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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21세기 기본소득 문제
 tlstkdrn  | 2020·03·25 18:45 | 조회 : 11
21세기 기본소득 문제

   코로나19 사태로 포퓰리즘 논란이 적지 않았던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정당, 사회단체들이 ‘한시적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지구적 ‘코로나19 광풍’이 정책 담론의 영역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재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지난 17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민 개개인에게 현금 1,000달러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형태의 재난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예외적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널리 계몽되고 있는 셈이다.
                                                   1. 기본소득의 역사와 쟁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소득 및 자산 그리고 노동시장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일정한 금액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기본소득의 목적은 국가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 아이디어는 근대 초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토머스 페인, 존 스튜어트 밀 등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빈곤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제시됐다.
   주목할 것은 지난 20세기 제임스 토빈, 존 갤브레이스 등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물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보수적 경제학자들까지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보장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행정학자 양재진은 기본소득에 대한 이론적 흐름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각각 기원하는 우파 버전과 좌파 버전으로 구분한다.
   먼저 우파 버전을 보면, 프리드먼 등은 기본소득이 사회보장제도의 중첩성, 파편성, 관료주의화로 인해 발생하는 행정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정한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면, 공적 급여를 받기 위해 저임금 근로를 회피하고 공적 부조에 안주하는 빈곤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기본소득이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활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한편 좌파 버전을 보면,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 등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기본소득의 유용성을 주장했다.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임금을 위해서가 아닌 내면의 요구대로 일하고 문화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최근 인공지능 등 생산력의 발전이 한편으론 풍부한 부를 창출하고, 다른 한편으론 일자리 감소를 낳는 흐름을 지켜볼 때, 기본소득이 임금 노예로부터 시민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기본소득은 장단점이 분명한 제도다. 이 제도는 복지 사각 지대를 없애고, 복지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선별 복지에 따르는 낙인 효과를 방지하는 것을 포함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유용한 해법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하려는 의욕을 줄이고, 재원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세금을 올려야 한다.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의 경우 기본소득이 낮게 책정된다면 평균 복지급여 수준이 하락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2. 2020년대와 기본소득의 미래
   지난 2010년대에 들어와 기본소득은 여러 나라에서 실험을 거쳤다. 2016년 스위스에선 기본소득 규정을 담을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됐지만, 결과는 77%의 압도적 반대였다. 그 주요 이유는 증가할 재정 부담과 쇄도할 이민자에 대한 우려에 있었다.
   또 하나의 주목할 사례는 핀란드의 경우였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실직자 2,000명에게 기본소득(월 560유로)을 지급하는 실험을 추진했다.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기본소득 비판자들은 고용 효과가 없었다는 점을 주목해 실패했다고 본 반면,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수령자들의 행복감이 증진한 것에 주목해 유의미한 함의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 캐나다, 프랑스 등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기본소득이 꾸준히 추진돼오고 있다.
   실직자 2,000명에게 월 560유로(74만원 상당)씩 지급하는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시도된 지 2년 만인 2018년 종료됐다. 사진은 마르주카 투루넨 핀란드 사회보장국 국장. 유튜브 캡처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계속되는 까닭은 과학기술혁명의 진행에 있다. 이와 연관해 기본소득을 선구적으로 계몽한 한 사람은 사회학자 앙드레 고르였다. 고르는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사회적 총생산량이 증가했음에도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전세계 30% 정도의 노동력은 과잉 상태이고, 전통적 복지국가 정책으로 이를 감당하긴 어렵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 자유시간 증대, 그리고 기본소득 보장을 추진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까닭은 제4차산업혁명의 전개와 이와 연관된 노동시장의 변화에 있다. 그 핵심은 기술진보가 가져오는 실업인 ‘기술적 실업’의 증가에 있다. 경제학자 칼 프레이와 공학자 마이클 오스본은 2013년에 내놓은 ‘고용의 미래’에서 미국의 경우 자동화로 인해 20년 이내 47%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에 내놓은 ‘일자리의 미래’에서 2020년까지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흐름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부각시켜 왔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크게 제고시킨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다. 앞서 말했듯,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민 모두에게 일정한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보수적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가 이러한 방식이 코로나19 사태가 낳고 있는 경제위기를 대처하는 좋은 출발이라고 옹호함으로써 재난 기본소득은 이념을 넘어선 지구적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 코로나19에 대한 강력한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어 재무부는 4, 5월 두 차례 1,000달러씩 총 2,000달러(약 260만원)의 현금을 개개인에게 지급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2020년대에 기본소득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제2의 기계 시대’에서 기본소득의 명암을 주목한 바 있다. 이들은 기본소득이 경제적 궁핍을 해결해 줄 수 있지만, 사회적 권태와 방탕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에게 일 또는 직장이란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지겹다는 게 하나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을 선사한다는 게 다른 하나다. 이점에 주목해 이들은 기본소득이 일차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기성 사회보장제도의 혁신과 새로운 기본소득의 도입 가운데 어떤 것을 더 중시할 것인가는 현재 논쟁 중에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중장기적 결과다. 기계가 미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며,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부를 독점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적 흐름을 지켜볼 때, 우리 인류는 기본소득과 같은 분명하면서도 급진적인 대안을 결국 도입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쉽게 거두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 한국사회와 기본소득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세 계기를 통해서였다. 첫째, 2016년 ‘알파고 현상’이다. 알파고 현상은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진전이 노동시장에 가져올 변화를 생생히 실감하게 했다. 둘째, 2017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이었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기본소득을 핵심 공약으로 내놓았다. 셋째, 녹색당, ‘녹색평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이 기본소득 제도를 꾸준히 소개하고 계몽시켜 왔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가 ‘재난 기본소득’을 추진하자고 제안함으로써 기본소득 담론과 정책이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처음에는 재난 기본소득이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여러 나라에서 유사한 정책들이 추진되면서 힘을 얻고 있다. 재난 기본소득이란 개념이 적절한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엄격히 말하면, 재난 극복을 위한 1회 지원에 한정되기 때문에 재난 기본소득보다는 ‘재난 수당’으로 부르는 게 외려 타당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2017년 대선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의 공약이었다. 대선 출마 선언 직전 이 당시 시장이 경기 성남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기본소득에 관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격발한 경제위기가 심각해지고 장기화된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재난 기본소득 또는 재난 수당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결국 지급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비록 재난이 발생할 때 1회적으로 지급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바이러스 폭풍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토론이 2020년대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분명하다. 과학기술혁명이 가져올 일자리 감소와 불평등 증대를 기성 복지제도의 강화로만 해결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선 기본소득이 유력한 대안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미래의 역사로 생각되던 기본소득이 현재의 역사로 이제 막 진입해오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문헌>
   1. 필리프 판 파레이스/야니크 판데르보호트 지음, 홍기빈 옮김, 21세기 기본소득, 흐름출판, 2020.
   2. 김호기, "코로나사태, ‘임금노예’ 해방시킬 기본소득 앞당길까 ", 한국일보, 2020.3.24일자.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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