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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tlstkdrn  | 2019·07·12 01:24 | 조회 : 10
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글쓰기 두려움을 이기는 법은 오랜 화두다. 기업에서 17년, 청와대 8년, 그리고 이후 줄곧 글 쓰는 일을 하는 나도 글쓰기가 두렵다. 나만큼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써야 해서 쓴 사람도 드물다. 소설가, 시인도 글쓰기가 두렵겠지만, 그런 두려움은 엄살이다. 안 써도 될 것을 사서 쓰면서 죽는 소리 하는 것이다. 누가 쓰라고 했나? 어쩌면 설렘을 두려움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정래 선생님도 자신의 글쓰기 책에서 <황홀한 글감옥>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결코 황홀해 본 적이 없다. 쓸 때마다 두려웠다. 그런 두려움 극복법을 15분짜리 강연 프로그램에서 말한 적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오늘 얘기는 그 재탕이 아니다.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얘기다.
   글쓰기가 두려운 이유는 많지만, 대표적인 게 첫 문장의 공포다. 엄밀히 말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 다시 말해 첫 문장 쓰기 전이 가장 두렵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듯 글쓰기 직전, 뇌는 마지막 발악을 한다. 어떻게든 안 써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방법은 기습적으로, 무턱대고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조들은 어찌나 지혜로운지, 확실히 시작이 반이다. 공부하기 전이 힘들지 막상 책상에 앉으면 마음이 편하다. 글쓰기는 특히 그렇다. 나는 글의 첫 문장 유형 십여 가지를 알고 있다. 그것으로 돌려막기 하며 시작한다. 굳이 내가 알려줄 필요가 없다. 소설이나 칼럼 첫 문장 쉰 개만 수집해서 유형화해보면 알 수 있다. 그들도 돌려막기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많이 안 써봐서 두렵다. 자주 해보지 않은 일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인간은 낯선 것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자주 쓰면 된다. 방법은 메모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메모가 습관이 되면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 나아가 자주 쓰다 보면 좋은 게 얻어걸린다. 내가 봐도 괜찮은 글이 써진다. 글쓰기 자신감이 스멀스멀 생긴다. 글쓰기 근육이 붙는 것이다. 또한 많이 쓰면 누군가 읽는다. 누군가 읽어줄 때까지 쓴다는 마음으로 들이밀고 밀어붙여 보라. 어쩌다 잘 썼다는 칭찬도 듣게 된다. 이리되면 글쓰기를 즐기게 된다. 낯선 두려움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익숙함과 자신감을 넘어 즐거움이 된다. 글쓰기가 재밌어진다.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해서 두렵다. 글쓰기는 복합노동이다.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글쓰기만큼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일도 없다. 어휘를 떠올리며 문장을 완성해야 하고, 문맥을 이어가면서 독자의 반응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나는 늘 그 어려운 걸 해낸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것이다. 문단을 쓰는 것과 문단을 연결하는 것을 분리한다. 문단을 쓸 때는 전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홀로 서는 짧은 글 하나 쓰는 데에만 전심전력한다. 이후 써놓은 문단을 조립하는 것으로 문맥을 완성한다. 또한 쓰는 것과 고치는 것을 떼어서 한다. 쓰면서 고치지 않는다. 쓸 때는 쓰기만 하고, 고치기는 나중으로 미룬다. 고칠 때도 하나씩 한다. 어휘를 고칠 때는 어휘만, 문장을 고칠 때는 문장만 고친다. 맞춤법, 혹은 사실관계를 바로 잡을 때는 그것만 한다.
   독자 눈치를 심하게 봐서 글쓰기가 두렵다. 독자가 없는 글쓰기는 허망한 일이기도 하지만, 두려움 또한 없다. 나를 글쓰기 길로 이끌어준 <대우증권 20년사> 집필이 그랬다. “이 책은 아무도 읽을 사람이 없으니 그냥 써라”는 상사의 말이 용기를 줬다. 아무도 안 본다는데 쓰지 못할 일도 없지 않나. 나는 독자로 인한 두려움을 네 가지 생각으로 이긴다. 첫째, 남들은 내 글에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관심 없다. 둘째, 내가 독자를 두려워하는 것은 독자를 존중하는 마음과 잘 쓰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굳이 피할 일이 아니다. 남에게 보여줘야 글쓰기 실력은 는다. 셋째, 글은 내가 쓴다고 완성하는 게 아니다. 독자와 발을 묶고 달리는 이인삼각 경주다. 내가 썼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읽어서 완성하는 것이다. 독자와 나는 한편이다. 넷째, 독자를 위해서 쓰자.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자. 도움이 안 됐다고 나무라면 달게 받자. 도움을 주려는 내가 강자다. 글쓰기는 ‘갑질’이다.
   글쓰기는 원래 어려운 일이어서 두렵기도 하다. 아마 인간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글쓰기를 학교 다닐 적 제대로 배운 적 없다. 이제라도 배우고 익히면 된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째로 배울 방법은 없다. 어휘력, 문법에 맞는 문장 쓰기, 구성법 등 하나씩 떼어서 익혀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써요?’ 이런 질문하지 마시라. ‘어휘력을 향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쉰살이 넘어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참 공부하기 좋은 세상이다. 남의 글을 읽으며 배우는 것도 많다. 그냥 읽는 것과 글쓰기를 배우려고 읽는 것은 천양지차다.
   글쓰기가 두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외로워서다.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다. 혼자 하면 두렵다. 글동무를 만들자. 내게는 함께 글 길을 가는 세 친구가 있다. 내 글의 첫 독자인 아내가 그 한 사람이고, 남의 글이 두 번째 글동무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고치를 만들 듯 나는 남의 글에 기대 글을 쓴다. 세 번째 친구는 글쓰기 책과 강연이다. 글을 쓰다가 오는 슬럼프에서 나를 건져주고, 동기 부여와 안내자 역할을 해준다. 물론 고독을 즐기고, 외로움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뭐니 뭐니 해도 글쓰기가 두려운 것은 잘 쓰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욕심을 자제한다.
   △우선 한 문장만 쓰자. 주술관계만 맞춰 쓰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먹게만 쓰자. 한발씩 야금야금 들여놓자. △내 역량을 보여줄 기회는 또 있다. 남겨뒀다 보여주자. 이번에 다 내놓을 필요 없다. △있는 실력 그대로 보여줘야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잘 보이고 싶으면 더 노력해서 다음 글에서 보여주면 된다. △내 민낯을 드러내도 손해 볼 것 없다.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위악적 표현을 쓰자.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 더 과장해서 말하자. 그러면서 스스로 위안하자. 나 그렇게 나쁘진 않다.
   반대로, 자신감이 부족해서 오는 두려움은 이런 생각으로 다스린다.
   △이것 못 쓴다고 죽고 살 일 아니다. △양으로 승부하자. 수준 높은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만, 많은 양을 쓰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가. 곰탕도 졸이면 진국이 된다. △말하듯 쓰자. 말은 할 수 있지 않은가. △글은 재능으로 쓰지 않는다. 엉덩이로 쓴다. 쓰다 보면 언젠가 써진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나는 늘 써왔고 반드시 써졌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남과 다르고,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다.
   내가 평소 기대는 구절이 있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글 중 일부다.
   아무리 글을 많이 쓴 사람도 당장 써야 하는 글은 새로운 도전이다. 글쓰기는 늘 처음이다. 처음은 누구나 두렵다. 그렇지만 처음이어서 또한 두근거린다. 두려움과 두근거림은 한끗 차이다. 두려움을 두근거림으로 만드는 건 도전정신이다. 나는 청와대를 나온 이후 늘 시도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마다 한편으로 두렵지만, 다른 한편으로 짜릿하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역량이 내게 있을까. 나 스스로를 탐험한다. 그리고 결과가 궁금하다. 한 꼭지 글을 쓰는 게 내게는 모두 새로운 도전이고 짜릿한 모험이다. 어쩌면 마지막 시도가 될 수도 있고.
   간절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글을 써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그런 꿈이 있으면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 또한 글을 안 쓰고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면 누구나 글을 쓴다. 글쓰기가 두렵다면 아직 당신은 살 만한 것이다.
                                                          <참고문헌>
   1. 강원국, "글쓰기가 두려운가요?", 한겨레신문, 2019.7.11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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