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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아주 작고 눈부신 날개가 있다
 tlstkdrn  | 2019·06·14 14:42 | 조회 : 53
나에게도 아주 작고 눈부신 날개가 있다

    나는 오늘도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에세이를 읽는다. 위험을 피해 안정을 얻기 위한 마음의 기술이 아니라, 위험을 온몸으로 겪어내고도 내 영혼이 파괴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위험을 다 감내하고도 삶과 사람과 세계를 사랑하는 힘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첫 번째 경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를 바라볼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날카로운 경계를 생각한다. 참, 그렇지, 나는 결코 날 수 없구나. 하지만 간절하게 날고 싶어 하는구나. 창공을 날아오르는 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기계장치도 없이 오직 존재 내부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미치도록 부럽다. 어떤 외부의 도움도 없이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저 높이 날아오르는 새처럼, 내 몸은 아닐지라도 내 마음만은 그렇게 날아오르고 싶어진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음을 깨달았다. 남들 앞에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미치도록 날고 싶은 순간 화려하게 펼쳐 보일 수는 없지만, 나에게도 아주 작고 눈부신 날개가 있다. 내 존재가 남모르게 날아오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날개가 돋아나는 순간이 있다. 내가 기쁨과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 바로 내가 읽은 모든 문학작품이 벳 미들러의 노래 가사처럼 ‘내 날개를 밀어주는 바람’(The Wind Beneath My Wings)이 되어 휘청거리는 나를 한없는 따사로움으로 받쳐주는 순간이다. 문학을 통해 나는 날개 없이도 날아오른다. 주인공의 슬픔, 작가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날개가 되어 내 존재를 저 요동치는 세상의 중심 속으로 끌어올려 준다.
    때로는 ‘문학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외치는 듯한 세상의 압박에 못 이겨 문학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 나는 안다. 마침내 나를 날아오르게 해주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변함없는 것은 바로 내가 읽은 문학작품들임을. 기원전에 만들어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 2천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내 존재를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모험의 시간으로 날아오르게 해주었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댈러웨이 부인>은 머나먼 런던을 마치 부산이나 서울처럼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친밀한 공간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박경리의 <토지>는 문학작품이 아니라면 결코 만나볼 수 없었을 수많은 민초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을 올올이 맛보게 해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존재의 보이지 않는 날개를 구성한다.
    두 번째 경계. 나는 문학을 통해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뛰어넘어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너는 절대 안 된다’고 외치는 세상의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끝내 사랑을 지켜내는 주인공들이 있다. 예컨대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뛰어넘어 사랑하는 여인의 이야기 <이생규장전>을 생각한다. 가끔 이승에서의 내 사랑이 너무 이기적이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너무 지구인의 경계 안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 ‘남녀의 경계’와 ‘너와 나의 경계’를 뛰어넘어 사유하지 못하는 내 비좁은 사랑의 울타리가 문득 안타까워질 때. 나는 <이생규장전>의 그 이름 모를 여주인공, 최씨 여인을 생각한다. 이생은 아내를 처참하게 버렸다. 그것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홍건적의 난 당시 도적에게 겁탈당하는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목숨을 끊어버린 최씨. 그 여인은 죽어서도 남편을 찾아와 전쟁 통에 죽은 부모의 유골이 처참하게 묻힌 곳을 알려주고, 자신 때문에 아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죽어서도 변함없이, 아니 죽어서도 더더욱 한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승에 남겨 놓고 저세상으로 다시 떠난다. 내 사랑이 너무도 나약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이름도 없이 죽어가고, 죽어서까지 한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넘을 수 없는 생사의 경계를 뛰어넘었을, 이름이 없어서 더욱 처절한 그 여인을 생각한다. 나는 그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사랑은 이승에서의 지극히 현실적인 장애물도 뛰어넘지 못해 아등바등 몸부림친다. <이생규장전>을 읽으며 나는 내 사랑의 넘을 수 없는 경계를, 그러나 언젠가는 뛰어넘고 싶은 경계를 더듬어본다. 그리고 기원한다. 내가 당신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끝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얼마나 더 깊이 사랑해야, 얼마나 더 멀리까지 인생의 길을 걷고 또 걸어야, 사랑을 통해 죽음의 경계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까.
     세 번째 경계. 문학은 ‘견딜 수 있는 위험’과 ‘견딜 수 없는 위험’의 경계 또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나아가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의 고통을 대비하는 심정으로 문학작품을 읽는다. 보험을 들거나 호신술을 배우는 실용적인 위험대비법으로는 미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위험이 닥쳐왔을 때, 도저히 공포와 불안을 피해갈 방법이 없을 때 문학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내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위험에 대처할 수 없다. 위험을 피하면 위험으로 인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생의 진실까지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에세이를 읽는다. 위험을 피해 안정을 얻기 위한 마음의 기술이 아니라, 위험을 온몸으로 겪어내고도 내 영혼이 파괴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위험을 다 감내하고도 삶과 사람과 세계를 사랑하는 힘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저히 내 힘만으로는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사랑했던 그 모든 문학작품들이 내 등 뒤에서 보이지 않는 바리케이드를 이루어 세상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나를 필사적으로 지켜주고 있음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처럼, 가난하고 비참한 백성들의 가구와 집기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그 바리케이드가 혁명 전사들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주듯, 문학이 내 마음을 공격하는 그 모든 상처들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음을. 내가 지닌 어떤 소유물도 나를 지켜주지 못할 때, 나는 문학이 내게 조용히 선물했던 간절한 구원의 메시지를 떠올린다. 예컨대 힐데 도민의 시 <한 송이 장미에 기대어>는 평생 망명생활에 지친 시인이 이 세상 기댈 곳이 오직 ‘허공’뿐임을 깨달았을 때 길어올린 기적 같은 시편이다. 지상에 내 몸 하나 누일 방 한 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순간, 세상 모두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시적 화자는 한 송이 장미 옆이 바로 자신의 쉴 자리임을 깨닫는다. 허공에 방을 하나 마련하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그네’ 위에 침대 하나 들여놓고, 그렇게 잠들고 싶은 시적 화자의 외로움 속에서 비로소 장미는 단지 한 송이 꽃이 아니라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된다. 그 조그마한 장미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온몸을 의탁할 ‘장소’로 보는 간절한 목마름이 바로 시인의 눈이다. 그리고 나의 문학도 마침내 그 장미 한 송이를 닮은, 폭풍우 속의 피난처임을 깨닫는다. 무엇을 시도해도 실패하고, 번번이 세상의 문 앞에서 좌절할 때, 나에게 문학 또한 그렇게 내 전 존재를 지탱해주는 아주 여리지만 눈부신, 향기로운 장미 한 송이였다.
    문학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독자의 영혼에 상처를 준다.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서만 배워지는 것들이 있다. 상처의 틈새로 온 세상의 햇살이 온통 나에게로 쏟아지는 듯한 벅찬 감정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나조차도 아직 꺼내보지 않은 나의 잠재력’의 경계가 기쁘게 부서진다. 나는 문학을 통해 ‘나라고 믿는 것들’과 ‘내가 아니지만, 나일 수도 있는 것들’ 사이의 경계를 생각한다. 제인 에어가 롱우드 기숙사에서 ‘누구도 제인 에어 같은 나쁜 아이와는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선생님의 폭언 속에서 체벌을 받을 때, 내 영혼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 아이가 바로 나 같아서.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 미움을 받아 모든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던 그 시절의 외롭고 비참했던 나 자신 같아서. 하지만 제인 에어는 가장 비참했던 순간 친구를 찾는다. 폐병으로 죽어가는 아이 헬렌 번스와 함께 지상의 마지막 우정을 나눌 때, 세상에 기댈 곳이 없었던 고아 소녀 제인 에어는 비로소 ‘사랑 없는 세상’이 아닌 ‘사랑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찬란한 기쁨을 맛본다.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솟아나는 희망의 멜로디를, 문학은 온 힘을 다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상처의 틈새로만 쏟아지는 세계의 눈부신 진실, 거기에 문학의 존재 이유가 있다.
    나는 오늘도 날아오른다. 책을 통해, 문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날개를 통해 매순간 날아오르기 위한 힘찬 비상을 준비하며 오늘도 읽고 쓰고 고뇌하는 고통스러운 행복을 체험한다. 나는 오늘도 날아오른다. 내 존재를 스미는 문학의 향기가 가득한 바람의 힘을 빌려. 지상의 고통을 이겨내고 저 높은 이상의 세계로 날갯짓을 하는 모든 순간, 우리는 문학과 함께다.
                                                           <참고문헌>
   1. 정여울, "나에게도 아주 작고 눈부신 날개가 있다", 한겨레신문, 2019.6.14일자,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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