즉 몽골 토착인인데 험윤獫狁[25]의 족속이다.】. 홍수가 있었을 때에 요행히도 면함을 얻었는데 이에 돌이켜물과 흙으로 인하여 州(주)와 里(리)가 숙연한 것을 보고는 이내 동쪽으로 침략한 것이며 그 세력이 지나치게 사나웠다


戊午(무오, BC2283) 51년. 홍수가 이미 평정되고 교화가 사방을 덮었다. 북쪽은 大荒(대황)에 미치고 동쪽은 滄海(창해)에 닿으며 남쪽은 海岱(해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獗猶(궐유)[32]를 다스렸으니 동서 5000여리이고 남북으로 6000여리이다. 천하의 땅을 나누었는데 군신은 공적에 따라 제후로 임명하였다

[24] 로 써야 할 글자로 猶는 “설유”이나 반절법을 취하여 “슈”로 읽어야 한다. 穢와 같다. 穢는 강희자전에 呼會切 즉 “회”로 읽어야 한다고 나오지만 穢는 歲(세)와 水(수)이니 이들 두 글자를 이용하여 반절법을 취하면 역시 “수”이다. 즉, 상고시대 穢의 발음이 “수”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5] 獫狁은 “험윤”이나 반절법을 취하여 “휴”로 읽어야 한다. “휴”가 구개음화가 되면 “슈”이니 곧 猰猶나 獫狁이나 “슈”라는 이름을 가진 穢族이다. 즉, 험윤 중에 단군조선에게 복종한 이들이 곧 穢貊(예맥)이고 복종하지 않은 이들이 突厥 혹은 丹國(돌궐 혹은 거란)이다


貊族으로 가륵 단군시 아사달국에 봉한 동생 가록....


癸丑十五年. 封弟嘉祿爲阿闍王, 賜國, 號曰阿斯達, 都唐莊京【白岳】, 築城, 設邑. 人民多聚成都, 作一萬戶.

계축(癸丑, 2168) 15년. 아우 嘉祿(가록)을 阿闍王(아도왕)으로 봉하고 국가를 주고 국가이름을 아사달(阿斯達)이라 하고 당장경(唐莊京)【白岳(백악)】에 도읍하였다. 성을 쌓고 마을을 건설하니 인민들이 많이 모였으니 1,0000호가 되었다.

 

甲寅十六年阿闍王 以韓天寬爲太宰吳善爲都統.

甲寅(갑인, BC2167) 16년. 阿闍王(아도왕)은 韓天寬(한천관)을 太宰(태재)로 하고 吳善(오선)을 都統(도통)으로 삼았다.

 

乙卯十七年阿斯達遺族貊酋據黃州而叛阿闍王遣吳善討平.

乙卯(을묘, BC2166) 17년. 阿斯達(아사달)의 遺族(유족)인 貊(맥)의 추장이 黃州(황주)를 의지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阿闍王(아도왕)이 吳善(오선)을 보내 토평하였다


고조선내 "마한조선"으로 주족은 숙신/숙사로 주신 - 즉 여진과 말갈은 만주평원의 내.외만주에 위치하고 내/외 몽골에는 거란과 얘맥족으로 貊족은 "북방 종족 맥"으로 대종족으로 나오고 이들 주위로 기원전 426년 전후로 북맥, 북막[北漠] 등으로 北狄은 突厥로 丹國[巨卵 거란]으로 나오는 마한족중 거란, 예맥족은 몽골 내/외 몽골의 몽골족의 일환으로 재서에 위치한 마한족입니다.



마한은 '태백산 재서로 즉 만주/내외만주와 구월산, 장백산, 대흥안녕산맥 등으로 북방고토지역은 만주지역으로 북방초원지역은 내/외몽골지역으로 몽골이라는 몽고족명은 기원후 8세기후에 등장한 족명으로


예맥족으로 우리가 아는 것은 "고구려"즉 "北貊"이라고 한 북부여로 해모수가 맥족장입니다, 이는 대부여에 대한 마한조선에서 이미 이탈한 북맥으로 북맥은 그 위치가 조금은 난감한 것이 동서 5000리의 재서로 서쪽 끝이면, 상당히 먼곳으로 감숙성, 사막지역, "內外蒙古"지역으로 서쪽을 산서성의 아닌 청해성까지 가야하는 곳으로 현재까지의 강여과는 상당히 멀게 느껴집니다.



突厥[돌궐]은 九韓에는 속하지 않고 거란과 예맥족만 9韓으로 들어간 것으로 돌궐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土谷 등의 이름으로 나옵니다.


터키 관련 기사 8 (백신 토곡 정벌)

八年戊戌敎遣偏師觀帛愼土谷因便抄得莫斯羅城加太羅谷男女三百餘人自此以來朝貢論事     

이 기사에 나오는 土谷은 음으로 보아 토곡혼(吐谷渾)으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토곡혼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고구려사초.략』에는 “미천대제 30년(329) 엽연이 왕이었던 아비 토연의 이름을 성씨로 삼는 것을 예의로 여겨서 나라 이름을 토곡혼으로 하였다.”와 "『고구리사 초.략』에 “영락 8년(398) 무술, 군사를 북맥(北貊)으로 보내 막사국(莫斯國)과 가태국(加太國)을 초략하였더니, 남녀 300인이 소와 양으로 세공을 바치기로 약속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토곡혼과 고구리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의하면 청해는 ‘옛날 서해, 선수해, 비화강해로 칭했고, 5호16국 때부터 청해로 불렸다. 중국의 서부에 있으며 동북 경계는 감숙성, 동남 경계는 사천성, 서남 경계는 티베트, 서북 경계는 위구르로 길이가 600리 폭이 2,000리로 우공의 4융의 땅이었다. 3대(하.은.주)를 지나 한나라 때까지 서강, 동진 이후에는 토곡혼이라 했으며, 당나라 초기에 토번으로 편입되었고, 명나라 무종 때 몽골의 수족이 점거하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다.


北貊으로 일족이 산서성으로 돌입한 것이 北貊 족장 해모수로 이미 마한조선이 아닌 北漠/北貊으로 사융중 北狄은 "突厥"로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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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나오는 청해를 표시한 지도     ©편집부


弱水로 감숙성의 북부로 현재의 지명비정으로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는 내용이 광개토대왕비문에도 적혀 있어 혼선을 가져오고 입습니다, 구당서의 고구려 강역은 남북 2000리, 동서 3100여리고 사방 6200여리로 이는 산서성/하북성의 위치로 그 이외에 동서 6000리라고 하면 서로 섬서성, 창해성까지 뻗는다는 사실로 만약 동서 6000리고 남북 2000리면 사방 12000리로 동서로 길게 뻗은 것이지 남북으로 뻗은 형태가 아니다, 즉 삼국사기 등에서는 '섬서성, 산서성, 하북성"위주로 즉 "신라"위주로 된 것으로 서쪽 突厥, 거란, 맥족사는 아니다 고로 강역면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즉 광개토대왕비문의 백제, 신라의 내용은 재서이 고구려강역내의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송동건은 ‘광개토왕비문 무술조 결자 발견’(계간 한배달 3호, 1989)이란 글에서 신라와 백제도 여러 곳에 있는데“서역의 신라와 고구려를 토곡에서 찾을 수 있다. 토곡은 돌궐로서 羌ㆍ越(강월)족과 인근해 있으며, 가테라성은 음운적으로 ‘구다라=백제’라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주의할 점이,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우리, 즉 "신라" 위주의 사관으로 주로 본 신한-신라로 東夷라는 고조선-대부여의 지지로 匈奴에 대한 이야기로 빠져 있습니다. 즉 김일제 등의 이야기는 흉노 조정에 제2인자 "좌현왕"으로 이 곳은 감숙성 무위로 흉노족이 아니고 "신한조선"의 금천 금씨가 흉노 조정에 몸 담고 한군과 대치한 전면전이 불가피한 곳이 감숙성, 아래로 섬서성 등으로 주 전장이 아사달, 료녕성 '홍산문화권"은 피한 곳으로 흉노가 북맥/북부여를 쳤다는 내용은 전무하고 북맥 혹은 북부여로 나온 경우가 사마천의 사기에는 전무합니다, 단 일부 묵맥으로 한고조 劉邦이 초나라를 멸하고 한을 건국시에 연나라와 함께 북맥이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이 고작이고, 한이 연을 쳐서 연왕 노관이 匈奴[사마천은 凶奴로 적음]로 가서 왕이 되었다 즉 東胡입니다, 이를 묵인한 것이 해모수로 당시 장당경을 장악한 것이 북부여로 나오는 이 또한 흉노열전에 적고 있습니다.



기원전 194년 위만의 번한조선 찬탈의 경위로...


한(漢)나라가 일어났지만 위만조선이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하여, 다시 요동(遼東)의 옛 요새를 고쳐, 패수(浿水)까지를 경계로 삼아 안사고가 이르기를, 패수는 낙랑군에 있다.이를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배반하여 흉노(凶奴)로 들어가자,[55]연나라 사람 위만(魏滿)이 망명하여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서 동쪽으로 요새를 빠져 달아나 패수를 건너 진(秦)나라의 빈 땅의 아래위 보루에서 살면서 진번 ·조선의 만이(蠻夷)들과 옛 연나라 · 제(齊)나라의 망명자들을 점차 복속하게 하고, 왕이 되어 왕검(王儉)[56] 을 도읍으로 삼았다.[57] 이기(李寄)가 말하기를 왕검은 지명이라 하고, 신하(臣下) 찬(讚)[58]이 말하기를 왕검성(王倹城)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한다. 병사로써 위협하고 침략하며, 그 이웃의 소읍들을 항복하게 하니, 진번(真畨) · 임둔(臨屯)이 모두 와서 복속하였고사방이 수천리였다.[59]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하북성으로 예-옥저의 하북성의 번한/ 전번, 위만조선/조선-한사군-이부- 예/동예와 옥저/남옥저로 혼란스러우나, 이는 "하북성"내의 일로 우선 모아집니다.


연왕 노관이 배반하여 흉노[凶奴]로 들어가자, 즉 이는 東胡로 우리는 須臾족의 본거지로 이는 태원시라는 료양의 일대로 이곳은 대부여에서 북부여면 북부여 해모수가 관할하던 지역으로 이곳에 수유족의 족장이 제후가 있는데 연왕이라고 노관이 들어와서 왕노릇을 한다? 이는 묵돌 선우전에 북부여에 대한 반발로 노골적으로 "동호" 흉노에 들어온 노관에 대해서 일족을 몰살시키고 묵돌은 흉노로 국호로 천자로 당리으 고도라는 單于로 천자칭을 하고 북방으로 거점을 옮깁니다 이에 감숙성지역은 신한의 금천 금씨 일족이 정예 삼만명으로 이끌로 흉노 조정의 좌현왕이 되어 한군과 직접 대면하여 전투를 한 것이 흉노와 한이 전쟁사로 이르 전부 "흉노열전"에 들어가 있습니다, 묵돌 單于로 현재 太原이 본관인 鮮于씨로 奇子조선 번한조선의 제30대 번한이 須臾, 서우여로 그 후손으로 奇, 韓.鮮于씨는 삼한족으로 구분합니다 비록 번한조선의 맹주이나, 다 삼한 신한의 족으로 삼한족입니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것이 대부여 폐관후 - 북부여가 대권을 이었다는 환단고기 북부여기로 인해 과연 北貊족이라는 맥족 穢貊족이 과연 신한조선? 번한조선인가? 아니다입니다 마한족으로 마한조선에서 기원전 426년 대반란을 일으킨 융안은 맥족으로 우화충으로 맥족과 거란족, 마한족중 말갈, 여진인남의 거란/예맥족의 대반란으로 마한조선이 거덜난 경우로 재서로 물러난 것이 대부여의 개창원인입니다.



분명한 것은 북맥의 족장 "해모수"가 웅심산, 홀승골성에서 일어나, 북맥을 北夫餘로 칭하고 즉 夫餘는 당시 천자국호로 일개 제후나 북맥족장이 쓸 수 있는 국호가 아니다, 천자만이 쓸 수 있는데 해모수는 天帝라고 칭하고 북부여-고구려는 전반적으노 전부 단간, 天干칭대신 天帝로 칭하는 천자국의 예법을 전혀 고려도 안한 행동으로 압박을 가한 것으로 고조선/대부여 폐관은 바로 해모수의 무력행사에 대한 답으로 수 2096년 고조선/대부여 폐관을 선언하고 일단락 됩니다 문제는 신한 육부로 신한 오가/육부에게 명하여 共和政을 명하고 산신령이 되신 것으로 북부여기에서는 마치 기원전 232년 신한 육부가 들어서 바쳤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해모수의 제2차 정변에 대한 의견으로 신한-신라-고려의 역사는 전면 "쿠데타로 일개 북맥 제후국으로 夫餘가 아닌 제후국명으로 扶餘로 일제히 깍아 버리고 재후국  北扶餘로 적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국유사 북부여-동부여-卒本扶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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