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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중국 내 조선족
 tlstkdrn  | 2022·02·23 03:40 | 조회 : 127


                                                         |중국 내 조선족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이 놀랐어요. 중국은 이 여성이 여러 소수민족 중 ‘조선족’의 의상을 입고 나온 것이라고 했어요. ‘중국의 문화 침탈’이라는 논란이 우리나라에서 거세게 일었어요. 조선족은 중국에서 부르는 명칭이고, 우리는 ‘중국에 사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뜻에서 재중동포(在中同胞)라고도 부릅니다. 중국 최대 민족인 한족(漢族)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인구 수로 15번째를 차지하죠. 이들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중국에 살게 됐을까요?

                                      ◇1860년대부터 본격화된 ‘강 건너가 살기’​

   중국의 동북 3성(지린성·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을 말하며 ‘만주’의 주요 지역을 차지하는 곳)에는 조선족 인구가 많은데요. 이곳은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이었습니다.

   현재 조선족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사람들은 19세기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이주한 조선 백성들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 전기 북방 변경에 출몰해 군사적 긴장을 일으켰던 만주족이 17세기 청나라를 세워 중국 대륙을 장악했고, 이후 조선의 국경 지역에선 이민족 침입의 우려가 줄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재해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선 북부 백성들은 조금씩 북쪽 국경을 넘어가 살게 됐죠. 지금처럼 국경을 엄격하게 통제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국경만 넘으면 조선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고 새 땅을 개척해서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860년대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돼 1870년 만주에 살았던 조선인은 7만7000명이었고, 1900년에는 22만명 규모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은 ‘간도’라 불리던 만주 일부 지역에 관리를 파견해 이 지역 조선인을 통치하려 했으나 1909년 일본과 청나라 사이의 간도협약으로 실패하게 됐습니다.

                                          ◇독립운동 기지와 일제의 이주 정책​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병합당한 뒤 많은 한국인이 또다시 국경을 건너 만주 지역으로 망명(자기 나라에서 박해를 받거나 박해받을 위험이 있는 사람이 이를 피해 외국으로 몸을 옮김)했습니다. 이곳은 새로운 독립운동의 기지가 됐고,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승리도 이 지역에서 벌어졌습니다. 일제 침탈을 피해 국경을 건너 새 터전을 잡은 민초도 많았죠. 당시 무장 항일 투쟁의 배경에는 이들의 피땀 어린 후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군사 점령한 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곳에는 1932년 일제의 괴뢰(꼭두각시) 국가인 만주국이 들어섰는데요. 일본인·만주족·몽골인·한족·조선인 다섯 민족이 협력해 산다는 이른바 오족협화(五族協和)를 겉으로 내세웠어요.

   한반도를 일본인이 사는 땅으로 만들려 했던 일제는 많은 조선인을 만주로 옮겨 살게 하는 정책을 세웠습니다. 그중에는 ‘한반도의 위아래를 뒤집어 만주에 포개 놓자’는 계획도 있었다고 합니다. 평안도·함경도 사람들을 만주 남쪽에, 전라도·경상도 사람들을 만주 북쪽에 살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인에 비해 차별받는 ‘2등 백성’ 신세인 것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고초 겪어​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되자 만주에 살던 조선인 중 약 80만 명이 한반도로 돌아갔습니다. 중국 정부는 1952년까지 중국 내에 정착한 나머지 조선인을 ‘중국인’으로 인정했는데 1953년 이들의 인구는 112만명 정도였습니다. 조선인이 많이 사는 옌볜(延邊)은 1952년 ‘조선족자치구’가 됐다가 1955년 ‘조선족자치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1966년부터 10년 동안 중국에서 극단적인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문혁)’이 일어나면서 조선족 사회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자신의 고향이 한반도라고 생각하던 조선인들이 ‘우리는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중국 조선족’ ‘우리 조국은 중국’이라고 여기게끔 ‘정신 개조’를 했다고 합니다. 한국어 책을 불태우거나 한국 지명이 들어간 간판을 내건 식당을 부수는 등 탄압이 이뤄졌습니다. 문혁이 끝나면서 이런 광풍(狂風·미친 듯 사납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지나갔습니다.

                                            ◇대한민국 내 조선족 70만명 시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조선족들은 대한민국을 오갈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옌볜 지역에 가서 여전히 조선족이 한국어와 한글을 쓰는 것과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돼 있는 것을 보고 감동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사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중국인 거리 풍경. /오종찬 기자​



   하지만 중국 내 조선족 사회는 다시 위기를 겪게 됐습니다. 중국 개혁·개방에서 동북 지역은 소외됐고, 상당수 인구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중국의 칭다오·선전 같은 대도시와 우리나라로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국 내 조선족의 인구는 170만명 정도인데요. 가장 큰 조선족 도시로 알려졌던 옌지(延吉)에는 현재 70만명에 가까운 인구 중 15만명이 채 되지 않는 조선족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식당이라는 한글 간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정작 주인은 한족인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 한국 내 조선족 인구는 옌지시 인구에 맞먹는 70만명으로 훌쩍 늘어났습니다. 조선족은 그동안 한국과 중국 양쪽의 언어와 문화를 알고 있다는 장점으로 한·중 교류와 사업의 가교 역할을 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일부가 폐쇄적인 공동체를 이루거나 범죄에 가담해 반감을 사기도 합니다. 같은 혈통이면서도 중국 국적을 갖고 있고, 중국과 한국 양쪽에서 을(乙)인 이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보듬고 나아갈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왜곡으로 이어진 중국의 논리]​

   현재 중국의 인구는 14억명이 넘고, 이 중 91%가 한족입니다. 나머지 9%는 조선족을 포함한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져 있죠. 중국이 이렇게 다양한 민족으로 이뤄진 나라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이론이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입니다. 중국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민족으로 이뤄진 통일된 하나의 국가였다는 얘기죠.

   그러나 이것은 다양한 민족을 포용하기보다 ‘모두 다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 문화 제국주의적 태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더구나 이 이론은 ‘현재 또는 과거의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여서 고조선·고구려·발해를 중국 역사로 왜곡하는 ‘동북공정’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1. 조유미.유석재, "[뉴스 속의 한국사] 만주에 남은 조선의 후예… 독립운동 기지 역할도 했죠", 조선일보, 2022.2.17일자. A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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