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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성왕은 고주몽이 아니다. 고구려 동명[夫餘] 갈취 (2)
 알자고    | 2019·01·09 01:08 | 조회 : 176

북부여(北扶餘)[편집]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전한(前漢)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壬戌)년(기원전 59년 239년) 4월 8일에천제(天帝)가 흘승골성(訖升骨城)대요(大遼) 의주(醫州) 경계에 있다에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내려왔다. 그 곳에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일컫고 국호를 북부여(北扶餘)라 하고,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解慕漱)[113]라 하였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扶婁)[114]라 하고 해(解)를 성(姓)으로 삼았다. 왕(해부루)은 후에 상제(上帝)의 명령으로 동부여(東扶餘)로 도읍을 옮겼다. 동명제는 북부여를 이어받아 졸본주(卒本州)에 도읍을 정하고 졸본부여(卒本扶餘)를 이룩하니, 곧 고구려의 시조이다.

삼국유사에 북부여기가 없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 조작하여 "전한 선제 신작 3년"으로 써서 180년을 바꿔치기 했습니다, 임술년은 맞는데 180년 3갑자전의 이야기로 기원전 239년 4월 8일로 이 날짜는 환단고기 북부여기에도 그대로 나오는 임술년 기원전 239년 4월 8일로 단 "웅심산"에서 일어나셨다입니다.

임술년(壬戌年, 기원전 239년) 진(秦) 시황제(始皇帝) 때 신인(神人) 대해모수(大解慕漱)께서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나셨다

즉 웅심산= 홀승골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년대는 기원전 239년 4월 8일로 이는 제1차 정변입니다.


1. 北貊은 삼한조선의 "마한조선"이 아니다. 즉 이미 기원전 425년의 우화충의 난으로 北貊이다.

이에 기원전 239년 임술년에 국호를 北貊에서 대부여처럼 夫餘로 北[夫餘]로 칭한 것이고 단군천자의 칭은 檀干[天干]으로 이 위로 "天帝"을 칭해 皇帝로 칭한 꼴이 됩니다.

이 강압 무력의 힘으로 밀어붙인 해모수의 천자단군위를 내놔라??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에 대한 47대 단군 고열가 천자의 대답은 의외로 "고조선/대부여" 폐관을 선언하고 하야하여 장당경에서 백악산으로 산신령이 되어 가셨습니다,  이에 대한 다음은 신한 오가[육부]에게 명하여 "共和政"으로 천자, 단군이 없는 상태로 신한을 이끌어가라는 유지를 명령으로 내립니다, 즉 폐관하는 것으로 "해모수의 강압"에 대한 답을 준 것으로 "신한" 및 번한 등 모든 대부여는 북부여 해모수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해모수의 北[夫餘] 천제칭으로 나온 것은 해모수가 시조인 고구려/백제는 떠받들지만 그 누구도 신한/번한은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2. 기워전 232년 제2차 정변 - 신한 6부의 재가없이 장당경을 강제장악.

범장의 북부여기에는 해모수가 번한의 기 비[모종의 거래로 성공하면 번한으로 임명함]와 짜고 무력으로 신한 육부가 있던 "장당경"으로 무력으로 진입하여 강탈합니다 .이를 6년 공화정후, 신한 육부가 육가가 고이 내놨다고 적었는데, 내용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고 조선유민이 계곡으로 흩어져 살았다 즉 장당경 북부도 올라가서 신한으로 우리가 아는 辰國[진국]으로 존속한 사실로 이 신한 6부는 신라가 되는 夫餘라는 곳으로 夫餘를 쓰지 않았고 고두막한 동명성왕도 동명이 국호지 夫餘는 쓸 이유가 없습니다.


아사달의 장당경 -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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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斯達은 州로 國으로도 불린 곳을 開天地로 開坪으로 불린 곳으로 바로 "홍산문화권"올 홍산-의무려산[료녕성 진산] 등이 백악산으로 그 일대를 아사달주고 당시에는 만리장성이 없던 시대로 산서성 와이 벨트라인으로 중심지로 그곳이 "장당경"으로 혹은 산서성 "임분시"로 비정되는 곳이 아사달의 장당경입니다 정확한 지역비정은 "역사학자"들의 몫이고 일단, 이는 북부여가 장당경을 장악했다는 것이지, 전 신한/대부여 강역 즉 아사달주위로 전 신한조선/간도-연해주 강동주/한반도에는 올라가지도 못했다.

해모수의 웅심산[홀승골성]은 대청산주변으로 몽골지역으로 보고 있고 그곳에서 일어나서 기원전 239년, 그리고 제2차로 번한조선 예지역이란 우수주로 황하북부 滄海지역으로 이는 천진아래 창해로 그 지역이 濊지역으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으 예와 옥저로 옥저는 만리장성 아래로 홍산문화권 아래로 봅니다. 그게 유주로 하북성은 "옥저 아래 예" 유주에 있었다.
북부여의 웅심산은 몽골지역에서 료동/산서성으로 장당경으로 무력침입한 것으로 이는 예맥족의 신한/번한의 삼한인이 이동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즉 기원전 232년 장당경 장악이지 전 강역장악에는 미치지도 못한 것으로 제후국 위치의 강역 사방 2000남짓으로 특히 번한조선의 위만에게 강탈당한 이후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정미년(丁未年, 기원전 194년) 한(漢) 혜제(惠帝) 때 연(燕) 유민들의 우두머리 위만(衛滿)이 서쪽 변방 땅 일부를 도적질하여 차지했다. 이에 번한(番韓)의 왕인 준(準)이 맞서 싸웠으나 당해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三韓)에 속해있던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漢水) 이남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후 한때 군웅들이 요해(遼海)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힘을 겨뤘는데, 계유년(癸酉年, 기원전 108년) 한 무제(武帝) 때 한(漢)이 쳐들어와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를 멸망시켰다.

아사달주의 북부 신한조선지지는 "신한 6부" 존속.. 신한으로 현 한국강단사학자들은 이를 진국으로 한반도 납무에 그려놨으나, 이곳이 신한으로 진국이 아니고 "신한"으로 신라로 夫餘라고 한 동명 夫餘로 원 신한조선지지로 "아사달주, 간도, 연해주 그리고 강동주/한반도"가 신한조선지지였다는 사실을 주지합니다.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右渠)안사고가 이르기를, 손자의 이름이 우거라 하였다.에 이르러, 진번 · 신국(辰國)이 천자를 뵈옵기 위해 글을 올리고자 하였으나, 우거가 가로막아, 통하지 못했다. 안사고가 말하기를 신(辰)국은 신한(辰韓)을 말한다
우거시대까지도 "신한"이 존재했다는 것으로 북부여가 장당경 장악이라도 예/한사군 설치전 "위만조선" 북부에 진번= 옥저/남옥저로 하북성 북부와 신국/신한이 존재한 것은 사마천의 사기 흉노열전ㄴ과 삼국지 위서 동이전 등에도 고지신한, 고조선의 신한땅이었다는 것으로 전부 신한의 강역을 "북부여"가 밀고 들어왔으나, 겨우 하북성은  위만에게 韓지, 사방 4000리는 위만에 밀린 번한 왕, 위만이 54국으로 마한으로 산한, 변한으로 각각 12개국으로 邑에 해당한다는 소리.
예맥족과 한족의 관련 - 삼한[신한/번한]과 북맥[북부여-고구려/백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맥족과 한(韓)족의 상호 관련성을 부정하는 견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테면 중국의 손진기는 고조선,고구려,북부여,옥저,발해 등은 기본적으로 예맥족의 국가이며 이들 예맥족은 동호-선비-거란,여진-숙신,실위-몽골 등과 구별되는 동북아의 독자적인 주요 종족집단임을 인정하면서도 예맥족과 조선족(한민족을 지칭)은 관련이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孫進己, 東北民族源流, 黑龍江人民出版社, 1987> 
[산] 濊貊족은 九韓중 하나로 마한족으로 "말갈, 거란, 여진, 예맥"으로 동호는 수유족을 삼한족으로 숙신숙사/ 주신 등은 여진으로 속여진/ 흑수여진으로 말갈은 물길로 속말갈, 흑수말갈로, 예맥족은 고구려-백제로 고구려 패망후 8세기에는 몽골족으로 복귀한 것으로 백제는 한족으로 혹은 배제왜족으로... 삼한족/韓族이나 굳이 구분하자면 "신한=삼한"은 韓族이고 구려/백제족은 예맥족으 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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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족과 고대 삼한족, 현대 한민족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이같은 견해는 중국 학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예맥족과 한(韓)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견해는 주로 중국 사료에서 이들 두 종족 사이의 유사성을 긍정하는 어떤 직접적인 기록도 없다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같은 학설들은 두 종족이 다르다는 직접적 증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예맥족과 한(韓)족이 유사하다고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긍정하는 어떠한 문헌적 기록도 없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하고 있다.

[산] 기본 九韓에 대한 정의가 된 상태인데 다른 정황이 필요한가?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94]에 이르기를 구한(九韓)의 첫째는 일본(日夲), 둘째는 중화(中華), 셋째는 오월(吳越), 넷째는 탐라(乇[95]羅), 다섯째는 응유(鷹逰), 여섯째는 말갈(靺鞨), 일곱째는 단국(丹國), 여덟째는 여진(女真)[96], 아홉째는 예맥(穢貊)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중국 학계의 입장과 달리 한국 학계에서는 한민족의 근간은 예맥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예맥족이 현대 한민족을 형성하는데 근간이 되는 핵심종족이라는 견해는 이병도 박사 이래 한국 학계의 통설적 입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산] 기본 이병도는 전혀 한국인이 아닌 백제왜족 쪽발이 집안으로 더러운 산돼지족 木子새끼네다. 정말 더러운 木子 백제왜족의 전형똥물집안의 똥물뒤집어쓴 똥썩은 쥐새끼의 전형이다.

한민족의 근간적 요소는 예맥족에서 비롯한다. 예맥족은 만몽계통, 토이기계통에서 공통한 먼 공통조상에서 분파된 일족이므로 해서 그 언어와 풍속 중에서 약간 서로 유사한 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본다. 하여간 예맥족은 몽고족, 만주족, 토이기족, 즉 우랄알타이어 계통과 한 가지 오랜 기원을 가진 혈연적으로도 비교적 서로 가까운 일족으로 피차에 출입이 있던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병도, 한국사 고대편, 1961>
이는 기본 고구려편향 목자 백제왜족의 기본 부여?-고구려/백제어와 왜어로 韓語=신라어라는 한족 삼한족이 기본 신한조선 대부여 신한=신라라는 점을 계속부정하고 도리어 예맥족 재서의 몽골토착민으로 고 추모의 鄒가 몽골토착부족명이라는 "나라이름 추"로 牟는 대모산 중모산 등의 모산으로 "고깔"쓰는 우두머리면 "折風"하는 몽골족의 고깔 모자로 우두머리를 표하는 몽골족의 중심입니다, 징기스칸이 시조롤 고 추모/주몽을 말하는 이유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朱蒙도 "활 잘쏘는 아이"보다는 붉은 몽골전사로 봐야만 한다는 소리로 고구려 패망후의 기원후 8세기에 몽고, 그리고 대원제국 원나라의 "시조"로 몽골족의 시조로 고 주모를 지명한 것은 우리가 모르는 시조 계통도로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 신라가 말한 것이 아고 신한/번한은 모두 삼한족으로 삼한일통 日本은 알로 一로 이는 白木으로 白族으로 백의/백목으로 신라가 신의 나라로 일본 백목이다.

정확하게 韓族으로 "하나겨레"로 구한의 제1족으로 알족이라는 것을 북극성의 수정자 알타이다.
송나라 쥐새끼 후손 송호정왈,
문헌상으로는 한민족과 관련된 최초의 종족으로는 예,맥,한(濊,貊,韓)족 외에 언급할 종족이 없다. (중략) 만주 남부 요령성 일대에서 살던 주민들은 일찍부터 농업경제와 청동기 문화를 영위하면서 문화적 우위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청동기 문화를 영위한 족속이 예,맥족이었다. 그리고 이들 만주 남부지역 주민집단의 일부가 이동하여 한(韓)족을 형성했다. (중략) 

예,맥,한족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만주 중남부 지역과 한반도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후예들이다. 그들간에는 거주지역의 환경과 청동기 문화의 수용의 시간적 차이 등에 따라 상당한 정도의 문화적 이질성도 지녔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같은 문화권에 속한 족속들로서 여타 주변지역의 주민집단과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였다. 예,맥,한(濊,貊,韓)족은 동북아시아의 중국 동북부 만주 한국땅에서 오래 살았으며 체질상 하나의 유전집단을 이루고 다른 민족과 섞임이 적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결국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형성한 주민집단이 되었다. 이들 세 종족은 만주에서 한반도에 걸쳐 친연관계를 지닌 집단으로서 같이 어우러져 결국 한민족의 조상이 된 것이다. 다만 이들 세 종족의 친연성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활동성을 연구하여 분석한 결과가 없다. 따라서 이들 세 종족이 동일 조상에서 출발했다고 보아 한민족의 기원을 계속 추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예,맥,한(濊,貊,韓)족 이전에는 한민족의 조상으로 여러 인간이 있었을 뿐이며 그 이전의 고생인류가 있을 뿐이다.
<송호정, 한국인의 조상은 누구인가, 역사비평 46, 1999>
우리는 이 주자교 유태교인의 말속에서 분명한 것은 람인종은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니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고로 좃나단 인성의 개소리, 아브라함의 자손 운운 및 좃단족으로 송나라 까이뻥의 조나단 길버트 용옥 레비족 "李" 木子씨 등은 유태족으로 성부터 갈아치원야 알 수 있습니다.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94]에 이르기를 구한(九韓)의 첫째는 일본(日夲), 둘째는 중화(中華), 셋째는 오월(吳越), 넷째는 탐라(乇[95]羅), 다섯째는 응유(鷹逰), 여섯째는 말갈(靺鞨), 일곱째는 단국(丹國), 여덟째는 여진(女真)[96], 아홉째는 예맥(穢貊)이라고 하였다.

韓族으로 우리는 "하나겨레"로 九韓으로 기원후 6세기 안홍/안함의 황룡사 구층탑의 구한족의 구분은 이미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九韓族으로 구분을 했습니다.

이에 삼한조선 삼한족은 신라로 신라는 삼한족 신한족 한족의 제1족으로 日本으로 白衣民族이라는 白族으로 白木인이다, 알이로 三辰 알이로 난생설화를 기본으로 하는 丸[알}올 알타이 소호 금천씨의 씨족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 삼한은 삼한족이 주족이고 신한/번한 등은 삼한인 삼한족으로 일명 삼한족으로 韓族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신라는 신한이고 대부여-고조선의 알자라는 소리이니다.

마한조선지역의 사족 : 말갈, 단국/거란, 여진, 예맥족으로 에맥족은 말단으로 고구려-백제족이라는 북맥 맥족장이 해모수라고 분명하고 하고 시조로 "해모수"로 나옵니다, 이 맥족은 후에 몽골, 鄒 추나라이름 추, 朱蒙으로 몽골족의 주족으로 징기스칸 등의 원사의 시조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말갈은 발해로 대표됩니다.

거란은 료나라로 대표됩니다.

여진은 숙신/숙사 주신으로 마한족의 주족으로 금/청나라입니다.


변한조선 - 수유족 등이나 삼한족으로 이 지역은 재남으로 중화, 오월[왜], 탐라[대만], 응유[필리핀, 인도차이나 반도]로 백제의 해상활동지역과도 겹치는 부분으로 주족은 "삼한족"위에 백제족 예맥족으로 해모수 맥족장의 후손이 "정복"한 것으로 백제족은 맥족으로 삼한/마한을 정복하고 오월 왜지역, 대만 탐라, 응유, 필리핀 인도차이나반도까지도 장악한 것으로 그 족들을 지배한 것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족은 韓族으로 하나겨례로 삼한족입니다, 삼한일통으로 마고지나 삼신의 땅 삼한의 믽민족으로 바로 하나겨레 韓族으로 시조도 같다 예맥족 처럼 해모수 등을 내세우지 않고 삼성각의 삼성이 시조지 자신의 가문의 씨족의 시조는 문중사당의 문제로 목박습니다, 삼성각이 있는 곳 그곳이 삼한족으로 단군조선을 파괴하고 없애는 백제왜족은 더러운 산돼지족으로 보고 백제족이라고 백제왜족입니다 삼신 마고의 자손으로 백의민족 백목인이 바로 白丁으로 신의 아이들 삼신 아이입니다 알이로 아리랑이고 一郞이지요.

가상이라고 하나 이는 고래의 풍속과 東方禮儀之國의 종교관 시조관, 신관으로 하나사상입니다 다른 말이 필요치 않다, 단군왕검은 국조로 이는 삼성으로 시조-교조-국고라고 삼성각에 있는데 개속 딴지를 거는 것은 주자교 송나라 쥐새끼 송자 노론의 사발 짱개유태인 그리고 기독교 유태잡배로 백제왜족만이 국조를 부정하는 닭새끼들이다,

韓族으로 桓檀韓은 일체 하나로 "韓"이다 즉 하늘의 광명 韓, 땅의 광명 韓이고 인간의 광명 韓으로 ㅎ한=환, ㄷ한=돤이면 ㅇ한을 한이다 그 자체가 "하나"를 표상하고 구환 64민으로 九韓으로 지방족으로 나뉜 것이지 "일체" 하나입니다.

신라족으로 신한족으로 하자면 "삼한족"으로 삼한 일통 "韓"族으로 일족을 알족이라는 알짜 韓族이 신한 辰韓으로 "북극성" 의 수정자 斡의 민족이다.


즉 전 중국사서에 주요 내용은 신한조선의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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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倝)道로 斡州로 이는 신한/신라의 주강역이고 시작입니다, 무시무종 간(倝)州로 알자땅이다 신한조선으로 간(倝)州, 연해주, 그리고 강동주/한반도는 기본 사방 1만리 신한조선이고 "아사달주"는 신한 신단의 핵심 개천지로 아사달이 주무대로 "대부여"는 더 아래로 백악산에서 "장당경"으로 내려간 변한조선지지에서의 이야기가 주 무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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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1만리로 변한조선의 땅이라고 하나 대부여=신한으로 삼한족이 이동한 것으로 료주=산서성, 유주=하북성[기자조선, 번한조선 진번조선, 조선/예맥, 옥저 등]으로 이는 기본 번한조선이고 그 남쪽 韓[地]는 고지신한으로 고조선의 신한땅입니다 삼한족 삼한인이 남하하여 한 곳으로 사방 4000리고 료주/산서성과 유주/하북성은 사방 6000리로 료서인 섬서성 감숙성까지 무한한 동서로 뻗어가나 동방 寅방을 기준으로 동이/동방으로 이 동부의 사방 1만리는 기본 대부여=신한의 지지다, 이곳이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의 정립으로 이루어진 삼국시대 주무대입니다.


즉 대부여=신한조선으로 신한+북부여[동부여-고구려, 예맥/조선, 옥저]와 韓[馬韓] 사방 4000리로 전 강역의 민족명이 바로 삼한족입니다 그리고 북부여-동부여-고구려/백제족은 바로 예맥족이라고 합니다, 재서에서 북방초원 몽골지역에서 신한으로 들어온 九韓족중 마한의 예맥족이라고 합니다. 마한족으로 "말갈, 거란, 여진, 예맥"의 역사를 九韓의 역사로 편입할 것인가는 "민족의 폭"을 九韓전체로 잡으면 중화, 오월, 탐라, 응유까지로 전 중국대륙 및 대만, 인도차이나반도로 대강역으로 민족으로 이미 굳어진 대만족을 우리가 우리 九韓? 왜족의 일부까지 백제왜족인 전주 木子의 운남성? 호남성, 월지역까지? 등은 국제외교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나, 신라는 기본 신한조선으로 대부여로 고구려 장악 사방 6000리라도 신라 진흥왕조, 561년 거칠부의 예/우수주라는 하북성을 관통하는 매국 정벌 등은 그 자체가 삭주로 이미 확인이 된 것으로 신라의 강역이 전 삼한 기본 고구려-백제, 신라 사로 신라의 강역으로 사방 1만리에 간도 연해주 한반도/가야의 합병 등으로 사방 1만리로 총 2만리의 강역은 기존 통일신라의 강역입니다, 전혀 지금까지 말하는 반도사관, 조선반도에 몰아서 찌그러뜨린 내용으로는 대부여-신한=신라의 내용을 없앤다고 없어지는가? 아니다 입니다.


사방 4000리의 韓[남삼한??]의 이야기는 72국이 아니고 邑으로 이미 신한 12국, 변한 12국은 사로 신라로 신라가 주 천자국임을 알고 항복하고 신라로 편입되고 항복하는 과정이지 사로국?에서 시작한다는 개소리는 정말 왈왈이 소리다.


夫餘라는 곳은 "동명성왕"의 동명 부여로 말하니 그렇고 실제는 夫餘는 이미 기원전 238년에 폐관한 국호로 나라 천자지천지/누리는 이미 폐관하였다 이를 다시 쓴다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에서는 없고, 예맥족이나 扶餘로 그 뜻도 모르니 "천자국"이라고 천제칭을 하고 놀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동명 고열가 단군천자의 후손이라면 "신한조선"인으로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 거짓말로 북부여를 이었다 엿소리다 북부여는 북맥이 夫餘를 가져다 찬탈한 것으로 대반란군의 국호가 무엇에 쓰려고 東明을 국호로 이미 기원전 108년에 한군의 위만조선 폐하고 한사군설치?라는 곳을 곳곳에서 한군을 물리치고 多勿을 말하고 다시 단군 천자로 "檀干"으로 天帝를 칭하느 바보들 북부여에게 기원전 86년 꺼져버려라는 호통을 친 것으로 東扶餘는 동옥저 옥저의 현토 아래 임둔으로 분릉 현 조선지리지에서는 강릉으로 한다는 강름이 분릉이고 가섭원?? 이라는 말에 이것이 옥저라는 곳이고 명주로 통일신라시대의 명주다는 것이 너무나도 쉽게 춘천 춘주로 주단위가 도시단위로 압축?? 뻔데기 뻔조선국이 되어 축소지향이 아니고 왜소된 백제왜족 木子들의 축소복사하여 왜곡압축된 지도를 보고 있습니다 완전 백제왜족 木子씨의 개소리 지도에 목자 완용과 똥들 제자들의 개소리에 너무나도 똥냄새가 진동합니다.


동명은 국호로 동명의 성왕은 고두막한으로 고열가 단군의 후손으로 적통이라는 혈통에서도 단군 혈통이라는 신한입니다 대명여지도인 고지도명에도 동명이 나오고 그 졸본주에서 장당경으로 부여의 옛 수도를 다시 점령하여 명실상부 夫餘로 올라선 것이 바로 기원전 86년입니다, 그리고 기원전 60년 붕어하시고 그 아들 태자 고무서가 즉위하였으나 안타갑게도 재위 2년만에 기원전 58년 음 10월에 붕어하십니다, 이에 신한 6부는 고두막한의 따님인 파소의 아들 박혁거세를 숫될 박으로 천자1순위입니다, 바로 옹립하고 신한으로 徐羅로 즉 이는 夫餘라는 곳으로 아사달 장당경이 초기 금성으로 徐羅伐이고 계림은 길림으로 시림으로 간주로 간(倝)州로 알자로 절대 조선국전에는 여진족?에게도 잃어본 적이 없는 절대강역입니다, 녹둔도가 사할린섬이고 이 성계가 료동정벌하러 간다는 곳은 바로 료하의 동쪽 산서성이지 무슨 료녕성 1926년에 처음으로 蔣介石 중화민국의 행정명으로 뭘 이야기하는가? 절대로 '료동"은 료하의 동쪽으로 료하란 河는 황하밖에 없습니다.


료하의 범람 동양 9년 대홍수기, 이는 료하로 "황하'지 우임금의 치수는 양자강이다, 江이다.

壬子四十五年始自甲辰歲天下有九年之水遼瀋之水漲溢平壤沉潜帝遣皇子四人相土地之宜卜居于阿斯達下唐莊坪而結㢚盡濟平壤之民命彭吳治國內高山大川以奠民居至于牛首州【今之春州】有彭吳碑.

壬子(임자, BC2289) 45년. 처음 甲辰(갑진, BC2297)년으로부터 천하에 9년의 홍수가 있어서 遼瀋(료심)의 물들이 불어 넘쳐 평양은 가라앉아 버렸다.[28] 帝(제)는 皇子(황자)와 4명을 보내 토지를 살펴보고 마땅히 거할 땅을 점치어 阿斯達(아사달) 아래 唐莊坪(당장평)에 에 살게 하였고 곁채를 지어서 평양의 백성을 다[29] 구제하였다. 彭吳(팽오)에게 명하여 나라 안의 높은 산과 큰 하천을 다스리고 백성들로 牛首州(우수주)【지금의 춘주春州】에 거하게 하였는데 여기에 彭吳碑(팽오비)가 있다.

이를 믿으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참고하라. 즉 우수주는 예맥국으로 예/동예로 고구려 맥국/맥주로 이는 신라가 정벌하고 삭주로 통일신라시대 삭주고 고려 춘주로 우수주/우두주로 현대 춘주?를 춘천이라고 한 것은 "조선국 미친선비"세상의 목자 방원 태종때의 일이다 그 유래가 나온 조선지리지에 아니 이건 전부 예국, 예성 하북성 滄海가 중심이면 滄海를 말해야지 무슨 소리냐?

戊申十年帝東巡至于滄海望見山川曰.., 山河之佳麗朕將欲遷都于東方濊邑叛帝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自此稱其地曰素尸毛犁今牛首州【春州】其子孫逃于海上僭稱天王.戊申(무신, 2173) 10년. 帝(제)는 동쪽으로 巡行(순행)하여 滄海(창해)에 이르러 산과 강들을 보고 말하기를 “아름답고 기이한 산과 강들의 佳麗(가려)함이여”라고 말하고 “나는 장차 도읍을 동쪽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하였다.濊(예)의 마을이 반란을 일으키자 帝(제)는 余守己(여수기)를 명하여 그 추장 素尸毛犁(소시모리)의 목을 베라고 하였다. 이대부터 그 땅을 素尸毛犁(소시모리)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牛首州(우수주)【春州(춘주)】이다. 그 자손은 해상으로 달아나서 天王(천왕)이라 참칭하였다.

濊국 예성, 동예 우수주, 춘주 맥국, 삭주로 현재 춘천?? 까지 창해는? 창해역사 변한촌으로 번한으로 바뀐 것은 대부여시 기원전 425년으로 료하의 변한촌으로 변한조선은 료하의 료서와 료동으로 료하를 기준으로 하고 유주의 료서군과 료동군은? 료산료수 료산산맥이 단단대산령? 바로 태행산맥의 동서로 료서군과 료동군으로 郡의 이름이다 유주의 4군이면 사방 2-300리 아무리 넓어도 사방 1000리로 이는 유주 13군, 14군 혹은 10군으로 사방 2500여리면, 평균 10개군으로 해도 사방 250리로 "1개주'의 사군으로 유주가 하북성의 옛 이름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말하나/ 짱개가 유주는 "하북성"의 옛 이름이다 순임금은 료서 즉 섬서성을 유주라고 하였다, 료동은? 영주로 료주로 한다, 즉 료서가 유주??? 여기에서 또한 동서로 지명이 왔다갔다하나 우선 현재의 지도로 고지도의 내용 사료로 유주는 우선 '하북성"내의 일로 예/동에, 옥저/남옥저는 유주/하북성의 일이다, 고구려는 료동 경계 료동이면 바로 '료하의 동쪽 천리로 그 안에 있어야한다, 즉 료양부근으로 북평/ 현 북경의 주위로 산서성 남단 수분하의 句麗로 졸본주로 卒本扶餘에서 고구려로 북부로 고구려 동쪽에 옥저/남옥저가 남으로 예/가 예의 남쪽에 "신한"이 대방아래 원래는 신한이 후에 마한을 정복한 백제 맥족이.. 정복한 것이다.


동명은 국호로 기원전 108년 의병으로 일어난 고두막한의 국호로 시작하여 명실상부 夫餘의 옛 수도 장당경을 재탈환한 것으로 夫餘로서의 자격 천자국의 천자로 상제로 즉 북부여 산돼지족은 죽으나 사나 천제라니, 그 천제위는 상제다.. 上帝로 바로 고두막한 단간이 북부여 해부루에서 꺼져라 아니면 쥐포로 만들겠닥 하니 사정사정항여 제후국으로 동부여[가섭원, 분릉]으로 옯기고 그 북부여에서 고주몽이 다시 온조가 나와서 맥족사의 시작은 해모수를 시조로 삼한, 신한/신라는 절대로 "해모수"나 고주몽을 시조로 하질 않습니다. 명심해야 하고 이는 시조신 제천으로 음 10월에 하는 국중행사란 高登神 수혈 등 시조신에 대한 예로 신한-신라의 예법이나 종교 신학, 기본 풍속에서도 한다리를 쭉 뻣어서 절하는 것은 기본 큰 절 한국예법이 아니다, 현재도 그렇고 고려, 신라 삼신의 땅 삼한족의 예절이 아닙니다, 상투대신?? 절풍을 한다? 그리고 수건으로 두건을 고깔을 쓴다? 전혀 한국 풍습이 아니고 몽골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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