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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나혜석 생가터
 tlstkdrn  | 2019·07·08 02:52 | 조회 : 11
수원 나혜석 생가터

    수원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였던 정월 나혜석의 고향이다. 인계동에 가면 ‘나혜석 거리’가 있고 그녀의 조각상이 있건만 오늘은 거기까지 가는 것도 무리인 듯하다. 대신에 정조대왕의 행궁 근처에 그녀의 생가가 있다. 수요일 밤인데도 12시 넘긴 사당∼과천∼의왕∼수원 길은 한적하다 싶다. 차는 한달음에 행궁동으로 데려간다. 정조의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난 몇 년 사이에 더욱 아름다운 꾸밈을 받고 있다. 한밤의 서장대 멀리 보이는 행궁 앞 광장 옆에 늘 지나다니던 나혜석 생가터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의 최후 작품으로 추정되는 ‘수덕사’가 지난주 충남 예산군 덕산면 북문리 ○○○씨 집에서 극적으로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을 보관 중인 ○씨는 일제 말인 40년 어느 날 저녁, 행색이 초라한 여인이 찾아와 그림 세 폭을 내놓으며 사주기를 원했다고 말하고 있다….” 모 신문 1974년 5월 9일에 실린 이 기사의 동그라미 표시가 돼 있는 곳에는 나의 외할아버지의 실명이 적혀 있고, 나는 어려서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 나혜석의 이야기를 잊지 않을 만큼은 들었던 터다. 어렸을 적 이 기사에 나오는 덕산 북문리의 외할아버지는 건넌방 어두운 골방에 늘 혼자 계셨다. 민요를 사랑하고 만담을 즐겨 듣던 그분의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소리를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 없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불과 몇년 전, 나는 나혜석의 삶과 문학에 대한 논의를 하러 수원을 찾았다. 오늘은 그날 미처 자세히 보지 못한 생가터를 찾아가 보자는 것, 하지만 늘 지나다니던 길인 것을, 눈에 고이 넣어 두지 못했을 뿐이다. 장안문 옆으로 돌아 수원미술관 앞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어 행궁동 복지센터 앞에 나혜석의 생가 앞에는 나혜석의 생애를 기록한 입간판만 외롭게 달 아래 섰다. 더 새로울 것도 없는 나혜석의 생애를 나는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본다. 1896년생 여성 작가가 셋 있었으니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이 그들이다. 나혜석은 그중 가장 앞선 여성이요, 먼저 여성해방에 눈뜬 사람으로 형극의 길을 앞서 걸은 사람이었다. 그녀 또한 신여성의 명예만 안고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일생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폐병 앓는 사람의 형이 보낸 전보를 거절하지 못하고 부산에서 고흥까지 나흘 걸려 찾아가면서 인생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결혼도 안 한 여성이 남자 쪽 집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병 간호를 하고 나자 그녀의 삶은 다른 궤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정과 미련은 금물이라는 말일까. 그것이 비정한 이 세상의 철리일까. 생가 터를 뒤로하고 돌아 나오면서, 몇년 전이었나, 수원미술관에서 나혜석 그림 전시회 하던 일이 떠오른다. 도록이 너무 잘되어 탐을 내 겨우 한 부 얻을 수 있었다. ‘여민각’이라 이름 붙인 종루도 오늘따라 아름답게만 보인다. 무지개 뜬 듯 아름답다는 화홍문과 바로 위 방화수류정까지 내처 걸어본다. 인적 끊긴 수원천 누각들 정적이 마치 비극적인 생애를 살다간 나혜석 말년의 정적같이 느껴진다. 그녀에게는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지만, 그녀의 이름은 그 밤의 시대에 빛나던 ‘글씨’ 때문에 오늘에 오히려 더 생생한 가치를 지닌다. 그녀는 되돌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있었던 길을 회피하지 않은 여성이었다. 나는 세속을 끝내 떠나지 않은 나혜석의 길을 가리켜 불교에 귀의한 김일엽과 대비해 ‘도저한 세속주의’라 이름 붙인 적이 있다. 어느 쪽인들 쉬웠으랴만, 이 밤만은 세속의 불합리의 진흙탕 속에서 상처 입은 채 뒹굴었던 혜석 그녀를 위해 잠시 눈을 감는다.
                                                         <참고문헌>
    1. 방민호, "한밤의 수원 행궁, 나혜석 생가터", 세계일보, 2019.7.6일자. A19면.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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