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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전의 연혁과 현황
 관리자    | 2013·07·27 15:02 | 조회 : 2,667
단군전의 연혁과 현황

출처 : 한국신흥종교총람 / 이강오 저.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1. 대종교 총본사 천진전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91번지
구한말에 일어난 단군교가 최초의 본거지로 한 단군전으로는 본교의 포교연원을 밝힌 <대종교 포명서>의 내용에 소개된 태백산의 <대숭전: 대종사 백봉이하 13인이 1904년 대숭전 동무고경각에서 포교맹약을 했다고 함>이라고 하겠는데 대숭전의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1919년 나철, 정훈모 등이 단군교단을 창립할때 한성북부 재동 취운정아래 8통 10호의 초가에서 태백산인 백전으로부터 이어받은 천진을 모시고 단군교의 중광식을 행하였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지 못하고, 1965년에 홍제동에 이전하게 되었는데, 이 천진전에 모신 단군영상은 신라 솔거화공이 그린 가장 표본적인 천진이라고 함.


2.작산 단군전
충남 논산군 두마면 용동 작산
구한말에 가장 먼저 세워진 단군전으로 창건자 이진탁은 서기 1859년에 경북 금천에서 태어나 41세때 백두산에 들어가 수도하던 중 단군의 현몽을 받은 뒤로 1904년(45세)에 계룡산 신도내로 이사하여 1913년에 이곳에 단군전을 짓고 동지를 규합, 단군신앙을 고취하였고, 대종교의 나철과 분립한 단군교주 정훈모가 이진탁을 포섭하였으므로 이씨는 단군교 충남지부장이 되어 포교하였다. 해방후에 교단이 완전 해체된 뒤로 주민들이 이 단군전을 주관하기 위하여 <단군영모계>를 결성하였고, 계장은 전 단군교 본부의 시교사였던 박수하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3.모촌 단군전
충남 서산군 운산면 외우리 모촌마을
이곳에 최초로 세워진 단군사묘는 대종교인 이민걸, 이민갑 등에 의한 것으로 초라한 초가주택이었는데, 현재의 단군전은 뒤에 이민걸과 뜻을 같이 한 김부솔 등이 중건한 것이다. 이민걸은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에서 태어났고, 구한말에 중추원 주사직에 있었던 사람이다. 서울에 구직하러 갔다가 대종교의 창립자 나철을 만나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이 모촌의 단군제단은 대종교의 사묘로서 가장 먼저 세워진 단군묘인 것이다.


4. 곡성 단군전
전남 곡성읍 읍내리 봉황대
본전을 세운 신태윤은 1884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였고, 28세 광주농림학교를 졸업하고 31세 한성사범을 졸업 곡성보통학교의 훈도가 되었고 그뒤 고등학교교사 대학교수 등을 역임하며 육영사업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한다. 그는 민족운동의 산실로서 1916년 곡성읍 북쪽 삼인동 산기슭에 초당1간인 단군사묘를 세웠다. 1919년 31운동때 일헌에 피체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복역하였다. 이 옥중에서 그는 <배달조선 정사>라는 국사책을 저술하고, 또 대종교의 경전인 삼일신고의 뜻을 밝힌 <국(?)해삼일신고>를 저술하였다. 해방을 맞아히여 1952년 현재의 단군전을 건립하여 전일 삼인동에 모시던 천진을 이곳으로 옮겨모셨다.


5.해남 단군전
처음은 1923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에 거주하는 이종철이 마을 뒷산에 세운 삼성사였는데, 해방 이후 1958년 해남읍에 단군전건립위원회를 조직하고 군수 도지사의 혀반을 얻어 해남읍 서림의 소나무 숲속에 아담한 묘각을 세웠다. 단군영상은 금풍리 삼성사의 것을 옮기고 1959년 단군묘건립위원회에서 <단군사기초요>라는 책을 발행하였다.


6. 시흥 단군전
경기도 시흥군 시흥읍 녹동
이 단군전을 세운 정훈모는 대종교의 나철과 함께 일본 동경에서 단군교의 전교를 받고 1909년 서울에서 나철을 도와 단군교의 중광에 주동이 된 사람이다. 1910년 나철이 단군교를 대종교라는 이름으로 교명을 개칭할때 정훈모는 단군교의 원명을 가지고 분립, 당시의 친일파인 민병한, 박영효, 정두화 등과 결탁하여 조선총독부에 단군교로 공인을 얻어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자체 내의 분규등으로 포교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되도록 본부 교당도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교인의 사택이 아니면 남의 집 행랑을 빌려쓰는 형편이었다. 이 무렵 서울 사람 안순환이 시흥 녹동에 안문성공(안유)을 모시는 서원을 짓고 여기에 명교학원을 열어 유생을 양성하면서 조선유교회를 창립하였다. 단군교에 교당이 없음을 안 안순환은 단군전을 세워줄 것을 자청하고 1930년 녹동서원 곁에 단군을 봉안하는 본전과 강당, 정문, 사택까지 지어주었다. 이 단군전이 세워진 후 교단사업기금관계로 교인 김재주와의 충돌이 일어나 마침내 김재주가 교주를 사기로 고발하는 내분이 생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헌은 단군교를 사교단체로 몰아 천진과 교적까지 소각시켜 버렸다. 정훈모는 할 수 없이 겨우 단군석상만을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고 시흥 단군전은 빈집으로 남게 되었다. 해방이후에 지방 유지들의 주장으로 단군전봉찬회를 조직하고 개천절 향사를 잇도록 하였다.


7.밀양 천진궁
경남 밀양군 밀양읍 영남루 경내
전해오는바에 따르면 이 밀양 천진궁의 터는 예로부터 삼신을 봉안하던 곳이라 한다. 단군을 모신것도 조선 효종 3년(1652)부터라고 하는데, 영남루 경내에 공진관을 짓고 중앙벽에 단군을 그리고 동벽에 이태조를 봉안하고 향사해왔는데 왜정때 일제의 악락한 행위로 흔적조차 없어졌다고 전한다. 해방이 되자 밀양 향로 김상학, 설인근, 박수문 등이 주동이 되어 지방 유지 유림들의 협찬을 얻어 옛 공진관 전각을 이용 국조 단군을 봉안하기로 하여 1946년 9월 9일에 천진궁에 단군진영을 봉안하였다.김상학이 물러난 후 현재는 단군숭령회 밀양지부에서 운영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8. 어래산 단군각
충북 중원군 주덕면 삼청리 숙동
한학자 원용준이 1947년 어래산에 제천단과 조국통일기원비를 세우고 다음해 8월 단군의 현몽에 의해 사재를 털어 어래산에 단군비각을 세우고 그 안에 단군상까지 함께 봉안하였다.


9. 개태 도광사 창운각
충남 논산군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 안
개태사 주지 김영광여사가 1947년 창운각을 짓고 여기에 단운을 봉안함.


10. 증평 단군전
충북 괴산군 증평읍 대동
김기석이 내놓은 사재와 지방민의 성원금을 합하여 1946년에 착공, 1948년에 현재의 본전을 준공하고 천진을 봉안하였다.지금은 괴산군청에서 관리운영하고 있다.


11. 계룡 천진전
충남 논산군 두마면 석계리
1948년에 법정사와 법룡사를 세운 무심대사가 건립. 무심대사가 이 천진전을 세우게 된 동기는 앞으로 이땅에 단군국조의 운수가 열릴 것이므로 단군국조를 숭배해야 된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천진전에 봉안한 단군영상은 서울 대종교 총본사에서 모셔온 천진이다. 천진의 좌측에 천경이라는 둥근 거울이 걸려있는데, 이는 천부경의 내용 가운데 있는 본심본태양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12. 장하 단군전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정리(일명, 장하리)
1949년 장정리에 살던 강진구의 주동으로 처음 세워졌는데, 강진구의 선친 강우의 뜻이라 한다. 강우의 호는 호석(湖石)으로 후에 나철과 단군교를 창립한 사람이다. 대종교가 본부를 만주로 이전하였을때 강호석도 만주로 건너가 중앙총본사의 총전리로 일하다가 1919년 4월 일헌에 체포되었고, 1921년 대종교 남도본사의 도사교계리가 되어 포교하다가 1931년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이 단군전에 봉안된 천진은 평양 숭령전에 봉안되어 있던 천진으로 400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최고(最古)의 단군화본이라고 한다.


13. 이리 단군전
이리, 현 익산.
이 전을 세운 사람은 김현승이다. 그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 태생으로 서울대동전문학원을 졸업하였는데 재학시 은사 정훈모의 영향을 받아 한때 단군교에 입교한바 있었다. 그는 해방이후 이시영선생의 단군국조의 숭배에 대한 격려를 받고 천진일폭까지 받은 뒤에 1951년 당시의 군수, 유지들의 성금으로 전북 이리시 동산동 30번지에 준공하여 진영봉안식도 거행함.


14. 대구 단군전
대구 달성공원 -> 대구시 수산동 수성 유원지 뒷산
해방 후 정운일, 최항묵, 임상조, 이집양 등이 주동이 되어 단군성조숭봉회를 조직하고 대종교 총본사의 인가를 받아 1956년 9월 성대한 천진봉안식을 거행하였고, 1968년 7월에 완공하였다.


15.대전 단군전
이남성이 1955년 사재를 털고 동지들의 원조를 받아 2층전각을 세웠고, 강용구의 주선으로 본전을 대종교충남도본사로 하여 간판을 붙임. 이로부터 이남성은 당시 대종교의 총전교 이흥수와 강용구, 현시동 등과 제휴하여 서대전에 공민학교를 설립, 박천, 신철호, 이유립 등 대종교인을 교사로 초빙하였으나 이 학교 운영은 실패로 돌아갔다.


16. 왜관 단군전
왜관읍 석전동
1957년 조제승이 동지 장경래, 이수기, 심정섭 등과 협의 단민회를 조직하고 관의 협력을 얻어 왜관읍 석전동에 단군전의 본전과 정문을 준공하였다.


17. 남산 단군굴 (지하 단군전)
서울 남산의 서쪽 중턱에 위치
넓이 9척, 높이 12척, 길이 132척의 굴을 들어가면 10평 정도의 방이 있음. 일본 천조대신 신상을 안치하였던 남산굴(현재는 단군상을 모신 단군굴) 본전의 창립자 박효달은 함남 신흥태생. 해방이 되자 민족의식의 발로에서 국조를 신봉해야 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대종교에 입교하여 한때는 삼일원의 대덕으로 일하였다. 박씨는 남산 상봉에 조선시대의 국조를 봉안했던 묘각을 일본 사람들이 파괴하고 일본 국조를 모시는 신궁을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 이를 복구시켜 단군전 세우는 것을 국가적 급선무라고 생각하였다. 박씨는 이에 대한 대책사업으로써 일본사람들이 그들의 국조를 받들었던 현재의 남산굴속에 단군초상을 봉안할 것을 결심하고 1957년 이 굴을 점거하여 단군초상을 봉안한 후 이 굴을 단군굴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박씨는 이 명칭에 대하여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현 정세가 오래 계속된다면 우리 민족이 묘향산에 있는 단군굴마저 잊게 될 것이므로 굳이 단군굴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박씨가 단군굴을 창립한 뒤 3년 동안은 직장관계로 야간과 일요일에 틈을 타서 수호하였다. 그러다 1965년에 이 단군굴의 유지를 위하여 직장을 버리고 직접 단군굴에 와서 상주해야만 하였다. 그는 굴밖에 판잣집 막사를 짓고 전가족을 이곳으로 이사시켰다. 그후 행정당국에서는 이 굴 옆에 세워진 막사와 또 단군굴 입구에 세우려고 준비하던 단군초상의 철거명령을 내렸다. 박씨가 이에 불응하고 버티자 1966년 7월에 당국에서는 굴 입구에 세워진 단군초상을 파괴하여 버렸다 한다.


18. 단군 대황전 대종교 삼선시교당
본전을 세운 박노철(1922년생)은 26세때 신의 몽중계시를 받은 후부터 신상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꿈을 꾸게된 뒤부터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그뒤 박씨는 계룡산 신도내에 있는 정도교에 입신하였는데 여기에서 비로소 단군을 알게 되었고, 지난날 자기의 무몽에서 본 신명이 단군이었다는 것을 추측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박씨는 단군신명에 대한 기도치성을 계속했는데 1952년영동 학산사람 우종설에게 <삼일신고>와 <천부경>초본을 얻어 공부를 하고, 또 우씨의 소개로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 원고 2권을 얻어 이에 대한 공부도 계속하였다 한다. 박노철은 병을 치료받은 신자들이 모여들자 1958년 갑동 뒤 산에 단군을 모시는 당집을 세웠다가 산 아래로 옮겨 현재의 당사를 짓고 그 당명을 <단군대황전>이라 한 것이다. 그뒤 박노철은 서울 대종교본사와 교섭, 본전을 대종교의 지부로 할 것을 청원하여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1965년에 신도 홍옥도 여인의 재정적인 후원과 우종설의 협력을 얻어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 상,하권을 간행하였다.


19. 청동 단군탑 (대종교 청동시교당)
본 단군탑의 건립자 이백임여사는 1910년 충남 논산 청동에서 출생하여 천리교에 이어 불교를 신앙하다가 우연히 논산군 상월면에 사는 이창령옹이 단군을 신봉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끌리는 바가 있어 옹을 방문하여 단군에 대한 이야기와 삼일신고의 교리를 듣게 되었으며, 소형의 단군초상까지 얻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이 초상을 항상 품안에 넣고 다니며 마음으로 기도를 계속하였다 한다. 이로부터 이여사는 신이 접한 무당과 같이 이상한 기운이 생기더니 안수만으로도 타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신력이 생겼다 한다. 1960년 신도 이계순의 주선으로 대종교본사로부터 청동시교당인가를 얻었다. 그뒤 자택의 동편에 천진전을 신축하고 여기에 총본사에서 보낸 천진을 봉안하게 되었다.그후 1966년 7월 마을 뒷산(거북산)에 원방각형의 개천탑(일명 단군탑)을 쌓고, 10월 3일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20. 진주 단군전
진주시 옥봉북동 경로당내
옥봉 경로당은 한때 대한경로회경남총지부로 되어있었으며 국내 경노당의 대표적인 것이었다.1960년 본 단군전의 설립을 보게 되었다.


21. 은적산 단군제단
충남 청원군 강내면 은적산
본 단군제단의 설립자 김재형은 한학자이다. 그는 해방후 한민족은 민족의 시조 단군의 숭고한 건국이념을 받들어 민족도의와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뜻에서 <단기고사>라는 단군의 사기를 저술하였다. 김씨는 강내면민을 움직여, 1960년 궁현리 은적산에 제단을 세 계단으로 축조하였다.


22. 내산 천조전 (대종교 지선시교당)
부여군 내산면
설립자: 조일광. 미망인으로 불교에 입신 10년간 신앙하다 후에 정심교에 입도하였는데, 이 정심교는 유불선 삼교의 합일된 대도를 표방하고, 신앙대상은 미륵불과 단군신명이었다. 이들은 교주나 신자들이 단군신명의 계시를 받아 도통과 치병을 목적으로 주송수련을 주로 하였다. 그녀는 곧 단군신명을 얻어 교주에 버금가는 치병의 이적을 내게 되었다. 그후 625를 맞아 정심교의 포교는 침체되었다.
그뒤 1961년 조여인은 당시 대종교 부여지사 책임자로 있던 강용구를 만나 신앙을 대종교로 돌리고 이 지방의 포교책임자인 전교가 되었다.


23. 순창 단군전
1961년 신학우가 주동이 되어 단군전을 건립함.


24. 거창 단군전
거창 월천면
1962년 금강대도 거창지부의 주간으로 세워짐.


25.부산 단군전
1962년 정재천이 건립함.


26. 서산 단군전
충남 서산읍 동문리 뒷산 옥녀봉 아래.
본전을 세우게 된 동기는 김동윤옹이 다리 신경병으로 신음하던 중 어느날 단군이 현몽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63년 일제때 신사를 짓기위해 정리되었었던 넓은 터에 단군전을 준공. 천진은 서울 대종교 총본사에 소장되었던 천진을 모셔왔다고 함.


27.사직단 현정회
서울 사직공원내에 세워진 단군전의 최초의 이름임. 사직단이란 이름은 사직공원 안의 사직신과 더불어 단군을 모셨으므로 취해진 이름.
이 단군전을 세운 이는 이숙봉여사와 그의 아우 이희수여사이다. 그녀는 출가후 30세에 우연히 신병을 얻었는데 이 병으로 신령에 접한 무녀와 같이 되었다. 1963년에 동생 이희수여사의 주선으로 용운사에 천화불교라는 이름으로 문공부에 불교단체등록을 하고 천관암에는 단군전을 신축하기 시작하여 1968년 준공하였다.


28. 부여 단군제단
부여군 은산면 옥가리
본 제단을 설치한 강화는 역학자 야산 이달(이순영)의 제자이다. 이달의 유지를 계승한 강화는 1964년 부소산 남록에 있는 자택 옆에 소규모 단군제단을 설치하였다.


29. 남선 단군전
충남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
1918년생인 남지훈여사는 계룡산 기도중에 단군의 현몽을 받고 계시에 의해 이곳 남선리 석각골에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 한다. 1958년 남여사는 에 주택을 세우고 그 동쪽 산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30. 도봉산 천진궁 (도봉산 삼성전)
김흔인은 15세때 신명의 지시에 의해 개성 사직단에 삼성각을 건립하고 화공을 시켜 신상을 그려모셨다 한다. 그런데 대종교인 하진환이 이 신상을 보고 단군상에 방불하다고 말함으로써 이때부터 김씨는 단군신명을 알게 되었다 한다.


31. 커발한 개천각
마니산 서쪽 단학재
이 개천각을 건립한 단단학회는 구한말 해학 이기가 창도한 학술단체이다. 이유립의 자택(대전시 은사동)에 본부를 두고 커발한이라는 회지를 간행하였다.


32. 마산 단군성조 수도원
경남 마산시 평화동 10번지


* 1992년에 출간되어 알자고에서도 답사를 다녀본 결과 없어진 곳도 있었고, 명칭이 달라진 곳도 있고, 주소가 변경된 곳도 있습니다. 이 점 숙지하시고 밝달나무숲 답사기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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