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관 홈페이지:::aljago.com
.

.

밝달나무숲 자유게시판


유관순 열사는 일상이 독립운동이었다
 tlstkdrn  | 2019·03·13 02:48 | 조회 : 23
유관순 열사는 일상이 독립운동이었다

  판결문은 유관순 열사를 다 담지 못했다. 유관순이 판결문의 출발선이자 그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한 주동자로 구분짓긴 했지만 판결문 속 공소사실은 유관순의 일부일 뿐이었다. 유관순은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일상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만세운동이 벌어지자 유관순은 친구 4명과 이화학당 뒷담을 넘어 종로로 향했다. 교장이 학교 문을 잠궜기 때문이다. 이어진 3월 5일 학생단 만세운동에도 학교 몰래 참여했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외국인 선교사들의 요구로 겨우 빠져나왔다. 유관순은 멈추지 않았고 3월 10일 휴교령이 내려지자 아예 고향에서 각자 만세운동을 벌이자고 친구들과 결의했다. 13일 충남 천안으로 돌아가던 유관순은 사촌언니 유예도, 친구 이정수·김복희와 함께 기차 안에서도 “대한독립! 대한독립!”을 외쳤다.
    기독교 감리교 신자였던 유관순은 3월 16일 밤 예배가 끝난 뒤 아버지 유중권과 숙부 유중무, 조인원을 비롯해 지역 교인 20여명에게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을 설명했고 “우리 마을이 죽은듯이 가만히 있을 순 없다”며 만세운동을 벌이자고 했다. 장날인 4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한 뒤 안성·진천·청주·연기·목천 지역에 연락기관을 두고 각 지역 감리교인과 유림들에게 만세운동 동참을 촉구했다. 연락원을 자처한 유관순은 아주머니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고 혼자 곳곳을 다니며 참여를 독려했다. 거사 전날인 3월 31일 밤 매봉산 봉화대에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횃불을 올린 것도 유관순이었다. 
    3월 중순 이후 충남 지역에서는 목천보통학교(14일), 입장 광명공립보통학교(20일) 학생들의 만세운동을 비롯해 금광회사 광부 200명의 만세운동(28일), 천안 읍내 3000명 군중의 시가지 행진(29일), 입장면 주민 300여명의 만세운동(30일) 등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아우내 장터와 같은 날 공주 장터에서 공주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난 만세운동은 특히 유관순과 깊은 의미가 있다.
    이화학당으로 편입하기 전 유관순이 다녔던 공주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 등은 독립선언서 1000장을 복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장날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29일 공주지방법원의 ‘현석칠 외 17인’ 판결문에 등장하는 유준석(본명 유우석·당시 20세)은 유관순의 오빠로, 남매가 각각 만세운동을 하다 체포돼 공주형무소에서 조우했다. 유우석은 형무소에서 유관순에게 부모가 아우내 장터에서 일제의 총검에 살해됐다는 비보를 접하고 오열했다.  
    영명학교 출신으로 당시 경천소학교 교사였던 김현경(22)은 유우석과 함께 공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자신도 칼에 머리를 맞아 다쳤지만 더 심하게 다친 유우석을 유치장에서 간호했고 유관순과는 공주형무소에서 함께 생활했다.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유관순에게 항소를 설득한 것도 김현경이었다고 한다. 김현경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지만 학교로 돌아가지 못해 이화학당 보육과로 편입했다.   
    2심 재판 뒤 이감된 서대문형무소에서도 끊임없이 만세를 불러 갖은 폭행과 고문을 당했던 유관순은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 형무소 내 만세운동을 주도해 또다시 모진 고문에 시달렸다. 결국 유관순이 그해 9월 28일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자 김현경은 이화학당 교장과 목사 등과 함께 유관순의 시신을 수습하고 손수 수의를 짓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충남 공주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월의 역사 인물로 유관순과 김현경을 선정했다.
                                                          <참고문헌>  
     1. 허백윤, “머문 곳마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유관순 열사는 일상이 독립운동이었다”, 서울신문, 2019.3.7일자. 10면.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공지  서안 태백산, 한웅천왕의 개천 역사 흔적을 찾아서  알자고 15·02·06 959
공지  서안 태백산, 한웅천왕의 개천 역사 흔적을 찾아서  알자고 15·02·06 1100
공지  서안 태백산, 한웅천왕의 개천 역사 흔적을 찾아서  알자고 15·02·06 942
공지  서안 태백산, 한웅천왕의 개천 역사 흔적을 찾아서 1  알자고 15·02·06 1007
공지  서안 태백산, 한웅천왕의 개천 역사 흔적을 찾아서  알자고 15·02·06 1161
공지  필독) 회원가입 후 방명록에 등업신청 바랍니다. 19  알자고 10·04·07 5599
공지  단군전의 연혁과 현황  관리자 13·07·27 3345
공지  왜 민족사관인가?  알자고 12·07·14 2629
공지  단군성전과 단군문화 유적을 찾습니다. 2  관리자 06·08·24 4573
1523  존 던칸 미국 UCLA 한국학연구소장의 충격적인 증언   tlstkdrn 19·03·22 15
1522   성리학 이외의 학문은 이단이다.  tlstkdrn 19·03·20 20
1521  괴산장터 3.19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재현  tlstkdrn 19·03·20 16
1520  생애주기별로 죽음학습이 필요한 이유  tlstkdrn 19·03·20 16
1519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과정  tlstkdrn 19·03·19 15
1518   '예천 출신 문화애국자' 故 정조문 선생  tlstkdrn 19·03·19 18
1517   3.8민주의거 국가 기념일 지정 이후 남은 과제  tlstkdrn 19·03·19 17
1516  몽양 여운영의 좌우합작 통일국가론의 실체  tlstkdrn 19·03·19 15
1515  민족 울분 표현한 시대의 흥행작 ‘아리랑’ 영화  tlstkdrn 19·03·18 9
1514  민주화 운동의 대부 문동환 목사 별세  tlstkdrn 19·03·18 9
1513  <특별기고> 3.8민주의거 제59주년 제1회 국가기념행사 성공적 개최  tlstkdrn 19·03·16 15
1512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tlstkdrn 19·03·16 17
1511  논어의 저자 공자는 일평생 끊임없이 노력하는 열정적인 인간이었다.  tlstkdrn 19·03·16 16
1510   백두대간 홍보대사로 활약한 데이비드 메이슨 동양철학자  tlstkdrn 19·03·16 13
1509  한국인보다 한국 산을 더 사랑한 데이비드 메이슨의 산신 이야기  tlstkdrn 19·03·16 14
1508  국가보훈처 좌익 운동 298명 포함 2만4737명 재심사  tlstkdrn 19·03·15 21
1507  소설가 황석영, '해 질 무렵'으로 2019 맨부커상 1차 후보 올라  tlstkdrn 19·03·15 17
  유관순 열사는 일상이 독립운동이었다  tlstkdrn 19·03·13 23
1505  유관순 열사와 만세운동  tlstkdrn 19·03·13 24
1504   제자리 못 잡은 3·1운동 역사적 평가  tlstkdrn 19·03·13 22
1503  통계로 한 눈에 보는 대전시정  tlstkdrn 19·03·13 18
1502  이념 대립으로 사분오열된 해방공간에서 자유주의 설파한 이승만  tlstkdrn 19·03·09 31
1501  단군팔조교  tlstkdrn 19·03·07 37
1500   민족사학의 전래 과정  tlstkdrn 19·03·07 37
1234567891047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