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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기(渤海紀)
 성미경  | 2005·09·28 16:58 | 조회 : 2,475
<font size=5>발해기(渤海紀) </font>


  1대 세조(世祖)

1년(AD668) 이름은 걸걸중상(乞乞仲象) 혹은 대중상(大仲象)이다. 고구려가 당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될 때 진국장군(振國將軍) 대중상(大仲象)은 서압록하(1)를 지키다가 변을 듣고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동모산(東 山)(2)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니 후고구려(後高句麗)라 칭하고 기원을 중광(重光)이라 하였다.

29년(AD696) 거란의 이진충(李盡忠)이 영주(營州 - 조양시)도독을 죽이고 당(唐)에 반란을 일으켰다.

31년 이보다 앞서 이진충이 당의 북경을 함락시키는데 왕이 태자 조영을 보내 계성( 城 -天津市)를 점령하였다.

32년 5월 왕이 승하하자, 묘호(廟號)를 세조(世祖)라 하고 시호(諡號)를 진국열황제(辰國烈皇帝)라 하였다.

1) 서압록하 : 오늘날의 유하(柳河)로 추정된다. 즉 마자수압록강(鴨 江; 今 大遼水)의 서쪽으로서 신민시나, 법고현이 된다.
2) 동모산(東 山) : 오늘날의 쌍료현 후고가(后高家)로 추정된다.




  2대 태조(太祖)

1년(AD699) 이름은 조영(祚榮)이며 성은 대(大)씨로 세조의 태자이다. 당이 돌궐(突厥)과 함께 침략하여 이진충을 죽이고 또한 이진충을 도왔다하여 거란 장수 이해고(李楷固)로 하여금 말갈의 걸사비우(乞四比羽)죽이고, 대조영(大祚榮)을 추격하니, 천문령(天門嶺)(3)에서 말갈과 합친 대조영에게 패하고 돌아갔다. 이에 홀한성(忽汗城)(4)을 쌓아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정하여 대진(大震)이라 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고 고구려의 옛 땅(5)을 차지하였다.

15(?)년(AD713)(6) 국호를 발해(渤海)로 변경하였다.

17년(AD715) 돌궐국의 조양성주인 고구려왕자 고임무(高任武)가 당나라에 투항하였다.(7)

21년(AD719) 봄 대안전(大安殿)에서 왕이 승하하시니, 묘호를 태조(太祖)라하고 시호를 성무고황제(聖武高皇帝)라 하였다.

3) 천문령(天門嶺) : 무순시 청원현 남천문 부근으로 추정한다
4) 홀한성(忽汗城) : 통화시 대통구(大統溝) 나통산성(羅通山城), 즉 천통성으로 추정된다.
5)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는 부여,옥저,변한,조선,해북 제국을 다 가졌다.(盡得 扶餘 沃沮 弁韓 朝鮮 海北 諸國.)"고 하였다.
여기서 해북(海北)은 대릉하 중류인 금주시 의현(義縣)을 가리키는 것이다. 조선(朝鮮)은 고조선이 있던 요동반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변한(弁韓)은 절대로 경상남도 김해가 아니라 난하 유역인 하북성 노룡(盧龍) 일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지역은 당나라 평로치청절도사나 노룡절도사와 경계지역이므로 발해가 가진 변한은 본래 변한의 동쪽 일부로서 기후(己其侯)가 있던 수유성, 즉 금서시 수중현부터 해북까지로 보아야 한다. 최초의 옥저(沃沮)는 요령성 요하 서쪽 신민시, 철법시, 강평현 일대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부여의 존재로 하여 요동반도 남단에 있던 남옥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개주시 남쪽 일대에 남옥저가 있었다. 부여는 모용황이 침탈한 의라의 부여로서 해북의 북쪽인 현재의 요령성 부신시, 청하문 부근을 언급한 것이다.
이러한 경계는 대조영의 치국 초기인 698년부터 709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6) 713년 당나라 현종은 칙사 최흔(催炘)을 바닷길로 발해에 보내어 대조영을 "발해국왕(渤海國王)"으로 책봉하고 돌아갔다.
7)  고임무는 본래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이었다. 대조영의 회유를 뿌리친 고임무의 명분없는 당나라 선택에 의하여, 다시 요령성 영주는 당나라 땅이 되고 발해와 당나라가 요하를 사이에 두고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3대 광종(光宗)

1년(AD719) 이름은 무예(武藝)로 태조의 태자이다. 연원을 인안(仁安)이라 하고 서쪽으로 거란과 오주목(烏珠牧)으로 경계를 정하니 동쪽 십리는 황수(潢水)에 임하였다(8). 개마(蓋馬), 구다(句茶), 흑수(黑水)의 여러 나라가 모두 신하 될 것을 청하며 공물을 바쳤다.

8년(AD726) 흑수부(黑水府)(9)를 정벌하였다.

14년(AD732) 대장 장문휴(張文休)를 보내 자사(刺史) 위준(韋俊)을 죽이고, 등래(登萊)(10)를 취하여 성읍으로 삼았다(11). 이에 당나라 왕 융기(隆基)가 노하여 병사를 보냈으나 이기지 못했다.

15년(AD733) 수비장수 연충린(淵忠麟)이 말갈병과 함께 요서의 대산(帶山)(12)의 남쪽에서 크게 당나라 군사를 격파하였다. 당나라는 비밀히 신라와 약속하여 동남의 여러 군과 읍을 급습하여 천정군(泉井郡)(13)에 이르자, 보병과 기병 2만을 보내 이를 격파 케하였다. 이 때 신라와 당의 군사는 동사자가 아주 많았다. 이에 추격하여 하서(河西)의 니하(泥河)에 이르러 국계를 정하니, 지금 강릉의 북이하가 그것이다. 해주(海州) 암연현(岩淵縣)(14)은 동쪽으로 신라와 경계이다. 이로부터 신라는 해마다 입공하고 임진강 이북의 제성은 모조리 우리에게 속했다. 다시 이듬해 당나라는 신라의 병사와 연합하여 침입하였으나 결국은 아무 공도 없이 물러났다.

17년(AD735) 구다 개마 흑수의 여러 나라들이 항복해 오니, 이들을 성읍으로 삼았다.

19년 송막(松莫) 12성을 쌓고 또 요서 6성을 쌓으니 마침내 5경 60주 1군 38현을 소유하여 그 둘레의 너비가 9,000리였다. 이 해 당나라 신라 및 왜도 나란히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니 천하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칭송했다.

20년(AD738) 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광종(光宗)이라 하고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했다.

8) 오늘날의 내몽고 파림좌기(巴林左旗)라는 곳의 아래 오이길목륜하(烏爾吉木倫河, 즉 임황수)가 발해의 서쪽 경계라는 것이다. 오주목(烏珠牧)이 현재의 오이길목(烏爾吉木)이다.
9) 흑수부(黑水府) : 백성시 흑수진(黑水鎭) 부근으로 추정된다.
10) 등래(登萊) : 등주와 동래로 지금의 만리장성 부근이다.
11) <신당서>의 기록에는 732년에 삼부족이 당나라에게 패퇴하였는데, 이때 발해가 해군으로서 당나라의 산동반도를 제압하였다. 발해의 대무예왕이 병사들을 이끌고 마도산을 쳐서 성읍을 함락시켰는데 당나라 장수 오승체가 발해군을 그 이남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고 하였다.
12) 대산(帶山) : 마도산(馬都山) 전투를 가리키는 것이다. 마도산은 노룡의 진산(鎭山)이라고 하였는데 진황도시 청룡현에 남아 있는 도산(都山;1846M)이다. 하북성 노룡현으로부터 만리장성 바깥에 있다.
13) 원산 지방이다.
14) 암연현(巖淵縣)은 와방점시(瓦房店市) 득리사진(得利寺鎭) 용담산성(龍潭山城)으로 추정한다.




  4대 세종(世宗)

1년(AD738) 이름은 흠무로 광종의 태자이다. 연호를 대흥(大興)이라 하였다.

2년 태학(太學)을 세우고 천경신고(天經神誥)를 가르치며 환단고사(桓檀古史)를 강하고, 또 문사들에게 명하여 국사(國史) 25권을 편찬케 하였다.

17년(AD754) 구국(舊國)(15)으로부터 300리 되는 홀한하(忽汗河) 동편의 상경(上京)(16)으로 천도하였다.

37(?)년(AD774) 수도를 동경(東京)(17)으로 옮기고, 연호를 보력(寶力)으로 개원하였다.

40년(AD777) 2째딸 정혜공주가 죽자 돈화(敦化)의 육정산(六頂山)에 장사하였다.

45년(AD782) 치청절도사(淄靑節度史) 이정기(李正己)가 군사를 이끌고 당나라 군대에 항거하니, 제(帝)는 장수를 보내 싸움을 돕게 하였다. 이정기는 고구려 사람이요, 평로에서 태어나 왕이라 칭하고 산동 15주를 차지하였다. 납(納), 사고(師古), 사도(師道)가 이어 4대를 전하였다.

55(?)년(AD785∼792) 도읍을 동경성(東京城)(18)으로 옮기고 연호를 대흥보력(大興寶力)으로 개원하였다.

55년 4째딸 정효공주가 죽자 화룡현에 장사하였다.

57년(AD794)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세종(世宗) 시호를 광성문황제(光聖文皇帝)라 하였다.

15) 구국(舊國) : 대조영의 천통성
16) 상경(上京) : 상경홀한성(上京忽汗城)으로, 홀한하(河), 즉 송화강의 동쪽이며 길림시 용담산성이다.
17) 동경(東京) :연변의 용정 일대가 된다.
18) 동경성(東京城) : 연길시(延吉市) 동북쪽 장안성(長安山城)



  5대 대원의(大元義)

1년(AD794) 황제의 아들 굉림(宏臨)이 일찍 죽어 족제(族弟) 원의(元義)가 즉위하였으나 성품이 포악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다.




  6대 인종(仁宗)

1년(AD794) 원의가 어질지 못하자 국인이 이를 폐하고 굉림의 아들 화여(華璵)를 맞아 즉위시켰다. 연호를 중흥(中興)이라 하고 상경(上京)(19)으로 천도하였다.

2년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인종(仁宗) 시호를 성황제(成皇帝)라 하였다.

19) 상경(上京) : 상경홀한성으로서 흑룡강성 영안(寧安)의 동경성.




  7대 목종(穆宗)

1년(AD795) 이름은 숭린(崇璘)이며 인종의 황숙(皇叔)이다. 연호를 정력(正曆)이라 하였다.

15년(AD809)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목종(穆宗) 시호를 강황제(康皇帝)라 하였다.





  8대 의종(毅宗)

1년 이름은 원유(元瑜)이다. 연호를 영덕(永德)이라 하였다.

4년(AD812)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의종(毅宗) 시호를 정황제(定皇帝)라 하였다.





  9대 강종(康宗)

1년 이름은 언의(言義)이다. 연호를 주작(朱雀)이라 하였다.

6년(AD817)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강종(康宗) 시호를 희황제(僖皇帝)라 하였다.





  10대 철종(哲宗)

1년 이름은 명충(明忠)이다. 연호를 태시(太始)라 하였다.

2년(AD818)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철종(哲宗) 시호를 간황제(簡皇帝)라 하였다.





  11대 성종(聖宗)

1년 이름은 인수(人秀)이다.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4세손이다. 남쪽으로 신라를 평정하여 임진강에 이르르고, 서쪽으로 당나라를 쳐서 조선, 해북(海北;大凌河) 등을 다시 수복하였다(20). 이러한 공적에 의하여 발해 왕으로서 추대되니 서울을 다시 상경(上京)(21)으로 옮기고, 연호를 건흥(建興)이라 하였다.

15년(AD832)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성종(聖宗) 시호를 선황제(宣皇帝)라 하였다.

20) <한단고기>의 기록은 "남쪽으론 신라를 평정하여 이물 철원 사불 암연 등의 7주를 두고 북은 염해 나산 갈사 조나 석혁 및 남북 우루를 공략하여 제부를 두고, 장백의 동쪽을 안변이라 하고 압록강의 남쪽을 안원이라 하고 모란의 동쪽을 철리라 하고 흑수의 강변을 회원 난하의 동쪽을 장령, 장령의 동쪽을 동평이라 하며 우루는 북쪽에 있다. 대개마의 남북에 자리잡고 땅의 넓이 9,000리 영토는 크게 열리고 문치는 널리 가득 퍼졌다."
21) 상경(上京) : 길림시 상경홀한성이다.




  12대 장종(莊宗)

1년(AD832) 이름은 이진( 震)이다. 서울을 홀한주(22)로 옮겼다. 연호를 함화(咸和)라 하였다.

3년 당의 사신 장건장이 왔다.

27년(AD858)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장종(莊宗) 시호를 화황제(和皇帝)라 하였다.

22) 홀한주 : 발해의 중경현덕부이면서, 현제 무순시 신빈현 영릉진 노성으로 추정하는 곳이다.




  13대 순종(順宗)

1년 이름은 건황(虔晃)이다. 연호를 대정(大定)이라 하였다.

15년(AD872)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순종(順宗) 시호를 안황제(安皇帝)라 하였다.





14대 명종(明宗)

1년 이름은 현석(玄錫)이다. 연호를 천복(天福)이라 하였다.

21년(AD901)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묘호를 명종(明宗), 시호를 경황제(景皇帝)라 하였다.





15대 애제(哀帝)

1년 이름은 인선(  )이다. 연호를 청태(淸泰)라 하였다.

?년 요(遼)나라가 침략하여 수도를 상경(上京)(23)으로 천도하였다.

26년(AD926) 봄 정월 야율배(耶律倍)가 동생 요골(撓骨)과 선봉이 되어 밤에 홀한성(忽汗城)을 포위하자 애제가 성밖에 나가 항복함으로써 대진국(大震國)은 망했다. 세조로부터 15세를 전하여 259년을 누렸다.

23) 상경(上京) : 상경홀한성으로 재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길림 상경시이다.


<<송사>>에 가로대, 정안국(定安國)은 본래 마한의 종자들인데 요나라에 망하니 그 족장은 남은 무리를 규합하여 그 서쪽 변두리 땅을 확보하여 나라를 세우고 개원하여 스스로 장안국이라 했다.

개보(開寶) 3년, 왕 열만화(烈萬華)는 입공하는 여진에게 부탁하여 표문을 올리고 공물을 바쳤다. 태종 때 그 왕 오현명(烏玄明)은 다시 여진에게 부탁하여 표문을 올리고 공물을 바쳤다. 단공(988-989)으로부터 순화(990-994) 사이에 다시 여진을 통해 표를 올리더니 그 뒤에는 소식이 없다고 하였다.

병오 요(遼)의 태조가 동단국(東丹國)을 세우고 장자 배(倍)를 인황왕(人皇王)으로 삼았다. 왕은 감로(甘露)라고 개원하고 홀한성(忽汗城)을 천복성(天福城)이라 개칭하였다. 천자의 관복을 준용하고 12류의 면류관을 쓰고 모두 용의 형상을 그렸으니 바로 대진국의 옛날 제도이다.

태조가 죽자 인황왕의 동생이 왕에 오르자 인황왕은 송으로 망명하니 후에 암살을 당하였다.

감로 27년 겨울 경진에 요는 동경 중대성을 쳐서 동단국도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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