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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화의 정수인 수월관음도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
 tlstkdrn  | 2018·03·14 00:13 | 조회 : 64
고려 불화의 정수인 수월관음도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

  신화는 상상력의 공간에 지은 집이다. 그곳에 깃들어 살고 싶게 이끄는 것이 예술이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동네를 이루면 문명이 된다. 인류를 번성시킨 곳에는 풍부한 상상력을 재료로 삼은 튼실한 구조의 신화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신화가 있다. 고구려 신화는 우리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케 했으며, 표현에서도 얼마나 기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등장해 우리가 이제야 알게 된 인면조는 이런 모습을 확인해 주었다. 미국 ABC 뉴스는 ‘이상하고 무섭지만 재미있고 유니크한 매력이 있다’고 평했고, 일본에서는 많은 언론이 주목해 네티즌 사이에서 여러 가지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일회성으로 지나쳐버리는 듯한 분위기여서 아쉽기만 하다. 심지어 ‘우리 문화라지만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기괴하다’라는 부정적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우리 선조들의 상상력과 표현의 힘은 21세기 대중문화의 주요 모티브로 각광받는 판타지 세계를 무색게 한다. 시공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는 동서양 영화와 TV드라마에서 흥행 보증수표로 통한다.   1500여 년 전 선조의 노래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2000년 11월 ‘금동대향로’가 발굴된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 근처에서 출토된 나무 조각에서 한국문학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의 획기적인 글귀가 나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 세상’을 뜻하는 불교용어 ‘숙세가’로 이름 붙여졌는데, 백제인이 직접 남긴 유일한 노래로 밝혀졌다. 내용은 이렇다.
       숙세결업 동생일처(宿世結業 同生一處)     
      시비상문 상배백래(是非相問 上拜白來)   
      ‘전생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 세상에 함께 태어났으니
     시비를 가릴 양이면 서로에게 물어서 공경하고 절한 후에 사뢰러 오십시오.’
      ‘전생에서 맺은 업으로 같은 곳에 태어나게 해주소서. 잘잘못을 따지려 하신다면  
      위로 절하고 사뢰오리다.’ 
   학계에서는 두 가지로 분석했다. 앞의 해석은 사랑을 다짐하는 노래로, 뒤의 것은 부부가 함께 죽은 뒤 같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발원문 형태로 풀이했다. 사랑 노래든 발원문이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의 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숙세가’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1500여 년 전 조상의 상상력과 표현에 탄복할 따름이다.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매력적인 상상은 공상과학(SF)영화에서 인기 있는 주제다. 그런 영화 중 유명한 것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있다. 1984년 1편이 나온 이후 5편까지 제작할 정도로 전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대표적인 SF영화다. ‘끝내는 사람’을 뜻하는 ‘터미네이터’는 시공을 넘나들며 세상을 구한다는 영웅이야기다. 즉 세상 구원 해결사가 영화의 기본 콘셉트다. 구세주 영웅담은 서양문명의 기본을 이루는 주제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터미네이터’는 예수의 또 다른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서양인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세상을 구한다는 거창한 주제를 좋아하는 데 비해 우리는 1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개인의 사랑이야기가 시공을 넘나들며 계속될 정도로 절실한 주제로 각광받고 있다. 이걸 보면 서양인들은 절대자의 거대한 능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이 앞서는 데 비해 우리는 개인의 염원이 모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이토록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적 미감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담백함, 고졸함, 자연스러움, 절제의 미, 한이 묻어나는 비애의 미다. 이들은 우리가 일궈낸 독창적인 미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표현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바탕에 깔려있다.    
     조선을 관통한 유학의 영향과 일본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발견해준 민예적 미학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공자의 사상을 바탕 삼은 유학은 조선 건국의 정신적 기반을 만든 정도전과 이후 정치적 배층의 핵심 철학으로 발전했다. 현실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유학적 사고에서는 탐미적 표현을 가벼이 보았다. 특히 상상력의 세계를 괴력난신(怪力亂神·공자 ‘논어’ 술이 편에 나오는 말로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존재)이라 하여 철저히 배격한다. 이런 시대정신으로 500여 년을 단련한 우리 미감은 절제적이며 담백함을 담는 쪽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조선의 민중적 정서와 이를 담아낸 조선의 민예에 매료된 야나기는 조선 미감을 비애적 정서와 고졸함으로 분석해 설득력을 얻었다. 특히 조선백자와 민화의 미학적 가치를 설명하는 데 많은 공감을 얻었고 우리 미감으로 굳어진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섬세한 표현과 놀라운 상상의 세계를 담아낸 미감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문화유산이 있다. 섬세한 감각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극치는 고려의 대표적 회화인 불화에서 보인다. 고려불화는 13∼14세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는데, 섬세한 장식미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같은 시기 서양 회화와 비교해 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뛰어난 솜씨를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이 시기 서양은 기독교 주제의 회화가 대부분이다. 서양미술사 첫 장을 장식하는 대화가 조토 디본도네(1270∼1337)의 그림과 고려불화를 같이 놓고 보면 이런 사실을 곧 확인할 수 있다. 조토의 회화와 고려불화는 종교화이기에 비교가 적절하다. 솜씨를 보자. 어느 작품이 더 탁월한지는 독자의 눈에 맡긴다. 
    고려불화는 세련된 아름다움 때문에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수집 품목이다. 19세기 탐미주의 화가 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 클림트의 회화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클림트가 고려불화의 장식적 미감을 따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려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선묘, 단아한 형태, 화려한 색채의 운용, 다양한 문양이 빚어내는 장식성, 정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묘사.’ 
    고려불화를 설명할 때면 언제나 따라붙는 말이다. 특히 투명한 천으로 만든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은 효과의 표현은 가히 압권이다. 겹쳐진 부분을 가려내는 표현 방법으로 서로 다른 문양을 그려서 깊이 감을 불어 넣었다. 이런 방법은 동시대 세계 어느 나라 미술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기법이다.   
    독창적이며 탁월한 예술성을 지녔기 때문에 눈 밝은 미술관에서는 고려불화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소장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서는 아예 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물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려불화는 국내에 20여 점,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에 10여 점, 일본의 사찰과 미술관에 130여 점 정도다. 일본에 유독 많은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건너간 것도 있지만 고려시대 일본 사찰에서 의뢰해 사간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대에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었던 그림이다.  
    불화는 불교의 종교적 기능을 위한 그림이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왔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유독 고려불화가 남다른 이유는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섬세한 아름다움이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수월관음’이다. 달밤에 관음보살이 물가 바위에 앉아 선재동자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 주제가 많이 그려진 이유는 ‘화엄경’에 관음보살이 사는 곳이 아주 서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남인도 바닷가 깎아지른 봉우리와 골짜기가 많은 보타락가산이 있다. 청정한 기운이 감싼 이곳은 온갖 보배가 넘쳐나고, 우거진 숲에는 향기로운 꽃과 과일이 풍성한데 그 가운데 물이 마르지 않는 연못이 있다. 연못가에 단단하고 아름다운 바위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관음보살이 앉아 있다’라고 묘사돼 있다. 환상적인 풍경이 떠오르는 설명은 솜씨 뛰어난 고려 화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수월관음이 인기 있는 주제가 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나 고려불화가 13∼14세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이유는 몽골의 침략과 고려 말 정치적 혼란이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음보살은 현세 이익 신앙의 대표적 경배 대상으로 꼽힌다. 외국의 침략과 지배층의 권력 다툼으로 힘든 시기를 견뎌야 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부르기만 하면 나타나 구제해준다는 자비로운 관음보살은 큰 위안이 되었으리라.
    고려의 화가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 속에 현실적 고난을 이겨내는 힘을 실었다. 그 힘이 바로 섬세함의 극치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현실의 어려움까지도 잊을 수 있도록 위안을 주는 아름다움의 힘은 그만큼 강하다. 그런 생각을 담기에 관음보살만 한 주제가 없었을 것이다. 수월관음도가 보고 싶은 이유는 지금 이 시대에도 통한다.
                                                             <참고문헌>  
    1. 전준엽, “클림트보다 500여년 앞선 색채미… 고려佛畵, 상상 꽃피우다”, 문화일보, 2.20일자.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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