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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키멥대를 중앙아 최고의 명문대로 발전시킨 방찬영 선생 성공 스토리
 tlstkdrn  | 2018·02·03 16:34 | 조회 : 123
카자흐스탄 키멥대를 중앙아 최고의 명문대로 발전시킨 방찬영 선생 성공 스토리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이하 카자흐).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국가이지만 카자흐 국민들에게 한국은 케이팝(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카자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국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국민 대부분이 아이돌 가수나 배우가 아닌 다른 한 인물을 꼽을 것이다. 미국 국적의 한국인 방찬영(82) 키멥(KIMEP)대학교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1992년 문을 연 키멥대는 카자흐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최고 명문 사립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이 90%를 웃도는 건 물론, 취업 분야도 회계나 금융, 무역, 석유 같은 알짜배기들이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 대통령이 국회에서 키멥대를 언급하며 다른 대학들이 뒤처져 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방 총장이 키멥대와 연을 맺은 지도 벌써 25년이 넘게 흘렀다. 그는 최근 서울시내 호텔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대학의 문제는 경쟁자가 없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처음부터 키멥대가 성공 가도를 달린 건 아니고, 그동안 수많은 부침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1936년 황해도 출신인 방 총장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196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75년부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에서 교수 겸 아시아문제연구소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미국과 옛 소련을 오가며 총 23차례나 세미나를 했다.
   당시 구 소련 지역에서 개혁·개방이 화두였던 만큼 방 총장은 소련 유력 언론에 거듭 등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에서 동북아 안보 문제로 강연도 했다. 그는 노태우정부 때 특사로 한국과 소련의 국교 수립을 거들기도 했다.
   카자흐와의 인연은 1990년 6월 당시 소련 총리의 소개로 모스크바에서 카자흐 서기장이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카자흐 개혁 문제를 고민 중이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게 방 총장은 “사유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경제적으로 급속히 성장한 한국의 얘기도 들려줬다.
   방 총장은 이듬해인 1991년 카자흐 서기장 특별보좌관 겸 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이 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것도 이때다. 방 총장은 “고르바초프는 ‘미국 교수가 사회주의를 무너뜨리려 하는데, 나는 자랑스러운 공산주의자로 죽었다고 무덤에 쓰이길 원한다’고 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고르바초프의 경제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다.
   같은 해 4월 방 총장은 서기장 및 다른 참모들과 새벽까지 ‘개혁 토론’을 하던 중 “대학을 세워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기장은 곧 방 총장에게 공산당 중앙당 간부학교를 내줬다. 그러나 예산 지원은 없었다.
   방 총장은 대학원 과정부터 운영했다. 카자흐에 생소했던 행정·경제·경영학과를 만들어 110명을 뽑았다. 총장을 맡은 그는 박사학위가 없는 미국인 자원자 10명과 함께 학생들을 직접 가르쳤다. 당시 유럽공동체에 서기장 명의로 지원금 350만 유로도 요청했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면 교육해주겠다’는 냉소만 돌아왔다.
   그해 8월 소련 붕괴 이후 카자흐는 독립국가가 됐다. 이후 유럽공동체에서 450만 유로를, 영국이 별도로 25만 파운드를 키멥대 설립에 지원했다. 미국과 캐나다도 지원 대열에 합류했다.
   방 총장은 “교수와 수업 장비 등을 모두 지원받았기에 총장은 사실상 실권이 없었다”며 웃어보였다. 그렇지만 키멥대는 이들 국가의 지원으로 착착 성장해 갔다.
   방 총장은 1993년 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귀국했다. 옛 소련 체제하의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회복을 지원해달라는 간청을 받았다. 그러던 중 방 총장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1996년 카자흐로 돌아온 방 총장의 눈에 비친 키멥대의 모습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당시 키멥대는 교직원 월급이 밀린 건 물론, 장학금까지 더해 빚이 300만~4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지원 중단 통보가 왔으니 문을 닫자는 교수도 있었다.
   대통령이 된 나자르바예프는 방 총장에게 다시 키멥대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단장(斷腸)의 슬픔을 겪은 그는 의욕이 없었다. 방 총장이 계속 고사하자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마음대로 해라, 그런데 닫으면 정치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결국 방 총장은 대통령의 뜻을 꺾지 못하고 다시 키멥대를 맡게 됐다.
   방 총장은 대통령 산하 국립대였던 키멥대를 사립대로 바꾸면서 일반 대학으로 전환했다. 대통령은 키멥대의 운영과 예산, 인사권 등을 방 총장에게 몰아줬다. 현재 키멥대 자산은 방 총장 측이 60%, 카자흐 정부가 40%를 소유하고 있다.
   개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키멥대 학생은 400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한때 5000명을 넘어섰다. 1996년 700달러였던 연간 등록금도 7000달러를 넘겼다. 학생수가 늘고 등록금이 오르면서 대학의 수입이 안정됐다.
   수입이 안정되자 해외 유명 대학 교수들이 키멥대로 몰려왔다. 키멥대 교수의 평균 연봉은 8만달러 수준으로 여타 카자흐 국립대 교수(약 1만달러)의 8배가 넘는다. 키멥대가 성장하면서 방 총장의 명성도 갈수록 높아졌다. 대통령은 그를 2005년 부총리급인 아스타나 도시개발위원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키멥대의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2007년 국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고유가로 호황을 누리던 카자흐의 경제가 얼어붙었다. 학생들은 학비가 싼 국립대로 몰렸고, 키멥대의 학생수는 3200여명으로 추락했다. 이 때문에 키멥대는 수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방 총장은 “지금은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돼 학생이 다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와의 갈등도 방 총장을 힘들게 했다. 2009년 키멥대의 한 학생이 커닝을 하다 정학 2년 처분을 받았는데, 그 학생의 아버지인 검찰 부총장으로부터 협박을 당했다.
   방 총장은 “당시 부총장이 내게 ‘비리를 다 안다’고 한 뒤 정부기관으로부터 외압이 있었으나 “대통령을 찾아가 사표를 던지는 강수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당국이 방 총장의 서구권 박사 학위(Ph D)를 인정할 수 없다거나 학생 1인당 공간이 좁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키멥대 인가를 취소한 적도 2차례나 있다. 그때마다 방 총장은 대통령을 찾아가 으름장을 놓는 식으로 난관을 헤쳐왔다. 그는 “대통령이 밀어주고 칭찬하니 질시를 받는 게 당연하다”며 “대책은 학교를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방 총장은 학내 비리에 무관용 원칙을 세우고 학생을 예산·징계·입찰 관련 위원회에 앉혀 교수·교직원과 함께 30%의 표결권을 갖게 하는 등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수들에게 영어만 쓰게 하고 3년 내 3개 이상 국제 수준의 논문을 못 내면 퇴출하는 등 교수 관리도 엄격히 한다.
   그는 공산권 전문가로서 남북 문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방 총장은 “북한과 관련해, 특히 북핵 문제는 한국이나 미국이 독자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라며 “한·미·중·러·일 5개국이 공동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국이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게 각기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방 총장은 “한국은 평화협정과 경제지원을, 미국은 불가침 조약을, 중국과 러시아는 안전보장 조약을, 일본은 국교정상화와 식민지 보상금 등을 제공할 수 있다”며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핵을 보유하는 것보다 이들 5개국이 제공하는 이점을 택하는 쪽이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비핵화를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유엔 주도의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압박과 제재에만 의존할 경우 중국이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의 공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 보장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년 이상 지속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전했다.
   방 총장은 북한을 향해서는 “김정은 체제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핵화를 수용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통해 체제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북한, 비핵화와 시장지향적 개혁 개방을 통한 동태적 경제발전’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을 내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카자흐 최고 대학을 키워냈지만 방 총장은 지금도 자신이 카자흐 교육 발전에 더 이바지할 수 있길 꿈꾼다. 그는 “그래도 나보다 더 대학을 잘 운영할 사람이 있으면 당장 떠날 수 있다”며 웃어보였다. 한국 학생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포화 상태인 미국만 고집할 필요 없이 시야를 넓혀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며 “키멥대는 영어·러시아어를 마스터하고 지역 전문가가 되는 등 3개의 이점을 주는 대학”이라고 홍보했다.
   현재 키멥대는 전 세계 157개 이상 대학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독일 훔볼트대, 영국 그래스고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한국의 연세대 등과는 복수학위 협정을 맺었다. 키멥대에 재학 중인 외국 학생은 300여명, 한국 학생은 50여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방찬영 키멥대 총장은 1936년 황해도 옹진에서 출생했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샌프란시스코 대학 교수 겸 아시아문제연구소장(1975년),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경제고문,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개혁위원회 부위원장, 카자흐스탄 부총리급인 아스타나 도시개발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카자흐스탄 키멥대 총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지원선, “중앙亞 최고 명문대 키워낸 한국인… 비결? 투명 운영이죠”. 세계일보, 2018.2.3일자.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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