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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제주 4.3사건 75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추념식 행사
 신상구  | 2023·04·05 17:41 | 조회 : 129
              
                    <특별기고>  제주 4.3사건 75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추념식  행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신상구
      
                                      1. 제주 4.3사건 75주년의 역사적 의의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남로당이 주도한 총파업, 경찰·서북청년단의 검속·탄압, 남로당의 무장봉기, 계엄령선포 및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검속 및 즉결처분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되었다. 사건은 1954년에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막을 내렸다.

  4.3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1947년 3.1절 기념식이었다. 제주 북국민학교에서 열린 1947년 3.1절 기념식에는 제주 역사상 최대 인파인 3만명의 시민이 모였는데 ‘3상회의 결정 즉시실천’,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등의 슬로건이 나왔다. 이는 이승만과 미군정이 추진하는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남북 통일정부를 구성하자는 정당한 요구였다. 미군정의 방침에 반하는 표어가 등장하자 미군정은 과잉대응 하였고,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시민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당국이 발포에 대해 당연히 사과해야 함에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처벌, 색출이라는 강경책으로 치닫자 시민들의 분노는 커졌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해외에서 귀환한 동포 6만명의 구직난, 콜레라의 창궐, 극심한 흉년, 생필품 부족과 물가고, 친일경찰의 존속, 미군정 관리들의 부패, 이승만의 욕심에 의한 남한 단독정부 추진 등 여러 가지 겹친 문제로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3.1절 사건에 대한 분노는 3.10 총파업과 학생들의 동맹휴학으로 나타났다. 도지사가 항의의 뜻으로 사임했고, 일부 경찰들조차 항의에 동조하였다. 미군정은 이때라도 사과하고 수습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과 대신 제주도를 ‘빨갱이 섬’이라고 규정하고는 철저한 탄압, 체포에 나섰다. 경찰의 힘만으로 안 되니 악명 높은 테러단체인 서북청년단까지 섬에 투입하여 무자비한 진압에 나서는 바람에 제주도에 피바람이 불었고, 제주도민들은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앉아서 당하느냐 맞서 싸우느냐의 선택밖에 없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남로당 제주도 군사부장 김달삼이 이끄는 5백명의 유격대가 11개 지서와 서북청년단를 습격하여 친일경찰과 악질 극우파들을 응징살해했다. 이것이 제주 4.3 사건의 ******이다.

  4.3 사건의 진압 책임자 중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한 유일한 온건파라고 할 수 있는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유격대장 김달삼과 담판을 벌여 중요한 4.28 합의를 이뤄냈다. 4.28합의의 내용은 72시간의 전투중지, 무장해제와 하산이 이루어지면 주모자들의 신변보장 등 세 가지로서 이것이 사건의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4월29일 미군정장관 딘 소장이 제주도에 날아와 대책회의를 열었는데 이 회의에서 김익렬 중령은 강경파 조병옥과 대립해 멱살잡이까지 하며 싸운 뒤 해임됐다. 당시 경찰 총수 조병옥 경무부장은 "제주 상공에서 기름을 붓고 섬을 몽땅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막말을 한 사람이다. 결국은 강경파가 득세하여 앞뒤 가리지 않는 무차별 진압에 나선 결과 섬은 생지옥이 되어 제주도민 중에서 일가친척 중 희생자가 없는 집이 드물었다.

  1980년대 이후 4·3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각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0년 1월에「4·3특별법」(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공포되고, 이에 따라 8월 28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어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2003년 10월 정부의 진상보고서(『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4·3평화공원 등이 조성되었다.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4·3사건의 인명 피해는 당시 제주도민 30만명 중 25,000∼30,000명으로 추정되고,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9,285동이 소각되었다. 4·3사건진상조사위원회에 신고 접수된 희생자 및 유가족에 대한 심사를 마무리한 결과 2011년 1월 26일 현재 신고된 희생자 14,032명(남로당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는 1,764명)과 희생자에 대한 유족 31,255명이 결정됐다.

  제주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지역 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4·3특별법 공포 이후 4·3사건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21세기를 출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제주도는 2005년 1월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2. 제주 4·3사건 당시  활약한  군경 의인들 이야기  

  제주 4·3사건 당시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선 의인들이 있다. 제주주둔 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 해군 중령은 1950년 8월30일 성산포경찰서에 예비검속자를 총살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무고한 주민을 죽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해당 공문에 ‘부당함으로 미이행’이라고 쓴 후 명령을 거부했다. 덕분에 강순주 씨를 포함해 200여명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문형순 서장은 성산포서장으로 부임하기 전인 1949년 모슬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도 주민 100여명을 훈방했다.

  강순주 씨는 “계엄이 선포된 시절 본인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셨다”면서 “문형순 서장님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애국자로 당시 우리를 풀어주면서 ‘나라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여러분의 할 일이다.

  사회에 나가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평안남도 출신인 문형순 서장은 1953년 경찰 퇴직 후 제주에서 대한극장 매표원 등으로 일하다가 1966년 향년 70세 나이로 유족 없이 제주도립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평안도민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경찰청은 2018년 문형순 서장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하고 추모 흉상을 제주경찰청에 세웠다. 하지만 국가유공자로는 선정되지 못했다.

  그간 네 차례에 걸쳐 문형순 서장에 대한 국가유공자 신청이 접수됐지만 입증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통과하지 못했다. 김익렬 9연대장은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진행하며 유혈사태를 막고 4·3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려고 노력한 군인이다. 하지만 방해 세력에 의해 평화협정은 깨졌고 강경 진압작전을 거부한 김익렬 연대장은 미군정으로부터 해임됐다.

  이외에도 1948년 11월1일 함덕리 평사동 모래밭에서 주민 6명을 총살하려는 토벌대에게 ‘신원을 보증할 테니 죽이지 말라’고 만류하다 함께 희생된 한백흥·송정옥 씨가 있다. 경찰이지만 최대한 주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노력한 장성순·김순철·방상규·강계봉 씨 등도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건 ‘4·3 의인’들이다.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민주화가 되기 이전에 4.3사건 피해자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 찍혀 간첩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서로 불려가 모진 고문을 받아 인권 탄압을 받았고, 연좌제에 묶여 취업이 막혀 일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강순주 씨와 독립유공자 한백흥 지사의 후손들은 의인들의 뜻을 받들고, 4·3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확산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며 자신들이 받은 국가보상금을 4·3 유족회에 기부했다. 이들 외에도 4·3의 완전한 해결과 미래세대를 위해 국가보상금을 유족회와 마을 등에 쾌척하는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3. 제주 4.3 평화공원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제주 4·3 평화공원(濟州 4·3 平和公園)은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공원으로, 4·3 사건의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2008년 3월 28일에 개관되었다.

  공원 안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 위령제단, 위령탑, 봉안관 등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위령제단은 연중 4.3 희생자에 대해 참배를 진행하는 곳이며, 그들을 모시고 있는 위패봉안실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봉안관은 4.3유해발굴 사업 시기에 발굴된 유해를 봉안하는 장소로 현재 380기가 안치되어 있다. 각 명비원에는 희생자의 성명과 성별, 당시 연령 등을 기록해 두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는 총 6개의 특별 전시관이 있다. 제 1관에서는 주민들의 피신처로 활용되었다는 천연동굴을 주제로 한 역사관이 있으며, 제 2관에서는 해방과 좌절이라는 주제로 해방 후 3.1절 기념행사에서 사망한 6명의 민간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제 3관에서는 무장봉기와 분단 거부라는 주제로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무장봉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제 4관에서는 학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5관과 6관에서는 진상 규명 운동으로 상처를 극복해내는 과정과 관람 후의 소감문이 걸려 있다.

                                3. 제주 4.3사건 75주년 추념식 행사 이모저모

  1948년 제주 4.3사건은 2014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해마다 추념식이 국가 행사로 개최되었다.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은 2023년 4월 3일 오전 10시 한덕수 국무총리,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한창섭 행정안전부장관 직무대행,  각 정당 지도부를 비롯한 정치권에서 대거 참석한 가운데에 '4.3은 통일과 자주독립입니다.’를 주제로 식전행사와 본 행사, 식후행사인 문화제 순서로 엄숙하게 개최되었다.

  식전행사에서는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클럽 노래하자 춤추자’의 ‘4월의 별(작사 황금녀, 작곡 김명진)’ 노래와 장필순의 공연이 펼쳐졌다. 이어 오전 10시 정각에 1분간 제주도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울리면서 본 행사가 애국가 제창, 제주4·3 경과보고, 추념사, 추모공연, 유족사연 등 순으로 진행되었다.

  제주 4.3사건 75주년 추념식에서는 특히 경과보고, 애국가 영상, 유족사연 등 행사 전반에 4·3의 명예회복과 실질적 피해회복, 가족관계 회복,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원 등의 의미를 담아내 역사적 의의가 컸다.

  한편, 사단법인 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4월 3일 오후 3시 서울 신촌역 창천문화공원에서 문화 기념식을 개최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제주4.3희생자 추모 기념행사는 그간 위령제 형식의 추념식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일상의 공간에서 ‘4.3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하나의 문화극으로 총화했고, 오는 9일까지 기획전시와 주제강연도 이어진다.

  윤석열(尹錫悅, 1960)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추념사에서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유가족들의 아픔을 국민과 함께 어루만지는 일은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면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길은 자유와 인권이 꽃피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이곳 제주가 보편적 가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더 큰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며 그 책임이 저와 정부, 그리고 우리 국민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유석열 대통령은 “제주를 자연, 문화, 그리고 역사와 함께하는 격조 있는 문화 관광 지역, 청정 자연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보석 같은 곳으로 탈바꿈시켜 세계인들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품격 있는 문화 관광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은 콘텐트 시대다. IT(정보기술) 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 등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업이 제주에서 활약하고 세계 인재들이 제주로 모여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오영훈 제주도 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올해 제75주년을 맞은 4·3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넘어 평화를 향한 전 인류의 유산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며 “우선 4·3의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해 4·3희생자에 대한 국가보상이 이뤄지면서 대한민국 과거사 해결의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며 “직권재심을 통한 희생자의 명예 회복은 사법부가 직접 과거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또한 “추가 진상 조사를 통해 미군정의 책임을 규명하고 평화인권현장과 트라우마 지표를 완성하며 ‘평화의 길’을 열어 가겠다”며 “고통 속에서 건져낸 4·3의 가치가 세계평화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4·3을 보편적인 평화 모델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정의로운 세상은 역사를 바르게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4·3의 진실은 어떠한 역사 왜곡이나 폄훼에도 흔들지 않는다. 4·3은 낡은 이념의 틀을 뛰어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나아갈 것“이라며 ”4·3의 정명(正名)을 찾고, 4·3의 정의로운 해결이 우리 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굳건히 다지는 밑받침이 되도록 뚜벅뚜벅 나아가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 유족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보수정당 및 단체들에서 제주4.3 진실왜곡의 망언과 현수막 게첨은 역사 퇴행의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내면서 제주도민과 13만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다‘며 ”제주4.3은 진보와 보수의 역사의 역사가 아니라,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에 관한 역사”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참고문헌>

  1. "제주 4·3사건 (濟州四三事件)",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3.4.4.

  2. 허호준, “미 군정, 직접 ‘제주도 작전’...당시 사령관 ”내 사명은 진압뿐“, ; “책임 인정하고 사과하라” 요구에도...미, 75년간 묵묵부답“, 한겨레신문, 2023.4.3일자. 4면.

  3. 허호준, “‘빨갱이 가족’ 낙인에...사위들까지 취업 막히고 모진 고문”, 한겨레신문, 2023.4.3일자. 5면.        

  4. 진순현, “제75주년 4·3추념식, 역대급 정부 관심 밖...‘2분 추모사 끝’”, 제주도민일보,

2023.4.3일자.                

  5. 유석재, “제주 4․3사건, 폭동 진압 과정서 무고한 희생자 발생”, 조선일보, 2023.4.4일자. A3면.

  6. 박미라, “제주 4․3 의인들은 ‘역사의 의인’ - 생존자 91세 강순주 씨가 말하는 ‘제주 4․3’ 75주년”, 경향신문, 2023.4.3일자. 1면.

  7. 이정우, “통한의 제주 4․3”, 충청투데이, 2023.4.4일자.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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