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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漢四郡)의 문제] 3.소위 한사군의 변동 역사 | 4.원래 조선 땅인 요동군과 요동 속국 문제
 알자고    | 2021·03·08 02:52 | 조회 :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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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근 
    40여년 족보·역사 연구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홍익인간 7만년 역사/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역원리 이해 등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법학사·언론학사·인문학사(중문학·영문학·국문학)

    해달별문화원 · 천부역사태학원 대표 / 민족회의 상임부대표 /  민족회의 역사광복군 총사령 / 기천검학 범사 / 참한역사신문협의회 감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도선풍수지리신문 편집인 / 법무사

    3.소위 한사군의 변동 역사 

    가.북부여 동명왕 고두막한의 의병전쟁 

    서기전108년에 북부여의 졸본한(卒本汗)이던 고두막(高豆莫)이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하며 의병을 일으켜 북부여를 부흥시키려 다물업(多勿業)을 열었는데, 이때 소위 한사군의 단군조선 유민들이 호응하였다. 그리하여 소위 한사군은 사실상 유민들의 자치가 행해졌던 것이 되며, 고두막한은 서안평(西安平)까지 진출하여 단군조선의 구려 땅을 수복하였던 것이다.

    나. 진번군과 임둔군의 폐지 문제

    서기전82년에 진번군과 임둔군을 낙랑과 현도에 붙였다라고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적고 있으나 이는 춘추필법에 의한 역사은닉으로서 실제로는 이때 진번과 임둔은 고두막(高豆莫) 천왕의 북부여에 수복된 것이 된다. 

    이는 서기전42년에 졸본에서 독립하려고 북부여를 떠나 진번(眞番)의 패대(浿帶)지역으로 간 소서노(召西弩)가 땅을 개척하여 나라를 열어 고구려 고주몽 성제로부터 어하라국(於瑕羅國)으로 봉해진 것으로 보아 드러나는 사실이 된다. 

    다. 한사군과 진번백제(眞番百濟)

    패대지역의 패(浿)는 패수를 대(帶)는 대수를 가리키는데, 패수(浿水)는 곧 지금의 난하(灤河)를 가리키고, 대수(帶水)는 지금의 요하 중하류지역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합류하는 강이 된다. 즉, 어하라국은 패수의 동쪽으로 진번 땅을 포함하며 나라의 중심지는 대수(帶水) 남쪽으로 지금의 요동반도 중남부지역으로서 지름500리의 땅이 된다.  

    라. 소위 한사군의 소멸

    소위 한사군 중 낙랑군과 현도군은 서기313년에 고구려의 미천제에 의하여 낙랑군과 서기204년에 낙랑군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대방군이 완전히 축출되고, 현도군도 정벌 당하여 이후 고구려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4.원래 조선 땅인 요동군과 요동 속국 문제 

    가. 요동군(遼東郡) 

    요동군은 진(秦)나라 때 설치하여 유주(幽州)에 예속시켰다 하는 바, 원래 단군조선의 땅이 된다. 즉, 원래 단군조선의 땅이던 것을 진나라 이전의 주나라 전국시대에 연(燕)나라가 점차 동진하여 확보한 땅을 진나라가 이어받거나 별도로 설치한 것이 된다. 

    이 요동군은 서기전281년경에 연나라 진개가 번조선과 경계를 삼았던 만번한(滿番汗)의 서쪽으로서 당시 대요수(大遼水)이던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의 동쪽 지역이 된다. 만번한은 패수(浿水)이던 지금의 난하(灤河) 서쪽으로 지금의 고하(沽河)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1) 한서 지리지의 기록

    1) 양평(襄平) 신(新)나라의 왕망(王莽)은 창평(昌平)이라고 했다.

    2) 신창(新昌)

    3) 무려(無慮) 의무려(醫無閭)라고도 한다. 

    4) 망평(望平)

    대요수(大遼水)가 요동군 망평현이라는 새방의 밖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안시(安市)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   

    망평이 요동군에 속하므로 대요수의 동쪽에 위치한 것이 되며, 대요수인 영정하가 남류하는 지역에 안시(安市)가 있는 것이 된다. 한편, 후대에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이 되는 곳은 패수이던 지금의 난하 중하류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탕지성(湯池城)이 있던 안촌홀(安村忽)로서, 여기 요동군 안시현의 안시(安市)와는 다른 곳이 된다.   

    5) 방(房) 후한(後漢)시대에는 요동군에서 폐지되어 요동속국으로 편입된 것으로 된다.

    6) 후성(候城) 중부도위가 다스렸다.

    7) 요대(遼隊)

    요대를 요수(遼遂)라고도 한 것이 되는데, 대(隊)는 수(遂)의 오기일 수 있는 것이 된다. 왕망(王莽)은 요대를 순목(順睦)이라 하였다.  후한시대에는 요동군에서 제외된 것으로 된다. 

    8) 요양(遼陽)

    대량수(大梁水)가 서남쪽으로부터 동북쪽으로 흘러 요양(遼陽)에 이르러 요수(遼水)로 들어가는데, 왕망은 이를 요음(遼陰)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대량수는 대요수(大遼水)인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에 합류하는 강이 되며, 요양(遼陽)이라는 말은 요수(遼水)의 남쪽이나 동쪽이라는 것이 되고, 요음(遼陰)은 요수의 북쪽이나 서쪽이라는 것이 된다. 

    즉, 요양(遼陽)이라는 땅은 대량수(大梁水)라는 강이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흘러 대요수에 합류하는 지역에 있으며,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요수의 흐름으로 보아 요수의 남쪽 또는 동쪽에 위치하였던 것이 된다.  

    요양은 요의 남쪽 또는 주나라 역(易)의 방위해석으로 보면 동쪽이라는 뜻을 가지는 글자인 바, 결국 소요수(小遼水)의 남쪽과, 대량수(大梁水)가 그 지류가 되는 대요수(大遼水)의 동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후한시대에는 요동군에서 제외시키고 현도군에 편입된 것으로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구려국에 속하는 땅으로서 고죽국의 북쪽이자 번한의 서북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9) 검독(儉瀆)

    위만조선의 수도라고 하나, 위만의 수도인 험독은 패수인 난하의 동쪽에 있어 요동군에 속할 수 없는 땅인 바, 이 검독은 요동군이 되는 곳에 있는 땅으로서 위만조선의 수도인 험독과는 다른 곳에 있는 지명이 된다.  

    즉, 서기전221년경 진(秦)나라 때 요동군에 검독현이 소속되었다는 것인 바, 이 시기 이후까지 번조선과 위만조선은 건재하였던 것이므로, 패수가 되는 지금의 난하 서쪽으로 단군조선 번한의 수도이던 오덕지(五德地) 중 지금의 영정하 가까이에 위치하였던 것이 되는 한성(汗城)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 된다.  후한시대에 요동군에서 제외되어 요동속국에 편입된 것으로 되는데, 요동속국에서는 험독(險瀆)이라 기록되고 있다. 

    10) 거취(居就)

    실위산과 실위수가 거취에서 나왔다 하며, 실위수는 북쪽으로 양평에 이르러 대량수로 합류하는 것이 된다. 후한시대에는 거취현이 요동군에서 제외되었다. 

    11) 고현(高顯) 후한시대에는 요동군에서 제외되어 현도군에 편입되었다. 

    12) 안시(安市)

    대요수(大遼水)가 요동군 망평현이라는 새방의 밖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안시(安市)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므로, 이 안시는 대요수인 지금의 영정하 하류에 위치한 것이 되어, 지금의 난하 유역에 위치하였던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이 되는 단군조선의 번한 오덕지(五德地) 중의 하나인 탕지(湯池)와는 다른 곳이 된다. 

    13) 무차(武次)

    왕망은 이 무차를 환자(桓次)라고 하였다. 후한시대에는 요동군에서 제외되었다. 

    14) 평곽(平郭)

    이 평곽에는 철관과 염관이 있다 하는 바, 철과 소금은 특별관리 대상으로서 이 평곽이라는 현에 관리인을 두었다는 것이 된다. 

    15) 서안평(西安平) 

    왕망은 이 서안평을 북안평(北安平)이라 하였다 하는 바, 남쪽에 또 다른 안평(安平)이 있다는 것이 된다. 서안평 현의 북쪽에 소수맥(小水貊)이라는 강이 있고, 여기에는 구려(句麗)의 일족이 살았으며, 소수맥 강이 남쪽으로 흘렀던 것이 되는데, 이 소수맥이라는 강이 곧 소요수(小遼水)에 연결되고 서안평의 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대요수(大遼水)에 합류하는 강으로서, 이에 따라 서안평이 요동(遼東) 땅이 되는 것이며, 소요수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에 합류하는 청수하(淸水河)가 되는 것이다.

    16) 문(文) 왕망은 이 문(文)이라는 현을 수정(受亭)이라고 하였다.

    17) 번한(番汗) 

    이 번한이라는 현(縣) 땅에 흐르는 패수(沛水)가 새방 밖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다 하며, 이 패수는 한수(汗水)라고도 기록되고 있다. 위 문(文)이라는 현 땅과 이 번한이라는 현 땅이 서기전281년경에 연(燕)나라 진개(秦開)가 번조선과 국경을 삼은 만번한(滿番汗) 지역이 된다.

    18) 답씨(沓氏) 답수(沓水)라고도 한다. 

    (2) 후한서 군국지 동이전의 기록

    1) 양평(襄平) 

    2) 신창(新昌) 

    3) 무려(無慮) 

    4) 망평(望平) 

    5) 후성(候城) 

    6) 안시(安市) 

    7) 평곽(平郭) 유철(有鐵)이라고도 한다.

    8) 서안평(西安平)

    서안평 현의 북쪽에 소수맥(小水貊)이라는 강이 있고, 여기에는 구려(句麗)의 일족이 살았으며, 소수맥 강이 남쪽으로 흘렀던 것이 되는데, 이 소수맥이라는 강이 곧 소요수(小遼水)에 연결되고 서안평의 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대요수(大遼水)에 합류하는 강으로서, 이에 따라 서안평이 요동(遼東) 땅이 되는 것이며, 소요수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에 합류하는 청수하(淸水河)가 되는 것이다. 

    9) 문(汶) 

    10) 번한(番汗) 

    11) 답씨(沓氏) 


    나. 요동속국(遼東屬國)

    옛날의 한향(邯鄕)이었던 창요, 빈도, 도하 등 요서군(遼西郡)의 일부 땅과, 무려, 검독, 방 등 요동군(遼東郡)의 일부 땅을 한(漢)나라 안제(安帝:서기106년~서기125년) 때 요동속국이라 하였던 것이 된다. 

    여기서 요동속국에 해당되기 이전의 원래 요서군이 되는 창요, 빈도, 도하 등의 땅은 서기120년경의 한나라 안제 때 요동이 되는 대요수인 지금의 영정하 동쪽 유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원래의 대요수는 지금의 영정하인 사실을 염두에 두면 한나라 안제 이전에 일시적으로 고대 중국측에서 요수(遼水)라 한 강이 영정하 동쪽으로 옮겨졌던 것이 되어 고하(沽河)나 난하(灤河)였을 가능성이 있게 된다. 

    즉, 이전에는 요서군에 속하였다가 요동속국에 속한 것이 되는데, 대요수인 지금의 영정하 동쪽에 위치한 땅이 되어, 연(燕)과 진(秦)나라 때에는 요동군에 속하였다가,  요수가 동쪽으로 고하(沽河)나 난하(灤河)로 옮겨진 때에는 요서군에 속하였던 것이, 다시 요수가 서쪽으로 고하(沽河)나 영정하(永定河)로 옮겨진 때에는 요동에 속한 것이 되는 것이다. 

    1) 창요(昌遼) 

    옛날의 천요(天遼)이며 요서군(遼西郡)에 속하였다.  요수(遼水)가 동쪽이나 서쪽으로 이동됨에 따라, 원래 요동에 속하였다가 다시 요서에 속하였으며, 이때에 이르러 다시 요동에 속한 것이 된다. 

    2) 빈도(賓徒) 

    옛날에는 요서군(遼西郡)에 속하였다. 요수(遼水)가 동쪽이나 서쪽으로 이동됨에 따라, 원래 요동에 속하였다가 다시 요서에 속하였으며, 이때에 이르러 다시 요동에 속한 것이 된다. 

    3) 도하(徒河) 

    옛날에는 요서군(遼西郡)에 속하였다. 요수(遼水)가 동쪽이나 서쪽으로 이동됨에 따라, 원래 요동에 속하였다가 다시 요서에 속하였으며, 이때에 이르러 다시 요동에 속한 것이 된다. 

    4) 무려(無慮)

    이 무려 현에 의무려산(醫無慮山)이 있다고 하며, 진(秦)나라 때 설치된 원래의 요동군(遼東郡)에 속하였다.  

    이 무려라는 땅은 원래부터 요동에 속하였으며, 이때에 이르러 요동속국에 속한 것이 된다.

    5) 험독(險瀆)

    위만(衛滿)이 도읍하였던 왕검(王儉)이라 하나, 위치상으로는 위만의 수도이던 험독(險瀆)이 아니라, 패수(浿水)이던 난하(灤河)의 서쪽으로 지금의 영정하(永定河) 또는 고하(沽河)의  동쪽에 위치하면서 당시까지 왕검성(王儉城)이라 불렸던 단군조선 번한(番韓)의 다섯 수도인 오덕지(五德地) 중의 하나가 된다. 한성(汗城)일 가능성이 많다. 

    서기전221년경 진(秦)나라가 설치한 요동군(遼東郡)에 속하였던 검독(儉瀆)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즉, 검독은 험독(險瀆)의 오기(誤記)이거나 다른 표기가 되는 것이다.  

    6) 방(房)

    원래 진(秦)나라 때 설치된 요동군(遼東郡)에 속하였다. 이 방이라는 땅은 원래부터 요동에 속하였으며, 이때에 이르러 요동속국에 속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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