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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로 폄하되고 있는 시인 모윤숙 이야기
 tlstkdrn  | 2018·07·09 04:20 | 조회 : 76
친일인사로 폄하되고 있는 시인 모윤숙 이야기  

   김동길은 일제하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태어날 때 이미 조선은 사라지고 일본만 있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해외에 망명 중이던 김구, 이승만과 국내에서 투쟁한 이상재,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등 애국지사들을 존경하면서 젊은 날을 보냈다. 해방이 될 때 평양에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도 내 눈으로 지켜보았고 견디다 못해 38선을 넘어 월남하였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신촌의 이 집에서 6·25 사변을 겪었다. 조국의 현대사와 더불어 고생하며 살다가 김동길은 이제 나이 90이 되었다. 어찌하여 이런 불필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따질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이제는 몇 남지 않은 한 시대의 증인임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사설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708명의 친일 인사 명단을 발표했다고 들은 지는 오래지만 들춰 볼 겨를은 없었다. 그런데 김동길이 글을 쓰려고 하는 시인 모윤숙(1910-1990)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있다고 하기에 거기에 실린 700여 명의 명단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일제시대부터 우리가 훌륭한 인물로 여겨온 많은 명사의 성함이 거기에 들어 있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정부가 수립되고 반민특위가 생겨 반민족 행위자로 지목되었던 친일 인사들이 일단 고발되고 조사를 받고 구속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런 절차를 밟으며 그들이 무죄판결을 받기도 하고 사면을 받기도 하여 일단 그 업무는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후배들이 나서서 낡은 신문과 잡지들을 뒤져가며 단 한마디라도 일본 제국주의에 유리한 말을 하였다면 사회적 신분을 따지지 않고 정죄하고 그 사전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경솔한 처사다. 군사재판에도 피고의 최후 진술은 있게 마련인데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한마디 해명도 들어 보지 않고 민족 반역자로 몰아붙여도 된다는 말인가.
    시인 모윤숙은 1910년 한일합방이 강행되던 그해,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하였다. 거기서 소학교를 마치고 함흥에 가서 성장하였으며 그 뒤 개성에 있던 호수돈여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에 이화여전 문과에 들어가 3년 뒤 졸업하였다. 모윤숙은 만주 북간도 용정에 있는 명심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고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1년 잡지 '동광'에 '피로 새긴 당신의 얼굴'을 발표하여 문단에 이름을 올렸고 그 뒤에 서울에 돌아와 배화여고의 교사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그 무렵 어떤 분의 주선으로 철학박사 안호상과 결혼을 하였으나 곧 그만뒀다. '결혼과 동시에 이혼'이라는 표현도 지나친 말이 아닐 텐데, 신랑에 대하여 모르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그 남편이 결코 이상적 남성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모윤숙은 누구보다도 애국심이 강한 여성이어서 남북한 동시선거를 꿈꾸던 UN이 메논을 단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서울에 파견했을 때 메논 단장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북의 김일성은 남북한 동시선거를 거부하였다. 부산 피란 시절에는 광복동에 '필승각'이라는 집을 마련하고 김활란과 합심하여 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해 외교 활동에 전념하였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 한 수도 모윤숙의 애국심이 아니고는 세상 빛을 볼 수 없는 걸작이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나는 죽었노라, 25세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거두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오늘도 이 시 한 수는 6·25의 경험을 가진 모든 한국인을 눈물짓게 한다.
    꿈을 잃고 일제하에 신음하던 우리 젊은이들을 모두 감동시킨 산문시가 모윤숙의 '렌의 애가'였다. 우리는 그가 '시몬'이라고 부른 그 남성이 과연 누구일까 궁금하게 여겼다. 1937년에 모윤숙이 이 땅의 한 젊은 여성으로 그토록 사모했던 그 '시몬'은 누구일까. 혹시 춘원 이광수가 아니었을까.

    "시몬! /당신의 애무를 원하기보다 당신의 냉담을 동경해야 할 저입니다. 용서하세요 /
그러나 당신의 빛난 혼의 광채를 벗어나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알려 준 인생의 길, 진리, 평화에 대한 높은 대화들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지각없는 사람이 모윤숙에게 질문하였다. "선생님, 시몬은 누구입니까." 모윤숙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동경한 오직 한 사람의 남성이 누구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윤숙이 그 짧은 결혼 생활에서 매우 총명한 딸을 하나 낳아 아름답게 키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자상하고 다정한 어머니이기도 했다면 믿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윤숙은 여장부였고 여걸이었고 뛰어난 시인이었고 훌륭한 어머니였다.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소생하여 요양 중이던 모윤숙의 자택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젊은 날의 패기는 사라졌으나 80을 바라보는 노인답지 않게 그는 당당하고 엄숙한 모습의 할머니였다. 그의 밝은 미소와 통쾌한 웃음소리가 그리운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라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배달의 딸 시인 모윤숙.
                                                               <참고문헌>
   1. 김동길, "그토록 사모했던 '시몬'은 누구일까, 혹시 춘원은 아니었을까", 조선일보, 2018.7.7일자. B2면.

                                        詩人 모윤숙(毛允淑)이 안동에서 겪은 섭섭함

   여자라는 이유로 퇴계(退溪) 선생 사당 참배를 거부당한 뒤 "안동 양반이 이렇게 도도하고 완고할 줄은 몰랐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김동길 인물 에세이,100년의 사람들'은 기다려지는 명칼럼이다. 7월7일 33회 편에는 '시인 모윤숙(毛允淑·1910~1990)'이 주인공이다. 김동길은 먼저 어떤 사설연구소가 모윤숙을 '친일인명사전'에 기록한 그 사실을 비판했다.
   "그 시대를 전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나서서 낡은 신문과 잡지들을 뒤져가며 단 한 마디라도 일본 제국주의에 유리한 말을 하였다면 사회적 신분을 따지지 않고 정죄(定罪)하고 그 사전에 올렸다는 것은 가벼운 처사"라고 지적했다.
  모윤숙은 "그 누구보다도 애국심이 강한 한국의 여성으로 부산 피난시절에는 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해 외교활동에 전념하였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詩) 한 편도 모윤숙의 애국심이 아니고선 세상 빛을 볼 수 없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모윤숙이 "꿈을 잃고 일제하(日帝下)에서 신음하던 우리 젊은이들을 모두 감동시킨 것이 산문시(散文詩) '렌의 애가(哀歌)'였다"고 적었다. '렌의 哀歌'에서 모윤숙이 그토록 사모했던 시몬은 누구일까, 혹시 춘원(春園)은 아니었을까?' 하며 궁금해 했다.
  "모윤숙은 시인이자 여장부였고 훌륭한 어머니였다. 그 시대를 모르는 후배들이 한마디 해명도 듣지 않고 민족반역자로 몰아서는 안된다"고 호통쳤다. 김동길 교수가 사실에 근거하여 담담하게 적어 가는 '인물에세이 100년의 사람들'은 대한민국 탄생과 발전에 기여한 귀중한 인물사(人物史)가 될 것이다.
  각설(却說)하고 수필가 전숙희는 그의 소설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에서 모윤숙은 서울 법전(法專) 출신 '이강국'을 사랑한 것 같다는 기록을 남겼다. 여간첩 '김수임'과 이강국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의 연적(戀敵)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모윤숙은 1960년 가을 저녁, 안동여고 강당에서 문학강연을 한 바 있다. 안동 출신 시인 김종길의 주선으로 저명 문인들과 함께 안동에 온 것이다. 낮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관광하던 도중 퇴계(退溪) 선생 사당 참배를 여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안동이 양반의 고장이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안동 양반이 이렇게 도도하고 완고할 줄은 몰랐다며 추로지향(鄒魯之鄕) 안동(安東)을 말하기도 했다. 천하의 모윤숙도 안동선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의 여성이었음을 지금은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면 60여 년이 지난 이제는 여성에게도 참배의 길이 열렸을까? 하고 물어보고 있을까? 김동길 선생의 '인물 에세이 모윤숙'을 읽으며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며 고인(故人)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작성자 : 봄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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