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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21세기 불안 시대 조명
 tlstkdrn  | 2020·08·12 01:39 | 조회 : 6
21세기 불안 시대 조명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21세기가 불안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를 설명하고 분석하며 계몽하는 데 바우만은 탁월한 역량을 선보였다. 2020년대의 미래에 바우만이 던지는 메시지는 뭘까.
  개인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서구 사회학자들을 들라면, 나는 앤서니 기든스, 울리히 벡, 리처드 세넷, 그리고 바우만을 꼽곤 했다. 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는 바우만이다.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바우만의 개인적 배경이다. 기든스가 영국 태생, 벡이 독일 태생, 세넷이 미국 태생인 반면, 바우만은 폴란드 태생이다. 바우만은 1925년 유럽의 변방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이었다. 비서유럽 출신이라는 바우만의 이러한 개인적 배경은 그로 하여금 서유럽 역사와 사회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둘째는 바우만의 탐구 정신이다. 바우만은 일흔 살을 넘어 자신의 사상인 ‘액체 현대’ 이론을 발표했다. ‘액체 현대’를 필두로 ‘액체 사랑’, ‘액체 인생’, ‘액체 공포’, ‘액체 시간’, ‘액체 현대 세계로부터의 편지’, ‘액체 현대 세계의 문화’, ‘액체 감시’, ‘액체 현대 세계의 관리’, ‘액체 악마’의 ‘액체’ 시리즈와 ‘레트로토피아’ 등의 저작들은 바우만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부각시켰다.
   바우만의 이름이 서구 지식사회에 알려진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유태인이란 이유 때문에 폴란드에서 쫓겨난 그는 영국으로 이주해 리즈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에는 계급·사회주의·사회이론을 연구했고, 198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현대성 탐구로 연구 방향을 선회했다.
   바우만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저작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1989)다. 이 책에서 그는 유태인 집단학살에서 근대적 관료제와 도구적 합리성이 그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밝혀내 현대성의 그늘을 고발했다. 이 저작으로 그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권위 있는 아말피상을 1992년 수상했고, 현대성 담론을 주도하는 이론가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지식사회를 넘어 시민사회에서 바우만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였다.
   액체 현대는 바우만 사상을 대표하는 사회 이론이다. 그는 우리 시대가 ‘고체 현대’에서 액체 현대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고체 현대란 계획적이고 합리적이고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사회를 말한다. 반면 액체 현대란 우연적이고 불확실하고 끝없이 변화하고 예측불가능한 사회를 말한다. 바우만에 따르면, 지난 20세기 후반 서구는 고체 현대 사회에서 액체 현대 사회로 변동했다.
   무엇이 이러한 액체 현대 사회를 가져왔을까. 바우만은 세 차원을 주목했다. 먼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삶은 지구적 현상이 됐다. 또한, 국민국가적 수준에서 복지국가가 후퇴하고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일자리 등 우리 삶의 불안정성이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생활에 소비가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변덕스러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됐다.
   바우만이 강조하려는 것은 이러한 우연성, 불확실성, 이동성, 예측불가능성이 낳은 개인적 결과였다. 우리 시대는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어깨 위에 부과하고 새로운 유형의 삶을 모색하게 하는, 다시 말해 모든 것들이 개인화하고 사적으로 변화하는 시대라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자 통찰이었다. 은퇴 이후 자신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바우만은 2017년 세상을 떠났다.
   2020년대에 바우만의 사상이 던지는 함의는 그렇다면 뭘까. 바우만의 탁월성은 새로운 개념의 발굴에 있다. 특히 그는 흥미로운 개념틀을 주조해 우리 시대를 날카롭게 분석해 왔다. 그 대표적인 개념틀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입법자와 해석자’다. 바우만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개입한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스트들은 확실성과 보편성의 기준을 세우려는 입법자로서의 입장을 취한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상이한 전통과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해석자로서의 입장을 가진다. 바우만은 입법자로서의 기획이 실패했다고 진단하지만, 동시에 해석자로서의 상대주의가 극단화되는 것 또한 경계한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가까운 중간적 견해를 선보인다.
  두 번째는 ‘여행자와 방랑자’다. 이 개념틀은 액체 현대의 승자와 패자를 설명하기 위해 주조한 것이다. 여행자란 세계화와 정보사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현실 및 가상의 세계사회를 무대로 해 살아간다. 반면 방랑자는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그늘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주 낮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타국으로 이주한다. 여행자와 방랑자는 액체 현대가 가져온 새롭고 낯선 풍경이다.
   세 번째는 ‘정원사와 사냥꾼’이다. 바우만에 따르면, 정원사는 앞선 시대의 인간상이다. 정원사에게 세계와 삶은 하나의 정원이었다. 정원사는 자신의 계획대로 정원을 가꿀 수 있었다. 바우만은 이러한 행복한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이제 우리 인간은 사냥꾼이 돼 끝없이 펼쳐진 사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냥을 할 수밖에 없다. 사냥을 포기할 경우 사냥감이 되는 게 액체 현대의 현실이다. 정원사와 사냥꾼의 개념틀을 통해 바우만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불안의 정곡을 찌른다.
   지난 30년 간 바우만 사상이 갖는 대중적 힘은 여기에 있다. 바우만을 읽으면서 우리가 입법자인지 해석자인지, 여행자인지 방랑자인지, 정원사인지 사냥꾼인지를 돌아보고, 우리 삶이 놓인 자리를 성찰하게 한다.
   바우만은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하게 된다’고 말한다. 무기력과 고립감과 두려움에 대한 그의 통찰이 바로 나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또, 바우만은 ‘현대화는 잉여 인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이로 인한 사회적 긴장 또한 유발한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잉여로서의 쓰레기가 되는 삶’에 대한 그의 비판은 결코 작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바우만은 우리 시대가 각자도생,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불안사회라는 것을 일러준다. 이러한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바우만은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액체 현대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 권력에 대한 정치의 통제력 회복, 현실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회의주의적 태도가 그것이다.
   어떤 이들은 바우만이 적극적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바우만은 정책입안가가 아니라 사회사상가다. 그는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인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가 전달하려는 것은 연대와 경쟁, 자유와 불안이 공존하는 21세기에 자유와 연대를 어떻게 회생시킬 수 있는지의 방법이다. 비관적 현실에 회의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의미 있는 삶과 사회의 방향을 바우만은 모색하고자 한다. 2020년대에 바우만을 계속 읽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우만은 우리 사회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모아왔다. ‘액체 현대’를 위시해 그의 거의 모든 저작들은 우리말로 옮겨졌다. 적지 않은 이들이 바우만에 공감한 까닭은 그의 사유가 보여주는 설득력에 있다. 지구적 차원에서 불안사회라는 우리 시대가 놓인 자리를 바우만만큼 날카롭고도 흥미롭게 분석한 이는 찾기 어렵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우만이 강조한 불안이 우리 사회·문화를 이루는 핵심 코드라는 사실이다. 20대의 위기의 청년실업, 30대의 불안정한 일자리, 40대의 두려운 구조조정, 그리고 50대 이후의 막막한 고령사회는 그 불안의 실체다. 이 불안이 분노를 유발하고, 이 분노가 다시 불안을 구조화시키는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러한 불안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지적했듯, 바우만은 액체 현대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에 맞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더하여, 문제 해결 주체로서의 정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요컨대 2020년대 우리 사회에서 역시 문제는 경제이자 동시에 정치다. 불안을 낳고 구조화시키는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혼돈의 정체성에 맞서기 위해선 앞서 말한 자유와 연대의 정치적 상상력 및 실행력이 중요하다. 2020년대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상상력과 실행력이 확장되고 강화되길 소망하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참고문헌>
   1. 김호기, "21세기 불안시대를 조명한 사회학자  바우만", 한국일보, 2020.8.11일자.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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