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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전쟁과 환향녀
 성미경  | 2005·09·29 17:31 | 조회 : 2,660

조만전쟁과 환향녀



조선 인조 때 만주족이 일으킨후금이 우리는 조선과 형제니 형제국으로서 손을 잡고 명을 치자는 제의를 하게 됩니다. 아런 제한에 소중화로 여기며 제 정신을 잃어버려 사대주의에 빠져있던 조선은 후금을 오랑캐라고 무시하며 후금과 적대시하게 됩니다. 후에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꾼후 명을 무너뜨리고 중국대륙의 주인이 됩니다. 조선은 청을 오랑캐라고 무시한 대가로 청나라는 1차로 3만의 군사로 제1차 조만전쟁을 일으켜서 강화조약을 맺고 돌아갔으나 조선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2차로 청태조가 이끄는 10만의 군사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싸움한번 해보지 못하고 항복을 하니 그것이 그 유명한 제2차 조만전쟁이고 삼전도의 치욕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제2차 조만전쟁과 같이 무인지경으로 제대로 된 전투 한번 못하고 진 경우는 이것이 유일한 경우입니다. 당시에 임경업 장군은 청의 1차 침공 때에 전라도 지역을 지키고 있어 군사를 이끌고 올라 왔을 때는 이미 강화조약이 체결된 뒤라서 울분을 삼키고 있던 중 그뒤에 북방을 지키고 있으면서 제2차 조만전쟁 발발1년 전에 전쟁의 기운을 감지하고 군사 2만명을 증원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이때 조정에섲는 한사람에게 너무 많은 군사를 주면 불측한 마음을 품게 되니 이 요청을 들어주면 안 된다는 대신들의 주청에 2만명의 증원을 허락한지 하루만에 취소를 하게 됩니다. 만약 이때에 임경업 장군에게 2만명의 군사를 증원해 주어 북방을 지키게 했다면 청은 무리하게 침입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임경업 장군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에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단 800명의 군사로 청의 침입 시에 백마산성을 수비하고 있었습니다. 청태종은 임경업이 명장임을 알기에 임경업 장군이 지키는 백마산성을 우회하여 한양까지 단 15일만에 쳐들어오니 인조는 미처 피난할 시간도 없이 황급히 남한산성으로 대피하게 됩니다. 이때에도 임경업 장군은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급보를 띄움과 동시에 병마사 유림에게 지금이라고 군사 1만명을 주면 청나라 수도인 심양을 공격하겠다고 했으나 유림이 시세를 관망하여 조정의 명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며 그의 뜻을 들어주지 않으니 아무리 훌륭한 명장이라도 군사 없는 장수는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아서 임경업 장근이 2번의 전쟁에서 한차례의 전투도 못하고 항복을 하게 되니 하늘이 우리민족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것이 이와 같이 엄증하였습니다.

이후에 강화도에 피난갔던 세자와 왕자들이 포로로 붙잡히니 인조는 마침내 항복을 하게되고 삼전도에서 우리역사상 유례가 없는 치욕적인 항복 조인식을 치르게 됩니다. 인조는 머리를 풀고 무릎으로 기어서 172개가 넘는 돌계단을 올라가면서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청태종 홍타시에게 세 번을 올리게되 한번 절을 할 때 마나 세 번씩 아홈번을 돌계단에 이마를 부딪혀야 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이마를 찧는 소리가 단위의 청태종 귀에 들려야 했고 이마가 터져 피가나서 그 피가 가슴까지 흘러내려야 항복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때 삼전도에서 조선의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다 뭉개졌습니다. 청나라는 바로 그것을 노렸던 것입니다. 원래 청나라 만주족과 우리는 같은 동이족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한민족은 장손민족이며, 만주족의 원류인 말갈족이나 여진족은 다 동이족의 방계혈족이었습니다. 동이족의 종주국의 후예인 조선이 두번 다시 청나라 만주족에게 도전할 마음이 없도고 만들자는 것이 청나라의 의도였습니다.

항복 후에 조선은 청나라의 군수품으로 필요한 것은 모두다 바쳤고, 멀리 제주도의 진주부터 조선의 여자들까지 모두다 바쳐야만 했습니다. 그때 열세살 열여섯살 된 앳된 소녀들을 청나라의 하녀 또는 군사들의 선적인 노리개 감으로 다 갖다 바쳤습니다. 그 어린 딸들이 오랑캐라 불리던 청나라의 노리개로 끌려갔을 때 그 부모들은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래서 딸을 빼앗겨 버린 어머니는 통곡하다가 기절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고, 목 매달이 죽는 등 그때 조선 백성의 삶은 완전히 삶이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힘이 없고 약해지면 그리고 정신을 못 차리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수모를 받을 때 ‘동방예의지국’은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 만주족은 전체인구가 140만 명이었는데 비해 조선의 인구는 6백반 명이나 있었지만 우리정신을 잊어버리고 사대주의에 빠져 단합도 못하고 전쟁준비도 못한 결과 6백만명의 사람들이 한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한 뒤 17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후 끌려간 백성들을 다시 돌려받을 수 없겠느냐고 의교교섭을 계속한 끝에 10년이 지나서야 돈을 내고 그 중 5만명을 돌려 받았습니다. (양반은 100냥, 군수 딸은 50냥, 일반 백성들은 5냥하는 식으로)

그렇게 돌아온 5만명 중에서 2만명이 1년 안에 다 자살을 했는데, 대부분이 여자들이었습니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여자들을 청나라 군사들하고 놀아난 여자들이다 하여 이빨에 빨간칠 까만칠을 해서 하늘과 사람들을 똑바로 보고 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고향에 돌아온 여자들이라 해서 환향녀라 불렸고, 세월이 흘러 화냥년이란 욕으로 변한 것입니다. 청나라에 끌려가 그 수모를 당하고, 돌아와서는 동족들에게 그 수모를 겪고 그 몸으로 살아 돌아왔다고 손가락질 당하고, 그러니 어떻게 살 수가 있었겠습니까? 결국은 정치를 잘 못하고, 나라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덕분인데 백성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반성은 할 줄 모르고, 오히려 희생자들을 더욱 짓밟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6만명은 돈이 없어 조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성적인 노리개로 하인으로 실컷 부리다가 병들고 힘이 없어지면 더욱 사람대접을 못 받았습니다. 청나라 군사들이 활쏘기 연습을 하는데, 우리 조선사람을 과녁으로 썼다고 합니다. 세워놓고 활을 쏘는데, 화살이 정통으로 맞으면 차라리 다행이고 다른 곳이 맞으면 꽃힌 화살을 뽑아서 또 갖다 바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서서 죽을 때까지 화살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만주족을 오랑캐라 업신여기고, 명나라 한족을 섬기고 응원했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한 대가를 철저히 받은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비극이 오늘에도 있습니다. 일제에 의해 정신대란 이름으로 끌려 갔다온 사람들에 대한 일본측의 보상과 사과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하고보상과 사과를 받기 위한 노력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정신대 할머니들의 가슴을 또다시 못을 박는 일과 같습니다. 독도문제와 정신대 문제, 우리 문화재 및 역사사료 반환문제등의 일본에 대해 우리가 요구해야 할 사항이 너무나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부는 오히려 일본의 눈치를 관심이 적은 것은 우리가 아직도 우리의 뿌리 정신을 잊어버리고 신 사대주의에 물들어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한 결과로 생각합니다.
한기식
그 청나라도 수도가 원래는 심양이 아니었습니다. 심양은 지는 태양이란뜻입니다. 그때 심양은 뭐라불린지 갑자기 생각이 안나내요. 결국은 우리 동이족끼리 싸운겁니다.

05·09·29 23:21

한기식
20세기 와서 이름이 바뀌었다는군요.

05·09·29 23:23

성미경
그렇군요. 심양의 다른 이름이 생각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고치겠습니다.

05·09·30 22:46 수정 삭제

김수곤
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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