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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조선 망국 논란’보다 중요한 것
 신상구  | 2022·11·04 10:30 | 조회 : 89

                                              ‘조선 망국 논란’보다 중요한 것

                나라 구실 못 한 조선, 그렇다고 日의 강제 병탄이 정당화되진 않아
               고종, 만민공동회의 개혁 건의 저버리며 마지막 회생 기회 물거품
               100년 전 꼴 안 나려면 소모적 친일 논란 그만하고 미래 준비를

   ‘조선왕조는 언제 왜 망했나? 이 질문에 대한 즉답은 “1910년 일본에 강제 합병되었다”일 것이다. 그런데 질문의 첫째 사항인 ‘언제’를 더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1897년 ‘해체설’이다. 그해 10월 ‘대한제국’이 성립하면서 고종은 ‘왕’에서 ‘황제’로 격상되었고, 국가 명칭도 ‘조선왕조’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오백여 년 지속된 조선왕조는 종언을 고했다”는 게 해체설의 요지다. 1905년 ‘주권 박탈설’도 있다. 이해 11월 우리나라는 ‘을사보호조약’으로 모든 외교권과 국내 통치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서재필은 일본인 통감이 지배하는 자주 외교권 없는 대한제국은 이미 망한 나라라고 보았다.

   질문의 둘째 사항인 ‘왜’, 즉 망국의 원인은 좀 더 복잡하다. 물론 조선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희생됐다. 조선의 내부 질환이 아무리 심각했다 하더라도 그 점으로 일제의 침략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노약자의 목숨을 빼앗은 이웃이 살인죄를 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100여 년 전 망국적 상황을 지금 되돌아보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그때 갈 수 있었는데 선택하지 않았던 그 길을 되짚어서 지금 잘하려는 애씀이다.

   그렇게 볼 때 구한말(1863~1910) 상황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1898년 고종의 선택이다. 이해 10월 말부터 벌어진 만민공동회는 망국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민과 관이 마음을 모은 아주 예외적인 기회였다. 가령 10월 29일 독립협회 회원들은 종로 한가운데서 정부 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국편민(利國便民)에 관한 여러 의견을 모아 고종 황제에게 건의문을 올렸다(헌의6조). 중추원 의장 한규설 등에게 이 ‘헌의6조’를 전달받은 고종은 시행을 약속했다. 국왕이 신료와 백성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약한 이 사건을 서울대 김홍우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계약”이라고 불렀다. “이날 관리와 백성이 협의한 일은 나라 세운 지 50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는 한규설의 말도 이 계약의 역사적 의의를 보여준다(’광무계약’). 고종은 또한 11월 1일 중추원을 의회로 개편하기 위해 중추원 의원(50명) 절반을 독립협회에서 뽑고, 나머지 절반은 관선으로 한다고 제정·공포했다.

   이처럼 “국가의 앞날에 새로운 빛이 비치는 듯한” 순간 고종은 ‘익명서 사건’을 핑계로 모든 약속을 무효화했다. 조병식 등 수구파는 자기들이 정권에서 배제될까 봐 11월 4일 밤 광화문 등지에 독립협회를 모함하는 글을 게시했다. 그들은 고종을 찾아가 ‘독립협회가 박정양을 대통령으로 하는 공화정을 실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격분한 고종이 독립협회 지도자 체포 명령을 내렸다. 관민이 뜻을 모으고 임금까지 약속한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고종은 이어서 조병식을 중심으로 한 친러 내각을 성립시켰다. 신민들과 한 약속을 저버린 데 이어 자격 미달자를 요직에 앉힌 것이다. 이 배신으로 고종은 끝내 사대부는 물론이고 대다수 백성에게 외면받았다.

  요즘 ‘조선 패망 논란’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사람은 페르낭 브로델이다. 그는 ‘프랑스의 정체성’에서 “역사란 미래가 현 세대에게 보내는 일종의 빚 독촉장”이라고 말했다. 미래로 연결되는 실천적 관심이 곧 역사 공부라는 얘기인데, 그에 따르면 “오늘의 문을 열고 미래로 나아갈 때 비로소 현재라는 시간은 미래로 연장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현재 시간을 미래로 연장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정치의 블랙홀’ 같은 친일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현재의 병통을 정밀히 진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국가와 사회의 질환을 엄밀 진단했던 정약용처럼 ‘한국병’의 원인을 다방면으로 심층 분석해야 한다.

   온 나라의 관심이 용산과 여의도에 쏠린 가운데 한국의 압축 성장을 가능케 했던 장점이 사라지고 있다. 급격히 고령화되는 인구 구조와 최하위 출산율, 학교 교육 붕괴와 학업 성취도 대폭 하락 소식이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고통스러운 국가 개혁을 통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만, 정치권은 온통 정쟁에 매몰돼 있다. 소모적 친일 논란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지금의 논란은 ‘과거’ 사실 규명을 위한 것도 아니고, ‘미래’ 준비 차원도 아니다. 오로지 ‘현재’에만 관심 쏟는 여야 인사들의 역사 논쟁은 국민에게 끝내 외면받을 것이다. 100여 년 전 고종처럼.

​                                                        <참고 문헌>
   1. 박현모, "조선 망국 논란보다 중요한 것", 조선일보, 2022.10.18일자. A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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