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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온 박혁거세
 알자고    | 2017·09·18 13:39 | 조회 : 94
인도에서 온 박혁거세

신화에 나타나는 우리말과 타밀어의 비슷함, 힌두교문화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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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신화가 깃든 경북 경주시 탑동 나정<경향신문>
 
  지난 10월 말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구간에서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BC 69 ~ AD 4)를 키웠던 진한 6촌장의 사로육촌 중 고허촌의 유적이 대량 발굴되면서 이들의 정체 규명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알에서 태어나 왕궁에서 키워지다가 자력으로 만주지역에 고구려를 세우고,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은 알에서 태어난 지 반나절 만에 성인이 돼 보름 지나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모든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 사로육촌의 6촌장 손에 13년간 키워지고 나서 신라의 초대왕으로 추대된다.
 

진한 6촌장 인도 타밀 출신 추정

필자는 가야 초대 왕비 허황후와 신라 제4대 석탈해왕의 설화 속에 말의 비슷함과 해양교류 등을 추적한 결과, 이들이 인도 남부의 타밀 출신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박혁거세의 설화에 나오는 주요 명칭들이 당시 타밀어와 같다는 것을 찾아냈다. 더구나 윷놀이와 제기 등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도 타밀어 이름과 놀이 형태가 완전히 똑같다. 박혁거세의 대부 격인 6촌장이 타밀 출신이라 그들의 말과 풍습을 우리에게 그대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 북부 출신으로 토론토에 사는 20여 만 명의 타밀인들 가운데 타밀인협회와 여성단체 관계자, 힌두교성직자, 교수, 교사 등 전문가들을 곧바로 만나 취재하고 타밀어 사전과 역사서 등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타밀어에서 ‘자력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운 좋은 왕’ 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왕’을 ‘박히야거세(Pakkiyakose)’ 또는 ‘박히야거사이(Pakkiyakosai)’라고 불렀는데 이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 바로 ‘박혁거세(朴赫居世)’다. 6촌장들이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박처럼 둥근 알에서 태어났다.”하여 성은 ‘박(朴)’, “세상을 밝게 한다.”하여 이름은 ‘혁거세(赫居世)’라는 한자어 작명을 한 것이다. 인도가 원산지인 ‘박’은 당시 타밀어와 우리말이 아주 똑같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수라이카이(Suraikai)라고 불리고 있다.
 
또 박혁거세에게 붙인 ‘왕’의 이름도 당시 타밀어 ‘거사간(kosagan)’과 그 발음과 뜻이 똑같다. 아울러 6촌장들의 이름 또한 당시 타밀인들의 이름과 비슷하다. 박혁거세 알을 처음으로 발견한 돌산 고허촌의 소벌도리는 타밀어로 ‘훌륭한 지도자 ( Good Leader)’를 뜻하는 소벌두라이(Sobolthurai)와 거의 같다. 알천 양산촌의 알평은 아리야판(Aryappan)과, 자산 진지촌의 지백호는 치빠이코(Chippaiko)와, 무산 대수촌의 구례마는 구레마(Kurema)와, 금산 가리촌의 지타는 치타(Cheetha)와, 명활산 고야촌의 호진은 호친(Hochin)과 하나하나 같다.

둘째, 박혁거세가 난 곳과 가까이 있는 우물 ‘나정’은 타밀어로 “파헤친 도랑이나 이랑”을 뜻하는 ‘나중(nazung)’과 거의 같다. 타밀어의 나주쿠(nazukku)는 “땅을 파헤쳐 이랑이나 도랑을 만들다.”(=make a shallow furrow)라는 뜻의 능동형 동사인데 그 수동형동사 ‘나중구(nazungku)’는 ‘이랑이나 도랑이 만들어지다’ (=be ploughed with shallow furrows)라는 뜻이다. 여기서 “파헤친 도랑이나 이랑”이라는 뜻의 명사 ‘나중(nazung)’이 바로 박혁거세의 우물 ‘나정’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2005년 8월 문화재청은 깊은 도랑과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박혁거세의 탄강전설이 깃든 경주 시내 우물 나정을 발굴한 성과를 공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발굴팀은 현장 조사에서 확인된 나정의 정중앙 8각형 건물지(한 변 8m, 지름 약 20m) 주변에서 이 8각형 건물지보다 앞서 축조되었음이 분명한 도랑, 즉 구거 같은 대형 구상 유적을 확인했다. 이로써 박혁거세가 신화 속 사람이 아니라 실제 역사상 있었던 사람으로 자리매김된 것이라고 문화재청측은 풀이했다.


알영 부인 이름도 타밀이름과 비슷

셋째, 박혁거세의 또 다른 이름인 ‘불구내’는 현재 타밀 나두주(州) 땅에 있던 당시 타밀인들의 촐라 왕국 바닷가 마을 ‘부르구나이(Purugunai)’와 거의 같다. 필자는 신라 4대 왕 석탈해의 고향이 동서양 무역으로 크게 흥했던 고대 국제도시 나가파티남(Nagapattinam)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도시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에 부르구나이가 있다. 박혁거세의 후견인 6촌장들이 이곳에서 동아시아로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들의 고향 이름을 박혁거세의 별명으로 붙여 막강한 영향력의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부르구나이는 현재 벨란간니(Velankanni)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가톨릭 교회 ‘안네 벨란간니(Annai Velankanni)’가 들어서서 명소가 됐다.

넷째, 고구려의 주몽이나 가야의 김수로왕과 마찬가지로 박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나지만 혁거세의 알이 박에 견주어졌다는 점이 다르다. 박은 우리말과 당시 타밀어가 그 발음과 뜻에서 똑같다. 박은 현대 타밀어로는 수라이라이(Suraikai)라고 불린다. 박은 인도나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 인도에서 건너온 6촌장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 필수품 중 하나인 박이라는 낱말을 쓴 것으로 보인다. 당시 타밀인들은 일년내내 무더운 날씨를 견디려고 박을 파낸 표주박 등으로 만든 물통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목을 축이곤 했다. 이 물통은 타밀어로 단니 쿠담(Thaneer Kudam)이라고 불리며 호리병박으로 만든 작은 물통은 수라이 쿠담(Surai Kudam), 호박으로 만든 큰 물통은 푸사니 쿠담(Pusani Kudam)이라고 부른다.

다섯째, 신라 이전의 나라 이름인 ‘서나벌’은 당시 산스크리트어 및 고대 타밀어로 황금을 뜻하는 ‘서나(Sona)’와, 벌판(field)을 뜻하는 ‘벌’ 또는 ‘펄(Pol)’이 합쳐져 황금밭(Gold Field)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말에서 ‘벌’의 옛말이나 거센말은 ‘펄’인데 고대 타밀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넓고 평평한 땅”을 뜻한다. 아울러 ‘서라벌’도 ‘아름다운(nice)’을 뜻하는 ‘서라(Sora)’가 ‘벌(Pol)’과 합쳐져 ‘아름다운 들판’을 뜻해 새 나라의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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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삼국사기 글을 입증하는 기원전후의 우물지
 

민속놀이 이름도 거의 비슷

여섯째, 박혁거세의 비 알영(閼英·BC 53 ~?)부인은 아리영이라고도 불리는 데 타밀 여성이름 아리얌(Ariyam)과 거의 같다. 아리얌은 아리야말라(Ariyamala)의 줄인 이름으로 기원전 타밀 왕국역사에 나오는 캇타바라얀(Kaththabarayan)왕의 부인 이름인데 이를 신라 초대 왕비 이름으로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계룡의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알영부인이 얼굴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이 생겼다는 내용도 인도 힌두교 신화에서 지혜와 총명의 여신(Goddess of Learning and Wisdom) 사라스와티(Saraswati)가 백조(swan)의 부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설화내용과 거의 같다. 결국 알영부인은 용모와 인품이 뛰어나 백성들에게 박혁거세와 함께 이성(二聖)이라고 불릴 정도로 추앙받았다는 것은 힌두교를 믿는 인도 타밀인들이 사라스와티를 숭배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힌두교와 관련된 것들이 우리 역사서에 나타나는 것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석리정전’에서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곧 천신 이비가지에 감응하여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이진아시왕의 별칭)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김수로왕의 별칭) 두 사람을 낳았다.”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모두 힌두교와 관련 있다. 힌두교의 주요신 시바(Shiva), 부인 파르바티(Parvati), 두 아들 가네쉬(Ganesh)와 무루간(Murugan)을 각각 고대 타밀어로 ‘이비가지(Ibigaji)’ ‘정견(Chongyon)’ ‘뇌질주일(Noejil Juil)’ ‘뇌질청예(Nojil Chongye)’라고 불렀다. 이 구절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펴낸 동국여지승람의 증보 개정판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최치원의 ‘석리정전’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곱째, 박혁거세왕은 재임 17년(기원전 40년)에 알영부인을 대동, 6부를 순시하며 농사와 양잠을 권하고, 농토를 충분히 이용하도록 하였다(王巡撫六部, 妃<閼英>從焉. 勸督農桑, 以盡地利.)고 전하고 있다. 즉, 삼과 누에로부터 얻은 실로 길쌈해서 삼베옷과 비단옷 등을 해 입었고 벼농사를 비롯한 곡식생산에 주력했다는 이야기다. 또 제3대 유리왕은 추석 때 길쌈놀이를 실시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우리말의 비단, 삼, 길쌈, 벼, 풀 등은 고대 타밀어와 그 발음과 뜻이 똑같다. 놀랄 정도로 너무나 똑같은 농경사회의 주요 명칭들을 다음의 비교표로 간추렸다. 뿐만 아니라 새해 첫날 우리가 즐기는 윷놀이, 제기놀이, 쥐불놀이, 팽이놀이 등 민속놀이도 당시 타밀어로 각각 ‘윷노리(Yuddh, Yuth Nori)’ ‘제기노리(Jegi Nori)’ ‘추불 노리(Chupul Nori)’ ‘ 팡이 노리(Pamgi Nori)’로 불리며 그 형태도 똑같다. ‘놀이’는 고대 타밀어로 ‘노리(Noori), 또는 노루(Nooru)’로 불렸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빌햐야들(Vilaiyattu)’로 불린다. 다음의 비교표를 보면 타밀인들이 살깣빛만 다를 뿐이지 바로 이웃 사람으로 느껴진다.

 
고인돌 문화 인도에서도 발견

현대 타밀어에서도 우리말과 똑같은 말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아빠(아빠), 암마(엄마), 안니(언니)”
“난(나), 니(너)”
”니, 인거 바!(니, 이거 봐!)”
”니, 인거 와!(니, 이리 와!)”
”난, 우람(난, 우람하다)”
”난, 닝갈비다 우람(난, 니보다 우람하다)”
”난, 비루뿜(난, 빌다)”
”바나깜(반갑다)”
"난, 서울꾸 완담(난, 서울로 왔다)””
모땅(몽땅)”
”빨(이빨), 무크(코), 깐(눈깔), 코풀(배꼽), 궁디(궁뎅이)”등 거의 똑같은 단어와 어구들이 적지 않다. 

이는 박혁거세 부부의 대부격인 6촌장들이 인도 타밀의 것을 한반도에 소개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그 이전에 중국대륙을 통해 벼나 보리농사가 이미 들여왔다고 하더라도 농사 관련용어와 민속놀이 등은 타밀출신들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우리말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타밀인들이 한반도까지 닿았던 또 다른 증거는 박혁거세와 석탈해 등 신라 초기의 왕들의 난생설과 경주와 포항 등 신라지역에서 대거 발견되는 고인돌 등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고고학계의 원로인 한양대의 김병모 교수에 따르면 벼농사, 난생신화, 고인돌로 대표되는 거석문화 등의 지리적 분포가 인도-동남아시아-한반도 남동부 해안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인도 문화의 영향을 시사했다. 김교수는 또 “신라주민은 진한-신라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살면서 수많은 고인돌을 남겨 놓은 토착 농경인들, 기원전 3세기 중에 중국 진나라의 학정을 피해 이민온 사람들, 기원전 2세기에 이주해 온 고조선의 유민들, 그리고 고구려에게 멸망한 낙랑에서 내려온 사람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는데 필자는 토착 농경인들을 이끌던 6촌장들이 타밀출신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주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가?

인도 남부 해안지대의 타밀인들은 기원전 수세기부터 서쪽으론 로마제국까지, 동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중국까지 활발하게 진출하다가 대만 북쪽으로 흐르는 흑조 난류를 타고 북상, 급기야 한반도까지 이른 것이다. 타밀인들은 사로 6촌 가운데 동해안과 접한 금산가리촌에 이른 뒤 내륙으로 들어가 경주의 사로 6촌을 개척, 정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타가 통치한 영일만 부근 금산가리촌은 현재 동해안과 접한 경주시 감포읍과 양남면, 양북면 등 3개 지역 모두를 포함했다.

또, 필자가 인도 타밀 출신으로 간주하는 신라 제4대왕 석탈해의 알이 담긴 궤짝도 동해를 떠돌다가 동해안의 아진포에 이르렀는데 이곳이 지금의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아진포라고 석씨전국대종회가 밝히고 있어 이래 저래 금산가리촌은 당시 인도 타밀인들의 도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경주 덕천리 유적 발굴작업에서 출토된 목관묘 11기와 청동기 항아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무문토기, 그리고 묻힌 사람의 지위가 높음을 알려주는 오리모양 토기 11개와 말과 호랑이 모양의 허리띠 고리 등이 당시 인도 타밀의 역사적 유물들과 비교, 추적해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6촌장들은 물론 박혁거세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신라 제3대 유리왕은 서기 32년 육촌을 육부로 개편하고 각 부에 성씨를 하사함으로써 6촌의 각 촌장들은 자동적으로 각 성의 시조가 된다. 소벌도리는 최(崔)씨의, 알평은 경주 이(李)씨의, 구례마는 손(孫)씨의, 지백호는 정(鄭)씨의, 지타는 배(裵)씨의, 호진은 설(薛)씨의 조상이 된다.
- 김정남〈타밀학회장〉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신라의 박혁세왕은 인도의 타밀족인가?

 카나다 토론토에 파견된 언론인이요, 타밀어를 연구하고 있는 김정남님은 박혁거세는 인도 남부의 드라비다 반도에 산재해 있는 타밀족이라고 제의하고, 타밀어와 박혁거세왕의 역사적 글에 나타나는 여러 단어들을 대응시키고 있다.
 김수로왕의 왕비의 고향이라고 하는 아유타(阿喩陀)가 인도의 남부 타밀나두주의 아요디야 쿠빰(Ayodhya Kuppam)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박혀거세는 당시 타밀어로 /박키야거세(Pakkiyakose)/ 또는 /박키야거사이(Pakkiyakosai)라는 이름과 같다 하고 /pakkiyam/은 “행운” 혹은 “축복”을 뜻한다고 하고, /kose, kosai/는 임금의 뜻이라고 했다. /거세/는 중세국어에서 “왕”을 뜻하지만 /박/은 “밝‘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연구과제가 되어 있다.
 둘째 박혁거세가 탄생지인 우물 /나정(蘿井)/은 타밀어 /nazung/과 대응이 되며, 뜻은 “도랑”이라고 했다. 또한 /서나벌(徐那伐)/은 산스크릿 말로 /sona/ "황금“과 /pol/"벌판”과 같다. /so-na/의 /so/는 단군이 도읍한 아사달의 /asa/에서 나온 말이며, /pol/은 환인의 나라 12 국명 중 비리국(卑離國)의 /pili/에서 나온 말이니 역사적인 의의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닌 가 생각한다.
 셋째 박혁거세 왕의 왕비인 알영(閼英)은 타밀 여성의 이름인 Ariyam과 거의 같다. Ariyam은 Ariyamala의 줄인 이름으로 “값진 보석”을 뜻한다고 했다. 또한 알영부인이 태어났을 때 얼굴이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이 생겼다는 내용도 인도 힌두교 신화에서 지혜와 총명의 여신(Goddess of learning and wisdom), 사라스와티(Saraswati)가 백조의 부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신화의 내용과 거의 같다.
 넷째 박혁거세의 다른 이름인 불구내(弗矩內)는 타밀어로 부루구나이(Purugunai)와 거의 같은데, 인도 남부 밀나두주의 한 마을 이름이다. 그래서 박혁거세가 그 마을 출신이 아닌가 호기심을 갖게 한다.
 다섯째 서라벌에 흘러들어온 진한 세력의 촌장들의 이름이 타밀 사람들의 이름과 비슷하다.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의 알평(閼平)은 아리야판(Aryappan)과. 돌산(突山)의 소벌도리(蘇伐都利)는 소벌두라이(Sobolthurai)와, 자산(紫山) 진지촌(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는 씨빠이코(Chippaiko)와,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의 구례마(俱禮馬)는 구레마(Kurema)와 금산(金山) 가리촌(加리村)의 지타(祗陀)는 씨타(Cheetha)와,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의 호진(虎珍)은 호친(Hochin)과 각각 이름이 같다는 것은 역사적 인연의 고리가 있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리들의 관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박혁거세가 북쪽에서 내려온 진한세력이 아니고 인도의 타밀족이라고 말하기엔 자료가 너무모자라서 앞으로의 연구 거리로 남아 있다.
 
<글돋선생의 변>
 
김정남 타밀학회장의 윗 기사는 타밀어와 신라어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큰 과제를 던져준 것만은 사실이다. 일본도 "일본어의 기원"을 타밀어에서 찾는 언어학자가 있다.
 
김회장의 이론은 무조건적으로 고허촌 집단들이 인도에서 왔다고하는 설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배로서는 삿대와 노로써 수만리 바닷길을 온다는 것부터 과학적인 풀이가 있어야 한다.
 
기원전의 해양술과 배의 기술로 아직 돗대가 없는 배로써 대규모 인원의 이동은 거의 할 수 없다. 그리고 오끼나와에서 한국 남해안을 오르는 바다를 (2~3세기후, 중국 구당서나 신당서, 위지동이전에 나오는 글에 따르면) "한해"라 하여 일본에서 중국으로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한 모험이라고 적고 있다.
 
다시 말해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바로 일본(왜)로 건너는 것도 거의 힘든 항해라고 한다. 오로지 한국 남해안, 연안해를 거쳐서 건너는 길을 택하는 바닷길이 있을 따름이다. 그것도 남해안의 각 섬과 대마도, 왜의 큐슈의 일기도를 거쳐 건너는 징검다리 섬이 있기 때문에 된다는 것이다. 
 
일본어의 기원에서 타밀어를 주장하는 사람도 왜 일본(왜)까지 와야 하는 당위성과 연관을 규명할 수 없어서 그 주장은 숙제로 남겨 놓았다.
 
세계적 언어학자 "밀러(미국)"는 사람이 가면 사람과 말(문화)이 따라 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규명하려면 두 나라의 역사적인 연계성을 비교하고 두 말의 근친성과 동질성을 규명해야 하는 것이 첫째의 원칙이라고 했다.
 
유럽의 경우 라틴어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등 여러 말의 근친성을 규명하려고 비교 나라의 역사를 먼저 살펴 개연성을 알아야 한다고 원칙을 만들어 놓았다. 밀러도 타밀어와 일본어와의 비교에서 언어의 근친성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지만 인도와 일본과의 역사적인 면에서의 근친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하여 그들이 인도에서 왔다고 하기엔 역사적 자료와 인종적 근친성에서 거의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였다.
 
오히려 타밀어와 일본어를 쓰는 인종들이 북방지역에서 한 무리는 인도로, 한무리는 일본(왜)로 각각 이동하였다는 가설을 내 놓고 있다. 왜냐하면 인도는 아리안 계통(유럽어)이 타밀어(교착어)와 드라비다어(한국어와 비슷한 교착어)를 밀어내고 지금은 아리안 계통이 인도를 거의 다스린다. 허황후(월씨국/훈족의 일족)의 계통과 석탈해(용성국/일본큐슈에 있다/환단고기기록)의 경우도 기록상으론 북방계통이다. 그들의 이동도 같은 맥락이다. 글에 따르면 삼한 중 진한은 고조선의 붕괴로 진시황의 노역을 피해 옮긴 겨레라 하였다. 일본에도 秦진(하타족)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갔다는 글이 있다. 고조선 멸망으로 그들의 인도북부 지역과 동방 한반도, 일본지역의 이동이란 역사적 해석에 촛점을 맞춰보는 것도 신라 6부촌의 말과 타밀어 관계를 규정지을 수 있는 역사적 연계성이 보장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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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화국의 날’ 에 수도 뉴델리에서 낙타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이는 병사들. (경향신문) 

"밀러"의 이론은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면에서 믿음성이 있다. 타밀어와 한국어,일본어 모두가 인도 드라비다어와 타밀어와 근친성이 높다는 사실은 고대사적으로 그 원류의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제 그 역사적 문화적 추적 경로를 찾는 길이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로써 현재 한국어의 기원도 찾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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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의 설화가 실린 삼국유사

참고적으로 한단고기에는 박혁거세는 동옥저 사람으로 어머님과 함께 신라에 왔다고 적고 있다. 동옥저는 북방계통임이 기록상으로 틀림이 없다. (글돋선생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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