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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백의 대표적인 저서인 ‘한국사신론’ 평설
 tlstkdrn  | 2018·06·04 16:26 | 조회 : 106
                                      이기백의 대표적인 저서인  ‘한국사신론’ 평설

   민족, 민중에 대한 역사의 과대 포장을 경계하는, 그래서 흔히 말하는 '서강사학의 전성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1세대 사학자 이기백(1924~2004). 사진 찍히기를 싫어한 탓에 남은 사진이 별로 없다. 일조각 제공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에서 역사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각별하다. 이는 우리 현대성이 갖는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20세기 전반 현대사에서 역사학은 학문으로만 생각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를 지키는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국토와 주권을 잃어버렸다 해도 정신과 역사를 상실할 순 없었다. 민족의 정신과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나라를 지키고 사랑하는 방법이자 행위였다. 박은식과 신채호, 정인보와 안재홍의 삶과 학문이 그러했다.
   광복 이후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대표적인 역사학자들로는 이기백, 김용섭, 강만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이 우리 역사학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것은 2006년에 열린 제49회 전국역사학대회의 컨퍼런스 ‘우리 시대의 역사가를 말한다’였다. 이 컨퍼런스에선 민두기의 동양사학, 민석홍의 서양사학과 함께 이기백과 김용섭의 한국사학에 대한 후학들의 평가가 이뤄졌다.
   서양사학자 김기봉은 이기백을 ‘한국 역사학의 랑케’로, 국사학자 윤해동은 김용섭을 ‘숨은 신’으로 명명하고, 두 역사학자의 학문 세계를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두 사람의 비판적 접근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 또는 ‘숨은 신’이란 비유에서 볼 수 있듯, 이기백과 김용섭이 광복 이후 한국 사학을 이끌어온 것은 분명하다.
   오늘 다루려는 이는 바로 이기백이다. 그는 우리 고대사와 중세사의 뛰어난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 교과서의 대표격인 ‘한국사신론’의 저자였다. 우리 역사를 공부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다름 아닌 ‘한국사신론’일 것이다. 이 저작은 일본어ㆍ영어ㆍ중국어ㆍ스페인어ㆍ러시아어 등으로 번역돼 한국사의 국제적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맡아 왔다.
    ‘한국사신론’의 탄생은 드라마틱하다. 192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이기백은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와세다대학교에 진학했지만 1945년 일본군 징병으로 끌려 갔다 소련군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수용소에서 그는 동료들의 권유로 한국사를 강의하게 됐는데, 당시 필사본 개설서를 썼다. 이 개설서가 ‘한국사신론’의 원형을 이뤘다.
   광복 후 서울대에서 국사학을 공부한 이기백은 1961년 대학 강의 교재용으로 ‘국사신론’을 펴냈고, 이 책을 바탕으로 1967년 ‘국사신론’을 출간했다. ‘국사신론’은 출간하자마자 그때까지 대표적인 국사 교과서인 이병도의 ‘국사대관’을 대신하여 널리 읽혔다. 1976년 ‘한국사신론’이란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고, 1990년에는 신수판이, 1999년에는 한글판이 출간됐다.
   한국사의 최장기 베스트셀러라는 소리를 듣곤 하는 '한국사신론'. 해외에 번역된 한국사의 대표적 개설서로 꼽힌다.
   ‘한국사신론’이 크게 주목 받은 까닭은 식민사학을 극복하고 한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데 있다. 이기백은 ‘한국사신론’ 서장에서 한국사의 올바른 이해에 부여된 일차적 과제가 식민주의사관 청산에 있음을 천명한다. 그에 따르면, 식민사관이 제시하는 반도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 문화적 모방론은 일제의 식민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된 한국사관일 뿐이다. 이 그릇된 사관을 타파하지 않고선 새로운 한국사학이 발전할 수 없다고 그는 역설한다.
   이기백 역사학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방법적 실증주의와 이념적 민족주의다. 방법적 실증주의가 역사적 사실들과 그 사실들의 시대적ㆍ사회적 관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을 지향한다면, 이념적 민족주의는 역사 연구가 민족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실천으로서의 역사학을 추구한다. 이기백의 민족주의론은 신채호의 민족주의, 함석헌의 기독교 사관, 손진태의 신민족주의의 영향을 바탕으로 해 주체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기백 역사관은 인간 중심의 역사 이해다. 그는 한국사에서 인간을 재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인간을 개인이 아니라 세력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한국사신론’이 이룬 중요한 성취 중 하나는 독창적인 시대구분이다. 그는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사회적 지배세력의 변천 과정을 제시한다. 여기서 지배세력이란 주도적 위치에서 역사를 이끌어가는 인간집단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 ‘한국사신론’은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성읍국가와 연맹왕국, 귀족국가, 전제왕권, 호족, 문벌귀족, 무인정권, 신흥사대부, 양반사회, 사림세력, 광작농민과 도고상인, 중인층과 농민, 개화세력, 민족국가, 민족운동을 거쳐 민주주의의 성장까지 우리 역사의 역동적인 발전을 서술한다.
   이기백은 고대·중세·근대로 시대를 나누는 서양사학의 3분법적 구분을 거부한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우리 역사 이해에 맞지 않는 유럽형 식민주의 사관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그가 특수성 안에 존재하는 보편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특수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사학과 보편성을 부각시키는 유물사관을 모두 경계하고, 보편성이 구현되는 과정 속에서 특수성으로 발현되는 우리 역사를 기술한다.
   ‘한국사신론’을 통해 광복 후 지식사회는 식민주의사관을 극복하고 민족 주체적인 역사학을 갖게 됐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마땅히 읽어야 할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기백의 업적이 통사인 ‘한국사신론’에만 그친 게 아니다. ‘민족과 역사’를 위시해 그의 저작들은 별권 ‘연사수필(硏史隨筆)’을 포함한 15권의 ‘이기백 한국사학논집’으로 정리돼 있다. 나아가 그는 1987년 창간된 반연간지 ‘한국사 시민강좌’의 책임 편집위원을 맡아 시민들을 위한 역사 교육에도 작지 않게 기여했다. 평생을 걸쳐 우리 역사의 탐구와 계몽에 열정적으로 헌신해온 그는 2004년 세상을 떠났다.
   2004년 3월 마지막으로 참석한 ‘한국사 시민강좌’ 편집회의 때의 이기백(오른쪽 두 번째) 선생 모습. 역사의 대중화를 고민했던 그는 ‘한국사 시민강좌’를 특히 아꼈다.
   이기백 선생이 애착을 가졌던 잡지 '한국사시민강좌'. 역사를 대하는 냉엄한 도를 읽어낼 수 있다. 민족과 민중을 내세워 과도하게 역사를 해석하는 흐름에 제동을 걸기 위한 작업이었다. 민족, 민중 담론이 아직도 강한 한국에서 여전히 참조할만한 글들이 많다. 일조각 제공
   이기백의 삶과 학문에서 내게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아들인 소설가 이인성에게 남긴 유서였다. 묘비에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는 말을 적어주기를 소망한 내용은 나를 숙연하게 했다. ‘한국사신론’ 한글판 머리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기백이 민족에의 사랑과 진리에의 믿음이 하나라고 한 것은,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게 아니라 서로 결합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은 민족에 대한 사랑에 기여해야 하고, 민족에 대한 사랑은 진리를 중시하는 과학으로 구체화돼야 한다는 언명으로 나는 이해하고 싶다.
   ‘한국사신론’의 마지막 항목인 ‘지배세력과 민중’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이기백의 역사관을 담고 있다. 다소 길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3.1운동은 (...) 동학과 독립협회 두 계열의 합작운동이었다. 이리하여 임시정부가 민주주의의 원칙 아래 구성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렇게 크게 성장한 민중은 항상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민족운동의 주동세력이 되어 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해방과 더불어 민중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 대세는 4월 혁명에서 알 수 있듯이 더욱더 발전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사회정의가 보장되는 민주국가의 건설로 이어질 것이 기대되고 있다.”
   이처럼 이기백은 자유와 평등, 사회정의와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우리 역사의 미래를 기대하고 전망했다. 돌아 보면,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두 시대정신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산업화와 자유ㆍ인권ㆍ민주주의를 누리려는 민주화였다. 그렇다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안고 또 넘어서 추구해야 할 우리의 시대정신은 뭘까.
   분명한 것은 그 시대정신이 단수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현실의 복합성을 고려할 때 시대정신은 복수로 존재할 수 있다.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하고 불안과 분노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선 과학기술 혁신이 선도하는 새로운 산업화, 노동 존중과 성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민주화, 복지국가 구축을 통한 더 많은 평등사회,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반을 둔 통일 시대의 개막 모두 더없이 소중한 시대 가치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 의지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네. 그러나 삶의 황금 나무는 초록색이지.” 시대정신이란 말을 주조한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서 볼 수 있듯, 시대정신은 국민의 삶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 자신의 의미를 완성한다. 새로운 산업화와 민주화, 더 많은 평등사회, 통일 시대의 개막이라는 시대정신이 우리 역사의 미래에서 온전히 구현되길 바라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참고문헌>
   1. 김호기, "이기백 우리 민족은 누구 실증 연구… 식민사관 넘어 한국사학 새 지평 :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 한국일보, 2018.6.4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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