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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서정주 시문학관과 충남 당진 신리 천주교 성지
 tlstkdrn  | 2017·06·18 16:53 | 조회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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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_고창_서정주_시문학관과_충남_당진_신리_성지(경향신문,_2017.6.17일자).hwp (247.0 KB), Down : 0
  • 전북 고창 서정주 시문학관과 충남 당진 신리 천주교 성지

       구순 넘어서도 고향 지키는 ‘미당 동생’ 시인 서정태 미당 서정주의 동생이자 시인인 서정태씨(94)가 자신의 집을 찾은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에게 미당의 시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초가집에 ‘우하당(又下堂)’이란 현판을 걸어놓고, 지금도 텃밭을 돌보며 살고 있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어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자화상’)
       미당 서정주 시인에겐 바람이 불어왔다. 세차게 불어오는 그 바람을 느끼고 맞서며 스스로 다짐하곤 했다.
       전북 고창군에 2001년 세워진 서정주시문학관에도 늘 바람이 분다. 폐교된 봉운초 선운분교 건물을 활용해 지었다. 교사 가운데를 잘라 탑처럼 세워 전망대를 만들었다. 건물 5~6층 높이인 이 전망대에 서면 간척지 너머 바다가 보이고 그곳에서 해풍이 불어온다.
       건축가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74)가 문학관을 설계했다. ‘경향신문 70인과의 동행’에 참여한 40여명이 그와 함께 전망대에 섰다.
       “중학교 때 은사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나 기억나?’ 하기에 당연히 기억난다고 했더니, ‘내가 고창군수가 됐는데 미당의 생가에 기념관을 지으려고 하니 유명 건축가인 자네가 도와달라’고 해요. ‘아이고, 알겠습니다’ 했죠. 미당의 ‘자화상’에도 나오죠, 그를 키운 건 바람이라고. 그 바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시인을 있게 한 외할머니 집이 있는 마을도 보이도록 했고요.”
       김 대표의 경기고 은사이기도 했던 이어령 전 문체부 장관(83)이 전망대에 ‘바람의 전망대’란 이름을 붙였다. 문학관엔 시인의 유품 등이 진열돼 있고 서울 남현동 집필실을 그대로 옮겨 재현해놓기도 했다.
       조금 걸어가면 미당의 동생이자 역시 시인인 서정태씨(94)가 초가집에 ‘우하당(又下堂)’이란 조그만 현판을 걸고 살고 있다. 텃밭을 돌보던 그는 예정에 없이 방문한 ‘동행’ 일행을 맞이했다. 미당은 부인 방옥숙씨가 2000년 10월 별세하자 곡기를 끊고 좋아하던 맥주만 마시다 그해 12월24일 세상을 떠났다. 죽음마저 시적(詩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미당이 “자네가 진정한 신선일세”라고 치켜세웠다는 그 서정태 시인이 말했다. “올해 5월15일에 세상 뜨겠다고 말해놨는데 안 죽었어. 허허. 가기엔 5월이 좋거든, 내년 5월15일로 미룰까봐.”
       미당은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등에서 태평양전쟁 참전을 독려했다(친일 시들도 문학관에 전시돼 있다). 김 대표는 문학관 건축을 계기로 서정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다. 처음엔 그도 망설였다고 한다.
       “미당 발표 시가 1000여편 돼요. 우리가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시작 노트 20여권에서 미발표작을 700~1000편 가량 찾아냈어요. 훌륭한 시들인데 왜 발표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미당이 쓴 시가 2000편 정도 되는데, 친일 시는 딱 4편입니다. 그를 ‘친일 시인’으로 정의하는 건 좀 심하다고 생각해요. 전쟁 말기에 유명 시인이나 예술인을 일본 놈들이 가만 안 뒀거든. 훗날 중앙정보부 이상으로 겁을 줬을 거란 말이죠. 더구나 미당은 이후 ‘부끄럽다’는 반성의 글을 여러번 썼어요. 가톨릭에선 반성하거나 뉘우치는 사람은 용서해줍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친일 경력을 속이고 지금 떵떵거리며 사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 찬양 시 논란도 있다. 김 대표 말로는 서울 관악구 남현동 예술마을 조성을 위해 문화계가 신군부의 협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서정주 시인이 대표 격으로 ‘선물’이 될 시를 썼다. 김 대표는 “문화계의 부탁에 시인이 ‘그럼 그러마’ 한 것”이라며 “그런 사정을 아는 입장에서는 (미당이) 좀 안됐다”고 했다.
       고창에선 가을에 국화축제가 열린다. 미당의 시가 축제가 됐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고 울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하는 그 유명한 구절(‘국화 옆에서’, 1947년 경향신문에 발표)이 국화축제의 모태다. 김 대표는 이어령 선생이 이 시를 가르치며 ‘꽃 한 송이가 필 때도 삼라만상이 다 연결된다는 불교적 세계관이 들어 있다’고 강조했던 장면을 6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고창엔 15세기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방어용 성곽 ‘읍성’이 있다. 김 대표는 이 성을 둘러보면서 “지형을 잘 활용했고 꼭 필요한 만큼만 단단하게 쌓았다. 잘 만들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 건축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건축은 불사불루(不奢不陋·사치스럽지도 누추하지도 않다)의 원칙을 잘 따르고 있다”며 “궁이든 민가든 자연과의 조화를 으뜸으로 삼는다. 초가집도 생활 속 재료를 잘 활용한 뛰어난 지혜”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할 때 현지 교수가 내 이름을 보더니 ‘한국인이냐, 미안하지만 일어서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돌을 만드는 나라’라고 나를 소개해요. 우리 전통 건축, 만만찮습니다.”
       김 대표는 전국에 100개 이상의 유명 건축물을 설계했다. 함께 다니면 전국 유람을 할 수 있을 정도다. ‘동행’ 일행이 이동한 충남 당진시에도 천주교 대전교구가 의뢰해 그가 건축한 신리 성지(2014년)가 있다. 프랑스인 다블뤼 안(안토니오) 주교 등 1866년 순교한 5명을 기리는 건물로, 미술관으로 꾸몄다.
       1만평(3만3000㎡)이 넘는 부지에 8000평 이상을 잔디밭으로 조성했다. 언뜻 보면 골프장처럼 보인다. 얕게 솟은 언덕 위에 삐죽 건물이 있고 대형 십자가가 보인다. 언덕 아래가 지하 미술관이다. 마치 잔디밭 가운데 벙커가 솟아 있는 듯했다. 당진의 끝없는 평야 가운데에 우뚝 서 제법 멀리서도 보였다.
       김 대표가 설명했다. “건축 콘셉트는, 일단 다블뤼 주교의 순교 스토리가 감동적이어서 그걸 그림으로 잘 보여주자는 쪽으로 잡았어요. 지하의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그림만 봐도 스토리를 알 수 있도록. 그의 조선 입국과 20년간의 비밀 포교, 마침내 걸어서 나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얘기 말입니다. 조용히 그림을 보면서 명상할 수 있도록 했어요. 물론 그림이 상하지 않도록 공간 설계도 추가했고요. 멀리서도 푸르게 솟은 언덕 위의 십자가가 잘 보이도록 구상했죠.”
       지하 미술관엔 5000원권과 5만 원권 지폐를 그린 이종상 화백(79)의 작품 17점이 있다. 김 대표는 “광주가톨릭대와 보성 태백산맥문학관의 벽화 등을 함께 작업한 인연으로 그를 설득했다”면서 “이 화백은 3년 동안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하겠다’면서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저러다 ‘순교’하는 것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며 웃었다.
       당진 땅엔 물기가 많아 1m만 파도 지하수가 솟는다고 한다. 건축가에겐 난제였다. “물이 나오는 지역이어서 건축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건물 무게를 지탱하는 힘뿐 아니라 반대로 물에 뜨는 힘, 즉 부력을 계산해야 했죠. 부력을 누르는 특수 설계를 했어요.”
       미술관은 지하 2층에서 시작해 지상 5층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관람객에게 부활과 승천의 느낌을 주려는 설계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던 마을 주민 400여명을 상징하는 400개의 금속으로 된 대형 십자가가 있다.
       이곳에 상주하는 김동겸 신부(39)가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논에 물이 차면 이 성지는 바다 한가운데 솟아오른 표석처럼 보입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그땐 또 눈 속에서 솟은 것 같고요.” 바로 옆엔 다블뤼 주교가 구들 아래 숨어 살던 한옥집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숨어 살 때 여성 교인들이 일부러 마루에서 다듬이질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블뤼 주교가 내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다.
       재미있는 일화. 최근 다블뤼 주교가 원래 소속됐던 프랑스 아미앵 교구 사람들이 이 미술관을 찾았다. 다블뤼와 함께 순교한 오메트르 신부의 조카의 3대손인 수녀도 순례단에 포함됐다. 그가 말했다고 한다.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포교하다 순교했지만, 저는 사실 한국에서 온 수녀님께 가르침을 받았답니다.” 천주교가 한국에 뿌리내려, 150년 만에 상황이 뒤바뀐 셈이다.
       저 언덕 위 십자가가 손짓하는 듯… 건축가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가 설계한 충남 당진시의 신리 성지. 선교활동을 펼치다 순교한 프랑스의 다블뤼 주교를 기념하기 위한 곳으로 지하에는 미술관이 있다. 김원 대표는 “미술관은 지하에서 시작해 지상 5층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관람객에게 부활과 승천의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신리 성지는 한국 천주교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 다블뤼 같은 외국인 주교들이 여럿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와 사용 물품 등이 확인된 주교관은 이곳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소중한 공간이다. 수준 높은 그림과 건축 등 미술 작품만으로도 큰 울림을 준다. 오후 6시가 되면 성지에 걸린 커다란 종 3개가 번갈아 울린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삼종기도’ 중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어느새 종소리가 마을 전체에 퍼졌다. 평야의 눈부신 석양과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서정주시문학관과 신리 성지 미술관 외벽엔 담쟁이넝쿨이 올라간다. 김 대표가 서울 옥인동 자택 마당에서 옮겨왔다.
       “미당은 갔지만 예술은 살아 돌아옵니다. 순교한 신부님들과 이름도 없이 목숨을 바쳤던 30여명의 교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요. 담쟁이는 부활을 상징해요. 그래서 옮겨 심었어요. 담쟁이가 다 올라갈 때쯤, 우리 다시 동행할 수 있을까요?”
                                                                                    <참고문헌>
       1. 홍재원, “우리 전통건축은 ‘불사불루’ 충실…자연과 조화를 으뜸으로 삼아”, 경향신문, 2017.6.17일자.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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