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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의 문화와 역사
 tlstkdrn  | 2018·04·11 15:32 | 조회 : 43
전남 구례의 문화와 역사

   대한민국 봄은 가끔 미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봄은 섬진강에서 시작한다. 어김없다. 강변에는 진달래, 개나리, 개불알꽃, 처녀치마, 앵도에 산수유랑 매화랑 벚꽃이 한꺼번에 피어버린다. 꽃들이, 시끄럽다. 시끄러운데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올해가 그 봄이 미친 해다.
   쌍계사로 오르는 십리 벚꽃길에는 일찌감치 꽃비가 내렸다. 지리산 기슭 산동마을 개울에는 샛노란 산수유 꽃잎들이 떠내려간다. 강변 산은 홍매, 청매, 흑매, 백매 꽃잎이 뒤덮었다. 자, 그리하여 2018년 봄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와 광양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봄날, 문득 정신을 차리니 세상이 처연하다. 꽃 이파리에 물든 처연한 봄 이야기다. 주인공은 선비 매천 황현(梅泉 黃玹·1856~1910).
    임진왜란 때 호남(湖南)은 조선과 일본 양국에 똑같이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 곡창지대를 손에 쥔 쪽이 승전국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군량미 확보에 실패해 퇴각했고, 조선은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그 곡창지대를 사수한 사람은 의병부대와 이순신이다.
   전남 구례 월곡마을 작은 방에서 황현은 죽었다.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았다. 경술국치 12일 뒤인 1910년 9월 10일이다. 왜 항쟁대신 죽음을 택했을까, 하고 아쉬워해본다. 그러면 곧바로 아득한 심연에서 누군가가 이리 묻는 것이다. '너는 죽기라도 할 수 있었겠느냐.' 황현이 살던 집 대월헌(待月軒)은 그를 기리는 사당 매천사로 바뀌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터졌다. 이보다 1년 전 비변사가 이렇게 보고했다. "구례 석주진(石柱津)은 가장 먼저 적을 맞는 곳이고 성첩도 견고하니 재용(才勇)이 있는 자를 더 보충해 위급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하니 상이 따랐다(1596년 병신년 선조29년 1월 22일). 군부에서 올린 석주관 병력 강화 요청이다. 조선 정부는 말만 와글와글했고 실행은 옮기지 않았다. .
   구례 현감 이원춘은 밀려오는 일본군에 쫓겨 남원으로 퇴각했다. 학살극에 가까운 남원성 전투, 전주성 전투에서 조선 육군은 궤멸됐다. 남원으로 가는 관문, 구례 석주관(石柱關)을 지키지 못했던 탓이다. 그해 추석 남원은 함락됐다. 살아남은 이원춘은 구례로 돌아와 의병을 일으켰다. 이원춘 부대는 전멸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구례 선비 왕득인이 다시 거병했다. 또 죽었다. 한 달 보름이 지난 음력 11월 9일 왕득인의 아들 왕의성이 다른 여섯 선비와 함께 거병했다. 화엄사 승병대도 가세했다. 왕의성만 살고 모두 전사했다. 석주관 전투는 200년이 지난 1789년 정조 때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때 죽은 일곱 선비 현감 이원춘, 그리고 무명 의병과 승병을 기리는 사당과 제단이 강변 언덕에 서 있다. 아기 무덤처럼 작은 무덤들도 앉아 있다. 주인이 누군지 몰라 비석도 없는, 작은 무덤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석주관 전투를 이끈 왕씨 후손은 이후 벼슬을 하지 않고 제자를 길렀다. 후손 가운데 왕석보(王錫輔·1816~1868)라는 사람이 있었다. 학자요 문학자였다. 그가 기른 제자가 여럿인데, 그 가운데 이기(李沂·1848~1909)가 있었고 나철(羅喆·1863~1916)이 있었고 황현(黃玹)이 있었다. 20세기 망국(亡國)의 시대를 맞이했던 셋 모두, 자결했다. 한 스승 아래 공부한 선비들이 망국을 죽음으로 대응했다. 이기와 나철은 대종교를 창시한 인사들이다. 그 스승과 다른 두 제자 이야기는 또 다른 기회에 하기로 하자.
   남원에서 큰돈을 번 황현의 할아버지 황직은 재산 관리를 잘했다. 광양으로 이사해 700석으로 재산을 불렸다. 그런데 큰손자가 요절한 것이다. 상심한 할아버지 무릎에 둘째 황현이 있었다. 황현은 신동(神童)으로 자랐다. 황희 정승 후손이라는 명예를 되살리려고, 아버지 황시묵은 그 아들을 구례 학자 왕석보에게 보냈다. 열 살 무렵이었다. 왕석보에게서 황현은 문학을 배웠다. 시문을 배웠다. 그 실력이 신을 놀라게 할 정도여서, 사람들은 그를 그저 황동(黃童)이라 불렀다. 입신양명으로 가문을 살릴 후손이었다. 그런데, 불가능했다.
   1868년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단행했다. 일본은 정한론을 들먹였다. 1871년 미국 해군이 강화도에 들어와 조선 수군을 박살냈다. 무기 체계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미군이 퇴각하자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우고 나라 문을 닫았다.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강제 개항했다. 1882년 구식 군대의 반란, 임오군란이 터졌다. 2년 뒤 급진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1883년 황현은 진사과 과거에 응시했다. 시관(試官) 한장석(韓章錫)이 그 답안을 장원으로 골랐다. 발표는 2등이었다. 한미한 시골 출신이 이유였다. 이듬해 갑신정변이 터졌다. 본시험은 무기 연기됐다. 그뿐 아니었다. '1885년 생원시, 진사과 시험에 임금은 100명을 더 뽑으라 했다. 이만 냥을 받고 팔았다. 1893년 식년시 대과 매매가는 십만 냥씩 하였다'(황현, 매천야록). 고종과 왕비 민씨는 벼슬을 팔아 돈을 거뒀다. 왕비는 진령군이라는 무당을 언니라 불렀고(황현, 오하기문·梧下記聞) 왕은 그 무당과 국사(國事)를 논했다.
   하동 쌍계사로 가는 십리벚꽃 길. 시끄러울 정도로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 옆 강변 석주관에서 정유재란 때 의병이 무기를 들었다.
   국가를 자기네 곳간 취급하는 민씨 일족, 군주임을 망각한 군주의 무능. 국가 시스템은 비정상이었다. 1888년 아버지 황시묵의 강권에 응시한 성균회시 생원과 소과 장원 합격을 끝으로 그는 완전히 낙향했다. 가문을 살리겠다는 소시민적 비전은 꺼 버렸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터졌다. 이듬해 일본군에 의해 왕비가 살해됐다. 임금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주했다.
   황현은 대신 그 역사를 기록했다. 구례 간전면에 구안실(苟安室)이라는 초가를 짓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1864년 고종 1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 역사를 그대로 기록했다. 태생이 유생(儒生)이라 세상 보는 시각은 봉건적이었으나 사실(史實)은 왜곡함이 없었다. 동학혁명에 분노했으나 봉기한 이유에 대해서는 공감을 했다. 갑신정변의 무모함을 비판하기도 했다. 고종 족속이 벌이는 행태에 대해 꼼꼼하고 자세하게 기록했다. 민중이 벌이는 구국 항쟁, 의병에 대해서는 그 어떤 문건보다 자세히, 단 한 줄이라도 기록했다. 1902년 구안실에서 월곡마을 대월헌으로 집을 옮기고도 집필은 계속됐다. 그때 완성한 역사서가 '매천야록(梅泉野錄)'과 '오하기문(梧下記聞)'이다. 역사적 사실과 이에 대한 독기 어린 비판이 조화를 이룬 사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황현이 이리 쓴다. '나라 판 놈만 있고 나라 위해 죽는 놈 없네(賣國元無死國人)'(문변·文變) 민영환이 자결하자 또 이리 쓴다. '목 찔러 보국함이 예부터 많았다네(刎頸報國古多有)'(혈죽·血竹)
   1907년 정미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사라졌다. 담양 사람 고광순이 구례 연곡사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일본군 습격에 순국했다. 주민들이 초분을 만들고 며칠 뒤 황현이 묘를 찾았다. 총을 잡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탄했다. '우리네 글은 어디에 쓰랴(我曹文字終安用)'(고광순 의병장을 조문함·弔高義將光洵)
   1908년 구례에 신학문학교인 호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서양학이 더럽고 더러우나 나라의 더러움보다는 더럽지 아니하겠는가(汚哉汚哉不汚於國之汚哉).'(김상국·매천선생 묘지명) 유생이었으되, 나라를 위하여 공맹(孔孟)을 버릴 줄 아는 열린 지식인이었다. 2년 뒤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사라졌다. 12일 뒤 황현은 대월헌에서 아편을 탄 술을 들이켜고 죽었다. 그가 남긴 절명시 한 구절은 이랬다. '지식인 노릇하기 어렵구나(難作人間識字人)' 9월 10일이었다.
   한 달 뒤 한·일 병탄에 공헌한 고관대작 76명이 총독부에 의해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10월 7일 오전 11시 서울 남산 총독관저에서 거행된 수작식에서 '각자 밝은 얼굴(輝顔)에 보이는 희열(喜悅)은 일장 가관이었다.'(매일신보 1910년 10월 8일 자)
   자결한 선비의 첫 서재 구안실은 대숲으로 변했다. 매천사 사당으로 바뀐 월곡마을 대월헌에는 늙은 오동나무가 서 있다. 매화는 지고 없다. 묘는 고향 광양 서석마을에 있다.
   섬진강 강물 따라 봄이 흐르고, 지리산 기슭이 봄으로 물든다. 산수유 가득한 산동마을에도 봄이 왔다.
   1948년 여순사건이 터졌다. 남한 단독 정부를 반대하던 육군 14연대가 일으킨 반란이다. 지리산으로 숨은 잔당은 산동마을을 점령하고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 11월 19일 산동마을에 진입한 토벌대가 열아홉 먹은 여자 백순례를 체포했다. 진달래꽃처럼 예뻐서 집안에서는 '꽃전(花煎)'을 본떠 '부전'이라 부르던 아이였다. 자기 집에서 오빠 백남극과 함께 붙잡힌 순례가 말했다. "나는 죽여도 되니, 대를 이을 우리 남극 오빠는 살려줘요." 그녀 말대로, 오빠는 풀려나고 순례는 들판 건너 꽃쟁이 마을에서 총살됐다. 주민들이 "수백명"이라 주장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아들 대신 보낸 딸을 부모는 찾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말년에 손녀를 부전이라 부르다 죽었다.
   부전이는 빨치산이었는가. 많은 매체가 그녀를 '빨치산 여걸'이라고 부른다. 순례가 죽고 2년 뒤 태어난 조카, 순례가 살려준 오빠의 아들 백정규(68)가 말했다. "명예훼손이다. 고모님은 좌익이 아니다. 함부로 가짜 영웅 만들지 마라." 여순사건 잔당은 좌익이었고, 빨치산이었다. 토벌대가 빨치산과 함께 멀쩡한 양민을 무더기로 죽였다. 산 너머 월곡마을 선비 황현은 그녀를 여걸이라 칭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처연하게, 봄날이 간다.
                                                        <참고문헌>
   1. 박종인, "국치 열이틀 뒤 선비 황현 죽다", 조선일보, 2018.4.11일자. A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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