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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사진예술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고 정희섭 선생의 생애와 업적
 tlstkdrn  | 2018·02·15 03:50 | 조회 : 83
대전 사진예술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고 정희섭 선생의 생애와 업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신상구

1.  대전 사진예술의 역사적 전개 과정

   고 정희섭은 1917년 충남 논산시 연산면 출신의 사진작가로 1961년 12월 17일 (사)한국사진협회를 창립하여 초대 이시장을 역임하고 대전과 서울에서 일평생 사진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많은 업적을 남김으로써 한국 사진계의 대부 또는 전설로 추앙받고 있다.
   대전의 사진예술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으나 그 시절의 사진관이나 당시 활동했던 사진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원로사진가들마저 당시의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한국전쟁 이전의 대전, 충청지역 사진계의 활동은 불분명하다. 현재 생존에 계신 원로 사진가들의 기억으로는 충남사진연우회가 조직되었던 1951년이 대전, 충청지역 사진계 활동의 시발점으로 보여 진다. 충남사진연우회는 1952년 11명이 시작한 창립전부터 5.16군사정변 때 각종집회가 제한되어 활동이 중단될 때까지 15회의 전시를 해왔다. 이모임 멤버는 성재경, 정헌태, 박여일, 정희섭, 장병환, 장균, 송영헌, 김재위, 권용직, 허두천, 임택준 등이었다.
   대전 사진의 중흥기는 1950~70년대로 보여진다. 1952년 4명의 사진동인전이 대전미국공보원에서 있었다. 성재경, 정헌태, 정희섭, 장병환이다.
   1959년에는 박여일 중심으로 다겔 사진동인회가 조직된다. 정헌태, 박관수, 전 향, 문갑동, 남용철, 박문성, 육명희, 박병준, 이정원, 김경일, 이홍기, 박대관, 조용득 등이 모여서 여러 사진전에서 수상하는 실적을 올렸다. 동경에 있었던 태평양미술학교 출신인 박여일(1915~1992)은 대전출생으로 외국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당시 국내 사진예술계에서 유행하던 살롱풍의 사진에서만 머물지 않고 포토리얼리즘 작업을 하는 한편 유화작업도 병행하며 사진계와 미술계를 넘나드는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
   1962년에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충청남도지부가 전국에서 처음 창립되고 초대 지부장에 박여일이 선임된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시작한 것에 비해 활동은 미비했다. 출발 일년만에 지부장이었던 박여일이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정기총회에서 징계를 받았다.  박여일이 한국의 현실을 리얼하게 기록한 사진으로 외국 공모전 등에서 발표하는 것이 당시 살벌했던 정부의 눈치를 보는 입장에서는 불편한 상태였다. 박여일이 제명처분을 당하면서 충청남도지부의 활동은 거의 사라졌고 바로 대한 사진예술가협회 충남지부가 결성되어 활동했는데 1966년 다시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충청남도지부가 재설립 되면서 대부분의 회원이 이중으로 가입된 상태가 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1968년에는 사진단체 OFC(out of focus club)가 조직되었고 창립전을 가졌다. 송영헌, 정헌태, 박만식, 최용운 등 십여명이 활동했고 주로 전시는 대전문화원이나, 이들이 자주 다니던 다방 등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해에 한밭사진동우회의 창립전도 있었다.
   당시 사진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은 서광사(초대 대전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한 임홍규가 운영하던 사진재료점)와 성사진관(성재경이 운영하는 사진관), 송내과의원(의사였던 송영헌이 자신의 병원에 사진가들이 모이는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이었다. 이곳에서 사진가들은 서로 교류를 가지며 새로운 정보 및 전시 등을 계획했다. 특히 대전일보 사진부장이였던 정헌태는 충북영동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좌익으로 몰려 정치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으며 대전에 온 사진가로, 살롱풍에 젖어있던 당시의 사진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진표현을 하는 등, 정신적인 면에서 대전의 사진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전출신 사진가로 한국사진예술과 사진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육명심도 정헌태에게 사진을 배웠다. 그러나 정헌태는 아쉽게도 자료가 정리되지 못한 채 고인이 되었고, 아직 작고한 사진가들의 작업에 대한 관심이 빈약한 것도 대전이 안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상황이 좋아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는 카메라의 보급과 더불어 한국에서 대학사진 동아리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마추어사진가들이 사진예술계에서 목소리를 내던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부터 여러 대학에서 사진동아리가 생겨 전시가 이루어졌고 1974년부터는 대전대학생 연합회 전시도 진행되는 등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동아리가 생겨났다. 그런 가운데 카페형 사진전 전문 갤러리인 영상화랑이 1980년에 생긴다.
   그러나 아마추어로 양적인 팽창은 있었으나 이들의 사진이 작가의식이나 작품성에서는 결여되어 있었다. 영상화랑도 초창기에만 사진전이 이어지고 점차 회화 전시를 수용하는 등 미술계 전체 전시로 확장해갈 수밖에 없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대전충청지역의 사진은 타도시가 사진학과가 생기면서 활성화된 것이 비한다면 이상할 정도로 그 활동이 보이지 않았다. 천안에 위치한 상명대학교에 사진학과가 생겼으나 지역사진계의 활성화와는 관계없이 서울로 향해 있었다. 대전은 배재대학교가 1997년에 공연영상학과로 설립하여 1999년 공연영상학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사진전공학과가 생겼다. 중부대학교는 1997년에 사진영상공학과로 설립하여 1998년 사진영상학과로 개명했고 2001년에는 대학원에 사진영상학 전공kr과를 신설했다. 1990년대 후반이 되어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전, 충청지역 대학 사진학과 출신 사진가들의 활동 또한 아직은 지역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이 지역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동아리수준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사진단체전이 활발하고 사진전문가들의 전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전시가 드문 실정이다. 이 시기에는 지역사진가들의 전시보다는 외부 사진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진 단체로는 1989년에 18명으로 조직되어 90년대 타 도시와 교류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인 흑백사진연구회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 이 모임의 리더였던 조임환이 의욕적으로 회원전과 함께 [밝은 방] 초대전, 전국대학교수 초대전 등 국내 유명사진가와 사진학과 교수들을 초대하여 전시와 세미나를 주최하며 대전지역 사진계의 활성화를 도모했었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대전에 있었던 한림미술관에서 국제적인 규모의 사진전시는 대전, 충청지역 사진가들에게 현대 예술사진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큰 영향을 주었으나 아쉽게도 미술관 이름을 대림미술관으로 바꾸어 2001년 서울로 이전하였다. 대전광역시 시립미술관]에서도 가끔 사진전이나 기획전의 참여작가로 사진가가 참여하는 전시가 있었지만 한림미술관의 공백을 메우기엔 턱없이 전시 횟수가 적었다.
   한편 1999년에 대전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들이 모인 <대전사진가 10인전>을 시작으로 해서 2000년 <대전∙간(間)>, 2001년 <대전∙풍(風)>, 2002년 <대전∙색(色)>으로 이어지는 대전사진계의 색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일련의 전시가 대전광역시 시민회관 기획전으로 최원진 기획에 의해 진행되었다. 4년간 지속된 이 전시는 지역사진가들을 초대해 본격적으로 지역 사진예술계의 부흥을 꾀하려는 시도였으나 그 후로 이러한 움직임은 자취를 감췄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이 지역 사진가들이 아직 양과 질적인 면에서 지역색을 들어낼 만한 저변이 형성되어 있는 않았다는 점과 이 지역 출신의 사진가들이 지역보다는 서울 등지에서의 활동을 선호하고, 사진계에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없는 것도 큰 이유가 되고 있다.
   현재 사진전문갤러리는 사진가 조인상이 운영하는 포토클래스가 2002년에 시작되었고, 2009년에 사진평론가 김태정이 큐레이터로 있는 갤러리누다가 오픈되어 국내 유명작가의 전시를 이어오고 있어, 지역사진가들과 사진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나 아직 이들 갤러리가 지역의 젊은 사진가들에게 발표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보기엔 어려운 실정이다.

사진가뿐 아니라 미술가들도 대전, 충청지역의 전시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작품판매는 고사하고 힘들여 준비한 전시를 보러오는 관람객이 양적인 면에서도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문화적 소양이 부족해 작가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비평의 부재는 작가들의 발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대전, 충청지역 사진예술의 부흥을 위해서는 재능 있는 지역의 젊은 사진가들에게 발표의 기회를 제공할 전시 공간 및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는 레지던시 등의 프로그램도 필요한 실정이다.
   또한 사진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의 역할도 중요하다. 교육적인 면에서도 예술사와 더불어 예술비평을 강조하고 예술표현의 창의적인 발상을 위한 교육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한국을 대표할만한 사진가들이 사진학과가 아닌 타 전공 출신이 많다는 면에서도 그동안의 교과과정을 과감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일반 미술대학에서도 사진수업을 확대하여 예술표현 도구로서 사진을 활용할 수 있게 유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졸업생들의 전시가 지나치게 서울로 향하는 것보다는 지역에서의 전시를 장려하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이 지역의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서 보다 많은 사진 기획전을 만들어 지역사진가들에게 교류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물론 지역주민들이 문화전반에 대한 안목과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에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미술관이나 대학 등에서, 일반인을 위한 사진예술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강좌 등을 만들 필요가 있다. 특히 DSLR 카메라의 보급으로 엄청나게 늘어난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이런 강좌를 통해 사진예술애호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2. 산건희 사진작가의 생애와 업적
   충청권 사진작가 1호인 광정(廣亭) 신건이 선생은 “우리나라 사진계의 최고 원로라면 이해선 선생과 임응식 선생으로, 한국 사진계의 여명을 밝힌 분들이셨다. 두 분을 비롯한 사진 1세대의 뒤를 이어 공모전에 입상하여 초대작가 1호가 된 분이 충남 논산시 출신인 정희섭 작가셨다. 정희섭 선생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였기 때문에,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창립할 때, 그리고 여러 단체를 창립하거나 운영할 때 재정적 책임자와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신건희 선생은 “사진작가 정희섭 선생이 한국사진협회를 이끌면서, 상업예술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사진 부문을 국전(國展)에 편입시켜 명실 공히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분이셨다. 국전에 편입된 첫 번째 특선 수상자로 대전의 성재경(1920-1997)씨가 결정되었고, 이로 인해 대전에도 예술사진 시대를 열어주신 분이셨다. 성재경 선생은 1920년 충남 예산 출신으로 성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자녀와 조카까지 사진계로 진출한 대전의 대표적인 사진 가족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이 정희섭 선생의 직간접적인 후광(後光) 효과였다”고 말했다.
   또한 신건희 선생은 “국전이 막을 내리고, 예술 각 부문별로 공모전을 개최할 때도 정희섭 작가는 한국 사진계의 책임자 위치셨다.”고 증언했다.
   그런가 하면 신건희 선생은 “정희섭 선생이 제1회 사진전에서 대전의 신건이가 특선을 하여 대전의 사진계 위상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셨다.”고 말했다.
   충남(대전, 세종, 충남) 사진작가 1호가 된 신건이 작가는 지역은 물론 전국 사진전 심사를 맡으며, 대전의 사진발전과 위상 정립에 진력하고 있다.
   정희섭 선생의 아들 정규성은 충남 논산시 연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조카 정규천 님은 정희섭 선생의 뒤를 이어 사진작가로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아트리뷰어 리헌석은 정규성 님과 소통을 하고 있는 동향(同鄕)의 아동문학가 김영수(대전문예대학 학장) 선생과의 인연으로 정희섭 작가의 유고사진집(한정판 400부)『丁熙燮 寫眞集』을 구하여, 정희섭 선생이 사진계에 이바지한 공로를 알게 되었다
    정희섭 사진작가는 1917년에 충남 논산군 연산면 청동리 451번지에서 출생했다. 그는 지학(志學, 청소년기)이던 1933년부터 사진수업을 시작하였다. 1948년에는 사진잡지 『사진문화』에「영업사진가의 당면문제」를 기고하면서 사진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영업사진에 대한 현실적 문제를 다룬 글이지만, <민족이 없이 국가가 없고, 문화가 발전 없이 그 민족과 국가의 발전은 없을 것이니, 문화와 예술 부문의 일익을 짊어진 사진이야말로 평화시에도 중대역할을 할 것이다. 현하 건설 도중에 있는 우리나라는 한층 더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그 발전은 긴밀히 요구될 것>이라고 사진 역할의 중요성을 밝혀 당시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49년에 ‘조선사진문화사’와 ‘서울사진재료상’이 공동 주최한 제1회 전국종합사진대현상 모집전에서 특선 1석 1점, 준특선 3석 1점을 수상하여 대한민국 1호 사진작가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 대한민국 외무부 주최의 제1회 관광사진 공모전에서 특선 1점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여 성가를 높였다. 1952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창립전에서 특선 1점을 비롯하여, 국내외 공모전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입상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위상을 높였다.
   정희섭 선생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고향인 대전문화원에서 제1회 사진전(개인전)을 개최하여 충청권에 사진예술의 본보기다 되었다. 이어 서울의 명동 향원다방에서 사진전을 개최하였고, 1956년에는 서울의 미국공보원에서 ‘고적(古蹟) 채색사진전’을 개최하여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64년에 중앙공보관에서 ‘제3회 사진전’을 개최한 이후로는 너무 바빠서 개인전을 개최하지 못하였다.
   1953년에는 한국사진예술가협회 총무, 1954년에는 대한사진예술가협회 총무, 1955년 에는 전국사진가엽합회 회장에 취임했다. 1958년에는 사단법인 대한사진가연합회 회장, 1961년에는 한국사진협회 이사장, 1963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 1964년 에는 국전 사진 부문 심사분과위원장, 1965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 사진과 개설 및 교수, 1968년에는 아세아 사진예술단체 총연합회 국제회의 의장 겸 명예회장 등을 맡아 한국 사진 수준을 국제적 경지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희섭 선생은 서울에서 사진활동을 하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대전으로 피난 와서 대전사진계에 영향을 많이 주고 서울로 돌아가 사진작가로 왕성하게 활약하다가 1971년 12월 9일 서울 동대문구 면목1동 428~22에서 향년 55세로 별세하셨다. 선생의 영결식의 조사(弔辭)에서 김종양(金宗陽) 님은 “정희섭 선생님께서는 원만하신 인격과 높으신 덕망, 그리고 원대하신 이념으로 오로지 우리나라 사단의 발전에 심혈을 기울여 주셨나이다. 초창기의 우리나라 사단을 평생을 두고 알뜰히 가꿔주신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 사단은 그 기틀이 잡혀 이제 중흥기에 들어섰으며, 또 아껴 길러내신 허다한 제자들이 이제는 우리나라 사단의 여러 분야에서 굳세게 활약하고 있나이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사단을 해외로 진출시키는데 온갖 정열을 쏟아주셨으며, 그 결과 이제는 우리나라 사단도 세계 속의 사단으로 성장하였나이다.”라고 공로를 밝히며 명복을 빌었다.
   정희석 사후 10여 년이 흐른 뒤, 아들 정규성씨와 사진계의 뜻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1983년 5월 30일 도서출판 光畵에서 유고사진집『丁熙燮 寫眞集』을 발간하였다. 아들 정규성 님은 ‘이 책을 아버님 영전에 바칩니다’라는 후기(後記)에서 “평생을 사진과 함께 해오신 아버님의 작품을 모아 푸른 봄과 함께 세상에 내놓아 그 밝은 빛을 보게 하고자 마음에 간직한 것이 십수 년, 이제 이 유작 사진집을 내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한국사진작가협회, 대한직업사진가협회, 한국사진사연구소, 그리고 편찬위원 여러분과 특히 제자 되시는 박상록, 오종대씨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밝히면서 부친을 회상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최원진, “대전․충청 사진예술의 현황과 과제”,『예술문화비평』제4호(2012년 봄), 2017. 3. 19.
   2. 장한기, “한국사진작협회 탄생”, 송계 갤러리“, 2015.9.10.
   3. 리헌석, “한국 사진계 대부 정희섭 작가”, 디트뉴스, 2017.6.14.
                                                          <필자 소개>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93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문학사랑> · <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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