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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레스 레싱의 생애와 작품세계
 tlstkdrn  | 2019·08·29 03:16 | 조회 : 36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레스 레싱의 생애와 작품세계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은 1950년부터 2008년까지 거의 매해 책을 출간하면서 성차별과 식민지배, 권력투쟁 등 사회문제를 다뤘다. 작가로서 삶의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레싱은 노벨 문학상 수상에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부모는 그녀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전보를 쳐서 책과 옷을 보내 달라고 했다. ‘걱정 마세요, 만사 잘됨.’ 그리하여 하나의 문이 마침내 닫혔다. 닫힌 문 저편에 농장과, 그 농장이 만들어 낸 소녀가 있었다. 그것은 이제 그녀와 관계없었다. 끝난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새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고 멋지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도리스 레싱은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났다. 지루하기만 한 학교와 달리, 책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다행히 “책장에 항상 책이, 고전이 꽂혀” 있었다. 학교를 그만둔 대신 농장 일을 해야 했지만, 시간을 아껴가며 책을 읽었다. “소설에서 어떤 책이 언급되면 그 책을 주문”했다. 그런 식으로 레싱은 “책을 계속 주문”했다. 영국에서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로 오고 있을 책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80세가 훌쩍 넘어 생각해봐도 “평생 제일 좋았던 날은 책이 도착하는 날들”이었다. 아프리카의 농장에서 책을 읽으며, 도리스 레싱은 어떻게든 다른 삶을 살아보리라 결심한다. “똑똑했지만” 10대에 학교를 그만둔 레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전화교환원, 타이피스트로 돈을 벌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나는 왜 이곳에 있을까? 가끔씩 그런 생각도 들었다.
    “크리켓 국가 대표였던” 도리스 레싱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아버지는 “영국을 극도로 갑갑하게” 여기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니던 은행에 어딘가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1919년 도리스 레싱은 ‘페르시아’에서 태어났다. “완전히 비실용적인 사람이었던” 아버지는 ‘테헤란’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채 영국으로 돌아온다. 1924년,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있을 때였다. “박람회의 남아프리카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 전시대에는 엄청나게 큰 옥수수대와 ‘5년 내에 부자가 됩니다’”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고, 아버지는 “바로 짐을” 쌌다. 남아프리카 외딴 농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많이 실망스러웠다.
    도리스 레싱은 자신이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을 모두 부정하고 싶었다. 환멸로 가득했다. 생래적 허무주의자 레싱은 아프리카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또 한 차례 깊이 깨닫는다. 레싱은 남아프리카의 관목 숲 사이에서 “시간이 한 손으로 모든 것을 주면서 또 한 손으로는 그것을 전부 빼앗아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시간에 집착하자 삶이 조급해졌다. 성취욕 강한 어머니 앞에서 딸은 숨이 막혔다. 일상의 권태도 지긋지긋했다.
    어디론가 탈출하는 심정으로 1939년에 결혼했지만, 불행은 더욱 확실해졌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혼은 불가피했다. 도리스 레싱은 가치관이 비슷한 남자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다시 한 번 가정을 꾸렸지만, 현실은 견고했다. 레싱은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고 두 번째 남편과 결별한다. 두 살, 일곱 살, 아홉 살이 된 아이 셋과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생계조차 불투명한 시절이었건만, 자꾸 멀리 떠나고 싶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도리스 레싱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원고도 있었다. 도시에서 책을 내고 싶었다. 요하네스버그의 한 출판사가 손을 내밀었지만, 계약 조건이 지나치게 불리했다. 긴 시간 다듬어 온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팔아 치우듯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었다. 레싱은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한다. 영국에서 책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소녀는 크게 성장했다. 이제 본인이 영국에서 직접 책을 낼 차례가 되었다고 믿고 싶었다. 직접 부딪쳐 보기로 한다.
    시작은 초라했다. 도리스 레싱은 <풀잎은 노래한다> 원고만 손에 쥐고 1949년 무작정 런던으로 향했다. 타이피스트로 일을 하며 아이들을 혼자서 키워야 했지만,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작가가 되고 싶었다. 부지런히 출판사를 찾아다녔다. 레싱은 자기 원고에 확신이 있었다.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평범한 영국 가정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피살자 메리는 백인 여성이고, 살인범은 그 집에서 일하던 모세라는 흑인 원주민이다. 이웃들은 메리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남편 리처드가 폐인이 된 원인이 메리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풀잎은 노래한다>는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다.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짜임새 있는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출간 5개월 만에 7판까지 인쇄될 정도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레싱의 자전적 소설인 <마사 퀘스트>(1952) 역시 큰 찬사를 받았다. 동시에 런던은 그에게 거대한 학교였다. 레싱은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
    1952년, 도리스 레싱은 영국 공산당 작가 모임에 가입했다. “우리가 충성을 바칠 철학”이란 “없다”고 주장하는 작가의 선택치고는 기이했다. 레싱은 차가운 질문도 곧잘 던졌다. “항상 슬픔과 눈물로 끝나는 정치 철학이 도대체 왜 필요하겠어요?” 의아한 일이었다. 도대체 레싱은 어떤 이유로 공산당 작가 모임에 들어갔을까? 이번에도 ‘책’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다 읽은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는 책을 읽는 문화였으니까요.” 레싱은 “정치 집회에는 가지 않았”지만, “아주 흥미로운 인물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공산당 작가 모임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그다운 결정이고 행동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공산주의자들이 “소련과 사회주의 이상을 동일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도리스 레싱은 과감하게 반기를 들었다. 서로 다른 것을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그 차이를 분명히 알면서도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부정하고 부패한 모든 것들, 거짓말과 재판과 비뚤어진 모든 것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했다는 것”을 덮을 수 없었다. 1956년, 헝가리 봉기가 일어나자 레싱은 탈당했다. 에드워드 톰슨 역시 비슷한 시기에 레싱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두 거장은 영국 공산당 내부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하거나 과도하게 비난받았다. 탈당 과정에서 레싱이 받은 상처는 매우 컸지만, 이 시기의 경험이 레싱의 문학을 한층 깊이 있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6년 후, 도리스 레싱은 <황금 노트북>(1962)을 발표한다. 안나와 몰리 두 여성의 이야기가 순환구조를 이루는 이 작품은 ‘새로운 소설’의 지평을 열었다. 일기·수필·수기·자전적 소설 등 다양한 형식이 자유롭게 결합되어 있는 <황금 노트북>은 성차별과 식민지배, 인종 문제, 권력 투쟁 등의 사회 문제를 해부하듯 다루었다. 하지만 레싱은 자신의 소설이 특정 ‘이념’으로 분석된다면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오독일 따름이라고 주장하면서, 작가로서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이야기한다는 원칙만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1950년부터 2008년까지 도리스 레싱은 50편이 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거의 매해 책을 출간했다. 레싱은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미래가 달라질 리 없다고 단정짓는 “도덕적 피로”를 항상 경계했다. 레싱은 공상과학소설·신화·자서전·오페라 대본 등 다양한 장르의 글들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단 한 번, 자신에게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도리스 레싱은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집 앞으로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레싱은 심드렁했다. 노벨상부터 비판했다. 기자들에게도 친절하지 않았다. 레싱은 행여나 앞으로 글 쓸 시간이 줄어들까 봐 그 걱정만 했다. 88세 생일을 맞이할 즈음이었다.
    레싱은 94세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작가로 살았다.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기억이 작가로서의 자산이었다고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런던으로 가기 위해 망망대해를 건너는 순간부터 레싱은 작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글 쓰는 여자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참고문헌>
     1. 장영은, " 어린 시절 불행했던 기억들도 자산으로 만든 ‘전화위복의 작가’", 경향신문, 2019.8.28일자.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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