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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외국인 아닌 자국민이 천주교회 시작한 건 한국뿐이래요
 tlstkdrn  | 2021·11·26 03:24 | 조회 : 102
                          외국인 아닌 자국민이 천주교회 시작한 건 한국뿐이래요

                                                                                        이승훈과 천주교 전래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세례(천주교 신자가 되는 의식) 받은 인물인 이승훈(1756~1801)을 기리는 역사공원이 인천에 만들어진다고 해요. '이승훈 역사공원'은 내년 12월 그의 무덤이 있는 인천 장수동에 '천주교 역사문화체험관'과 함께 문을 열 예정입니다.
   이승훈이 중국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해 천주교 공동체를 설립한 1784년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해로 불려요. 이처럼 외국 선교사가 아니라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천주교회를 설립한 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합니다.

                                        베이징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례 받아
   "계묘년(1783년) 겨울 부친을 따라 연경(베이징)에 갔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사는 집이 웅장하고 기묘해 볼 것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가봤죠. 서로 인사를 하고 바로 자리를 파할 무렵에 서양인이 곧바로 '천주실의' 몇 질을 내놓으면서 마치 차나 음식을 접대하듯 했습니다."
   '정조실록' 1791년(정조 15년) 11월 8일 기록에 나오는 이승훈의 의금부(죄인을 심문하던 관청) 진술 내용이에요. 이승훈이 서양인 신부를 처음 만나는 저 순간은 한국 천주교사에서 무척 중요한 대목이지요. '천주실의'는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쓴 천주교 교리 서적이에요.
   이승훈은 서울 중림동의 남인 계열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처남은 유명한 실학자 정약용·정약전 형제였습니다. 이승훈은 다른 남인 계열의 소장학자들처럼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학(서양 학문)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때 천주교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1783년 청나라로 가는 사신단 일원인 아버지 이동욱을 따라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베이징에서 새해를 맞은 이승훈은 그곳 천주교회를 찾아가 필담(글로 써서 묻고 대답함)으로 교리를 배웠다고 해요. 마침내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인 장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게 됐습니다. 세례명은 예수의 대표적 제자 이름인 '베드로'였어요. 이때 그의 나이는 만 28세였습니다.

                                      귀국 후 조선 첫 천주교회를 세웠어요
   당시 베이징의 서양 선교사들은 이승훈의 세례에 매우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선교사들이 외국을 방문해 전교(종교를 전파함)해왔는데, 이승훈은 선교사들의 발길이 닿은 적도 없는 나라에서 스스로 찾아와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이승훈은 천주교 서적과 십자가상, 묵주, 성화 등을 지니고 귀국한 뒤 주변 인물이었던 이벽과 권철신 등을 천주교에 입교시키고 중인·상인·부녀자 등으로 전교 범위를 넓혔습니다.
   이승훈은 서울 명례방(지금 명동·충무로 일대)에 있던 역관 김범우의 집에서 정기적 신앙 모임을 열었어요. '명례방 공동체'로 불리는 이 모임을 조선 천주교회의 시작으로 봐요. 이 모임이 열린 김범우의 집 인근이 바로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 상징인 서울 명동성당 자리입니다. 이후 충청도 내포, 전라도 전주에도 신자 공동체가 만들어졌죠.
   그러나 1785년 명례방 공동체가 관아에 발각되면서 최초의 박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만 해도 정조의 온건한 방침으로 천주교인을 사형시키진 않았지만, 이승훈은 천주교 서적을 불태우고 배교(믿던 종교를 배척함) 선언을 했어요. 천주교는 1939년 이전엔 조상 제사를 금지했는데, 이 점 때문에 양반이었던 이승훈은 가문의 압력을 심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이승훈은 이후에도 두 번 더 배교했는데, 천주교 교리를 계속 전파하려면 당장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어요. 이승훈은 배교 후 다시 은밀하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길 반복했거든요.
   1791년 일어난 신해박해 때 이승훈은 평택현감 자리에서 파직되고 감옥에 갇혔어요. 그래도 조선의 천주교인은 계속 늘어나 18세기 말엔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승훈은 결국 1801년(순조 1년) 100여 명이 처형당한 신유박해 때 순교했어요.
   이승훈이 자신의 세례명인 '베드로'가 실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것처럼 세 차례나 배교 선언을 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가 조선에 천주교의 씨앗을 뿌리고 반석 같은 존재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평등 사상' 불어넣었어요
   신해박해와 신유박해를 겪은 조선 천주교회는 1839년(헌종 5년)의 기해박해, 1846년(헌종 12년)의 병오박해를 거쳐 철종 때는 신자 수가 크게 늘었지만,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를 당하며 1만명 이상이 순교하는 큰 고초를 겪습니다.
   다시 20년이 지난 1886년 조선·프랑스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뒤에야 천주교는 비로소 조선 땅에서 종교의 자유를 얻었어요. 이승훈이 세례 받은 지 102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조선의 기본 이념은 성리학이었지만, 불교나 도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사형당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천주교는 왜 그토록 박해의 대상이었을까요? 그것은 조선의 천주교회가 조상 숭배를 거부하고 양반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조정 입장에선 '체제를 뒤엎는 반역'으로 여겼기 때문이에요.
   큰 흐름으로 보면 천주교가 조선의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천주교는 개인이 지닌 인격과 양심을 국왕의 권력으로도 흔들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웠고,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지요.  

                                           [유교·불교·도교 순으로 전래]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외래 종교는 유교로 알려져 있어요. 전래 시기는 길게는 기원전 3~2세기 고조선, 짧게는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로 보고 있어요. 불교는 고구려에는 372년, 백제엔 384년에 전해졌어요. 신라는 눌지마립간(재위 417~458) 때 첫 전래된 뒤 527년 법흥왕 때 공인됐어요. 도교는 624년 고구려에 전파됐고 643년 실권자 연개소문의 건의로 한때 국가 종교의 지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한국 개신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견이 있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선 평안도 의주 출신의 김진기·이성하·이응찬 등이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를 만난 뒤 입교한 1876년을 그 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1. 유석재, "외국인 아닌 자국민이 천주교회 시작한 건 한국분이래요", 조선일보, 2021.11.25일자. A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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