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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세한도를 그린 암행어사 김정희 이야기
 tlstkdrn  | 2020·09·09 14:39 | 조회 : 14
세한도를 그린 암행어사 김정희 이야기

1. 두 영세불망비 이야기
   청나라 연호로 도광 6년 7월 어느 날 충청우도(지금 충남과 얼추 비슷하다) 보령군 남포현 주민들이 현감을 위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세웠다. ‘도광 6년’은 순조 26년인 1826년이다. 날짜를 기억해둔다.
   현감 이름은 성달영(成達榮)이다. 영세불망비는 ‘은덕을 영원토록 잊지 못한다’는 뜻을 담은 비석이다. 석 달 전인 4월 6일 충청감사 김학순(金學淳)이 “남포현감 성달영이 세금을 잘 거둬 지극히 가상하니 상을 달라”고 이조에 보고서를 올렸다.(1826년 4월 6일 ‘승정원일기’) 이 대단한 사또 비석은 남포읍성 입구에 서 있다.
   충남 서산시 대산사거리에는 순조 때 충청우도 암행어사였던 추사 김정희 공덕비가 서 있다. 김정희는 충청남도 전역을 암행하며 대소 고을 관리들이 비행을 적발해냈다.
   충남 서산시 대산사거리에는 순조 때 충청우도 암행어사였던 추사 김정희 공덕비가 서 있다. 김정희는 충청남도 전역을 암행하며 대소 고을 관리들이 비행을 적발해냈다.
   충남 서산시 대산종합시장 건너편 산기슭에도 비석들이 서 있다. 주소는 대산읍 대산리 1365-8번지다. 계단 위 맨 오른쪽 비석은 1826년에 충청우도를 다녀간 암행어사 영세불망비다. 그가 행한 공덕이 적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줄이 ‘永防加歛·영방가렴’, ‘가렴주구가 더함을 영원히 막아줌’이다. 세운 날짜는 1826년 9월이다.
   그해 6월 24일 암행어사가 올린 보고서에는 충청우도 수령 59명 이야기가 나온다. 이 가운데 남포현감 대목이 굉장히 길다. 첫 문장만 보면 나머지는 읽을 일이 없다. ‘밤낮으로 오로지 자기 배를 채울 생각만 한다(晝宵一念只在肥已·주소일념지재비이)’(1826년 6월 24일 ‘일성록’)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세금을 과도하게 거둬 원래만큼만 나라에 바친 뒤 나머지는 싹 챙겨먹는, ‘법 무시하기로는 있어서는 아니 될 부류’라는 것이다.
   이 남포현감이 주민들이 한 달 뒤 영세불망비를 세워준 그 성달영이다. 암행어사에 의해 비리가 현장 적발되고 조정에 보고서가 올라가고 나서도 부득부득 주민들을 들볶아 기어이 공덕비를 움켜쥐었다. 그 파렴치한 가렴주구 행각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짐작하고 남는다. 그해 5월 암행어사가 그 비리를 적발해내자 충청감사 김학순은 “(포상을 신청했던) 남포현감이 현장에서 봉고파출(封庫罷黜)됐다”고 조정에 급전을 올려야 했다. 물정 모르는 감사가 포상 신청을 올리고 한 달 뒤 어사가 들이닥쳐 현청 금고를 잠가버린 뒤 현감을 파면하고 품계 또한 강등해버렸다는 뜻이다.(1826년 5월 21일 ‘승정원일기’)
   민란의 시대였다. 보고서 다음 날 충청우도 전·현직 수령 12명이 처벌을 받았다. 탐관오리를 소탕해버린 이 암행어사 이름이 김정희, 세한도를 그린 그 추사 김정희다.
                                               2.  김정희 손에 들어간 남연군묘 名茶
    김정희는 재주 많은 예술가요 학자였고 유능하고 꼼꼼한 행정가였다. 지난달 소유자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세한도(歲寒圖)’는 1844년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됐을 때 그린 대표작이다. 글씨는 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산 꼭대기에 있는 신라 진흥왕순수비 정체를 밝혀낸 금석학 전문가이기도 했다(김정희는 자기가 이 비석 정체를 밝혔노라고 손수 또박또박 ‘김정희 다녀간다’고 두 번이나 비석에 낙서를 새겨 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김정희가 자기 벗에게 편지를 쓴다. ‘송나라 때 만든 소룡단(小龍團) 한 덩이를 얻었다. 기이한 보물이다. 와서 보고 싶지 않나?’(정민, ‘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 김영사, 2011) 1852년 12월 19일 다반(茶伴)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다. 함경도 북청 유배 생활을 마치고 경기도 과천에 자리를 튼 해다. ‘소룡단’은 송나라 때 명차다. ‘용단승설(龍團勝雪)’이라고도 한다. 700년 전 송나라 때 황실 진상 차가 손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흥선대원군이 덕산현에 묏자리를 보러 갔다가 고려 옛 탑에서 용단승설 네 덩이를 얻었다. 내가 하나를 얻어 간직하였다.’(이상적·李尙迪, ‘기용단승설’, 은송당집 속집, 정민, ‘한국의 다서’, 김영사, 2020, 재인용)
   이 글들을 읽어보면 이상적(李尙迪)이라는 사람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용단승설을 얻었고, 그 차가 김정희 손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위 ‘세한도’ 오른쪽 위를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藕船是賞(우선시상)’. ‘우선, 보시게나.’ 우선(藕船)은 이상적의 호다. 이상적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김정희를 스승으로 모셨던 사람이다. 그 착한 제자에게 김정희가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그리고 그 이상적이 대원군으로부터 기이한 보물 ‘용단승설’을 얻었다는 것이다. 700년 된 송나라 차와 세한도와 김정희. 마치 기차와 고등어처럼 연결될 수 없는 사물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곳이 내포요, 남연군묘다.
                                               3.  남연군묘와 송나라 차 ‘용단승설’
   이상적은 순조 때 역관이며 시인이다. 그의 문집 ‘은송당집(恩誦堂集)’ 속집에는 ‘기용단승설(記龍團勝雪·용단승설을 기록함)’이라는 글이 들어 있다. 앞서 말했듯, 이 글에 흥선대원군이 남연군 묏자리에 있던 탑에서 용단승설 네 덩이를 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상적에 따르면 탑에서 나온 차는 ‘표면에 용을 만들어 넣었고 옆에는 勝雪(승설) 두 글자가 음각돼 있었다. 사방 한 치에 두께는 절반이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작설차라 부르는 엽차(葉茶)가 아니라 ‘덩어리’ 차다. 이 덩어리를 떼서 차 맷돌로 곱게 갈아 물에 타서 마시는 농차(濃茶)다. 원나라 때까지 중국에서 흔했던 다도였고, 고려에서도 유행했던 다도였다.
   매천 황현 또한 이 에피소드를 ‘매천야록’에 기록해놓았다. 1866년 오페르트 일행이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다 달아난 이야기 끝부분이다. ‘대원군이 이건창에 장례 치른 이야기를 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탑을 헐고 보니 그 속에 백자 2개, 덩어리차(團茶·단차) 2병, 사리 3개가 있었다.”’(황현, ‘매천야록’ 1권, ‘보덕사 창건’)
   왜 그런 귀한 차가 탑 속에 있었을까. 이상적 글에 이런 부분이 있다. ‘고려승 의천과 지공, 홍경 무리가 앞뒤로 경전을 구하려고 송나라를 계속 왕래했다. 이들이 다투어 이름난 차를 구입해 불사(佛事)에 바쳤고, 심지어는 석탑 안에 넣어두기까지 했다.’ 왕실 원찰이기도 했던 가야사를 창건할 때, 그 창건주들이 그 귀한 차를 탑에 봉양했다는 뜻이다. 탑에서는 작은 동불(銅佛)과 니금경첩(泥金經帖), 사리와 침향단, 진주도 함께 나왔다. 그리고 그 차 한 덩이를 대원군이 자기에게 줬다고 했다.
                                                       4.  이상적과 세한도
   이상적은 김정희의 제자다. 스승 김정희는 벼슬살이 기간 유배를 세 번 당했다. 고금도에 한 번, 제주도에 한 번, 그리고 함경도 북청에 한 번. 그 가운데 1840년 제주 유배가 9년으로 가장 길었다. 그 세 차례 유배 동안 물심으로 뒤를 돌봐준 사람 가운데 제자 이상적이 있었다.
   직업이 역관인지라, 이상적은 북경에 드나들며 귀한 책을 스승에게 보냈다. 1844년 이상적이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이라는 120권짜리 책 전질을 스승에게 선물했다. 그 감동과 고마움에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1844년)다. 제자는 선물받은 그림을 북경으로 가져가 명사들로부터 감상문을 받아 그림 뒤에 덧붙였다. 위 사진 왼쪽에 그 글들이 그림만큼 길게 붙어 있다.
                                              5.  세한도, 용단승설 그리고 김정희
   그런데 인연은 끝이 아니었다. 1848년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김정희는 또 3년 뒤 1851년 철종 2년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당했다. 그때 나이가 예순다섯 살이었다.
   늙은 나이에 유배 생활을 하는 스승이, 이 극진한 제자는 몹시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때 스승에게는 호(號)가 여럿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승설(勝雪)’이었다. 스물세 살 때 북경에서 맛본 용단승설차를 잊지 못해 지은 자호다. 유배에 지친 그 승설 스승에게 제자 이상적이 자기가 간직하고 있던 용단승설차를 선물했다. 김정희는 이듬해 유배에서 풀려난 뒤 차를 함께 즐기던 초의선사에게 “송나라 때 만든 소룡단(宋製小龍團·송제소룡단)을 얻었다”고 자랑한 것이다.
                                              6. 조선에 없는, 다완(茶碗)의 비밀
   결론을 내리면, 천하의 대원군과 천하의 역관과 천하의 행정가 겸 예인(藝人)이 하나같이 뻐길 정도로 귀한 차가 충청우도 덕산현 산골짜기 사찰 탑에 700년 동안 숨어 있었다. 그 예인은 한때 충청우도를 휩쓸며 탐관오리를 벌벌 떨게 만든 암행어사였고.
   그런데 이상하다. 용단승설차 같은 농차(濃茶)를 마시는, 입 넓은 다완(茶碗)은 지금도 보기 드물다. 조선에서는 농차가 아니라 엽차를 마셨다. 청나라 또한 조선과 같은 엽차가 주류였다. 그 다완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애지중지했던 ‘이도다완(井戶茶碗)‘이 그 예다. 왜? 비밀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1391년 내린 칙령에 숨어 있다. “백성을 심하게 노동시키는 용단차 제조를 금지한다(以重勞民力罷造龍團·이중로민력파조룡단).”(1391년 9월 16일 ‘태조고황제실록’) 황제 칙령 하나가 아득한 후세까지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1. 박종인, "석탑에서 나온 700년 명차를 추사에게 선물했다네”, 조선일보, 2020.9.9일자. A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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