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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제영 여사의 생애와 업적
 tlstkdrn  | 2019·08·07 18:42 | 조회 : 50
소설가 김제영 여사의 생애와 업적

   2018년 12월 4일 오후 9시 30분, 故 김제영 소설가가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등단 소설가이자 기자,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그를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를 기억하는 후배 문인들이 세종시 문화예술 거점 역할을 할 ‘김제영 문학관’ 건립에 뜻을 모았다. 생전 고인이 살던 자택을 보존해 그를 기리고, 지역 문화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문학관 추진위원회는 오는 8일 출범식을 갖는다.  
   진보적 문화예술인으로서 분단 문제와 민주화, 정의 실현에 목소리를 높였던 고 김제영 선생.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나 평생 글을 쓰며 살아온 삶, 조치원과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 세계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고 김제영 선생의 고향은 제주도다. 1928년 출생했다. 그의 부친은 공주영명학교 교사 재직 당시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관회 선생이다. 그의 부친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제영 선생은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이화여고를 졸업했다. 민국일보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다 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조 장관 역시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최광 소설가는 “당시 언론사 입사 자격은 대학교 졸업 이상이었는데, 선생님은 직접 신문사에 찾아가 항의해 입사시험 자격을 얻으셨다”며 “해방 3주년을 주제로 한 논술을 치러 차석으로 합격했고, 용공조작사건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고 조봉암 장관 비서로 일했다.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과 많이 교류하셨다”고 했다.  
   김제영 선생이 조치원에 정착한 건 1956년이다. 한국전쟁 피난 시절 만난 남편이 조치원의원을 개원하면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최 작가는 “친구와 친척들이 전쟁 중 뿔뿔이 흩어지고 연락이 닿지 않게 되자 교통이 편리한 조치원에 생활 근거를 마련하셨다”며 “서울도 쉽게 오갈 수 있고, 여러 네트워크 측면에서 유리한 곳이었다. 고 윤조병 선생님과의 인척관계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착 이후 단편소설 <석려>로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가작으로 입선했다. 1956년 백수문학 창간 이후에는 초기 멤버로 활동하면서 지역 문인들과 교류했다.   백수문학 초대회장인 강금종 소설가와의 인연도 특별하다. 강 선생은 김 선생과 같은 제주 출신으로 일본 유학 중 계림동지회라는 학생독립운동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 검거, 해방 이후 풀려나 조치원에 정착했다.  
   최 작가는 “1956년 김제영 선생이 조치원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강 선생님이 직접 찾아와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며 “두 분은 생전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밝혔다.
   생전 고 김제영 선생과 인연이 깊었던 최광 소설가가 김 선생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김제영 소설집> 서문에는 김동리 선생의 글이 실려있다. 현대문학계 큰 별인 김동리, 박목월, 이문구 작가는 종종 조치원 김제영 선생 댁을 찾았다.  
   최광 작가는 “선생님이 남기신 유품 중에는 박목월 친필 서화나 김동리 작가 휘호도 있다”며 “미술, 음악 등 다방면의 식견을 갖고 계셔서 관련 글도 많이 쓰셨고, 미술품 컬렉션도 많이 보유하셨다”고 했다.  
   생가는 지하실이 딸린 2층집이다. 1층에는 진료실과 살림집이, 2층은 입원실로 쓰였다. 지하는 지역 문인들의 모임 공간이나 출판기념회, 문학 강연 장소로 쓰였다. 지역에서 문학 행사가 열릴때면, 문인들은 이곳에서 뒷풀이를 하곤 했다.
   최광 작가는 “현재 세종시민회관은 당시엔 문화원이었는데, 홍신자 시인 등 유명 시인을 모시고 문학 강연을 하면 선생님 댁 지하에 모여 뒤풀이를 하곤 했다”며 “일종의 문인들이 교류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의술과 인술을 함께 펼쳤던 조치원의원에 대한 기억도 남아있다.  
   최 작가는 “자녀 모두를 조치원의원에서 낳았다”며 “당시 돈이 없는 사람은 외상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었다. 진료비는 형편이 되면 갚고, 또 못갚는 사람도 있었는데, 남편 분께서는 의술이자 인술을 펼쳤던 분”이라고 했다.  
   1989년 창간주주 형식으로 한겨레신문이 생기자 조치원 지역에서도 지역 언론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1만 원짜리 주식을 만들어 창간주주를 모았는데, 당시 주식회사 자본금 기준인 5000만 원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최 작가는 “김 선생님은 부족한 자본금을 마련해 대주주 역할을 하셨고, 편집인으로도 활동했다”며 “신문은 지역 유지들의 참여와 편집권 통제 등이 심해지면서 3년 정도 운영돼다 폐간됐지만, 선생님의 애정이 크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1년 소설작품집 <거지발싸개 같은 것>, 1990년 장편소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등을 펴냈고, 1995년부터는 연기문학에 장편소설 <간지러운 발바닥>을 연재했다.
   무용한국 편집고문, 월간음악 객원편집인, 미술21 편집고문, 미술세계 객원편집인을 역임하기도 했다. 월간ART코리아, 월간음악저널, 계간충남예술 고정필진으로 글을 썼다. 그를 소설가라는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분단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독립운동을 한 부친의 영향도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 부조리를 직접 체감한 세대이기도 했기 때문.  
   최 작가는 “선생님은 늘 분단이나 통일 문제를 말씀하셨다”며 “해방 이후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로 변신해 훈장도 받고 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개탄스럽게 생각하셨다. 사회와 시대에 대한 고민은 작품에도 많이 녹아있다”고 했다.  
   생전 지역 문학회에 수시로 후원금을 내며 후배 문인들도 살뜰히 살폈다.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도 지역 문학 행사에는 직접 참석했고, 지역 문학운동 거점, 조치원 작은도서관을 만들 때에도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타계 직후 후배 문인들은 도시재생대학에 들어가 그의 생가를 문학콘텐츠화 하는 방안에 머리를 맞댔다. 조치원 정수장과 한림제지 등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활성화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최 작가는 “1층은 선생님의 생애와 작품, 유품 전시실로 꾸미고, 2층은 문학사랑방, 지하공간은 소규모 공연장이나 연습실로 제공해 합창단, 실내악, 극단이 쓸수 있도록 복합공간화 하려는 생각”이라며 “관람객들과 학생들이 쉽게 오는 투어 공간, 많은 이들이 발걸음 하는 공간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1. 한지혜, “ '쓰고, 품은 사람' 문학·예술 선구자 김제영 선생”, 세종포스트, 2019.8.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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