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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
 성미경  | 2005·09·08 16:07 | 조회 : 2,349
진나라, 한나라 이후, 세번째로 지나를 통일한 사람들이 수나라 입니다.
진나라의 통일은 동이족의 그늘을 벗어나 최초로 지나를 하나로 통일한 일로 만족을 해야 했으며 한나라의 한무제는 동이족이 분열되어 약해진 틈을 타서 요동지방의 일부를 공격하여 힘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졸본부여를 중심으로 한 동이족 연합군에 패퇴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고조선 시대까지는 동이족의 지배를 받다가 지나의 힘이 강성해져 통일을 한 후에도 한번도 동이족을 누르지 못한 지나는 호시탐탐 시회를 엿보게 됩니다.
6세기 말 한나라 이후에 분열된 지나를 통일한 수나라는 200년 가까이 외교적 힘과 무력으로 국제질서의 안정을 주도하며 동방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동이족인 고구려를 노리게 됩니다. 수나라는 그들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사고 아래 지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명은 중립화의 천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믿음을 실행해 옮기려는 반면, 고구려는 고조선에서부터 내려온 천손사상으로 고구려 대왕의 통치하에 천손민인 고구려인이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의식을 굳건히 하고 있었습니다. 강력해진 중화문명권의 등장은 국제 질서상의 패권 다툼을 위해 고구려 문명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동아시아 최대의 문명전쟁인 고구려와 수, 당의 70년간 대전쟁인 것입니다.
통일된 중화문명의 등장은 국제 질서상 당시 동북아의 강좌인 고구려문명권과 동북아의 패권을 놓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고구려의 평원왕(559~589)은 수가 반드시 고구려를 공격해 올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병기를 수리하고, 곡식을 저축하며 방어체계를 마련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598년에 수나라 문제는 고구려 영양제(영양왕)에게 다음과 같은 국서를 보냈습니다.
“너희 요동땅이 넓다하나 어찌 우리 황하에 비길 것이며, 너희 군이 강성하다 하나 어찌 우리 백만 군대에 대하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우리를 군부의 예로 받들고 이후 요하를 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이러한 국서 아닌 협박의 편지를 놓고 고구려 조정에서는 어찌해야 할지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병마도원수였던 진주강씨 시조인 강이식 장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 이런 더러운 글에는 글 아닌 칼로써 대답함이 마땅합니다. 최선의 방어는 선제공격입니다. 저에게 5만의 군사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해서 강이식 장군이 이끄는 5만 군사가 수나라의 요서지역(영주:지금의 조양)을 먼저 공격하면서 수나라와의 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문제는 넷째아들 영량을 앞세워 수군과 육군 30만 대군(병참인원가지100만)으로 고구려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6월에서 9월까지 요서지방에서 장마와 역병 속에서 머무르다가 조양지방을 넘지 못하고 퇴각함으로 결국 수나라의 30만 군대는 고구려의 5만 군사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그후 수나라는 절치부심, 고구려 정벌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알아챈 백제와 신라는 이때,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정벌할 것을 요청했었지요. 특히 이 당시 화랑도의 세속오계로 유명한 신라의 원광법사는 수나라에 고구려 정벌을 욮청하는 편지를 썼는데, 그 이름이 바로 걸사표였습니다. 동족간의 배신의 역사는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2차 침입은 살수대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양견이 612년113만 대군(병참인원까지 513만: 수서에 기록되어있음)을 24개군으로 편성하여 고구려에 쳐들어 왔습니다. 그 행궁의 길이가 구백 육십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수양제는 요동성을 공격하였으나 요동성 공격에 별다른 성과가 없자 수의 24군중에서 무려 9개군으로 구성된 30만 5천명 규모의 최정예병사로 구성된 별동부대를 대릉하 하류의 노하진과 요하 서쪽의 회원진에서 평양지역을 향해 출발시킵니다. 우리 중문과 우문술이 이끄는 이들은 3개월의 식량과 무기, 그리고 갑옷 천막들을 한꺼번에 지급을 받아 휴대했습니다. 이러한 적의 사정을 탐지한 고구려가 취한 전술은 청야전술입니다. 백성들을 그들의 살림살이와 함께 성으로 옮기거나, 전쟁지역에서 멀리 피신하도록 한 후 들을 불태워서 이동해온 적이 고구려 땅에서 식량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전술입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적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압록강의 건너 수군 진영으로 들어갔습니다. 을지문덕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수나라 장군들은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을지문덕은 잡히지 않고 압록강을 건너 무사히 탈출합니다. 당당하게 적진 깊숙이 들어가 적을 희롱하고 적을 유인한 을지문덕의 전략에 수나라 우중문은 당한것입니다. 우문술 등 여러 장들이 군량 부족을 이유로 철군을 주장했으나, 을지문덕에게 희롱당하고도 그를 잡지 못한 우중문이 을지문덕을 이기겠다고 고구려 내부로 깊숙이 진격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을지문덕은 적의 약점을 파악했기 때문에 적을 더울 끌어들이기 위해 약한 병사들로 적에게 자그마한 승리를 안겨줍니다. 수나라 군대는 자신들의 결정적인 취약점과 고구려의 전략에 걸려들었다는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자만심이 고조되어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하고자 살수를 건너 7월 초순에 평양 북쪽 30여 리 까지 쳐들어옵니다.
이에 을지문덕은 평양성 북방20여 리 지점에 정예부대를 배치하고 수나라 군과 대치하면서 적장 우중문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보내 저들을 무모한 진군을 풍자하고 철군할 것을 종용합니다.

    신책구천문
       그대의 신기한 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묘산궁지리
       기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마저 통달았네
    전승공기고
       싸움에 이겨 공이 높았으니
    지족원운지
       만족한 줄알았거든 이제 그만 멈춤이 어떠하냐

그제서야 고구려의 계략을 알고 수나라는 더 이상 공격해보았자 강력하게 수비하고 있는 평양을 쉽사리 함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수 하구의 수나라 수군과의 연락도 두절되어 수륙양면 작전마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는 신속한 철군만이 자신들의 안전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고구려의 기습공격에 대비하면서 철수를 시작합니다.
7월 하순에 수의 군대가 살수를 건널 때 이미 고구려군은 이 상황을 예상하고 살수 상류에 임시 제방을 급조하여 철수하는 적의 도하작전을 교란시킬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는 적을 향해 고구려군은 상류를 막고 있던 제방을 일거에 무너뜨려 혼란에 빠뜨리고서, 정예부대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나라 군사들은 이미 식량난이 악화되어 기아상태에 놓여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깊숙이 들어와 포위망 속에 고립되어 있다는 공포심 떄문데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구려군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공격이 시작되자 수나라 군대는 급속히 무너지게 됩니다.
살수에서 대패한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군의 끈질긴 추격에 시달리며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30만이 넘었지만 수나라 별동부대는 요동성으로 도망올 때 남은 군사라고는 겨우 27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완전한 패배를 당하고 맙니다. 기세 좋게 고구려를 공격했던 수나라는 이와 같은 참담한 패배에 충격을 안고서 8월 하순경 전군을 철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전쟁 역사 중 가장 큰 승리로 기록되는 살수대첩은 을지문덕이란 걸출한 영웅와 고구려인의 일치단결이 만들어낸 것이며, 세계 전쟁사에도 크게 기록될 만한 고구려의 대승리였습니다.
그 수양제는 복수심과 수치심에 불타서 자신이 직접 613년4월, 614년 2월 두차례 고구려 정벌에 나서나 또다시 실패합니다. 이때 수나라에는 쓸데없이 요동에 가서 젊은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무향요동낭사가’라는 고구려 정벌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노래가 유행했었습니다.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운하건설을 하는 등 국내 상황이라든가,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감행한 고구려 정복의 야욕은 정권의 몰락을 초래하게 됩니다. 수는 최대규모의 인력과 비용을 들이고도 승리하지 못하는 무모한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결국 수나라는 전국적인 반란이 일어나 멸망합니다. 고구려문명에 대항하려던 통일된 중화문명은 참혹한 패배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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