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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무장 항일 독립운동 중광단 선언 !
 알자고    | 2018·07·13 19:48 | 조회 : 40
무오년 무장 항일 독립운동 중광단 선언 !

★1919 기미년 3월 1일 정오 !
한 머리 땅 전체를 울린 소리가 있었으니 세계 식민지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거족적이고 거국적이며 동시 다발적인 평화 만세 운동 !
아무리 축소 조작하려 해도 그 가치는 많은 전세계 사람들이 인정한다. 비슷한 시기에 간디가 주도한 사티아그라하<진리를 찾으려는 노력> 무저항 불복종 운동에도 영향을 준 듯하다.
3.1 만세 운동 보다 1개월 앞선 2.8 독립선언 그러나 그 것 보다 3개월 먼저 북만주 십리평 잣덕에서 대종교 중진을 주축으로 무장 투쟁을 선언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 그것이 무오 독립 선언이다. 1918년 11월 13일 길림성 화룡현 대종교 총본사에서 발표하였다. 무헌 김교헌 대종교 1대 종사가 작성자이다.
총 참가자 39명 중 김교헌과 유세복은 대종교 종사로 2대와 3대 교주이고 김규식, 김동삼, 김좌진, 김학만, 여준, 이광, 이대위, 이상룡, 이시영, 박성태, 박용만, 박찬익, 이탁은 서일의 북로군 정서와 관계가 깊으며, 정재관, 이동열, 이동녕, 이동휘, 이범윤, 손일민, 이세영, 문창범, 최병학, 이종탁은 대종교 간부들이고, 박은식, 신채호는 김교헌의 제자이다.
안창호, 안정근, 이승만은 기독교인으로 참여는하지 않았고 이름만 올렸으며, 신성, 조욱, 이봉우, 조용은, 김이주, 한진, 허적, 황상규는 아직 어느 소속인지 밝히지 못했다. 위 분류는 대종교 중광 60년사를 참고로 필자가 직접 조사한 것으로 매우 신빙성이 높다. 신성은 신규식, 조욱은 조성환으로 대종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조용은, 김이주, 이봉우, 허적, 황상규, 한진은 대종교인으로 보이나 아직 찾지 못했다. 한진은 대종교인들이 상해에서 조직한 동제사의 회원이며, 조용은은 조소앙의 본명이다. 아직 밝히지 못한 4분들의 영령에 매우 송구스럽다. 앞으로 연구를 더하여 대종교인이라는 것을 꼭 밝히고 싶다.
* 인물 연구에 시차가 있어 저도 신성, 조욱, 한진, 조용은에 대해서 후에 알게되었습니다.
무오 독립 선언에 대하여 예전 보다 많이 알려져있다. 그러나 대종교에 전하는 역사적 사실과는 너무 다르다. 그것이 우리가 친일파를 청산 못한 부작용이다. 일부러 축소할 수도 있었고 독립운동을 해보지 않아 모를 수도 있겠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우리의 역사적 인식이 어떤지 중앙 매체를 통하여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라며 아래 첨부한 사진은 대한민국 국가 지정 기록물에서 찾아낸 무오 독립선언에 관한 내용이다.
2015년 2월 1일 중앙 선데이 인터넷 판
대한독립선언서는 지린성 지린시에서 발표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고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린성 허룽시에서 발표됐다는 설도 있다.
기미년(1919년) 3·1 운동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그에 앞서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2·8 독립선언도 널리 알려져 있다. 춘원 이광수를 비롯한 일본 거주 유학생들이 발표해 3·1 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역사교과서에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잊혀진 2·1 독립선언 재조명 목소리 !
 이와 별도로 해외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중국 만주에서 발표한 독립선언문이 있다. 일명 ‘무오독립선언’이라고도 불리는 대한독립선언서다. 시기적으론 3·1과 2·8에 앞선다. 1919년 2월 1일 발표된 이 독립선언문은 당시 해외 독립운동의 거점이던 만주와 연해주, 국내와 일본은 물론 멀리 미국에까지 배포됐다. 독립기념관엔 당시 배포된 선언문 원본이 소장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극히 드물다. 교과서는커녕 학계에서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찾기 어렵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일반인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고, 국회도서관이나 각종 학술자료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도 관련 논문이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그러니 ‘잊혀진 독립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이 여긴 옛 만주지역인 중국 동북 3성의 교민들이 31일 선양(瀋陽)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당시의 독립선언 현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교민 300여 명이 다시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하며 선열들의 뜻을 기린 것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지 70년, 선언서가 발표된 지 96년 만의 일이었다.
 국한문 혼용체로 35행 1723자로 이뤄진 대한독립선언서는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 높던 조소앙(趙素昻·본명 조용은·1887∼1958) 선생이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소앙은 임시정부 창설에 관여한 뒤 외무부장을 지냈으며, 삼균주의를 주창한 독립운동가다. 대종교 2대 교주를 지낸 김교헌이 작성했다는 설도 있지만 학계에선 조소앙 기초설을 정설로 본다. 그가 남긴 자서전과 선언서 배포 책임자였던 정원택이 남긴 기록에 따른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던 1918년, 조소앙은 한국 독립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판단한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이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의 기운이 무르익는 것을 비롯, 국제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만주로 가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을 규합했다. 조소앙은 1917년에도 독립운동 진영의 단결을 호소하는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 1919년 1월에 창설된 무장투쟁단체인 대한독립의군부였다. 몽양 여운형의 숙부인 여준(呂準)이 주석을 맡고 자신은 부주석을 맡았다. 그 뒤 의군부 간부들이 역할을 분담해 만들고 배포한 문서가 바로 대한독립선언서다. 박용만은 이를 영문으로 번역해 하와이에까지 배포했다. 오늘날 영문본이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등에 전해 내려오는 이유다.
서명인 중 친일 시비 논란 한 명도 없다 !
대한독립선언서는 3·1 독립선언이나 2·8 독립선언과 뚜렷이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3·1 독립선언이 국내에 있던 민족 대표 33명에 의해 이뤄진 것인 데 반해 해외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선언서에 서명한 39명의 면면을 보면 당시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지도자로 이름 높은 명망가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 김규식·김좌진·박은식·신채호·안창호·이동녕·이승만·이시영 등 쟁쟁한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의군부에 관여하거나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직접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했고 나머지 인사들은 간접적으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소앙 선생의 조카인 조만제 삼균학회장은 “당시 상황으로 볼 때 39명이 모두 한곳에 모이는 건 불가능했다”며 “미주에서 활동하던 안창호·이승만 등 일부 서명자는 사전·사후 연락을 통해 서명에 동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39명 가운데 친일파 시비에 오르내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2·8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이광수나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최린·최남선 등 일부 인사가 훗날 친일 행적으로 문제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번 교민 기념식의 기획에 참가한 김영식 한중문화교류원장은 “무오독립선언 참가자 일부는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순국했고 나머지 분들 중에서도 단 한 분 변절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이 특히 가치를 두는 건 선언서의 내용이다. 3·1 독립선언이나 2·8 독립선언에 비해 훨씬 신랄하게 일제의 침략을 비판하고 더 선명하게 독립의지를 표출했으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장투쟁 노선을 명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궐기하라 독립군! 한번 죽음은 사람의 면할 수 없는 바인즉, 개·돼지와도 같은 일생을 누가 원하는 바이리오, 살신성인하면 2000만 동포와 동체로 부활할 것이니 일신을 어찌 아낄 것이며 집안이 기울어도 나라를 회복하면 삼천리 옥토가 자가의 소유이니 일가를 희생하라.”
 일제 침략 이전의 원상회복을 촉구한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할지어다”란 부분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맥이 닿는다. 선언서의 압권은 맨 마지막 문장이다.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곧이어 창설되는 상하이 임시정부와 미주의 일부 독립운동가가 외교에 의한 독립과 실력 양성론을 주장한 것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출처 : 통일을 위한 한민족 역사공부
https://www.facebook.com/groups/100108606991621/permalink/618850481784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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