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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논산 윤증 고택
 tlstkdrn  | 2020·08·08 03:07 | 조회 : 9
논산 윤증 고택

   6·25 전쟁이 숨 가쁘게 전개되던 1950년 7월 북한군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윤증(尹拯) 고택에 사령부를 차렸다.
   그러나 미 공군이 이를 발견하여 즉시 폭격하기로 결정했다. 이 정보를 들은 박희동 대장이 미공군 작전대장에게 쫒아가 폭격을 하지 말라고 간청했다. 이 고택의 역사적 가치를 설명한 것인 데 미군은 박 대장의 건의를 받아 들여 폭격 계획을 보류했다.
   하마터면 300년 고택이 잿더미가 될 뻔 했던 순간이었다.
   박 대장은 그 후 공군대학총장 등을 역임하며 공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그가 이 집에 대하여 잘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향이 바로 이곳 노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를 겪고 잘 보존돼 온 윤증 고택은 쇠 못 하나 없이 순 목재로만 지어졌고 가옥의 배치가 뛰어나 국가민속문화재 제190호로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사랑채 마루에 서 있으면 눈앞에 전개되는 들판과 산야가 하나의 정원을 이루며 마당 앞 연못은 그야말로 한국적 정취가 짙게 풍긴다. 특히 지금 쯤 만개할 오랜 수령의 백일홍 두 그루가 참으로 아름답다.
   이 집을 지은 명재(明齋) 윤증은 누구인가?
   그는 송시열, 송준길 등과 함께 '충청5현'으로 추앙 받는 파평 尹(윤)씨 24세손 윤선거를 아버지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목숨을 잃은 공주 李씨를 어머니로 1629년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김집(金集)과 송시열에게서 학문을 익혔으나 송시열이 영수로 있는 노론(老論)에 합류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 노론에 대적하는 소론(少論)의 영수가 되었다.
   조선 왕조의 중심이었던 충청도 학맥이 둘로 갈라진 것이다. 사실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청나라 군대가 점령하자 섬을 빠져 나온 것을 두장 송시열은 시비를 따졌다. 그런데다 윤선거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윤증이 송시열에게 묘지명 글을 부탁했는데 이 글에서까지 아버지에 대한 서술이 소홀하게 다루어짐을 들어 사제간 결별로 이어 지고 말았다.
   이 문제가 뜨거운 논쟁으로 전국에 번지자 송시열을 지지하는 층은 노론이 되고 윤증을 지지하는 층은 소론으로 불리어 졌다. 정치권도 이렇게 둘로 나뉘어 뜨겁게 충돌했다.
   이런 가운데 윤증은 관계 진출의 등용문인 과거를 거치지 않고 여러 요직에 천거되었다. 그만큼 학문과 언행이 뛰어 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이조판서, 우의정, 대사헌(大司憲)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거절하고 충남 노성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데 열심이었다.
   특이한 것은 대사헌이란 지금의 검찰총장과 같은 것인데 윤석열 현 검찰총장이 그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윤증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최고 우의정에 이르기 까지 관직에 임명된 것이고 두 번째는 임금이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않았음에도 정부요직에 제수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록은 조선 왕조에서 오직 윤증 한 사람 뿐이다.
   이 때문에 그에게 붙여 진 별명이 '백의(白衣)정승'으로 한 번도 관복을 입지 않고도 정승의 예우를 받았다는 뜻이다.
   지금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는 윤증이 학문을 닦고 가르치던 종학당을 비롯 백록당이 종가를 에워싸고 있어 충청 유학의 꽃을 피워온 향기가 가득하다. 또한 그 옛날부터 이어온 종가마당의 수많은 장독대가 고택의 전통을 말해 준다. 그의 초상화도 국가보물 1495호로 지정될 만큼 초상화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1. 변평섭, "한국적 정취 가득한 이곳… 충청 유학의 꽃 피워내다", 충청투데이, 2020.8.7일자.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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