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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본기_태백일사 제3[이맥 찬] "환웅천황의 동방문명의 개창"
 알자고    | 2018·01·05 05:57 | 조회 : 258

신시본기_태백일사 제3[이맥 찬] 

환웅천황의 동방문명의 개창

5세 태우이 막내아들, 태호복희
환웅천황으로부터 5세를 전하여 태우이환웅이 계셨다.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반드시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정기를 잘 기르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장생의 방법이다.

삼신의 성령을 받고 우주삼계를 통한 태호복희
태우의환웅의 아들이 열둘이 있었는 데, 맏아들이 다의발환웅이요. 막내는 태호이시니 복희라고도 불렀다. 
태호복희씨가 어느 날 삼신께 성령을 내려 주시는 꿈을 꾸고 천지만물의 근본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시게 되었다. 이에 삼신산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천하에서 괘도를 얻으셨다. 그 획은 세 개는 끊어지고 세 개는 이어지는 음양의 원리로 이루어졌다. 그 위치를 바꾸어 추리함은 오묘하게 삼극과 부합하여 변화가 무궁하였다.
'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의 직책을 대물림하셨다. 후에 청구.낙랑을 지나 진 땅에 이주하여 수인, 유소와 함께 서쪽 땅에서 나라를 세우셨다.
그 후예가 풍산에 나뉘어 살면서도 역시 풍으로 성을 삼았다. 후에 패.관.임.기.포.리.사.팽 여덟 씨족으로 나뉘어졌다. 지금의 산서 제수에서 희족의 옛 거주지가 아직 남아 있는 데, 임.숙.수구.수유 등의 나라가 모두 에워싸고 있다.
'대변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 관직을 맡으셨다. 신룡의 변화를 관찰하여 괘도를 만들고, 신시 시대의 계해를 고쳐 갑자로 첫머리를 삼으셨다. 여와(복희의 여동생)는 복희의 제도를 계승하고, 주양은 옛 문자를 기본으로 하여 육서를 세상에 전하였다. 복희씨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 남쪽에 있다

*삼신산~신교 도맥으로 백두산을 말한다. 
*천하~중국사에서는 대개 황하라고 부르나, 천하는 송화강으로 보는 것이 옳다.
*삼극~천지인 삼재, 무극.태극.황극의 도자리를 말한다.
*제수~산서성에서 발원하여 황하의 땅속으로 가로질러 산동성 아에서 다시 솟아나 흐른다. 임은 산동성 제령시이고, 숙, 수구, 수유(산동성 비현의 북쪽) 등은 산동성에 있으니 '산서제수'는 '산동제수'의 오기인듯하다.
*수유는 전유의 오기인 듯하다. '좌전 희공21조'에는 임, 숙, 수구, 전유는 풍씨라고 하였다.
'논어주소 계씨편'에 나오는 전유는 복희의 후예이며, 풍성의 나라이다.
*복희묘~산동성 미산현 양성향 유장촌에 있다. 무덤 위에 묘당을 만들었다고한다. 부산은 지맥이 뻗어와서 복희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주민들은 이 산을 봉황산이라 부른다. 복희씨는 이곳에서 팔괘를 그렸다하여 팔괘산이라고도 부른다.

동양 의학과 농사의 시조인 신농씨의 혈통
신농은 열산에서 창업을 하셨는 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시고, 소전은 모두 고씨계의 방계 자손이시다.
당시 백성이 정착하여 각기 생업에 종사하여 점차 인구가 증가하였다. 곡식과 삼을 많이 생산하고, 각종 의학과 치료법도 점점 갖추어지자. 한 낮에 저자(시장)을 열어 교역을 하고 돌아갔다.

*열산~지금의 호북성 수주시 여산진이다.
*소전~신시배달국의 혈통
*소호~소호금천을 말한다
*고시씨~초대환웅 때 불을 발견하고 주곡의 임무를 맡았던 고시례를 말한다.

#안경전역주,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365~369
#한자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2 신시본기를 참고 바람니다.



14대 치우천황의 서역 영토 대정벌
유망에 이르러 정치의 속박이 가혹해지자 여러 읍락이 사이가 나빠져 백성이 많이 흩어지고, 세상살이가 심히 어렵게 되었다. 우리 치우천황께서 배달 신시의 웅렬한 기상을 계승하고 백성과 함께 이를 새롭게 펼치실 때, 하늘의 뜻을 밝혀 생명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개천지성), 땅을 개간하여 뭇 생명을 다스리게 하시고(개토이성), 사람의 마음을 열어 생명을 존중하시니(개인숭생), 백성이 만물의 원리를 스스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그분의 덕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지혜가 적합하지 않음하지 않음이 없으며, 역량이 온전히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었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나누어 다스리니, 호랑이처럼 황하 북쪽에 웅거하여 안으로 군사를 용맹하게 훈련시키고 밖으로 시국의 변화를 관망하셨다.

*유망(BCE2758~BCE2688): 염제신농의 후손으로 약500년간 계속된 염제신농국의 마지막 8세 임금이다.
*황하 북쪽(하삭)~중국 황하의 북쪽지역을 말한다. 

탁록 대정벌과 12제후국 병합
유망의 정치력이 쇠약해지자 치우천황께서 군사를 일으켜 출정하셨다. 형제와 부계 일족 중에서 장수가 될 만한 81명을 뽑아 모든 군사를 거느리게 하시고, 갈로산의 쇠를 캐어 갑옷과 창과 큰 활과 호시(싸리나무로 만든 칼)를 많이 제작하셨다. 
그리고 전군을 모아 대오를 정비하여 탁록을 함락시키고, 구혼에 올라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셨다. 그 형세가 자 못 질풍과 같아 만군을 복종시키고 천하에 위엄을 떨치셨다. 1년 사이에 아홉 제후의 땅을 함락시키고, 다시 옹호산에 나아가 구치로써 수금과 석금을 캐어 예과와 옹호극을 만드셨다.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몸소 거느리고
양수로 진출하여 빠르게 공상까지 진격하셨다. 당시 공상은 진류로 유망의 도읍지였다.

*종당~부계의 일족
*갈로산~'관자 권23, 지수 제77'에서 치우천황이 갈로산 노산의 쇠를 채취하여 칼, 투구, 갑옷, 창 등을 만들었다. 
'후한서 지리지'에는 갈로현이 동래군 소속이라고 했다. '중국사고지도집'에는 산동성 청도시 부근에 갈로산이 표시되어 있다.
*홍호산~'관자 권23 지수 77'에는 옹호산의 쇠를 캐어 옹호극과 예과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과와 극~과는ㅈ창날이 일자가 아니라 가지처럼 옆으로 뻗은 형태로 적을 끌어당기거나 말의 다리를 걸어 넘어 뜨리는 데 사용한다. 극은 앞으로 뻗은 긴 창날 옆에 가지처럼 칼 날이 더 달려 있는 형태이다.
*공상~공상은 산동성 곡부현, 하남성 진류현에 있는 데, 여기서는 하남성 진류현을 말한다. 

유망과 소호 정벌
이 해에 치우천황이 12제후의 나라를 모두 병합하실 때 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니, 서토의 백성들이 간담이 서늘하여 도망하지 않는자가 없었다. 이 때 유망이 소호로 하여금 막아 싸우게 하였다. 이에 천황께서 예과와 옹호극을 휘두르며 소호와 크게 싸울 때, 큰 안개를 일으켜 적의 장수와 병졸로 하여금 혼미하여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하니 소호가 대패하여 황급히 공상으로 들어가 유망과 함께 달아났다. 
치우천황이 즉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천하를 태평하게 할 것을 맹세하여 고하시니, 다시 진군하여 탁록을 포위 압박하여 일거에 멸망시켰다. 
'관자'에 "천하의 임금 곧 치우천황이 급작스럽게 싸우며 한 번 노하심에 죽어 넘어진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였다"라고 한다.

*소호~소호금천을 말함
*유망~염제신농의 후손으로 염제신농국의 마지막 임금
*관자~춘추시대 제나라 정치가 관중이 부민.치국.경신.포교를 서술하고 패도정치를 역설한 책, 관중의 제자와 문인들이 집필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370~373
#한자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2, 신시본기를 참조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정체성을 찾아라!!!



헌원을 토벌하여 신하를 만들다.
이 때 공손(헌원)이라는 자가 있었는 데 토착민의 우두머리였다. '치우천황께서 공상에 입성에 입성하여 새로운 정치를 크게 펴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감히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뜻을 품고 병마를 일으켜 치우천황과 승부를 겨루려 하였다. 천황께서 소호를 먼저 보내 탁록을 포위하여 멸하려 하실 때, 헌원이 오히려 항복하지 않고 감히 수많은 전쟁에 나셨다. 천황께서 9군에 명하여 네 길로 나누어 진군하시고, 몸소 보병과 기병 3천을 거느리고 곧장 유웅들판에서 여러 번 헌원과 맞붙어 싸울 때, 군사를 풀어 사방에서 협공하여 참살하시니 그 수가 헤아릴 수가 없었다. 또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고 전투를 독려하시니, 적군은 두렵고 손이 떨여 바쁘게 도망쳐 백 리안에 병마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기주.연주.회수.태산 땅을 모두 차지하고, 탁록에 성을 쌓으시니, 회대(회수와 태산)에 집을 지으시니 헌원의 무리가 모두 신하를 칭하여 조공을 바쳤다. 대체로 당시 서쪽 땅의 사람들은 한갓 화살과 돌팔매만 믿고 갑옷의 사용을 알지 못하였다. 또한 치우천황의 뛰어나고 강력한 법력에 부딪혀서, 두려운 마음이 들고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번번히 패하였다.

*공손(헌원)~성은 공손, 이름은 헌원, 태호복희.염제신농과 함께 삼황의 한 인물이다. 황제의 혈통은 배달국 웅씨족의 후손인 소전(염제신농의 부친)에서 갈려나간 별파이다.
'삼한관경본기'에는 "소전의 별파로 공손이 있었는 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여 헌구에 귀양가서 살았다. 황제헌원의 족속은 모두 그의 후손이다"라고하여 한족의 국통과 뿌리를 밝히고 있다

*유웅~황제헌원의 호이자 그의 도읍지 이름, 지금의 하남성 신정현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북성 탁록지방을 말함. '사기정의, 오제본기'에 탁록의 본래 이름은 팽성인 데, 황제가 처음 도읍으로 삼았다가 유웅으로 천도하였다. 
*공상~산동성 곡부현과 하남성 진류현이 있는 데, 일반적으로는 산동성 지방을 말하는 데, 여기서는 하남성 진류현을 말한다.

탁록의 10년 대전쟁
'운급 헌원기'에 "치우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 데, 당시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해 동두철액(구리머리에 무쇠이마)이라 여겼다"라고 하였으니, 적의 낭패가 얼마나 심하였는지는 가히 상상할 수가 있다. 치우천황이 더욱 군용을 정비하여 사방으로 진격하셨다. 10년동안 헌원과 73회를 싸웠으나 장수는 피로의 기색이 없었고, 군사는 물러날 줄 몰랐다. 헌원은 여러 번 싸워 천황에게 패하고도 군사를 더욱 크게 일으켰다. 우리 배달을 본받아 무기와 갑옷을 많이 만들고, 또 지남거를 만들어 감히 싸움마다 출전하였다.
이에 천황께서 불같이 진노하여
형제 종족으로 하여금 대격전에 힘써 싸우게 하여 위엄을 확고히 세우셨다. 그리하여 헌원의 군사로 하여금 감히 추격하거나 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시고는, 더 대전을 치뤄 한바탕 몰아쳐서 휩쓸어 버리신 뒤에야 비로소 싸움을 그치셨다. 

*운급~운급칠첨, 송나라 진종 때 장군방이 비각도서를 교정하여 요점을 뽑아 만든 122권의 책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전투 상황은 사기와 천관서에 잘 나타남. 
탁록대전은 진시황의 6국 병탄 통일전쟁과 5년간 73회를 싸운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 그리고 유비.조조.손권의 삼국 쟁패전 이전의 역사상 최초이자 최대의 전쟁이었다.
*지남거~수레 위에 신선의 목상을 얹고 손가락이 항상 남쪽을 가르키도록 만든 수레로 황제가 탁록에서 싸울 때 치우천황이 일으키는 짙은 안개를 만나자 지남거를 만들어 병사들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사마천 '사기'의 비열한 역사왜곡
이 싸움에서 우리 장수 치우비라는 자가 급히 공을 세우려다가 불행이도 전쟁터에서 죽었다. '사기'에는 이른바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라는 한 귀절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천황께서 진노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새로 비석박격기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시니, 적진이 마침내 대항하지 못하였다. 이에 정예병을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으로 예와 탁을 지키게 하시고, 동쪽으로 회대(회수와 태산)를 취하여 성읍을 만들어 헌원이 동쪽으로 침투할 길을 막으셨다. 천황께서 붕어하신 지 수 천년이 지났지만, 진실로 길이 남을 찬란한 그 위엄이 후세인의 가슴 속에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금살치우~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는 "탁록 들판에서 치우와 싸웠다. 드디어 치우를 사로 잡았다"라고하여 헌원이 치우천황을 잡아서 죽인 것처럼 묘사하였다. 이것이 사마천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킨 대표적인 기록 중에 하나이다. 
*예와 탁~지금의 산서성 예성현이며, 탁은 하북성 탁록현이다.

#안경전역주,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372~377
#한자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3, 신시본기를 참조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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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황릉의 위치와 천황에 대한 서방한족의 전설적 추앙
*치우기의 전설과 유래
지금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치우천황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궐항성에 있으며, 높이는 7장이라 한다. 진한 시대에 주민들이 10월에 제사를 지냈는 데, 반듯이 붉은 기운이 진홍색 비단처럼 뻗치므로 이를 치우기라 불렀다. 아마도 그분의 영웅적인 기백은 보통 사람과 아주 달라 수천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으리라. 헌원은 이 뒤로 쇠미해졌고, 유망도 따라서 영구히 몰락하였다. 치우천황의 웅렬하심은 대대로 온 천하를 진동시켰다. 특히 유주, 청주 지방에서 그 명성과 위엄이 지속되니, 헌원 이래 대대로 스스로 불안하여 그 치세가 끝날 때까지 배게 베고 편안히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사기'에 이른바 "산을 헤쳐 길을 내어도 편안히 안주하지 못하고, 탁록의 강가에 도읍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일정한 곳에 살지 못하여, 항상 군사로 보호하여야 했다"하였으니, 헌원이 얼마나 전전긍긍하였는지 역력을 엿볼 수 있다.
ㆍ궐향성~'궐자는 '감'의 오기일 
가능성이 크다. '사기, 봉선서'에는 "치우 묘는 동평륙의 감향에 있는 데 제나라의 서쪽변경이다"라고 하였다. '사기색'에도 "치우총은 동평군 수장현 감향성 안에 있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한서 교사지'에서도 팔신제를 설명하면서 "셋째는 병주인 데 치우를 제사 지냈고, 치우묘는 동평륙의 감향, 제나라 서쪽 변경에 있다"라고 했다. 치우천황의 능은 현재 산동성 문상현 남왕진에 있다.
ㆍ유주와 청주~각기 12주의 하나로 순임금이 기주로 나누어 동북쪽을 유주라고 했다. 유주는 하북성 북부이고, 청주는 지금의 산동반도이다.

*'상서 여형'에 또한 이르기를 "옛 가르침에 다만 치우가 난을 일으겼다"라고 했으니, 저들이 치우천황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기운을 잃고, 대대로 이 교훈을 전하여 후인을 크게 경계하였음을 엿볼 수가 있다. 그 후 300년 동안은 전쟁이 없었고 다만 전욱과 한 번 싸워 이를 격파하였을 뿐이다. 
초대 환웅천황께서 신시를 개척하여 새 시대를 여시니 18세를 전하니 1,565년이다. 바야흐로 단군왕검께서 웅씨비왕으로 신시 배달을 대신하여 구환족이 사는 모든 지역을 통일하시고, 강역을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리니(삼한관경)이를 일러 단군조선이라한다. 
ㆍ전욱고양~황제헌원의 손자이며, 창의의 아들, 호는 고양, 안양시 내왕현 양장진에 제곡릉과 함께 있다.

* '삼한비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복희께서 서쪽 변방에 봉함을 받아 직책에 정성을 다하시니, 무기를 쓰지 않고도 그 지역 백성이 감화되어 따랐다. 수인씨를 대신하여 영토 밖까지 호령하셨다. 후에 갈고환웅(10세)께서 신농의 나라와 국경을 정하시니 공상의 동쪽이 우리땅으로 귀속되었다.
ㆍ수인씨~수인씨는 불을 만들고, 별을 이십팔수로 나누어, 한 해를 사철로 나누고, 각계절을 90일로 정하였다. 이러한 책력법이 일찍이 동이에서 시작하였다. 중국 쉬량즈는 "중국의 책력법은 동이 사람들이 시작하였으며, 동이 사람이 책력을 만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하였다.
ㆍ공상의 동쪽~현재 하남성 동쪽인 산동성, 안휘성, 강소성지역를 말한다.

*세속에 전해오는 '치우'의 뜻
또 몇 세를 지나 자오지천황(14)에 이른다. 이 분은 신령한 용맹이 더 없이 뛰어나시고, 머리와 이마를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보호하셨다.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구치(채광 기계)를 만들고 채광하시니, 철을 녹여 무기를 만드시고 또 비석박격기를 만드셨다. 천하가 크게 두려워하여 모두 이분을 받들어 천제의 아들 치우라고 했다. 대저 치우라는 말은 속언으로 '뇌우(천둥 소리와 함께 내리는비'가 크게 일어 산하가 뒤바뀐다는 뜻이다.
치우천황께서 신농의 나라가 쇠약해짐을 보시고 웅도를 품고, 서방에서 자주 천병을 일으켜 진격하여 회수와 태산 사이를 점령하셨다. 헌원은 등극하자 곧바로 탁록의 광야에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으셨다. 후에 오장군을 보내어 서쪽으로 고신(지명)땅을 쳐서 전공을 세우게 하셨다.

#역주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376~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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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과 단군조선의 통치정신
'대변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신시씨(초대환웅)는 전의 도로써 계율을 닦아 사람들에게 제천을 가르치셨다. 전이란 사람의 본래 온전한 바땅에 따라 능히 본성을 통해(성통) 참됨(진)을 이루는 것이다.
*청구씨(14세 치우천황)은 선의 도로써 법을 세워 사람들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법도를 가르쳤다. 선이란 사람이 본래 타고난 바를 따라서 자신의 참된 영원한 생명력을 깨달아(지명) 널리 선을 베푸는 것이다.
*조선씨(단군왕검)는 종의 도로써 왕을 써워 사람들에게 책화를 가르쳤다. 종이란 사람이 우주안에서 스스로 으뜸되는 바에 따라 정기를 잘 보전하여 대인이 되어 아름다움(미)을 실현하는 것이다.

삼신과 삼재, 우주의 본체인 삼극의 관계
*전은 텅빈 자리로 천도에 근본을 두고
*선은 광명자리로 지도에 근본을 두고
*종은 천지 도덕의 삶을 실현하는 강건한 자리로 인도에 근본을 둔다. 
*천은 창조정신, 지는 교화정신, 인은 인간의 존엄한 지고의 정신

환인, 환웅, 단군의 의미
'대변경' 주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인은 천신이라고 하니, 천은 곧 큼이며 하나이다.
*환웅은 천왕이라고도하니 왕은 황이며, 제이다.
*왕검은 감군이라고 하는 데,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명을 환이라고 하고, 땅의 광명을 단이라고 한다. 이른바 환은 곧 구황(전인류)을 말하는 것이다. 한은 크다의 뜻이다.
삼한은 풍백.우사.운사를 말한다. 오가는 곡식을 주관하는 우가, 어명을 주관하는 마가, 형벌을 주관하는 구가, 질병을 주관하는 저가, 선악을 주관하는 계가를 말한다.
백성은 64겨레요. 무리는 3천이었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38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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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산과 동북방의 광명정신
우리 환족은 신시배달 환웅께서 거느린 무리 3천명의 후손이다.
후세 비록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으나 실은 환단일원의 후손이다. 신시 환웅께서 처음 강세하던 공덕을 반드시 후세에 전하고 입으로 외고 잊지 말아야 하니 선왕선민이 옛날 삼신께 제사를 지내던 이 성지를 삼신산이라고 한다.
신시 환웅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신령한 다스림과(천경신고)과 거룩한 은택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욱 깊어 갔다. 나라를 세워 세상을 다스리는 큰 근본이 다른 나라와는 판이하게 달라 우리의 신이한 기풍과 거룩한 풍속이 멀리 온 천하에 전파되었다. 이에 천하만방의 백성 중에 신령한 다스림과 거룩한 교화를 흠모하는 자는 반드시 삼신을 숭배하였고, 동북방을 신명이 머무는 곳이라고 하였다.

*지구, 동양의 동북방은 우주 삼신의 성령이 내리는 인류문명의 개척지로 주역에서는 간방 도수로 규정하였다.

삼신산이 봉래, 방장, 영주산으로 불린 이유
그러나 세월이 흘러 폐단이 생겨나 점점 근거 없고 허황된 길로 빠져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괴이하고 허무 맹랑한 이야기는 연.제 두 나라의 바닷가에 사는 꾀짜 병사들에게 번갈아 나왔다. 그 땅이 구환과 신시와 서로 인접하고,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특히 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풍문으로만 듣고도 깜짝 놀랐는 데, 여기에 미루어 부연하고 억지로 붙여서 "삼신산은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으로 발해 가운데 있다"하여 당시의 임금을 미혹하게 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동쪽 바닷가에 이르러 바라보니 끝없이 아득하기만 하여 발해 가운데 다른 바다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툭하면 "삼신산 역시 발해 가운데 있다"운운하나 사실 삼신산은 각각 세 섬에 있는 산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봉래는 쑥대가 우뚝우뚝 자라고 묵은 풀이 길게 황량하게 우거진 곳이라는 뜻으로 곧 천황이 내려오신 장소이다. 방장은 사방이 일 장씩 되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곧 소도가 있는 곳이다. 영주는 바다가 섬에 둘러싸인 모습이니 곧 천지가 나오는 곳이다. 이를 총괄하여 삼신산이라고 한다.
삼신은 곧 한 분이시다.무형의 하나님으로 광명의 하나님이다.
그렇지만 더욱 황당하고 괴이한 것은 삼신의 본래 의미조차 알지 못하게 도리어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부른다는사실이다. 
사마천의 '사기 봉선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전에 내려오는 말에 삼신산은 발해 가운데 일찍이 그곳에 가 본자가 있고, 뭇 신선과 불사약이 그곳에 있으며, 그곳의 사물과 금수가 모두 희고,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고한다.
또 '선가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삼신산에는 환혼초와 불로초 등이 자라므로 진단이리고도 한다.
지금의 백두산에는 옛부터 흰 사슴, 흰 꿩, 흰 매들이 있었다.
또 백두산 일대에 산삼이 많이나서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불로초로 여겼다. 산사람이 산삼을 캐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목욕재계하고 산에 제사를 지낸 뒤에 산행을 떠나니, 환혼.불로지명이 붙은 것은 생각컨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군세기'에 이르되, "오사구단군(4세) 원년에 임금께서 북쪽을 순시하시다가 영초를 얻었다"라고 했으니 그 증거다.

삼신산이 태백산, 곧 백두산이다.
10월에 천제를 지내는 풍속은 마침내 천하만세에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풍속이 되었다. 이것을 신주에만 독특하고도 성대한 의식으로 다른 나라와 가히 비교가 안된다.

*신주~신령한 나라, 삼신의 본고향, 신교의 종주국, 배달의 왕업이 흥한 신령한 땅
태백산은 홀로 곤륜산의 이름을 누르고도 남음이 있도다. 옛날의 삼신산을 태백산이고 지금의 백두산이다.
*백두산~우리 민족의 성산으로 백산, 삼신신, 개마산, 불함산으로 부른다. 중국인들은 장백산이라고 한다. 
그 옛날 배달 때의 인문교화가 근세에 와서 비록 널리 행해지지 못하고 있으나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후세까지 전해져 온 나라의 남녀가 모두 은연 중에 믿고 받들며, "인간의 생사는 반드시 삼신께서 주관하신다"하고 열 살 안 된 어린아이의 신명의 안위와 슬기로움, 어리석음, 뛰어남과 용렬함을 모두 삼신께 맡겼다.
대저 삼신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일신하나님이시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389~393
#한자원문해설은 이맥의 태백일사 신시본기를 참고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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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족에게 전파된 삼신 신앙
옛적에 사마상여가 한나라 왕 유철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겸양하시어 봉선을 위해 출발하지 않으시니 이는 삼신의 환심을 끊으시는 것임니다"라고 하셨다. 또 위소의 주에 "삼신은 하느님(상제)이시다"라고 하시니, 삼신설이 일찍이 중국에 전파된 것이 분명하다.

*사마상여~전한 경제.무제 
때의 문인으로 사부에 뛰어나다. 사천성 성도 사람이다. 
*'사기, 봉선서'와 '천관서'를 보면 우리의 신교 삼신사상과 오행철학의 내용으로 가득차있다. 한무제 당시까지도 중국전역에 삼신사상이 널리 뿌리 내려있었다.

동방 문명의 신교와 제나라의 팔신제
제나라 풍속에 팔신제가 있으니, 팔신은 천주.지주.병주.양주.음주.월주.일주.사시주이다.
하늘은 음을 좋아하므로 반드시 산 아래와 작은 산 위에서 제사를 지내는 데, 곧 태백산 기슭이 천제를 지내는 유법이다.
땅은 양을 귀하게 여기므로 반드시 못 가운데 모난 언덕에서 제사를 지내는 데, 또한 첨성단에서 제천하는 풍속이 전해진 것이다.
천주는 삼신께 제사를 지내고, 병주는 치우천황께 제사를 지내니, 삼신은 천지만물의 조상이시고, 치우는 만고의 무신용강의 비조이시다.
큰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을 마음대로 부리시니 또 만세 도술의 종장이 되어 풍우를 부르니, 만신을 부르셨다. 이 때문에 고 시대에 천하군무의 주장이 되셨다. 해대 지방에 엄.남.양.개.우.내.서.회 팔족이 살았는 데, 팔신설이 팔족에서 생겨 당시에 성행하였다.

*해대~황해와 태산사이로 지금의 산동성 지방이다.

한고조 유방이 숭경한 치우천황
유방은 동이계통은 아니지만 풍패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풍패에는 치우천황께 제사 지내고 북과 깃발에 희생의 피를 발랐다. 드디어 10월 패상에 이르러 제후와 더불어 함양(진의 수도)을 평정하고 한왕이 되어 10월을 한 해의 첫머리로 삼았다. 이것은 비록 진나라 역법을 답습하지만, 동황태일을 숭상하고 경배하며 치우천황께 지극한 공경심으로 제사를 지낸 것과 연관이 있다.

*풍패~풍현과 패현, 강소성 서주시의 서북에 있다.
*패상~섬서성 장안현 동쪽에 있다.
*동황태일~삼신 사상의 우주관에서 천지인 삼재의 창조정신을 천일. 지일. 태일을 말한다. 태일이 천지의 주체가 된다. 동황태일은 곧 삼신 중에 진한의 대단군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단군왕검을 말한다.
단재 신채호는 "초사에 보면 동황태일을 제사하는 풍속이 중국의 양자강 유역인 호북, 절강 등지에서 많이 유행하였다" 라고 하였다(조선상고사 상 115쪽)
*한고조 패공이 되었을 때,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은 '사기' '한고조본기'에는 "고조가 처음에 군사를 일으킬 때 치우에게 제사를 지내고 북과 깃발에 희생의 피를 발랐다"라고 하였다.
4년 후에 진나라 땅을 평정하고 축관(제사를 담당하는 관원)에게 치우 사당을 장안에 짓게 하였으니, 치우천황은 돈독히 공경함이 이와 같았다.

혜성의 주재자는 치우천황
'진서, 천문지'에 "치우기는 혜성(살별)과 비슷하나 뒤가 굽어 그 모습이 깃발과 같고, 이 별이 나타나는 지방에서는 전쟁이 일어난다"라고 하였으니, 치우천황이 천상에서 별의 주재자가 된 것이다.
'통지, 씨족락'에 "치씨는 치우의 후손이다"라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창힐과 고신이 다 치우의 후손으로 대극성에서 태어나 산동, 회수 북쪽에 살았다"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치우천황의 영웅적 풍차와 굳세고 맹렬한 기상이 아주 멀리까지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나라, 제나라의 병사들이 신비하고 이상하게 꾸면 낸 이야기에 현혹된 이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제 위왕과 연의 소왕 때부터 사신을 보내 삼신산을 찾았는 데, 진한 때의 송무기, 정백교, 극상, 선문자고와 최우 같은 무리는 연나라 사람이고, 문성, 오리, 공선경 같은 무리는 제나라 사람이다.

*통지~남송 때 정초가 지음, 삼황 때부터 수나라에 이르기 까지 역대를 총괄한 책
*대극성~대릉하 중류의 조양부근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393~397
#한자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3 신시본기를 참조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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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한겨레의 신교문화를 전파한 강태공
옛날 여상(강태공) 역시 치우의 후손이다. 그래서 성이 강인데, 치우가 강수에 살면서 낳은 아들이 모두 강씨가 되었다.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릴 때 먼저 도술을 닦고 천제지에서 천제를 올렸다. 또한 제에 봉토를 받으니 팔신의 풍속이 제나라에서 더욱 성행하였다. 후에 그 땅에 도술을 좋아하는 자가 많이 나와 신선황로(황제와 노자)와 뒤섞이고 부연하여 더욱 풍속을 윤색시켜 놓았으니 이것은 강태공이 그 풍속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강씨~염제신농씨의 성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성씨이다. 신농씨는 삼황오제의 한 분으로 경농과 의학의 시조이며, 태호복희씨와 더불어 인류문화을 연 스승이다. 동이족인 소전씨가 배달국의 8세 안부련환웅의 명으로 중국 섬서성 강수에 살았으므로 성을 강씨라고 하였다.
일찍이 강태공이 '음부경주'를 지어 자부 선생의 '삼황내문'의 뜻을 조술하였으니 연나라.제나라 선비가 어찌 괴이하고 허황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또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이 부루태자(2세단군)에게서 나와 우 사공에게 전해졌는 데, 후에 기자가 은나라 폭군 주왕에게 홍범구주 또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이다. 대저 학문은 배달 신시 시대의 구정법과 균전법에서 전해 내려온 법이다.
*본서 신시본기에는 기자가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에게 홍범구주를 전한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주나라 무왕에게 홍범구주를 전수하였다. 아마 오기인 듯하다.
*홍범구주~'서경'에 나오는 홍범구주는 낙서의 원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낙서의 원리는 문왕팔괘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서경 홍범편'에 따르면, 옛날 우임금이 낙수에 올라와 거북의 등껍질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치수사업에 성공하였다. 홍범사상은 은의 종교문화와 주의 인문 문화가 결합된 고대인의 사유가 담긴 귀중한 자산이다.
홍범구주 사상의 연원은 단군왕검의 맏아들 부루태자가 도산에서 사공 우에게 전해 준
치수방법이 담긴 금간옥첩에서 찾을 수 있다. 
'서경 주서 홍범편'에 수록되어 있다. 9조목은 오행, 오사, 팔정, 오기, 황극, 삼덕, 계의, 서장, 오복과 육극이 있다.
자세한 것은 인터넷을 참조바람니다.
*하도~태호복희씨는 일찍이(5.6천년 전) 천하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진 무늬에서 하늘과 땅의 율동상을 깨닫고 그림으로 그렸다. 천지의 기본수인 1에서 10까지의 수로 체계화 하였다.
배달국의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로서 우사라는 관직을 맡았고, 청구와 낙랑을 거쳐 하남성 회양에 도읍하였다(진)
*낙서~낙서는 4천2백 전에 하나라 우임금이 9년 홍수를 다스리는 중, 낙수에서 나온 커다란 거북의 등에 드리워진 여려 개의 점에서 천지변화의 기틀을 깨닫고 그려낸 것이다.
하도 낙서의 상수원리는 이후 문왕, 주공, 공자를 거쳐서 음양팔괘를 구성한 주역으로 체계화하였다.(자세한것은 인터넷을 참조바람니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39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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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을 수호하는 벼슬담당
*강화도 혈구 삼성랑의 뜻!
'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장사를 지낼 때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합장하여 지석(고인돌)로 표시하였다. 이것이 후에 변하여 단이 되었는 데, 지석단 또는 제석단이라고 불렀다.
산꼭대기에 땅을 파서 성단을 만든 것을 천단이라 하고, 산골짜기에 나무를 세워 토단을 쌓는 것을 신단이라 한다. 지금의 승려들은 이를 혼돈하여 제석을 단이라 칭하는 데, 옛날 우리의 고유한 법이 아니다.
삼신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이라 하는 데, 본래 삼신을 시종하는 벼슬이다. 삼랑은 본래 배달의 신하이며,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을 세습하였다. '고려팔관잡기'에도 역시 "삼랑은 배달국의 신하다"라고 기록되어있다.
곡식 종자를 심어 가꾸고 재물을 다스리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업이라 하고, 백성을 교화하고 형벌과 복을 주는 낭이라고 하고, 백성을 모아 삼신께 공덕을 기원하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백이라하니, 곧 옛날의 광명 신도이다. 모두 영을 받아 예언을 하였는 데, 신기한 이치가 자주 적중하였다.

*삼랑~삼랑은 배달의 신하이기도 하고, 관직명이다. 삼신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직분을 가졌다. 그 관직은 세습되었다. 업, 낭, 백을 모두 삼랑이다. 삼랑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고구려, 신라,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주체적인 전통사상 곧 낭가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국자랑의 전통은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화랑, 백제의 무절로 계승되었다. 문무를 겸비한 을파소, 명림답부, 을지문덕이 조의선인에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단~나무를 세워서 토단을 쌓는 것인 데, 일본의 이즈모 신사는 나무를 세워 단을 만들었다. 일본에는 10만개의 신사가 있는 데, 이즈모신사는 한반도에서 전해진 삼신을 모시던 사당이었다.


고구려 때의 능묘 법제는 천하의 으뜸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에는 백성이 계곡에 흩어져 살아 일정한 곳에 장사를 지내지 않았다. 위로 국왕부터 모두 수혈을 옮겨 천신과 짝하여 제사를 지내다가 후에는
더러 평지에 장사지내고 후에는
박달나무.버드나무.소나무.잣나무를 빙 둘러 심어 표시를 해두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신시시대는 능묘제도가 없었다.
그 후 중고시대에 이르러 국가와 부족이 강성하여 사는 것이 풍족해지자 장사 지내는 것도 사치스럽게 되었다. 예를 갖추어 제사를 지내고, 묘지도 성대하게 단장하여 둥굴거나 혹은 모나게 하고 사치스럽게 장식을 덧붙였다. 높고 크고 넓고 좁은 것이 방정하여 일정한 법이 있었고, 내벽과 외분이 모두 잘 정비되고 꾸며졌다. 이후 고구려 시대에 이르러 능묘의 법제가 천하의 으뜸이 되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401~403
#한자 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3, 신시본기를 참조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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