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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에 요절한 허무주의 천재시인 기형도 이야기
 tlstkdrn  | 2017·08·05 03:50 | 조회 : 73
29세에 요절한 허무주의 천재시인 기형도 이야기

   기형도의 첫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는 6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집은 ‘안개’로 시작하여 ‘엄마 걱정’으로 끝을 맺는다. 시인의 신춘문예 등단작이기도 한 ‘안개’의 배경은 경기 광명시 소하동(당시에는 시흥군 서면 소하리)과 그 주변의 안양천이다. 그리고 ‘입 속의 검은 잎’을 한 시인의 성장 과정이 온전히 담겨 있는 유고 시집으로, 또한 그 시집의 2부와 3부에 유독 많이 배열된 ‘과거의 한순간을 회상하는 시편들’을 그의 ‘성장시(成長詩)’로 해석한다면, 그 작품들의 공간도 실제 그곳이라 말할 수 있다.
   기형도는 서해 연평도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무렵인 1964년 서해안 간척 사업에 실패한 부친을 따라 경기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 701-6번지)로 이사했다. 너무나 때 이른 죽음을 맞을 때까지, 시인은 이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 성년 시절을 보냈다. 서울로 진학한 중고등학교와 대학도 이 집에서 통학하였고, 직장이었던 서소문로의 신문사도 물론이었다. 심지어 병역마저 인근의 안양시에 있는 부대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였다. 그는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려난 철거민들과 생계를 위해 수도권으로 몰려들었지만, 도시의 중심까지는 결코 유입하지 못했던 지방 출신 이주민들이 주로 사는 서울 변두리의 정착촌이었다. 안양천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울과 경기도의 행정구역상 경계를 이루는 한강의 샛강이다.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소하리에 정착한 뒤 착실하게 농사를 짓던 부모 덕분에 기형도는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기형도가 열 살 때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병구완을 위해 얼마 없던 전답마저 팔게 되면서, 오랫동안 이 가족을 괴롭히게 될 가난과 만나게 된다. 빈곤한 어린 시절은 추억마저 황폐하게 했고, 시인은 훗날 이때의 기억을 자신의 시로 옮겨 적는다. 이 무렵의 가족 상황을 보여주는 시가 바로 ‘위험한 가계(家系)1969’이다. “그 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이제 가족의 생계는 전적으로 그의 모친 손에 달려 있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엄마 걱정’ 전문).

기형도의 예전 집터를 찾아가는 초행길은 만만치 않다. 석수역을 나오면 이내 ‘긴 방죽 위에’ 이르고, 안양천을 작은 나무다리로 건너면 바로 소하동에 도착한다.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안양천은 과거에는 주변 공단에서 유출된 폐수로 인해 하천 오염이 심각했지만, 현재는 정비 작업으로 인해 수질이 개선되어 도심 속 생태하천으로 변했다.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천변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안양천과 소하동 사이에는 유독 지나가는 고가 도로와 철도가 많다. 반신반의하며 두어 개의 굴다리를 지나니 ‘자경로’ 사거리가 바로 앞이다. ‘기형도를 추억하는 운산고 학생과 교사’가 만들어, 도로 옹벽에 붙여 놓은 알림판 덕분에 시인의 생가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첫 행으로 유명한 ‘빈 집’의 시 전문에다 예쁜 그림들까지 그려 넣었으니, 알림판이라기보다는 도리어 멋진 ‘시화(詩畵)’ 패널처럼 보인다. 시인의 부친이 직접 지었다는 예전 집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그 터에는 커다란 자재 창고가 하나 들어서 있다. 창고 건물 뒤편에 줄지어 늘어선 비닐하우스에서는 제철 맞은 토마토 수확이 한창이다.
   기형도를 광명시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발굴하여 홍보하려는 시 당국과 시민들의 노력은 체계적이다. 이미 2004년에 광명시 중앙도서관을 개관하면서부터 3층에 ‘기형도 코너’를 따로 마련하였고, 현재까지 잘 유지해 오고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자필 원고 같은 자료들을 전시하면서 시인의 생애와 작품들도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게시물의 내용이 알차다.  
   그러나 광명시 하안동 시민체육관 옆에 세워져 있는 기형도 시비는 참으로 사연이 많다. 시인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모임인 ‘기형도기념사업회’가 광명시에 제안하여 세운 이 시비는 건립 당시에는 시인의 친구 성석제의 조언에 따라, 기형도가 가장 좋아했다던 시 ‘어느 푸른 저녁’을 선정하여 새겼다. 5연 48행이나 되는 이 장시의 전문을 새겨 넣기 위해 부득불 두 개의 비석을 나란히 세웠던 듯하다. 그런데 몇 년 뒤, 단지 이 시가 ‘너무 길고 어렵다’라는 이유만으로 ‘엄마 걱정’으로 시를 교체하였다. 이 과정에서 어쩐 일인지원문과 다른 표기상의 여러 오류가 발생했고 심지어는 시집의 제목마저 잘못 새겨졌다. 물론 이런 문제점들을 이내 바로잡았지만, 이번에는 도리어 2연 12행에 불과한 이 짧은 시를 ‘억지로’ 좌우 시비에 ‘적당히’ 배열해 놓았으니, 그 형태나 모습이 무척이나 조화롭지 못하고 특히 한쪽 여백이 지나치게 커서 참으로 볼썽사납다.  
   광명시 소하동 산144번지(오리로 268)에는 머잖아 기형도 문화공원과 문학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공원의 산책로와 조경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듯하고, 문학관 건물은 이미 완성되어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문학관 뒤편 산책로를 따라 이미 4개 하얀 시비가 나란히 서 있다(‘흔해빠진 독서’ ‘식목제(植木祭)’ ‘입 속의 검은 잎’ 그리고 ‘백야(白夜)’). 무엇보다 전시실과 자료실, 수장고(收藏庫) 같은 문학관의 기본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독서공간과 다목적 강당까지 마련할 예정이라 하니 기대감이 크다.
  기형도의 유택은 경기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그레고리오’란 천주교식 세례명이 낯설다. 기형도 시인의 무덤은 그의 문학을 동경하고 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이다. 매년 그의 기일을 즈음해서 추모 행사와 모임이 이곳에서 열리고, 매번 가뜩이나 좁은 공간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무렵이 아니더라도 그곳을 찾는 방문객은 늘 끊임이 없다. 저마다 손에는 그의 시집을 들고 있다. 기형도는 죽어서도 팬클럽 회원들이 있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며, 더욱 젊고 능동적인 독자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제는 해묵은 듯도 하지만, 여전히 기형도의 시에 족쇄처럼 채워져 있는 죽음의 의미, 아니 숱한 평자(評者)들이 자신의 현란한 글솜씨를 뽐내며 더는 말을 할 수 없는 시인에게 부여한 죽음의 상징을 떠올려 본다. ‘기형도 현상’은 사실 그의 죽음과 함께 태어났다. 하지만 첫 시집을 유고 시집으로 낼 수밖에 없던 ‘사실’보다는 시인의 죽음 자체가 ‘그로테스크 또는 기이한’ 사건이라는 점을 더 중요시했다. “중앙일보 기형도 기자 극장서 변사체로 발견”(동아일보, 1989년 3월 7일). 역시나 신문의 문화면보다는 사회면에 어울리는 기사 제목이다.  
   거의 한 세대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기형도가 이승에서 살았던 만큼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시집을 산다. 대형 서점의 시 코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는 여전히 ‘입 속의 검은 잎’이 차지하고 있고, 꾸준히 시집 판매 순위의 상위권을 지키는 거의 유일한 시집이다. 사실 기형도의 시들은 쉽게 읽히지 않으며, 그런 독서에는 무엇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독자들은 더는 당대의 권위부터 앞세웠던 예전 평론들을 거치지 않고 시인의 작품으로 바로 다가간다. 읽고 마음에 들면 또 다른 작품을 찾는다. ‘입 속의 검은 잎’뿐만 아니라 시인의 산문집과 전집도 꾸준히 팔리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특히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엄마 걱정’ 같은 애틋하고 고운 서정시로 시인과 처음 만난 우리네 젊은 독자들은 ‘죽음의 은유’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같은 현학적이고 잘못된 뜻 매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기형도의 시집은 읽고 싶고 ‘갖고 싶은’ 시집이다.  
   매년 3월 7일을 즈음해 곳곳에서 열리는 기형도 시인 추모 행사들을 애써 찾아가 보면, 어찌 된 일인지 시인의 생전에 그를 알았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시인과의 이런저런 인연을 말하며 그의 삶과 문학을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은 새로울 것도 없고 이미 어디선가 주워들은 듯한 상투적인 빈말뿐이라 매번 실망만이 남는다.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한 식구라고 억지로 우기는 듯하다. 반면, 시인의 유고가 마치 ‘기적’처럼 새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는 기쁨보다 먼저 흥분이 앞선다. 지난 6월에도 기형도의 미발표 시 1편이 공개되었다는 기사를 보며(문화일보 6월 19일자 2면 참조), 우선은 이 시가 시인이 20대 초반에 썼던 연시(戀詩)라는 점이 반갑고, “술값 내준 여성에게 시(詩)로 답례한” 것이라는, 그의 시 작품마다 거의 예외 없이 덧붙여지는, 기형도의 개인 ‘서사(敍事)’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 새삼 놀랍다. 사진 속 시인의 정겨운 필체를 따라 몇 번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서둘러 그의 시집을 꺼낸다.
   ‘기형도 전집’도 이미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여전히 그의 시를 읽을 때는 습관처럼 1989년에 간행된 그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먼저 손이 간다. 그래야 그의 시를 읽는 맛이 난다. 오래된 일기장을 문득 다시 꺼내 읽는 듯한 추억이 함께한다. 무엇보다 젊은 날, 그의 시를 읽으며 여백에 빼곡히 적어둔 내 메모들과 애써 반듯하게 밑줄 친 곳을 다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부분은 지금이야 그 이유조차 짐작 못 할 것들이지만, 무슨 감동과 불만이 그리도 많았는지 참 많이도 적어놓았다. 무엇보다 깨알처럼 작은 글자로 빽빽이 적어놓은 것들을 이제는 돋보기를 써야 겨우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슬픔이다. 나의 예전 메모들은 너무나 늙었다. 그러나 기형도의 시는 여전히 젊다.
   기형도(奇亨度)는 1960년 3월 13일 경기 옹진군 연평리 392번지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64년 일가족이 경기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했다. 시흥초등학교, 신림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1979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문학 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과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재학 시절 윤동주문학상 등 교내 주최 문학상을 여러 번 받았고, 졸업 직전인 1984년 10월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198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돼 등단했다.
   신문사에서 수습 과정을 거친 후, 정치부와 문화부, 편집부 기자로 일하며, 여러 문예지에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점차 문단과 눈 밝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9년 가을에 첫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시인은 3월 7일 새벽 종로의 한 심야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뇌졸중, 만 29세 생일을 불과 엿새 앞두고 있었다. 1989년 5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됐고, 다음 해 3월에는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이 발간됐다. 1994년에 출간된 기형도 5주기 추모 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는 시인의 미발표 시 16편과 사진 등의 자료, 생전에 고인과 가까웠던 문인들의 단편 소설과 시, 그리고 평론들이 담겼다. 1999년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앞서 나온 시집과 산문집을 바탕으로, 새로 발견된 시들과 산문 유고 등을 포함한 ‘기형도 전집’이 간행됐다.
                                                                               <참고문헌>
   1. 박광수, “詩가 자라던 긴 방죽… ‘젊은 시인’ 떠나고 ‘늙은 추억’만 남았네”, 문화일보, 2017.8.4일자.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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