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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님의 밝달나무숲


흥사단 이야기
 tlstkdrn  | 2016·02·26 16:18 | 조회 : 839
흥사단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흥사단( Young Korean Academy, 興士團)은 민족 통일, 민주주의 발전, 시민사회 성장, 건전한 청소년 육성을 위한 사회교육과 국민훈련기관으로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安昌浩)의 주도로 경기도 홍언(洪焉), 강원도 염만석(廉萬石), 충청도 조병옥(趙炳玉), 황해도 민찬호(閔燦鎬), 경상도 송종익(宋鍾翊), 평안도 강영소(姜永韶), 함경도 김종림(金宗林), 전라도 정원도(鄭源道) 등 8도 대표에 의하여 창립되었다.
   흥사단의 결성 배경을 보면, 1911년 105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5인 사건은 일제가 1910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암살미수 사건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다. 일제는 안창호 이승훈(李昇薰) 등 계몽주의자들이 1907년 비밀리에 결성했던 신민회(新民會) 간부 등 민족지도자 600여 명을 검거하고, 그 중 윤치호(尹致昊) 양기탁(梁起鐸) 이동휘(李東輝) 등 105인을 기소했다. 105인 사건이 마무리된 뒤 항일 운동은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됐다. 안창호 이승훈 등은 준비론에 입각해 실력양성을 시작했고, 이시영(李始榮) 이동휘 김좌진(金佐鎭) 등은 만주로 이동해 무장 항쟁을 준비했다. 1902년부터 2~3년 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안창호는 1911년 초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대한민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 초대 총회장에 선임됐으며, 다음해 5월 흥사단을 조직했다. 흥사단이라는 명칭은 유길준(兪吉濬)이 1907년 설립한 동일한 명칭의 단체에서 따왔다. 유길준의 흥사단은 어린이용 교과서를 편찬하는 출판사업을 벌였으나 1911년 해체됐다.
   1912년에 창간된 <신한민보>는 흥사단의 경영으로 국민교육과 계몽에서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사단의 설립목표는 민족부흥을 위한 실력양성이었으며, 무실역행(務實力行)과 충의용감(忠義勇敢)을 기본정신으로 삼았다.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덕(德)·체(體)·지(知)의 3육(三育)을 동맹수련(同盟修練)해야 하며, 국민 모두가 민족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흥사단에서는 다음과 같은 힘의 3대 원칙을 주장한다. ① 자력주의 :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우리의 힘뿐이라는 원칙 ② 양력주의(養力主義) : 힘은 기르면 자라고 기르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는 원칙 ③ 대력주의 : 큰 힘이 있으면 큰 일을 이룰 수 있고, 힘이 작으면 작은 일밖에 이루지 못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건전한 인격자가 되기 위하여 4대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주장한다. ① 무실(務實) : 율곡(栗谷)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 속의 ‘논무실위수기지요(論務實爲修己之要)’라는 제하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 참되기 운동, 거짓말 안 하기 운동이다. ② 충의(忠義) : 사물이나 일을 대할 때에는 정성을 다하며, 사람을 대할 때에는 신의와 믿음으로 대하여야 한다. ③ 용감 : 옳음을 보고 나아가며, 불의를 보고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말한다. ④ 역행(力行) : 행하기를 힘쓰자는 뜻으로, 실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안창호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실력을 갖춘 인재 양성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설교를 통해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하지 아니하는가?”라고 역설했다.
   흥사단 단체의 상징은 단결과 협동, 질서의 정신을 의미하는 기러기였다.
   흥사단 설립의 초창기에는 이민교포 및 유학생을 중심으로 학업과 인격수양, 생활개선, 경제력 증진에 주력하다가 1919년 3·1운동으로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상해에 흥사단 원동위원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서울에 수양동맹회(1922), 평양에 동우구락부(1923)를 결성하여 국내에서 일제치하의 합법적인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내의 두 단체는 1925년에 수양동우회로 통합하고, 월간지 형식의 기관지인 <동광(東光)>을 창간해 40호까지 발행했다. 그 후 수양동우회는 동우회로 개칭하였다가 이른바 동우회사건(1937)으로 안창호를 비롯한 200여 명의 회원이 검거, 투옥된 가운데 강제 해산 당하였다.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된 안창호는 병보석으로 출감했다가 1938년 3월 간경화로 사망했다.
   광복 이후 1946년에는 국내위원부를 조직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본부를 국내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미국에는 미주위원부를 개설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 인재양성 및 통일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1961년 5ㆍ16쿠데타가 일어날 때까지 시민 계몽을 위한 ‘금요강좌’를 운영하고 잡지『새벽』(1954년 9월~1961년 1월)을 발간했다. 1963년 8월 25일 청년학생 아카데미를 발족, 전국 대학생ㆍ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리더십 캠프, 나라사랑 국토순례 등의 아카데미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월간『기러기』간행과 기타 출판사업 등을 통하여 국민정신과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전념해 왔다. 1969년 8월 19일에는 문교부의 승인을 받아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고, 1977년 9월에는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22(동숭동 1-28)에 새 회관을 신축해 입주했다. 1981년 6월 민족대학을 개설하였으며, 1985년 3월 도산사상연구회, 1989년 6월 도산아카데미연구원을 창립하였다. 1991년 2월에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를 결성하여 부정 선거 감시활동을 벌였다. 1992년 5월에 청소년연구원을 설립하였고, 1997년 3월에 민족통일운동본부를 설립하였다. 1998년 11월에 도산안창호 기념관 건립 및 개관(사단법인 도산기념사업회)하였으며, 2007년부터 독립유공자후손돕기운동본부를 창립하였다.
   2007년 5월에 미주위원부 산하 시카고지부를 창립하였고, 2008년 3월에는 평택지부에 도산안창호교육관을 개소하였다. 2008년 10월부터 대학생을 대상으로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청년인재를 양성하고자 미래사회리더스쿨을 운영하여 2010년 현재 6개 지부에서 운영하고 있다. 2009년 3월 대전에 만인산 푸른학습원을 개원하였고, 광주시에 청소년문화의 집을 개관하였다. 2009년 4월 흥사단 미주위원부 산하 토론토지부를 창립하였고, 6월에는 서울시 중부교육청으로부터 평생교육시설 신고증을 교부받아 평생교육 분야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흥사단의 기능과 역할은 무실(務實)·역행(力行)·충의(忠義)·용감(勇敢)의 4대 정신을 지도이념으로 하여 건전한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德)·체(體)·지(智) 삼육(三育)을 기본덕목으로 하는 인격·단결·공민의 3대 훈련을 실시한다. 단우(團友)는 자아혁신·신성단결(神聖團結)·단무봉사·책임완수·대공복무(大公服務)를 5대 생활지표로 삼아 실천하고 있다.
   한편 흥사단은 민족화해 협력을 위한 6·15남측위원회 참여 등 민족통일운동, ‘흥사단 투명상’ 시상 등 투명사회운동, 교육운동, 독립유공자 후손돕기, 공명선거운동, 우리 땅 독도 지키기 운동 등 시민사회운동,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다.
   흥사단의 독특한 의식으로는 단우 상호간에 거수례와 윤회악수가 있으며, 상호간의 호칭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군(君)’으로 통일하였다.
   2010년 현재 국내에는 서울지부, 부산지부 등 25개 지부가 있으며, 미주위원부 산하에 LA지부, 워싱턴DC지부, 동남부지부, 서북미지부, 필라델피아지부, 뉴욕지부, 시카고지부, 토론토지부 등 총8개 지부가 있다. 그리고 흥사단의 부설 조직은 3개 운동본부(민족통일본부, 투명사회운동본부, 교육운동본부), 6개 부설기관(중앙수련원, 청소년연구원, 평생교육센터, 사회봉사단, 도산아카데미, 도산청소년재단), 강서 청소년회관, 강남 주민편익시설, 부산 동구 자원봉사센터 등 총 14개 수탁시설이 있다.
   흥사단 회원수는 단우가 3,000명, 아카데미 회원이 3,500명, 이미 배출된 아카데미 회원수는 10만 명에 달한다.
   도산 아카데미 연구원을 설립하고 대표를 맡았던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6.26일-2013.10.7) 선생은 철학자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국민들에게 널리 홍보하여 흥사단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평안남도 룡강군 출신으로 1943년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사상계〉의 주간을 거쳐 연세대와 서울대 강사를 지냈으며, 1969년 숭전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61년부터 1962년에는 미국의 코넬 대학과 배서 대학에 교환 교수로 초빙되어 한국의 문화사를 소개하였으며, 귀국 후 숭실대 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철학서를 집필·발표하였다. 1992년부터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인생사전>,〈현대사상〉,〈철학 노트〉,〈사색인의 향연〉등이 있다.
   지금 흥사단은 인격훈련, 단결훈련, 민주시민훈련의 3대 수련과 무실ㆍ역행ㆍ충의ㆍ용감의 4대 정신을 바탕으로 인재양성운동과 통일운동, 투명사회운동, 교육운동, 청소년운동을 비롯한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3년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도산학교 설립, 100년사 편찬, 국내외 심포지엄 등의 기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주요한,『안도산전서』, 삼중당, 1963.
  2. 이광수,『도산안창호』, 흥사단 출판부, 1983.
  3. 흥사단70년사편찬위원회,『흥사단운동70년사』, 흥사단 출판부, 1986.
  4. “흥사단(Young Korean Academy, 興士團)”,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2.26.
  5. “흥사단(Young Korean Academy, 興士團)”, 네이버 지식백과, 굿모닝미디어, 2016.2.26.
  6. “흥사단(Young Korean Academy, 興士團)”, 네이버 두산백과, 2016.2.26.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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