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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이삼평 ‘왜군에 적극적 부역’ 불편한 진실
 신상구  | 2023·05·02 05:20 | 조회 : 140


                                 공주시 이삼평 ‘왜군에 적극적 부역’ 불편한 진실

후손이 “이삼평은 임란때 왜군에 길 안내, 충절을 다했다”등 기록
현재 총 4건, 내용도 모두 일치... 덕분에 후손 등 일본서 큰 이익
이삼평 연구 전문가 “그를 도자기술 전파자로만 볼수는 없어”비판

   나카지마 히로키(中島浩氣)라는 일본 아리타 향토 도자사 작가가 "이삼평은 일본군에 군량미 징발, 우차(牛車)의 동원 등 편의를 제공했다"고 쓴 자신의 저서 '히젠도자사고(肥前陶瓷史考)'.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이삼평. 공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에 우수 도작기 기술을 전파해 줬다는 이유로  공주 시민들과 공주시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왜군의 조선 침략 기간 중 ‘부왜(附倭·국가에 반역해 왜군을 도와줌)’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록에 의해 역사적 ‘팩트’인 이 문제는 그의 출신지 논란과 별개로 또 다른 차원의 쟁점이다. 특히 다른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저항한 점, 그의 부왜 내용이 후손의 문서에 자세히 기록된 점, 덕분에 본인과 후손이 일본에서 이익을 취한 점 등은 그를 단순히 ‘도자기 기술을 일본에 전파한 조선의 장인’으로만 볼수 없게 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2023.4.4일 동양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일(渡日) 전 이삼평의 조선 내 부왜 사실은 후손들이 남긴 4건의 공적 문서에 나타난다.

   그의 부왜 행각이 처음 드러난건 1770년(明和 7) 다쿠 지역 영주 다쿠 야스토시(多久安順)의 업무일지(御屋形日記)에 의해서다. 다쿠는 이삼평을 데려간 나베시마의 휘하 장수로, 훗날 일본에서 이삼평을 거둬 관리했다.

   일지에는 이삼평 6대 후손 소우타유(惣太夫)가 제출한 문서 ‘신상구상각(申上口上覚)’이 실려 있다.

   내용은 “영주의 급여가 중단돼 생활이 어려우니 계속 지원 해달라. 선조(이삼평)는 임진왜란 때 나베시마를 도왔고, 보복을 피해 일본에 왔으며, 다쿠가(家)에서 피관(被官·낮은 직급의 가신)으로 봉직했다”는게 골자다. 이삼평이 조선에서 피신해야 할 정도로 왜군에게 상당한 ‘부역’을 했음이 드러난다.

   두 번째도 소우타유가 1805년에 제출한 문서(金ヶ江三兵衛由緖之事)에 등장한다.

   여기서 그는 “가나가에 산베에(이삼평)는 원래 조선인인데 나베시마의 조선 출진 길을 안내했다. 진중에서 신명을 바쳐 충절을 다했고, 나베시마가 데려 왔다”고 증언한다. ‘충절’ 등 부왜 내용이 앞선 문서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이삼평의 부왜(附倭) 행각을 기록한 후손의 문서가 수록된 일본 다쿠 지역 영주 ‘다쿠 야스토시’의 업무일지(御屋形日記).

   세번째 문서(乍恐某先祖之由緒を以御訴訟申上口上候覚)는 1807년 소우타유가에서 분가한 친척(淸五兵衛, 德次郞)과의 도석(陶石) 채굴권 분쟁소송 중 작성한 기록이다.

   문서에는 “이삼평의 길 안내 덕분에 나베시마는 전투에서 승리했다. 나베시마의 권유로 이에 승복해 도일 했다”고 나온다.

   강릉원주대학교 이미숙 교수의 ‘조선사기장 이삼평의 피납과정과 활동에 관한 연구’ 논문 역시 “나베시마는 (이삼평에게)조선에서 복수를 당할 수 있으니 일본으로 가자고 했다”고 썼다. 이삼평의 도일이 왜군을 위한 부역이었음을 밝힌 국내 연구자료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소송에서 패한 친척(德次郞)의 문서(口達覺)가 네 번째인데 여기서도 조상인 이삼평이 길 안내 등 충절을 다했음이 기록돼 있다.

   1936년 나카지마 히로키(中島浩氣)라는 일본 아리타 향토 도자사 작가는 자신의 저서 히젠도자사고(肥前陶瓷史考)에서 “이삼평은 군량미 징발, 우차(牛車)의 동원 등 편의를 제공했다. 정한전(征韓戰)에서 아군을 위해 진력한 몇 안되는 분으로 나베시마가 개선할 때 데리고 와서 귀화시켰다”고 기술했다.

   조선에서의 부왜 행각으로 이삼평은 나베시마와 다쿠의 신뢰를 얻었고, 일본에 가서도 사가현의 각 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쿠의 명에 따라 이삼평은 정보를 수집해 자기 제조 기술을 습득했고, 도자기 원료공급을 통제하는 이즈미야마(泉山)산 도석장 관리를 맡았다. 1653년에 이삼평은 “내가 도공 약 148명 정도를 이끌고 있다(皿山金ヶ江三兵衛高麗より罷越候書立, 肥陽旧章錄)“고 다쿠에게 보고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전리품으로 끌고간 조선인은 10만∼4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유럽, 동남아 등지로 팔려가거나 일본내에서 농노, 첩 등 최하층 신분으로 육체노동과 무명의 삶을 살았다.

   유영문 계룡산도예촌 철화분청사기 연구회장은 “이삼평이 다른 포로들과 다르게 살 수 있었던 건 조선에서 행했던 그의 ‘부역’과 무관치 않다는게 대체적 시각”이라고 짚었다.

   특히 “일본에서 여유롭게 산 그가 조선에서의 성씨(이씨)와 본명을 죽을 때 까지 스스로 밝히지 못한 이유는 일본에 적극적으로 동화되고자 했거나 자신의 부왜 문제가 세상 밖으로 알려지는게 두려워 그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참고문헌>

  1.유환권, "공주시 이삼평 ‘왜군에 적극적 부역’ 불편한 진실", 동양일보, 2023.4.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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