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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특별기고] 우암 송시열 선생 탄생 413주년을 경축하며
 tlstkdrn  | 2020·12·31 02:55 | 조회 : 31
                                 [특별기고] 우암 송시열 선생 탄생 413주년을 경축하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신상구

   2020년 12월 30일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탄생한지 413주년이 되는 경사로운 날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년)은 1607년(선조 40년) 12월 30일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촌 외가에서 은진 송씨 송갑조(宋甲祚)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 또는 우재(尤齋)이다.
   봉사(奉事) 구수(龜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응기(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갑조(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 곽씨(善山郭氏)로 봉사 자방(自防)의 딸이다.
   우암 송시열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세 살에 스스로 문자를 알았고, 7세에 형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이를 받아썼다 한다. 아버지는 항상 주자는 공자의 후계자요 율곡은 주자의 계승자임을 강조하면서 송시열에게 주자를 열심히 배우라 권했다.
   이후 8세가 된 송시열은 이종인 송이창(宋爾昌)의 문하에서 그의 아들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학문을 닦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후일 평생 뜻을 같이한 계기가 이때 마련된 것이다. 12세 때에는 아버지로부터‘격몽요결(擊蒙要訣)’·‘기묘록(己卯錄)’ 등을 배우면서 주자(朱子)·이이(李珥)·조광조(趙光祖) 등을 흠모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우암 송시열은 1625년(인조 3) 19세 때에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과 결혼했고, 22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삼년상을 마친 뒤, 충남 연산에 은거하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다.
   우암 송시열은 27세 때인 인조 11년인 1633년에 생원에 장원급제하여 봉림대군(추후 효종)의 사부를 역임하고 인조, 효종, 현종, 숙종 네 임금을 모시며 이조판서, 우의정 두 차례, 좌의정을 역임한 정통관료로 사색당쟁의 주역으로 활약해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무려 3,000번이나 올랐다.
   한편 우암 송시열 선생은 동방 18현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孔子), 주자(朱子), 정몽주(鄭夢周), 조광조(趙光祖), 송익필(宋翼弼), 이황(李滉), 이이(李珥), 조헌(趙憲),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어받아 조선 후기의 지배적인 정치·철학·사회사상인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확립한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성리학의 핵심은 직(直)과 예(禮)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공자와 주자를 잇는 ‘송자(宋子)’로, 산림(山林)의 종장으로, 북벌과 예치를 국가 대의로 내걸고 시대를 이끌어간 대로(大老)로 추앙되었고, 사후에는 학덕으로 문묘와 70여 개의 사우에 배향되는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그래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송준길(宋浚吉), 이유태(李惟泰), 윤선거(尹宣擧), 유계(兪棨) 선생과 함께 '충청오현'으로 꼽히고 있다.
   우암 송시열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문장력이 뛰어나 일평생 한시 860여 수와 역사적 유명인사 묘비 600편을 남겼고, 서예론과 여성교육론에도 조예가 깊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주자대전차의’, ‘주자어류소분’, ‘송자대전’ 등을 들 수가 있다.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로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장암(丈巖) 정호(鄭澔),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명재(明齋) 윤증(尹拯) 등을 들 수가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7군데 생거지, 6군데 적거지, 인생 만년에 22년간 거주하던 화양구곡에 남겨 놓은 유물과 유적은 관광자원과 창의융합교육 자료와 한국과 중국의 문화와 관광교류를 활성화하는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대전광역시 동구 우암사적공원에 마련된 유물관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영정과 인장, 효종이 우암에게 북벌을 당부하며 하사했다는 담비털옷, 글씨와 장서 등 그 당시 역사적 배경을 살필 수 있는 것들이 전시되어 선생의 흔적을 쫓아 사적공원을 찾은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서인 중에서 강경파였던 노론 세력의 중심인물로 고집불통이고 독선적인 당쟁의 화신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초당적인 존숭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암 송시열 선생의 검소하고, 예의 바르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상부상조하고, 학문을 숭상하는 참선비적 삶과 산림활동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상당한 귀감이 되고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26세까지 구룡 마을에서 살아서 생가 터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45호인 유허비가 건립되었다.
   옥천군과 옥천문화원은 그의 생일인 음력 11월 12일을 전후해 해마다 구룡마을에서 숭모제를 열고 있다. 탄생 413주년을 기리는 숭모제는 지난 2020년 11월 16일 그의 고향인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마을에서 지역 유림과 은진 송씨 후손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국립청주박물관이 우암 송시열 선생 탄신 400주년을 기념하여 2008년 1월 청명관에서 우암 송시열 선생 기획 특별전시를 열고, 대전광역시 동구청과 동구문화원이 해마다 10월 말에 우암사적공원에서 우암 송시열의 높은 학덕과 대의를 기리는 우암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필자 신상구 국학박사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 『아우내 단오축제』(1998),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  『흔들리는 영상』(공저시  집, 1993),  『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5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중봉 조헌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 110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사)대한사랑 자문위원, 평화대사, 통합논술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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