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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격변에 맞선 ‘오디세우스 생존법’
 tlstkdrn  | 2022·01·15 03:05 | 조회 : 38

                                             격변에 맞선 ‘오디세우스 생존법’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오디세이아’는 낯선 세계의 모험들로 가득하다. 이 모험담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퀴클롭스, 황홀한 노래로 뱃사람을 미혹하는 세이렌, 사람들을 짐승들로 바꿔놓는 ‘무서운 여신’ 키르케 등이 등장한다. 오디세우스는 10년 귀향길에 온갖 괴물들과 대면하고 지하세계에서 죽은 자들까지 만나고 돌아온다. 그래서 ‘오디세이아’는 수많은 일을 겪은 사내의 이야기이자 험난한 모험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먼 곳 낯선 세계의 모험이 전부는 아니다. 오디세우스의 진짜 모험은 20년 만에 돌아온 집안에서 펼쳐진다. 고향이 위험하고 낯선 세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낯선 고향에 온 영웅
   왜 트로이아를 정복하고 돌아온 꾀 많은 영웅이 환영받지 못했을까? 오디세우스는 열두 척의 함선을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다. 하지만 함께 떠난 동료들은 전쟁터에서, 바닷길에서 모두 죽고 귀향한 것은 오디세우스뿐이었다. 동료들의 죽음이 그의 탓은 아니다. 하지만 자식과 형제를 잃은 사람들에게 오디세우스는 난파선에서 혼자 생환한 선장처럼 밉지 않았을까?

   가장(家長)이 없는 동안 오디세우스의 집안 역시 혼돈 상태에 빠져들었다. 넓은 마당에 100명이 넘는 사내들이 몰려와 매일 잔치를 벌인다. 그의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하려는 구혼자들이다. 성춘향을 겁박한 것은 변학도뿐이었지만, 페넬로페 주변에는 100명의 사내들이 득실거린다. ‘옛 남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우리 중 하나를 새 남편으로 맞으라.’ 그들은 여인을 닦달한다. 겨우 스무 살이 된 아들은 가산을 축내며 어머니를 넘보는 불한당들이 죽도록 밉지만, 맞설 힘이 없다. 아들에게는 어정쩡해 보이는 어머니의 태도도 불만스럽고, 정체성의 혼란도 그를 괴롭힌다. 전혀 본 적 없는 ‘오디세우스’라는 사람이 내 아버지가 맞나? 누구보다 난감한 것은 물론 페넬로페이다. 지혜롭고 덕스러운 여인의 인내와 지혜도 바닥났다. 3년 동안 그녀는 꾀를 내어 사내들을 따돌렸다. ‘시아버지 수의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로 시간을 끌며 낮에는 짜고 밤에는 푸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구혼자들과 내통한 하녀의 밀고로 속임수가 탄로 났다. 페넬로페에게는 이제 버틸 힘도, 청혼을 미룰 방법도 없다.

   그러니 스무 해 만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에게 고향은 친숙한 곳도, 안전한 곳도 아닐 수밖에. 트로이아의 정복자는 새로운 정복에 나서지만, 자기 집을 되찾기는 남의 나라를 얻기보다 더 어렵다. 그는 혼자다. 게다가 전장에서나 모험 중에는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했지만, 달라진 집안에서는 모든 것이 안갯속이다. 집안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밀림이다. 싸움은 이제 암투가 된다. 그의 암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임기응변’과 ‘인내’
   이 지점에서 영웅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오디세우스에게는 20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이 낯선 세계였지만, 우리에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일상이 낯선 세계다. ‘변화만이 살길이다’는 구호가 우리의 삶을 뒤흔든다. 친숙했던 논밭에 느닷없이 신도시가 들어서고 편리를 앞세운 기계들이 곳곳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뿐인가? 외부 환경의 변화는 직장, 친분, 가족 관계까지 바꿔놓는다. 가까움과 친숙함이 멀고 낯선 관계로 돌변한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고향에서의 모험자가 된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달라진 고향에서 살길을 찾듯, 우리는 낯선 환경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는 땅바닥에 내던져진 물고기의 버둥댐처럼 절망적일 때가 많다.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에게는 두 가지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하나는 바뀐 상황에 재빨리 적응하는 임기응변의 지혜였다. 그는 떠돌이, 거지, 먼 나라의 손님 등으로 정체를 바꿔가면서 새로운 관계를 엮어간다.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알 수 없는 낯선 고향에서는 자신의 정체는 숨기고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면서 안전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오디세우스의 또 다른 재능은 참고 견디기였다. ‘많이 참는 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치욕을 참고 분노를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 구혼자들과 통정하는 하녀들을 보며 그는 가슴을 친다. “참아라, 마음이여! 너는 더 개 같은 다른 일도 참았다!” 참기의 달인에게도 돌아온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아내에 대한 연민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 감정도 눌러야 했다.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니까.
                                                          21세기의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는 임기응변의 지혜와 굳센 인내를 발휘해 고향의 낯선 세계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해피 엔딩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오디세이아’에서는 해피 엔딩을 기약하기 어렵다. 아무리 임기응변과 인내를 발휘해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 2013년 무렵 그리스 경제 위기를 그린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원제 Worlds apart) 속 ‘오디세아스’의 운명이 그랬다. 그는 갑자기 몰려온 구조 조정의 파고에 휩쓸린다. 그와 동료들의 운명은 ‘트로이한트’(신탁관리)의 이름으로 먼 나라에서 온 미녀 엘리제의 손에 맡겨진다. 오디세아스는 그녀와 가까워진 친구에게 자존심도 팽개치고 애원하지만 해고를 피할 수 없다. 오늘 자르는 자가 내일 잘리는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구원하겠는가? 오디세아스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 지하 세계로의 마지막 여행뿐이다. 1997년의 위기를 겪은 우리도 잘 아는 상황이다. 변화가 몰아치는 세상은 항상 ‘1997년’이다.

                                                              행복을 위한 변화

   환경이 변할 때 적응해야 하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환경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이런 인위적 변화는 흔히 ‘개선’, ‘혁신’,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그러나 잘 따져봐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속도로 바꿔야 할까? 변화의 혜택이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갈까? 이런 질문 없이 변화를 찬양하는 사회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바꿔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광속으로 바뀌는 현실에 적응하는 데 시달린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성공과 실패가 나뉘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 남녀노소가 분열한다. 그러니 ‘개선’과 ‘합리화’를 내걸고 사람들을 들볶는 현실은 오디세우스의 고향보다 더 낯설고 위험한 세상이 아닌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구호를 보편적 진리로 여기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수시로 바뀌는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행복한가? 2022년에는 ‘행복한 삶을 위한 변화’를 시작해 보자. 바꿀 것과 지킬 것을 지혜롭게 가려내면서, 더뎌도 참아내면서.
                                                               <참고문헌>
                                                    
   1. 조대호, "임기응변과 굳센 인내… 격변에 맞선 ‘오디세우스 생존법’", 동아일보, 2022.1.14일자. A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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