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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신동엽의 고향 부여 문학기행
 tlstkdrn  | 2017·12·09 02:57 | 조회 : 115
민족시인 신동엽의 고향 부여 문학기행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는 서울 출생의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충북 청주 출생의 신동문(辛東門 본명 辛建湖, 1928∼1993), 충남 부여 출생의 신동엽(申東曄, 1930 ~ 1969) 등을 들 수가 있다.
   신동엽 시인의 고향 충남 부여에 도착해 지도 한 장을 얻어 펼쳐보니, 시가지가 온통 ‘백제’로 가득하다. 어느 방향으로든 발길이 닿는 곳은 모두 유적지인 셈이고, 그 아래에는 아직도 많은 유물이 묻혀있는지 모른다. 신라 ‘천 년의 고도’ 경주처럼 이곳 부여에서도 자기 집 앞마당일지라도 함부로 깊게 파지 말라는 이야기가 애먼 소리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멸망한 왕국의 마지막 수도 사비(泗비)에는 기록된 역사보다 전해져 내려오는 서글픈 옛이야기가 더 많다.
   시인 신동엽은 부여읍 동남리에서 태어났다. 대문 처마에 붙은 ‘시인 신동엽 생가’라는 한글 현판이 근사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은 시인의 ‘고향 집’이다. ‘생가터’(동남리 294번지)는 그저 빈터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이사를 왔다. 신동엽은 이곳에서 자라고 나중에 인병선과 신혼살림도 시작했다. 1985년 이 집을 복원한 후, 한동안 그의 부친이 홀로 집을 지키며 방문객을 직접 맞이했다고 한다. 인병선의 시 ‘생가’가 현판처럼 붙어있다. “우리의 만남을/ 헛되이/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신영복 글씨는 늘 그랬듯이 그 반가움에 한몫 거든다.
   생가 뒷마당과 이어진 신동엽문학관이 2013년 개관했다. 워낙 잘 만들어진 건축물이고, 거기에 관리까지 잘하고 있으니 새삼 탓할 것도 없다. 전시 자료와 게시물들의 내용과 고증도 물론이다. 다만, 입구에 놓인 시인의 흉상, ‘비수’처럼 거꾸로 움켜쥔 만년필은 영 익숙지 않다.
                                                                            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어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 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신동엽의 첫 시비(詩碑)는 금강 기슭, 소나무 우거진 송림공원(현재는 선화공원)에 있다.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뒤 곧 ‘신동엽 시비 건립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문인, 동료, 제자 등이 경비를 모아서 시인의 1주기를 추모하며 1970년 4월 18일 제막한 시비다. 전면에는 비명(碑銘)과 시 ‘산에 언덕에’를, 비음(碑陰·비석의 뒷면)에는 구상이 작성한 ‘시비건립문’을 새겼다. 거의 반백 년의 세월이 지난 탓에, 비면(碑面)이 심하게 오손되어서 박병규의 그 멋진 글씨도 읽기가 힘들다. 머잖아 문학관에 있는 시비의 탁본으로 보아야만 할 것 같아 안타깝다. 시비에 새겨진 ‘산에 언덕에’는 세 개의 행이 빠져있다.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백제의 수도 사비를 지키는 외곽 성, 즉 부여 나성(羅城) 터이고 금강을 굽어보는 호젓한 소나무 숲속이니, 시인을 기리기 위한 장소로는 제법 어울린다. 하지만 신동엽의 시비는 애초 이곳이 아닌 부소산(扶蘇山)에 세우려 했다고 한다. 일부 지역 인사들이 동란 중 별것도 아닌 시인의 행적과 시의 ‘사상성’을 문제 삼아 격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이 강변에 세운 것이다. 시인이 나고 자란 고향 부여 읍내와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소산이 여러모로 적절해 보인다.
   오랫동안 이 주변을 을러대듯 서 있던 ‘반공애국지사추모비’에 대해 쓴소리 한마디를 해야겠다. “1987년 대선을 전후해서 반공주의자들의 표를 의식, 급조됐다”라는 비석 말이다. 이곳을 찾아온 기념으로, 우거진 소나무를 배경 삼아 시인의 시비를 사진에 담으려고 하면, 어김없이 그 크고 검은 덩치로 늘 앞을 가로막았다. 받침돌 높이만 해도 사람 키만 했던 볼썽사나운 비석이다. 다행스럽게도, 2014년 말 부여의 다른 공원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지금 또 다른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반공애국지사추모비 이전 설치 안내’ 비석. 여러모로 참 아쉬웠나 보다. 그냥 안내판도 아니고 그나마 그 크기라도 작으니 그만 봐주기로 한다.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3학년 국어 ‘국정 교과서’에 실린 것은 1999년이다. 시인이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나고 무려 한 세대가 지난 후, 신동엽의 시를 마음껏 읽고 우리네 학생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게 된 셈이다. ‘신동엽 전집’은 1975년 6월에 처음 출판되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뒤, 그저 ‘책 내용이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는 이유로 판매를 금지했다. 특정한 작품 또는 시집이 아닌, 한 시인의 작품 전체를 통째로 검열한 셈이다. 이 책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서울의 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나마 1979년 3월,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고 하는가’를 ‘아쉬움 속에서나마’ 일부 중요한 작품을 제외하고 간행할 수 있었다. 1980년 4월, 시인의 11주기를 맞아 초판에 빠진 ‘석가탑’을 포함, ‘거의’ 완벽한 증보판(增補版) ‘신동엽 전집’이 마침내 세상에 나온다.  
   시선집의 ‘편집후기’를 다시금 주목하자. “신동엽은 결코 정치의식이나 사회의식만 가지고 있던 ‘목청 높고 앙상한’ 시인이 아니라 온갖 여리고 자잘한 사물에도 세심하게 반응할 줄 아는 민감한 감성의 시인이며 곱게 다듬어진 우리말로 풍부한 이미지를 창조할 줄 알았던 능숙한 시인인 것이다.” 이 예지(豫知) 있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를 치열하게 갈망하며 오랫동안 기다렸던 문단과 독자는 이제 막 ‘기피의 대상’에서 벗어난 시인에게 이번에는 ‘참여 시인’이라는 또 다른 선입관을 그에게 훈장처럼 부여했다. ‘껍데기는 가라’가 신동엽의 대표 시라는 주장에 선뜻 이의를 달고 나서는 것은 지금도 역시 어렵다. 시인의 모교인 단국대(1990년 4월)와 전주교대(2001년 5월) 교정에 세운 시비에 한결같이 이 시를 새겼다는 점은 이런 의미로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시인의 ‘조금’ 결이 다른 시 작품들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하였다. 시집 ‘아사녀’에 ‘참여시’만 수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신동엽은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인은 무엇보다 한국 현대시의 ‘대지를 쟁기질한 이야기꾼’이다. 뛰어난 농사꾼은 결코 한 가지 씨만 파종하지 않는다.
   부여군을 가로지르는 금강은 부여읍 근처에 이르면 활처럼 크게 휘돌아 흐른다. 백제대교 끝까지 가보았지만, 저 멀리 새로 조성한 ‘백제문화단지’, 강 건너편에 넓게 펼쳐진 평야와 시가지만 좌우로 눈에 들어올 뿐, 부소산도 구드래 나루터도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상류에 있는 대청댐 때문인지 아니면 공주 인근 백제보 때문인지 강폭은 줄어 모래톱이 잔뜩 드러나 있고 겨울 가뭄에 강물도 맑지 않으니, ‘비단 강’이라는 그 이름값을 못 한다. 부여의 절경(絶景)은 금강에서 배를 타고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는 주워들은 이야기가 언뜻 떠오른다.
   능산리에 있는 신동엽의 유택(幽宅)을 찾아가는 길에, 시인의 또 다른 시비가 있는 부여초교에 들른다. 30주기 추모비라고 할 수 있는 이 단아한 시비에는 ‘금강’ 제5장의 일부분이 새겨져 있고, 비음에는 연보와 ‘건립기’를 간략히 언급했다. “백제,/ 천오백 년,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몇 번 안 가서/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진달래,/ 부소산 낙화암/ 이끼 묻은 바위서리 핀/ 진달래,/ 너의 얼굴에서/ 사랑을 읽었다.” 시인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썼기에 유난히 아꼈다던 작품 ‘금강’, 무려 4800여 행의 장시에서 애써 고른 듯한 이 구절은 참으로 적절하다. 시비를 사진에 담으려고 하니, 지나가던 아이들도 흔한 일이라는 듯 잠시 기다려주고 일부러 돌아간다. 그 ‘빛나는 눈동자’에 고마운 미소로 답한다.
   능산리 고분군(백제 왕릉원) 못미처 4번 국도를 건너, 맞은편 들판을 가로지른 좁다란 길을 따라 10여 분쯤 걷다 보면 야트막한 산언덕을 만난다. 왼쪽으로 난 호젓한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소나무 숲 사이로 시인의 묘소가 보인다. 단정한 봉분, 그 오른편 검은 비석의 앞면에는 그저 ‘시인 신동엽 묘’라고 새겨져 있다. 신동엽의 묘는 원래 경기 파주 ‘월롱산(月籠山)’ 기슭에 있었으나, 1993년 11월 20일 유족과 문인들에 의해 고향으로 이장됐다. 그때 이 묘비도 함께 옮겨왔다. 비음에 잘못 새겨진 오류 ‘월룡산(月龍山)’은 이미 여러 번 지적한 바 있지만, 한 번 새긴 각명이야 쉽게 어쩔 수 없는 것일 테고, 다행히 부여군에서 세운 커다란 안내판에는 바르게 표기되어 있으니, 이제 더는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비문에 있는 ‘문득 요절’이란 두 단어가 당시의 ‘경황없었음’을 애써 변명하는 듯하다.
   백제대교에서 금강을 제대로 못 본 아쉬움에, 굽이쳐 흘러가는 장엄한 금강을 한눈에 담고픈 마음에 부소산에 오른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아 예전에는 ‘솔뫼’라고도 불렸다는 부여의 진산(鎭山). 유적지마다 유래담(由來談) 한두 개는 흔한 일이겠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옛이야기의 화수분이다. 정상부 근처 부소산성까지는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는 순한 산세(山勢)지만, 금강과 맞닿는 쪽은 40여 미터의 험한 절벽이니, 곧 백제가 멸망할 때 강물에 ‘꽃처럼 몸을 던진’ 궁녀 전설의 배경이 되는 낙화암(落花巖)이다. 백화정(白花亭)에서 내려다보이는 반달 모양으로 부드럽게 굽이져 흐르는 금강과 그 주변 전경에 참았던 탄성이 절로 터진다.  
   내친김에 푸른 강물을 좀 더 가까이 보고파 고란사까지 내려간다. 절벽 아래 그늘지고 ‘이끼 묻은’ 바위틈에서 서식하는 고란초(皐蘭草)에서 이름이 유래한, 이 ‘강변 사찰’은 암자 뒤편 바위에서 솟아나는 약수로도 유명하다. 어김없이 옛이야기가 여럿 전해오니, 이곳 약수를 즐겨 마시던 의자왕이 물을 떠 오라 하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고란초 잎을 물동이에 띄워 오게 했다는 설화(說話)와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이 약수를 욕심부려 너무 마신 탓에 그만 갓난아이가 되었다는 노인의 전설이 그것이다.
   겨울의 이른 해거름에 강바람이 유난히 차갑다. “날씨는 머리칼 날리고/ 바람은 불었네”(‘그 가을’). ‘다음 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부소산성의 소나무 숲을 찬찬히 둘러보겠다던 애당초의 마음도 이내 가신다. 하지만 이미 한참이나 들어선 겨울이니 동짓날만 지나면 다시 낮은 길어질 테고, 그러면 시인이 노래하던 봄을 가슴 속에서 미리 기다려 볼 만하다. ‘산에 언덕에’ 붉은 진달래 피어날 무렵 시인의 고향을 다시 찾으리라.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봄은’).
   신동엽(申東曄)은 역사와 현실에 관한 탁월한 인식을 바탕으로 민중적 토착 정서를 순수한 우리말로 노래한 민족 시인이다. 서구 문학의 영향을 맹목적으로 답습한 이른바 ‘1950년대 모더니즘’을 거부하고,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였으며, 무엇보다 한국 현대시의 ‘민족적 리얼리즘’을 처음 시도해 그 본격적인 토대를 마련하였다.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부여초교와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58년 보령 주산 농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해 1961년부터는 서울 명성여고(현재는 동국대부속여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였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가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당선해 등단하였다. 첫 시집 ‘아사녀(阿斯女)’를 1963년 출간했고, 장편 서사시 ‘금강(錦江)’을 1967년에 발표했다. 시극(詩劇) ‘그 입술에 파인 그늘’(1966)과 오페레타 ‘석가탑’(1968·백병동 작곡)을 상연하는 등 다른 예술과의 융합을 모색하기도 했다.
   1969년 4월 7일, 간암을 선고받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서울 성북구 동선동 집에서 서른아홉 살의 이른 나이로 숨을 거둔다. 미처 활자화되지 못한 시들, 산문과 평론 등이 부인 인병선(印炳善)의 노력 덕에 차례로 발표되었다. ‘신동엽 전집’은 1975년 6월 초판이 간행되었고, 증보판이 1980년 4월 다시 출판되었다. 그밖에 유고 시집 ‘꽃같이 쓰러진 그대’(1988),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79)와 ‘껍데기는 가라’(1991)가 있다.
                                                                            <참고문헌>
   1. 박광수, “도도한 강물따라… 4800행 대서사詩가 흐른다”, 문화일보, 2017.12.8일자.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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