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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명의 뿌리 아르잔 쿠르간 발굴조사
 tlstkdrn  | 2019·05·13 11:52 | 조회 : 20
스키타이 문명의 뿌리 아르잔 쿠르간 발굴조사

   흙이나 돌로 덮은 거대한 무덤인 쿠르간은 동유럽에서 중앙아시아까지 폭넓게 분포돼 있다. 신라의 왕릉들도 쿠르간과 맥이 닿아 있다. 사진은 스키타이족이 알타이산맥 동쪽인 러시아 투바공화국 지역에 남긴 칭게테이 쿠르간의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한국 팀도 러시아와 함께 칭게테이 쿠르간을 발굴하고 있다.
   고대 한국의 교류 상대는 동북아시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북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넓은 범위에 퍼져 있었다. 유라시아라고 불리는 광대한 대륙 이곳저곳을 이어주는 수많은 경로는 크게 북방의 초원길, 오아시스와 사막을 잇는 비단길(좁은 의미의 실크로드), 그리고 바닷길로 삼분된다. 고구려와 신라는 주로 초원길과 비단길을 통해 외부세계와 소통하였고, 백제와 가야는 바닷길로 소통하였다. 따라서 고구려와 신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북아시아(몽골과 러시아 남부),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서아시아(이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백제와 가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4~6세기 무렵 경주평야를 무대로 발전한 신라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은 선행하던 재지 무덤이 자체 발전한 결과라기보다는 외부의 강력한 충격에 의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구조와 매장법, 부장품 등 여러 측면에서 초원길, 비단길로 이어지는 유라시아의 기마문화, 황금문화에 맥이 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자들이 신라 왕릉과 유라시아 쿠르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다. ‘쿠르간’은 흙이나 돌로 덮은 거대한 무덤을 일컫는다. 기원전 4000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유라시아 북부 초원지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데 특히 동유럽에서부터 중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마다 고유한 쿠르간 문화를 남겼기 때문에, 경주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도 한국인에게는 신라 왕릉이지만,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유라시아 동쪽 끝에 있는 쿠르간이 된다.
   유라시아적인 시각에서 신라 왕릉을 연구하기 위해 2016년도부터 카자흐스탄의 사카~오손 시기 쿠르간을 조사하던 사정은 이미 지난 1월12일치 연재([5회 ‘신라 황금유물의 계보는 중앙아시아’])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2009년도부터 장기 지속된 아제르바이잔의 살비르 유적 조사 도중, 바로 인근에 대형 쿠르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2~3년간의 협의 끝에 아제르바이잔 당국의 허락을 받아 디자흘리(Dizaxli)라는 마을에 소재하는 지름 40m급의 대형 쿠르간을 발굴 조사할 수 있었다.
   한국 고고학계가 세계적으로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분야는 고분 조사이다. 우리 팀은 국내에서 갈고닦은 고분조사 방법론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디자흘리 쿠르간 조사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이 무덤의 축조 공정과 구조 등을 상세하게 규명할 수 있었으나, 이미 여러 차례 자행된 도굴로 인해 부장품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구조적으로는 신라 무덤과 유사한 점이 많았으나, 시간적으로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이어서 아무래도 신라 왕릉과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였다.
   아제르바이잔 조사를 함께 해오던 서울대 김종일 교수와 논의한 결과 작전을 바꾸게 되었다.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쿠르간 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스키타이 쿠르간 조사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것이다. 러시아통인 국립박물관 이우섭 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모스크바 대학 역사학부 칸토로비치 교수가 담당한 코카서스(캅카스) 북쪽의 유적을 하나의 후보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박물관 추구노프 박사팀이 담당하는 러시아 남부의 유적 한군데를 후보로 올렸다. 모스크바 대학 팀이 조사하는 쿠르간은 전쟁의 상처가 겨우 아물어가는 체첸에 인접한 미네랄니예보디라는 곳에 있었다. 이곳은 러시아 최고의 온천 휴양지인데 스키타이의 중요 거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칸토로비치 교수는 우리 팀을 친절하게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조사 성과를 설명하고 우리들의 동참을 권유하였다. 에르미타주박물관 팀이 조사하는 유적은 알타이의 동쪽에 위치한 투바공화국에 소재하였다. 쿠르간의 보존 상태는 훨씬 좋았으나 주변에 민가가 없어서 망망대해와 같은 초원에서 말, 양과 함께 사는 유목민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두 지역을 면밀히 비교한 뒤 후자로 결정하는 모험을 행하였다.
   투바는 러시아에 속해 있는 자치공화국이다. 바이칼 호수 서편의 초원지대에 위치하는데, 부랴트공화국, 하카스공화국, 알타이공화국,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등과 접하고 있다. 주민은 대부분 투르크족이고, 종교는 불교가 우세하며 문화적으로는 몽골과 유사하다. 고음과 저음을 동시에 발성하는 특이한 창법인 흐미(‘몽골인의 창법 Khoomei’란 명칭으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됨)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투바 출신의 유명한 흐미 가수의 이름이 콘가르올 온다르(Kongar-ol Ondar)이듯, 투바에는 온다르(Ondar)란 성을 지닌 사람이 매우 많아서 고구려의 장수이자 평강공주의 남편인 온달이 이 지역 출신이라는 흥미로운 주장도 나오고 있다.
   투바공화국을 세계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에 널리 알린 계기는 아르잔(Arzhan) 쿠르간의 조사이다. 투란(Turan)이란 도시의 서편에는 동서로 펼쳐진 길이 20㎞에 이르는 긴 협곡에 180기가 넘는 대형 쿠르간이 2~3개의 열을 지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그중 1970년대 초반에 그랴즈노프가 1호분을, 1990년대에 추구노프와 독일 팀이 2호분을 공동 발굴조사하였다. 단 2기만 발굴하였을 뿐인데 스키타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설을 새로 써야 할 정도의 중요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그의 역작인 <역사>에서 기록한 스키타이 왕의 장례 풍습을 연상시키는 구조인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1호분은 주인공을 원의 중심에 놓고 방사상으로 여러 개의 나무 방을 만들고, 그 안에 인간과 말을 매장하였다. 그 연대는 기원전 9세기 무렵이어서 스키타이의 심장부에 해당되는 흑해 연안의 기원전 7세기 문명보다 더 오래된 스키타이 문명이 알타이 동부에서 꽃피었음을 보여주었다. 2호분은 기원전 7세기 무렵에 해당되는데 심한 도굴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금제 장신구와 매우 발달한 철제 무기류가 출토되었다. 이로써 스키타이 문화가 흑해 연안-코카서스 지역에서 먼저 발전한 뒤, 동쪽으로 확산되었다는 기존 견해는 부정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결국 스키타이 연구가 흑해와 코카서스 지역만이 아니라 알타이와 남부 시베리아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잔에서 대형 쿠르간 문화가 발달하고 있을 때 그 동편에서는 고조선이 성장하고 있었다. 아르잔과 고조선 사이에는 바이칼 호수가 위치하는데 이 거대한 호수의 동편과 서편에서 각기 특색 있는 고대 문화가 발전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울러 스키타이 문화의 시베리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와 고조선의 관련성도 장래의 연구 과제로 제기된다. 이 문제에 착안한 경희대학교 강인욱 교수가 아르잔 1호분과 고조선의 무덤인 강상무덤을 비교하는 글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중요한 스키타이 유적을 한국인 연구자가 직접 조사한다는 것은 과거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영광인데, 높아진 대한민국의 위상 덕분에 우리 팀은 에르미타주박물관과 공동조사의 형태로 참여하게 되었다. 드디어 2018년 7월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이 용인대학교 김길식 교수와 함께 선발대 격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투바공화국으로 가는 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투바공화국의 이웃인 하카스공화국의 수도인 아바칸이었다. 이곳에서 다시 지프차로 갈아타고 7시간을 달려 추구노프 팀의 캠프에 도착하였다.
   한국 팀을 위해 작은 텐트 3채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안락한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한국의 젊은 학생들에게는 일상생활 자체가 고역이었다. 선발대를 보내고 10일 후에 후발대로 필자가 현장에 도착해 보니 학생들이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바로 전날 밤에 몰아친 돌풍과 폭우 때문에 텐트가 날아가 버리고, 옷과 침구, 식료가 모두 침수된 것이다. 한여름이지만 밤에는 기온이 영하 가까이 내려가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러시아의 동료들이 자신들의 방한복과 침낭을 기꺼이 빌려준 덕분에 한국 팀은 버틸 수 있었다. 이렇게 초원에서의 고단한 생활과 즐거운 조사가 하루하루 쌓여 갔다. 지면을 통하여 어려운 조건에서도 학술조사에 몰두한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에게 존경을, 그리고 진심 어린 우정으로 우리를 대해준 러시아 조사단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추구노프 팀은 아르잔 1호분과 2호분에 이어 새로이 칭게테이(Chinge Tey) 쿠르간 조사에 착수하고 있었다. 이 쿠르간은 180기가 넘는 쿠르간 중 가장 서편에 위치하는데, 전체적으로 서쪽의 쿠르간이 오래된 것이고 동쪽으로 가면서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칭게테이 쿠르간은 이 거대한 유적이 시작되는 시대상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고분이다. 거대한 쿠르간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 많은 인원이 투여되어야 하지만 겨울이 긴 초원에서의 조사가 늘 그렇듯이 아르잔 조사도 여름 2개월만 가능하다. 추구노프 팀은 2008년 이후 이미 11년의 시간을 투자하였으나 정작 쿠르간의 내부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이 쿠르간을 위성처럼 감싸고 있는 많은 소형 배장묘 조사에 머물러 있었다. 2018년까지 총 7기의 배장묘가 조사되었는데 말이 배장묘이지 다른 지역 같으면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의 센세이셔널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었다. 러시아 팀이 한국 팀과 공동조사를 원한 이유는 본격적으로 쿠르간 내부 조사에 진입하기 위함임도 곧 알게 되었다. 하지만 충분한 재원도 없이 생소한 환경에 뛰어든 우리로서는 여러가지 고려할 점이 많아서 2018년도 첫해 조사는 배장묘 1기를 조사하는 정도로 만족하였다. 이제 곧 2019년의 조사가 시작된다. 금년부터는 새로이 폴란드 조사팀도 합류한다고 하니 투바에서 한국과 러시아, 폴란드 학자들이 함께 스키타이 쿠르간을 조사하는 멋진 장면이 나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질문한다. 왜 굳이 외국에 나가서 고생을 하는지, 그리고 그 유적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필자의 답은 한결같다. “왜 미국 학자들은 그들과 무관(?)한 중남미 유적을 조사하고, 유럽 학자들은 중근동 지역을 조사합니까? 이웃 일본은 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여 복원사업에 뛰어듭니까? 이제 대한민국도 우리 역사와 직접 관련성이 없더라도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에 뛰어들 때가 되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는 유적은 한결같이 한국 고대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다. 앞으로 우리의 후배들은 중남미나 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한국사와는 무관하더라도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유적의 조사와 보존에 뛰어들 것이다. 민족사를 넘어서서 인류 공동의 역사 연구와 문화 보존에 앞장서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고 세계적인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은 이 숭고한 임무를 감당하기 위해 지금도 연구실과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다.
   권오영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직접 유적을 발굴하는 고대사 학자로, 역사학과 고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과학과 공학적 연구를 역사 탐구에 활용하는 학제 간 융복합 연구에 관심이 많다. 최근 연구 성과를 토대로 고대 한반도가 주변국들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고대사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참고문헌>
   1. 권오영, “스키타이 문명의 뿌리 아르잔 쿠르강을 파다”, 한겨레신문, 2019.5.4일자.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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