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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의 명암
 tlstkdrn  | 2017·12·13 19:16 | 조회 : 61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의 명암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 민족종교는 조선사람들의 피난처요 등불이었다. 하지만 ‘민족’을 들먹이며 민족의 골수를 빼먹은 악마들도 있었다.
   1910년 조선이란 나라는 사라졌다. 조선말도 함부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 나라를 살리려는 사람들은 줄줄이 끌려갔다. 사는 거 재미없었다.
   재미가 아니라 지루하거나 힘들었다. 악의 근원은 일본이었다. 선택지는 몇 되지 않았다. 친일을 하거나 항일을 하거나 소시민으로 자족하며 살거나. 친일 행각 없이 입신양명하기는 글러 먹었으니, 돈이 장땡이었다. 가급적이면 민족자본이 좋았다.
   아니면 많은 사람은 신(神)에게 의지했다. 19세기 말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되고 동학은 천도교로 얼굴을 바꿨다. 동학에서 파생된 다른 종교 또한 숱하게 많았다. 민족주의 냄새가 진한 이들 종교는 후천개벽을 꿈꿨다. 왜놈에게 점령당한 세상을 뒤집어엎고 조선민족이 부활하는 그 세상을 꿈꿨다. 불교도 있었고 기독교도 있었지만, 민족을 내세운 종교가 더 좋았다.
   식민시대 조선 수도 경성(京城)은 종교의 도시가 된다. 영성으로 민족을 부흥시키고 현세에 개벽을 이루려는 민족 종교들이다. 그 가운데 민족 대신 돈이 장땡이라 여겼던 악마 집단, 백백교(白白敎)도 있었다.
   1860년 4월 5일 도를 깨친 수운 최제우는 동학을 창시하고 경전 집필에 착수했다. 한문으로 '동경대전'을 짓고, 한글로 '용담유사'를 지었다. 이 두 책은 지금도 천도교 경전에 포함돼 있다. 최제우가 처형되고 2대 교주 최시형에 이어 1905년 12월 3대 교주가 동학을 천도교로 바꾸니, 그가 의암 손병희다. 손병희는 3·1운동을 이끌고 3년 뒤 죽었다.
   3·1운동 1년 전인 1918년 4월 천도교는 서울 종로 경운동 88번지에 대교당 시공식을 가졌다. 원래 그해 12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1921년에야 완성됐다. 건축 자금 상당 부분이 3·1운동 자금으로 전용돼 돈이 부족했고, 총독부에서 허가도 쉽게 내주지 않았다. '보국안민(輔國安民)'을 기치로 내건 동학이 그 전신이었고, 동학 우두머리 손병희가 펄펄 살아서 천도교를 이끌고 있었으니까.
   천도교 교리를 명시한 용담유사 '안심가' 구절을 본다.
   '개 같은 왜적 놈을 한울님께 조화 받아/ 일야에 멸하고서 전지무궁 하여 놓고'
   지금 말로 풀면 '간악한 일본을 신의 이름으로 멸망시키겠다'는 뜻이다. 그 '왜적 놈'이 안심가에 세 번 나온다. '왜적 놈아, 너희 신명 돌아보아라'에서 '원수 같은 왜놈들을 멸하고서 태평가를 부르겠다'까지. 게다가 이 포덕가 제목은 '안심가(安心歌)',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는 얘기다. 종로경찰서가 지척인 경운동에서 왜놈을 때려잡아야 속이 후련하다고 노래를 불러대니 보통 종교가 아니었다. 천도교는 1945년 8월까지 요시찰 단체로 낙인찍혔다.
   1936년 8월 14일 4대 교주 박인호는 간부 회의를 주재하고 일제 패망을 기원하는 집회 및 독립운동 자금 모집령을 내렸다. 2년 뒤인 1938년 무인년 황해도 신천에서 간부 회의에서 내려 보낸 기도문이 발각됐다. 내용은 이러했다. '무궁한 내 조화로 개 같은 왜적 놈을 일야간에 멸하고서 한의 원수까지 갚겠나이다.' 무인멸왜기도운동(戊寅滅倭祈禱運動)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천도교 집행부가 대거 구속됐다. '민족'을 내세운 종교라면 해야 할 일이었다.
   영혼이 외로웠던 시대였다. 부도덕과 불합리에 저항할 용기가 없던 소시민들은 천도교에 몰려들었다. 한때 천도교는 신도 수가 300만명이 넘었다.
   그 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천도교를 관할하는 부서는 경무총감부였다. 지금으로 치면 범죄를 관리하는 경찰국이다. 신도·불교·기독교는 학무부에서 맡았다. 그러니까 천도교는 종교가 아니라 범죄 조직이었다는 말이다. 총독부가 펴낸 '경성부사 3권(1941)'은 이렇게 기록했다. '사회가 불안해지자 생겨난 것이 종교 유사 단체였고, 그 수괴가 최제우에 의해 창립된 동학이었다. 서민 가운데 신봉하는 무리가 많았다.' 경성부사는 '이후 다양한 교단이 나왔으나 대부분 미신에 불과해 종교로 인정할 영역에 이르지 않았다'며 '종교 유사 단체'의 예를 들었다. 이러하다. '천도교·시천교·청림교·보천교·태을교·태극교·대종교(大宗敎)·단군교·대종교(大倧敎)·관성교 등.' 이들은 종교가 아니라 유사 종교였고 미신이었다.
   1894년 겨울 충남 공주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 중앙군-일본군 연합 부대가 맞붙었다. 동학군은 참패했다. 참전했던 동학 접주 차치구(車致九)는 관군에 처형됐다. 1921년 그 아들 차경석은 보천교(普天敎)를 창시했다. 증산교 창시자인 증산 강일순의 제자다. 보천교 교리 또한 후천개벽이었다. 천지개벽의 문이 열리고 조선은 세계의 종주국이 된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차경석 자신이 있었다. '시국(時國)'이라는 국호까지 내세웠다.
   식민의 시대, 새 국가를 이미 세웠다고 선포했으니 사람들 이목이 쏠렸다. 갑자년 혹은 기사년에 차경석이 왕위에 오른다는 말이 돌았다. 사람들은 차경석을 차천자(車天子)라 불렀다. 잡지를 발행하고(1922·'보광'), 신문을 인수했다(1924· '시대일보'). 1922년 백두산 소나무를 가져와 전북 정읍에 보천교 공동체를 건설했다. 본전 이름은 십일전(十一殿)이라 했다. 십일(十一)은 흙(土)을 뜻했다. 신도 수가 60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까지 나왔다(서울대 종교학과교수 故 윤이흠). 보천교가 한 일은 이러했다.
   상해임시정부 설립 자금 5만원 지원, 1924년 김좌진에게 군자금 2만원 제공(1924년 11월 26일 일본 외무성 기록), 1925년 만주 정의부 군자금 모금 사건으로 간부 체포. 1920~1940년 독립운동과 관련해 조선일보에 실린 보천교 기사는 모두 83건이었다.(안후상, '보천교와 물산장려운동') 막강한 조직력과 신도수, 그리고 독립에 대한 의지. 총독부에는 아주 힘센 깡패 같은 존재였다. 사이비로 몰아붙이는 총독부의 와해 작전 속에 차경석은 1936년 죽었다. 이듬해 총독부는 유사 종교 해산령을 공포하고 보천교를 해산시켰다. 정읍 보천교촌은 철거됐다. 십일전은 경성에 창립된 불교 사찰 태고사가 매입해 1938년 서울로 옮겨갔다. 태고사는 훗날 이름을 조계사로 바꿨다. 지금 조계사 대웅전이 바로 그 보천교 본전이다. 외벽에는 민화풍 조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문제는 얼어 죽을 백백교였다. 민족을 내세웠으되 전혀 민족이 아니었고, 후천개벽을 내세웠으되 지옥 문을 열었다. 1937년 4월 13일 자 조선일보 호외 기사 제목들을 일별해본다.
   '흉포의 극' '참학의 절' '마도(魔道) 백백교 죄상' '독수에 참살된 교도 판명자만 158명 추정 400여 명' '범죄사상 공전' 도대체 무슨 집단인가. 호외를 그대로 인용해본다.
   '지난 이월십육일밤 열시를 기하여 검거에 착수한 사건으로 동대문서 고등계의 필사적 활동에 의하여 청천백일아래 폭로된 백백교의 죄상은 (중략) 부녀자 능욕, 강도, 살인 등을 거침없이 한 흉악무도한 결사로 우매한 지방농민들을 허무맹랑한 조건으로 낚아 재산을 몰수하고 정조를 유린한 후 비밀을 막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살육을 감행하여 피살된 자가 추정인 사백여명이요 판명된 숫자가 일백오십팔명 (중략) 그 본부를 최고검찰기관의 코앞인 경성 복판에 두고 강원 황해 충북 평안남북 함남 등에서 피해자를 (하략)'
   백백교는 전용해라는 학식이 없는 사내가 창시한 종교다. 1912년 아비 전정운이 강원도 김화에서 창시한 백도교(白道敎)를 물려받았다. 1923년 7월 전용해는 경기도 가평에서 백백교 문을 열고 교리를 반포했다.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 주문만 외면 돈을 벌고, 재산을 바치면 새 세상에서 벼슬을 할 수 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교리에 농민들이 현혹됐다. 1930년대 조선 반도에 금광 열풍이 불었다. 1935년 6월 전용해는 경기도 양주, 지금의 동두천 마차산 기슭에 천원금광을 설립했다. 경성에서 순금을 사서 작은 동굴 곳곳에 박아놓고 신도들에게 금맥이 터진 것처럼 꾸몄다. 노다지에 미친 신도들은 금 조각을 들고 팔도로 나가 포교를 했다. 보천교가 득세한 호남 땅은 일부러 피했다.
   또 다른 본부가 있던 경기도 양평 향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지 않아 큰 전쟁이 날 터이니 자산을 팔아 상경하라. 교주는 신통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므로 반드시 그대들의 생명을 보장할 것이다."
   향소리 주민 방좌현(78)은 기억한다. "우리 삼촌이 늘 말했다. 서울에서 여자들이 아주 곱게 하고 와서, 그때로 말하면 좀 배운 신여성들, 그런데 오기는 하는데 가는 걸 못 봤다는 거야. 그래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러고는 노인이 말했다. "나중에 보니까 다 땅에서 나온 거지, 죽어서." 전재산 팔아서 백백교를 찾아온 사람들을 몽땅 죽여서 땅에 파묻은 것이다. 얼굴 예쁜 여자들은 모두 전용해가 농락했다. 그 어느때도 전용해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었다.
   그러다 1937년 2월 16일 황해도 해주 약종상의 아들 유곤용이 전용해를 찾았다. 경성 앵정정 1정목, 지금 인쇄사 거리로 변한 중구 인현동 1가다. 가문 재산은 물론 아비 유인호와 여동생 유정전까지 백백교에 빼앗긴 사내였다. 어렵사리 전용해를 만난 유곤용은 칼로 덤벼드는 악마 무리를 뿌리치고 왕십리 파출소로 달려갔다. 악마의 꼬리가 밟히는 순간이었다.
   양평과 가평을 비롯한 방방곡곡 아지트에서 시체가 314구가 나왔다. 한 가족이 서거나 앉은 채 묻힌 구덩이도 있었다. 동두천 상봉암마을 할머니 정병선(88)이 말했다. "일본 경찰이 와서 시체들을 파냈는데, 나중에는 개울물에 사람 기름이 둥둥 떠서 빨래도 못했다." 동두천에서 발굴한 시신들은 동네 공동묘지에 묻었다.
   암울한 시대, 세상이 미쳐서 돌아갔다. 두달 뒤인 4월 7일, 도망갔던 전용해가 양평 용문산 기슭 도일봉 중턱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턱 아래는 짐승에게 뜯겨나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아들 전종기가 회중시계를 보고 울었다. 전용해라 모두 확신했다. 악마의 짓거리가 끝났다. 21세기 어느날, 전용해의 머리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돼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국과수에는 포르말린병에 담긴 사내 머리가 있었다. 2011년 민간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모임이 이 머리를 인수받았다. 화장을 하고 분골을 한 뒤 머리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사찰에 묻었다. 여기까지, 경성을 뒤흔들었던, 민족종교 이야기다.
                                                                            <참고문헌>
   1. 박종인, “그때 경성에는 천국이 있었고 악마가 있었다”, 조선일보, 2017.12.13일자.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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