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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를 명문고로 발전시킨 신봉조 선생
 tlstkdrn  | 2018·10·07 02:50 | 조회 : 77
                                       이화여고를 명문고로 발전시킨 고 신봉조 선생

   해마다 정초가 되면 서울 신교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맹아학교를 지나 좁디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동네에는 허술한 한옥이 몇 채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매우 초라한 한옥에 이화여고 신봉조 교장이 살고 있었다. 새해를 맞으면 나는 누님을 모시고 교장댁을 찾아가 세배를 드렸다. 우리 남매는 그 많은 선배 중에서도 신 교장을 특별한 어른으로 모셨다. 서울에서는 경기여고의 박은혜, 진명여고의 이세정, 중앙여고의 황신덕, 이화여고의 신봉조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교장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화여고 신봉조보다 더 뛰어날 수는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1900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배재고보를 마치고 일제하의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다. 졸업하자마자 배재 교사로 취임하였으나 얼마 뒤에 뜻하는 바가 있어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동북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모교인 배재로 돌아갔다. 그런데 1938년 새 교장을 물색하던 이화여고 재단은 나이가 마흔도 되지 않는 젊은 그를 교장으로 모셔갔다. 그날부터 만 7년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정책에 시달리면서 그는 그 학교를 지켰다. 해방이 되고 신봉조만 한 학력을 못 가진 교사들도 대학으로 가서 교무처장이나 학장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신봉조는 이화여고만을 지키면서 여성 교육에 대한 포부를 펴나갔다. 그리고 예순한 살에 교장직에서 물러나 이사장에 취임, 젊은 후배들에게 교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서명학, 정희경, 심치선 등이 그의 뒤를 이은 유명한 교장이다. 신봉조는 여학생들에게 현모양처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고 세상을 바로잡는 유능한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신 교장은 학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재능을 타고난 것이 확실한 아이들은 다 받아주었다. 정경화, 정명화를 비롯하여 수많은 천재가 이화를 거쳐 세계로 뻗어나갔다. 포환던지기 선수 최명숙을 길러 올림픽에 출전시켰다. 피아노에 김혜선, 이경숙, 신수정, 전영혜, 차병원의 차광은, 신세계의 이명희, 성악에 이규도, 윤현주, 외교부 장관에 강경화, 복지부 장관에 김모임, 문교부 장관에 김숙희, 배우 윤여정 등 다양한 직종에서 선두를 가는 여성들을 길러냈다. 그의 제자인 유명한 언론인 장명수는 한국일보 사장을 지냈고 지금은 이화여대 재단 이사장이다.
   신봉조는 태평양전쟁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강요에 못 이겨 몇몇 친일 단체에 참여한 일이 있다고 하여 반민특위에 연행된 적이 있었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일제하에 이화를 운영하기 위하여 그가 최선을 다한 공로를 치하하지는 못할망정 그를 민족 반역자로 몰려고 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었다. 신봉조는 이화의 정신적 상징으로 3·1운동 때 선두에 나서서 활약하다가 옥사한 유관순을 열사로 모시고, 그를 기념하기 위한 사업 때문에 동분서주하였다. 그 결과로 당시 철도국 소유의 땅을 헐값에 구입하여 유관순 기념관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이화의 옛 모습을 간직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개척 정신을 가지고 이화를 새롭게 발전시켜 한국 최고로 자부하는 경기여고에 버금가는 여학교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였다. 키도 작달막하고 몸집도 자그마한 선비 신봉조가 아흔이 넘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어찌하여 그는 우리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신봉조는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한 시대의 재사였지만 언제나 겸손하여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부지런하여 새벽에 일어나 많은 책을 읽었다. 타임, 뉴스위크 같은 시사 전문지도 정기 구독하여 세계 정세에도 매우 밝은 어른이었다. 우리가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가 가슴에 간직하고 아낌없이 베풀던 그 큰 사랑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운 후배인 나를 언제나 동등하게 대하며 아껴주시던 나의 선배 신봉조. 그는 내가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감옥살이를 하고 풀려났으나 직장에서도 쫓겨나 처량하던 시절에 직접 집으로 찾아와 나를 위로하였다. 하루는 지갑에서 신문지 조각을 하나 꺼내서 나에게 읽어 주었다. 그는 "김 교수가 어디에서 했다는 말이 기사화된 것인데 '민주주의란 나무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우리가 흘린 피를 먹어야 자라는 나무이다'라고 했는데 하도 마음에 와 닿는 한마디여서 그 기사를 오려서 가지고 다닙니다"라고 하였다. 후배를 그토록 정중하게 대해주던 그 선배의 갸륵한 뜻을 오늘도 되새겨본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박대선은 "한평생을 오로지 이화만을 위하여 사셨습니다"라고 치하하였다. 사실이 그렇다. 그는 이화를 통해 이 나라를 사랑했고 그의 하나님을 섬기었다. 새해가 되면 그 한옥 좁은 방에 앉아 계시던 신 교장 내외의 모습을 회상하게 된다. 평생 정동제일교회만을 섬긴 신봉조의 일생은 나로 하여금 어느 일본 시인의 시 한 수를 생각하게 한다.
   '여름풀 무성한 그 그늘에/ 올해도 반딧불풀꽃이/ 보랏빛으로 피었다/ 나의 친구여/ 이 인생에는/ 오직 하나/ 이 꽃을 닮은/ 생각이 있다/ 오래 살려고 애쓰지도 않고/ 유명해지려고 노력도 않고/ 보수도 보잘것없는/ 그런 일을 하면서/ 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깊은 정성과 사랑이다.'
   보랏빛의 반딧불풀꽃 같은 한평생을 살고 간 위대한 한국인 신봉조를 나는 오늘도 그리워한다. 그 위대한 한국인은 먼 곳에 살지 않고 우리 가까운 곳에 있던 잡초 속에 피었던 들꽃 한 송이였다.
                                                          <참고문헌>
   1. 김동길, “梨花를 사랑하고 지켜낸 그… 보랏빛 반딧불풀꽃으로 피어나다”, 조선일보, 2018.10.6일자. B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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