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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16 풍월주 보종공~22세 풍월주 양도공)
 성미경  | 2009·09·03 08:30 | 조회 : 3,255
[16세 풍월주 보종공]-------------------------------------------------------------------------------------------------------------------

16세 보종공宝宗公은 또한 미실궁주의 사자私子이다. 홍제弘濟 8년(579)에 사도태후가 친정親政을 하였다.191) 미실궁주가 새주璽主192)가 되어 정(사)당193)에서 문서들을 보다가 낮 꿈을 꾸었는데 백양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것이 길한 꿈임을 알고 급히 제를 끌고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194) 제는 나이가 아직 어려서 궁주의 기분에 따라 주지 못했다. 이에 금하衿荷 설원랑薛原郞에게 다시 들어가 모시도록 하여 공을 낳았다. 공은 자라면서 모습이 금하(설원랑)와 같았으므로, (미실)궁주가 금하에게 내려 주고 아들을 삼게 하였다. 궁주는 공이 막내아들이 되기 때문에 매우 사랑하였다. 하종공 또한 공을 도탑게 사랑하였다. 공은 처음에는 제를 불러 아버지라고 하였다. 자라자 금하에게 돌아갔다. 제는 (보종을) 아들로 생각하여 내리는 재물이 심히 많았다.

[보종공의 모습]
공의 성품은 청아하였다. 문장을 좋아하였으며 … 정이 많았다. 사람들을 위하여 웃고 울었으며, 온화함과 순량함은 마치 부녀자와 같았다. 사람들이 병들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슬프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마치 자기가 아픈 것 같았다. 새와 짐승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한 마리의 벌레나 한 포기의 풀도 해친 적이 없었다. 선과 악, 이와 해를 나누지 않았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늘 작은 청려靑驢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며 시가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공을 가리켜 ‘진성공자眞仙公子’라고 하였다. 얼굴은 관옥과 같았고 손은 마치 하얀 새 싹195)과 같았다. 그림을 잘 그렸는데, 인물과 산수의 절묘함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호림이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다.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아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보종공과 미실]
궁주가 일찍이 그 바라는 바를 물었더니, 공이 답하기를 “어머니와 더불어 같이 죽는 것입니다”하였다. 궁주가웃으며 “네가 색은 좋아하지 않고 나와 같지 죽기를 원하니, 또한 무슨 뜻인가?”하였다. 공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무도 어머니만 못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살 수가 없습니다”하였다. 궁주가 (다시) “네가 사랑하는 여자가 없는 까닭에 오로지 어미에게 정을 쏟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을 택하여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찌 손자를 볼 것인가?”하였다. 공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합니까?”하자, 궁주가 “너와 같은 사람이 아름답다. 얼굴은 옥과 같이 아름답고, 입술은 마치 붉은 연지와 같으며, 눈은 아리땁게 빛나고, 말에 정情의 뿌리가 있는 자이면, 또한 가하지 않겠느냐”하였다. 공이 답하기를 “정의 뿌리는 갈래가 많고, 아리땁게 빛나는 것은 속기 쉬우며, 붉은 연지와 옥과 같은 아름다움은 몸을 지키는 보배가 아닙니다”하였다.

[보종공과 여자]
궁주는 이에 윤궁允宮의 딸 현강玄剛에게 공을 모시도록 하였으나, 공은 접촉한 일이 없이 호림공을 불러 함께 살았다. 호림공은 이에 현강과 통하여 딸 계림桂林을 낳았다. 공은 이에 현강을 호림공에게 넘겨 주고, 스스로 아내를 맞지 않았다. 궁주가 근심하여 종실의 여자 종녀宗女들을 모아 말하기를 “나의 아들과 친할 수 있는 사람은 상을 주겠다”하였다. 종실의 여자들이 다투어 공을 재미있게 해 주려 하였으나, 모두 이루지 못하였다. 보명궁의 딸 양명공주良明公主가 꾀를 내어 공을 유혹하여 (정을) 통하였다. 공은 비로소 여색을 알게 되었다. 궁주가 크게 기뻐하여 양명에게 큰 상을 주었다. 보라宝羅와 보량宝良 두 딸을 낳고는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학선學仙과 호국]
공은 화랑이 되어 낭두를 ‘아재비(아저씨)’라 불렀고, 한 번도 그 칭호를 바꾸지 않았다. 염장공을 부제로 삼았는데 오히려 형과 같이 섬겼다. 얼굴이 늘 어린아이와 같았다. 늘 콩죽을 먹고, 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원의 여러 종류의 고목을 보고, 물고기를 기르고 하을 기르며 그 사이를 거닐었다. 유신공을 엄한 아버지와 같이 두러워하였다. 유신공이 웃으며 “형이 어찌 아우를 두려워합니까?”하자, 공이 말하기를 “(유신)공은 바로 천상의 일월日月이고 나는 곧 인간의 작은 티끌입니다. 감히 두려워 하고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드디어 풍월주의 위位를 물려 주었다. 유신공이 낭도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희들이 선仙을 배우고자 하면 마땅히 보종형공宝宗兄公을 따라야 하고, 나라를 지켜 공을 세우려면 마땅히 나를 따라야 할 것이다”하였다. 미실궁주가 일찍이 유신공에게 일러 “나의 아들은 어리석고 약하니 도와 주기를 바란다”하니, 유신공이 말하기를 “신이 실로 어리석습니다. 형은 비록 약하나, 그 도道는 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하였다.

[우주 진기와 편작]
궁주가 죽자薨 공은 스스로 더불어 따르지 못한 것을 죄로 생각하여, 문을 잠그고 홀로 거처하며 궁주가 쓴 수기手記 7백 권을 베껴 집에 간직하였다. 또한 궁주의 초상을 그려서 걸고 아침 저녁으로 절하였다. 역대 상선上仙들의 모임에서는 번번이 아랫자리에 앉아서 오직 ‘예’, ‘예’ 할 뿐이었다. 그러나 우주의 진기眞氣를 깊이 살펴서 어조魚鳥와 화목花木이 끊임없이 생기는 이치에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196)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칠성회]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유신공이 칠성회七星會를 열어 반드시 공에게 물었다. 공은 “나는 물고기와 새의 벗으로 국사를 어찌 알겠습니까. 오직 여러 공을 따를 분입니다”하였다. 그러나 유신공은 공의 한 마디를 중하게 여겨 묻지 않는 적이 없었으니, 공의 덕 또한 크다.

찬하여 말한다 : 어조魚鳥의 벗으로 천리天理를 달관하니, 말 없이도 교화하고, 도모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적송赤松197)의 아들은 오직 공뿐이다.

세계 : 부계父系는 설원공조에 상세하고, 모계母系는 세종공조와 미생공조에 상세하다.198)


[17세 풍월주 염장공]-------------------------------------------------------------------------------------------------------------------

<공은 건복建福 병오년(586)생이고 신사년(621)에 (화)랑주가 되었다. 태화太和 원년 무신년(648)에 죽었다. 나이가 63세였다199)>

17세 염장공廉長公은 천주공天柱公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지도태후知道太后이다. 그러므로 공은 용춘공龍春公의 이부동모제異父同母弟가 된다. 공은 풍채가 좋고 말을 잘 하였으며, 무리를 다스리고 윗사람을 잘 섬기는 재능이 있었다. 지도태후가 공을 사랑하여 용춘공에게 맡겨 호림공에게 속하게 하였다.

[보종공의 부제]
그 때 공은 나이가 14살로, 보종공보다 6살이 적었으나, 준수하기는 대체로 비슷하였다. 공은 보종공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여愛 자원하여 그의 아우가 되었다. 보종은 형으로 처신하지 않고 오히려 공을 형처럼 섬겼다. 공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 것이 없었고, 정은 마치 부부와 같았다. 호림공이 풍월주가 되자, 보종공이 부제가 되었고 공은 전방대화랑이 되었다. 그 때 나이 18살이었는데, 용기와 힘이 있어 능히 무리를 복종시킬 수 있었다. 키가 이미 보종공보다 커서 보종공을 아이처럼 늘 업어 주었다. 보종공이 (부제를) 유신공에게 양위하자, 염장공이 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보종공을 보호하려 하였다. 호림공이 곤란하게 여겼다. 미실궁주가 이에 염장공을 불러 달랬다.
유신공이 풍월주가 되자, 보종을 좌방대화랑으로 삼고 염장공을 부제로 삼고자 하였다. 공이 보종공을 힘써 밀어 부제가 되게 하고, 스스로는 좌방대화랑이 되었다. 보종공은 일을 본 적이 없고, 공이 모두 대행하였다. 보종은 내사內事200)에 욕심이 없었다. 양명良明과 혼인시켰는데, 양명은 염장공과 혼거하여 아들 장명長明을 낳았다. 하종공의 딸 하희夏姬가 보종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여러 차례 와서 유혹하였다. 보종은 “만약 우리 염장과 사랑을 하면 나 또한 더불어 사랑할 것이다”하였다. 하희는 이에 공에게 시집가서 하장夏長・윤장閏長・춘장春長을 낳았는데, 모두 귀하게 되었다. 보종공이 풍월주가 되자 공이 부제가 되었으나, 실제로는 풍월주 역할을 하였다. 그 때 나이가 31살이었는데, 중망衆望을 널리 얻었다. 보종이 1년이 안 되어 물려주려 하자, 공은 웃으며 “내가 실제로는 풍월주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찌 반드시 물려주려 하십니까?”하였다. 보종은 이에 그만두었다.

[3파 교혼]
공은 부제로 6년, 풍월주로 6년을 있었기에 11년간 실제로 낭정郎政을 주관하며 3파를 화합시키는 데 힘쓰고, 서로 교혼을 시켜 마침내 동화同和를 이루었다. 그러나 낭권郎權의 큰 것은 모두 가야파에게 돌아가고, 진골과 대원은 모두 그 안에서 소멸해 버렸으니, 또한 운명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수망택]
공의 외척과 처족들이 사사로이 청탁을 하여, 3파 낭두의 딸들을 모아 첩으로 삼기를 힘썼기 때문에 서자가 매우 많았다. 보종공의 집안일을 보아 주고 그 재물을 취하여 사용하였다. 유신공의 부제로서 춘추공을 부제로 삼아 그 지위를 넘겨 주었다. 선덕공주에게 몰래 붙어 칠숙柒宿의 난201)을 다스리고, 공으로 발탁되었다. 선덕이 즉위하자, 들어가 조부調府의 영令202)이 되어 유신과 춘추에게 재물을 고읍하여 주었고 또한 사적으로 치부를 하였다.203) 그 때 사람들이 공의 집을 가리켜 수망택水望宅204)이라 하였다. 금이 들어가는 모습이 홍수와 같은 것을 말한 것이다. 세상에서는 공을 미생공과 비교한 바 있는데 미생은 극도로 사치를 하였으나 공은 검약을 몸소 실천하였으니, 그 부유함이 미생공보다 훌륭하였다.

찬하여 말한다 : 몸소 검소하여 부유하였고 … 공에게 충성스러웠고 칠성우七星友와 교유하여 힘을 다하여 찬동하였다. 통일의 업적이 실로 공에게 힘입었다.

세계 : 아버지 천주공은 진흥대제의 아들이다. 그 어머니는 월화공주月華公主로 가야 이뇌왕異腦王의 딸이다. 곧 우리 양화공주兩花公主의 딸이다. 진흥의 소비小妃로 들어가 천주공을 낳았다. 커다란 도량이 있어 가야파가 여러 차례 추대하려 하였으나, 파가 달라 허락받지 못하였다. 지도태후가 홀로 되어 신제新帝를 섬겼는데, 총애가 쇠하자 천주공에게 시집가서 공의 형제 3인을 낳았다. 모두 천주天柱의 풍모를 지녔다. 모계는 용춘공조에 상세하다.


[18세 풍월주 춘추공]-------------------------------------------------------------------------------------------------------------------

18세 춘추공春秋公은 우리 무열대왕이다. 얼굴이 백옥과 같고 온화한 말씨로 말을 잘 하였다. 커다란 뜻이 있었고 말이 적었으며, 행동에는 법도가 있었다. 유신공이 위대한 인물로 여겨 받들어 군君205)으로 삼았으나, (무열)왕이 사양하여 부제가 되었다. 유신공이 퇴위하였으나 보종과 염장, 양공이 있었기에 춘추공은 양보하여 기다렸다. 이에 이르러 풍월주에 오르니 보령寶齡이 24살이었다. 유신공의 누이 문희文姬를 화군花君으로 삼아 장자 법민法敏을 낳았는데, 곧 우리 문무제文武帝이다.

[문희]
이에 앞서 문희의 언니 보희宝姬가 꿈에 서악西岳에 올랐는데, 큰 물이 경성에 가득한 것을 보고 불길하다고 생각하였다. 문희가 (이 꿈을) 비단 치마와 바꾸었다. 그 후 열흘 만에 유신이 공과 더불어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였는데, 곧 정월 오기일午忌日이었다. 유신은 일부러 공의 치마裙를 밟아 옷섶의 옷고름을 찢었다. 들어가서 꿰매기를 청하니, 공이 따라 들어갔다. 유신이 보희에게 시키고자 하였는데 병 때문에 할 수 없어서 문희가 이에 나아가 바느질을 하여 드렸다. 유신은 피하고 보지 않았다. 공이 이에 사랑을 하였다. 1년쯤 되자 임신을 하였다. 그 때 공의 정궁부인正宮夫人인 보량궁주宝良宮主206)는 보종공의 딸이었다. 아름다웠으며 공과 몹시 잘 어울렸는데, 딸 고타소古陀炤207)를 낳아 공이 몹시 사랑하였다. 감희 문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밀로 하였다.

[선덕공주의 도움]
유신은 이에 장작을 마당에 샇아 놓고 막 누이를 태워 죽으려 하며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그 대 공은 선덕공주를 따라 남산에서 놀고 있었다. 공주가 연기에 대하여 물으니, 좌우에서 사실대로 고하였다. 공이 듣고 얼굴색이 변하였다. 공주가 “네가 한 일인데 어찌 가서 구하지 않느냐?”하였다. 공은 이에 …하여 구하였다.

[포석사의 길례]
포사鮑祠에서 길례를 행하였다. 얼마 안 있어 보량궁주208)가 아이를 낳다가 죽자, 문희가 뒤를 이어 정궁이 되었다. 이에 이르러 화군花君이 되어 아들(법민)을 낳았다. 보희는 꿈을 바꾼 것을 후회하여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다. 공은 이에 첩으로 삼았는데, 아들 지원知元과 개지문皆知文을 낳았다. 이 이야기는 『문명황후사기文明皇后私記』에 나온다. (공은) 풍월주로 4년간 있다가, 부제 흠순공欽純公에게 물려 주었다. 흠순은 곧 유신공의 포제胞弟이다. 왕의 대업은 사책史冊에 있으므로 여기에는 기록하지 않는다.

  찬하여 말한다 : 세상을 구제한 왕이고 영걸한 임금이다. 한번 천하를 바로잡으니 덕이 사방을 덮었다. 나아가면 태양과 같고 바라보면 구름과 같다.

세계 : 아버지는 용춘공으로, 금륜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천명부인으로, 진평대제의 딸이다. 천명의 어머니는 마야인데 복승공福勝公의 딸이다.


[19세 풍월주 흠순공]-------------------------------------------------------------------------------------------------------------------

19세 흠순공欽純公은 유신의 동생이다. 처음에 염장공의 부제가 되었는데, 유신공의 명으로 춘추공에게 양보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풍월주의 위에 이르렀다.

[유신과 관계]
그 해에 공의 아버지 서현공과 형 유신이 낭비娘臂를 쳐서 큰 공을 세웠다. 공은 분연히 말하기를 “나로 하여 이 같은 빈 그릇만 지키라고 하니,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 나도 또한 지금부터 나갈 것이다”하였다. 대개 그 때 사람들이 공 세우기를 좋아하고 선도仙道를 탐구하지 않았는데, 공 또한 그러한 사람이었다. 이로써 공의 재위 4년 동안 한결같이 예원공禮元公209)이 낭정을 대행하였다. 공은 이에 예원공에게 물려 주며 “실제로 (낭정을) 행하는 사람이 푸월주가 되어야 한다”하였다. 공은 성품이 활달하였고, 청탁에 구애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유신공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였으나, 공은 홀로 그러지 않고 “어리석은 형이 어찌 두려운가”하였다. 그러나 유신공의 우애는 지극히 돈독하여 공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사랑하였다.

[보리공의 사위]
공은 나이 18살에 전방화랑이 되어 상선上仙을 두루 배알하였다. 나의 보리菩利 할아버지210)를 찾았을 때 예원공의 서자庶姊 보단낭주菩丹娘主는 바야흐로 나이가 16살이었고, 예원공은 9살이었다. 공은 보리 할아버지를 정자 위에서 배알하고, 보단이 예원공을 데리고 정자 아래 연못가에 있었는데, 그윽한 아름다움이 마치 신선과 같았다. 공은 곁눈으로 오랫동안 보다가 갔다. … 수일 만에 와서 보리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사위가 될 것을 청하였다. 보리 할아버지는 그 …을 장하게 여겨 …하며 말하기를 “남자가 삼가야 할 것은 색이다. 네가 나의 딸을 사랑하되 다른 여자들을 많이 거느리지 않는다면 줄 수 있고, 그렇지 아니하면 줄 수 없다”하였다. 공이 맹세를 하였다. 보리 할아버지는 이에 보단을 공에게 시집보냈다.

[보단의 내조]
보단은 보리 할아버지의 풍모가 있어 재능과 아름다움이 남이 따를 수 없이 뛰어났고, 미덕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공은 기쁨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였다.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보단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였다. 일곱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 아름답고 용감하며 아버지를 닮아서 집에 돌아오며 단란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있었다. 공은 늘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능히 국가를 위하여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처가 뒤에서 도운 때문이다”하였다. 유신공은 큰 일이 있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문을 그냥 지나갔는데, 공은 큰 일이 있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문을 그냥 지나갔는데, 공은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집에 이르러 낭주娘主와 이야기를 하고 나서 갔다. 공은 늘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지방에 많이 있었는데, 낭주는 원망하지 않고 집에 있으며 기도드렸다. 집에 돌아오면 한 집안 식구들이 떠들며 좋아하였다.

[금주]
공은 젊어서 술을 즐겼다. 낭주가 친히 술을 빚어 다락 위에 두고 드렸다. 하루는 공이 술을 찾자 낭주가 다락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않았다. 공이 이상하게 여겨 다락에 오라가니 큰 뱀이 술독에 들어가 취하여 있고, 낭주는 놀라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공은 이에 낭주를 업고 내려왔다. 마침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공의 가족]
보리 할아버지가 듣고 “처를 사랑함이 이와 같으면 곧 둘째 딸을 주어도 좋다”하였다. 이에 낭주의 동생 이단利丹을 또 공에게 시집보내어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형제가 한 지아비를 섬긴 까닭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기색이 없었다. 공은 집에 있으면 오직 좋은 아버지가 되어 두 낭주 및 자녀들과 노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으니, 그가 삼한의 대영걸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저쟁에 임하면 초목이 모두 떨고, 집 안에서는 닭과 개가 모두 업신여긴다고 한 것은 공을 두고 한 말이다.

[염장공의 재물과 딸]
공은 재물에는 어두워 늘 염장공에게 구하였다. 염장공은 웃으며 “네가 나를 곳간으로 삼는데, 내 아이를 기르지 않는다면 나는 손해다”하였다. 공은 이에 여러 아들에게 염장공의 딸을 아내로 맞게 하여, 그 딸들이 염장공의 재산을 나누어 시집오게 하였다. 보단은 “염(장공) 형은 색을 좋아하고 재물을 탐하니, 그 딸을 맞으면 가풍을 상하게 될까 염려됩니다”하니, 공은 “색을 좋아하는 것은 성품이지요. 나 또한 그대가 없었다면곧 염형과 같았을 것입니다. 내가 재물을 탐했다면 곧 집이 부유해져서 그대로 하여금 고생을 하지 않게 했을 것인, 호색탐재好色貪財 또한 할 만하지 않소?”하였다. 보단은 (막을) 수 없었다. 그(염장공)의 딸은 과연 행실이 없었다. 공 또한 심하게 책망하지 않았다.

[흠순의 아들들]
공의 셋째 아들만이 홀로 (염장공의 딸)을 버리고 유신공의 딸 영광令光을 아내로 맞아 아들 영윤令胤을 낳았으니, 그가 곧 반굴공盤屈公이다.211) 부자가 마침내 전쟁에서 죽었으니, 아름다운 이름이 백세에 남을 것이다. 넷째 아들 원수元帥, 여섯째 아들 원선元宣을 모두 중시中侍가 되었는데 보단의 소생이다. 아홉째 아들 원훈元訓 또한 중시였는데 곧 이단利丹의 소생이다. 모두 공의 음덕이 이룬 것이다.

[삼보三寶]
공은 여러 차례 대전은 거쳤으나 패한 일이 없었고, 사졸 사랑하기를 어린아이같이 하였다. 조정에서는 공을 삼보三寶의 하나로 삼았다. 문무제文武帝 20년(680) 2월, 보단낭주와 더불어 함께 천계天界로 올라갔다. 나이가 82살이었는데 낭주는 2살이 적었다. 자손이 백을 헤아렸고 조문하는 사람이 만을 헤아렸다. 공결할 만하지 않은가.

찬하여 말한다 : 유신의 동생이고 보리의 사위이다. 하늘을 뒤집는 큰 공은 좋은 짝을 얻는 데서 비롯되었다. 오직 공의 덕은 만세에 이르리라.

세계 : 유신공과 같다.


[20세 풍월주 예원공]-------------------------------------------------------------------------------------------------------------------

20세 예원공禮元公212)은 보리공의 아들이다. 흠순欽純을 따라 화랑이 되었다. 염장공이 풍월주가 되자 흠순공이 부제가 되어 공을 전방화랑으로 삼았다. 성품이 단아하고 따뜻하고 자상하였다. 자신을 굽혀 다른 사람보다 낮추었고, 도로써 자신을 다스렸다. 낭도들이 축하하여 “과연 이화二花의 손자213)입니다”하였다. 흠순공을 섬기기를 같은 배에서 난 형처럼 하여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흠순공이 풍월주가 되자 부제로서 (낭정을) 대행하여 폐정을 많이 개혁하였다.

[가야파의 불만]
가야파의 옳지 않은 자들이 진골(정통)을 부흥하는 일이라 하여 비방하였다. 공이 스스로 물러나려 하자, 흠순공이 노하여 그 무리를 내쫓고 말하기를 “부제는 곧 내 몸이다. 어찌 나와 조그마한 차별이라도 있겠는가. 또한 지금 천하가 한 집이 되었는데, 어찌 진골과 가야가 있겠는가”하였다. 이에 진골 정통의 옛 낭두郎頭들을 대거 진출시켜 등용하였다. 가야파의 낭두들이 염장공에게 많이 모여 간절히 구원을 청하였다. 염장은 이에 (예원)공을 청하여 술을 내리며 위로하여 말하기를 “듣건대 네가 나이가 어리나 낭정을 잘 한다고 하니 기쁨을 금할 수 없다”하였다. 그 때 가야파의 많은 낭두들이 당하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염장공이 그들을 가리키며 “이 무리들은 모두 내가 거느리는 바이다. 나를 믿고 너에게 불순하니 죄를 마땅히 엄히 다스려야 한다. 너느 심한 자를 매로 다스려야 마땅하다”하였다.
(이에) 공은 “불순하는 자가 없으며, 신 또한 (처벌)214) 할 뜻이 없습니다. 단지 (풍월)주 형이 노하신 것은 말이 누차 귀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형의 노함이 조금 가라앉으면 곧 신은 마땅히 모두 제자리에 임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염장공이 웃고 공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진실로 나의 좋은 부제副弟이다. 나는 이미 선종仙宗215)이 보통 풍월주들과 같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낭도들은 본래 너의 집안의 무리이니 어찌 파가 있겠느냐. 이 무리들이 모두 너의 종奴들이니 또한 걱정스럽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낭두들이 모두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죽을 죄를 지었으니 부주副主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였다. 공이 “너희들은 죄가 없는데 쫓겨났다. 내가 그 억울함을 알았으니 각자 돌아가서 기다려라”하였다. 낭두들이 기뻐하며 물러났다.

[염장의 딸들]
염장공 또한 크게 기뻐하며 공에게 술을 억지로 권하며 “첩으로 삼을 만한 어리석은 딸들이 있으니, 네가 택해 보아라”하였다. 곧 서녀庶女 세 사람을 나아가 공에게 절하게 하였다. 공은 사야하며 말하기를 “신의 어머니가 매우 엄하여 감히 스스로 택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염장공이 칭찬하며 “이 같은 아들이 있으니 어머니는 걱정할 것이 없다”하였다. 곧 세 딸에게 명하여 손수 만든 옷을 공에게 바치고 애교를 부리게 하였다. 공이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거두어 돌아왔다. 모두가 염장공의 첩인 가야파 낭두 딸들의 소생이다. 염장공은 17명의 첩이 있었다. 진골 정통파가 5명, 대원 신통파가 4명, 가야파가 8명이었다. 모두 낭두郎頭의 딸이었는데, 서로 총애를 다투어 구걸하였다.216)
예원공이 여러 차례 염장공의 부름을 받고 당堂에서 배알을 하면 염장공은 첩을 품고 앉아서 “아무개某는 실은 이 첩의 형이다. 너는 나를 위하여 (그를) 보호하여 주기 바란다. 나는 장차 첩들 때문에 곤란하여 고생하다가 죽을 것이다. 나의 마음은 본래 사사로움이 없는데, 첩들이 그냥 두지 않으니 어쩌겠는가”하였다. 공은 따뜻한 말로 사정을 아뢰어 올리고 물러났다. 염장공은 공이 나가는 것을 보고 그 첩에게 말하기를 “예원은 비록 어리나 의리가 있다. 너희들은 나를 강요하여 체면을 잃게 하지 말라”하였다. 첩들은 (예원)공이 어머니에게 효성스러운 것을 알고, 값비싼 뇌물로 공의 어머니 만룡낭주에게 잘 보이려 하였다.
만룡 또한 모두 어루만지고 순종케 하는 데 마음을 씀이 실로 많았다. 만룡은 평소에 미실의 딸 난야궁주蘭若宮主와 잘 지냈다. 그 딸 우야공주雨若公主는 진평제의 소생인데, 만룡은 공에게 아내로 맞을 것을 명하였다. 공 또한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서로 화합한 것이 마치 아교나 옻으로 붙여 놓은 것 같아서217) 첩을 두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염장공이 그 딸을 첩으로 삼아 주기를 너무 절실히 원하였으므로, 서로 사이가 나빠질까 염려하여 만룡이 취하기를 권하였고, 우야 또한 권하였다. 공은 부득이 염장공의 딸 찰기察己를 첩으로 삼았다. 곧 가야낭두 찰인察忍의 딸 소생이다. 만룡이 그 예의바른 태도를 보고 … 정하였다.

[부제 선품공]
공의 부제 선품공善品公 또한 미실궁주의 딸 보화공주宝華公主 소생이다. 보화는 난야와 어머니가 같고, 우야와는 아버지가 같다. 그러므로 제帝가 (예원)공을 사랑함이 유달리 심하였다. 공은 선품보다 두 살이 많았다. 뜻과 취향이 서로 맞아 마침내 형제가 되었다. 은혜와 사랑함이 날로 두터워지자, 문득 끌어들여 화제花弟218)로 삼고 거취를 같이하였다. 선품은 대원 신통파인 까닭에 낭도 중에 간하는 자가 있었는데, 공이 정색을 하며 거절하였다. 공이 풍월주가 되자 끌어서 부제로 삼았다.

[선도와 무도]
그 때 가야파인 진주공眞珠公이 오랫동안 좌방左方(화랑)으로 있었으나 풍월주가 되지 못하였는데, 어떤 자가 그에게 물려 줄 것을 권하였다. 공은 웃으며 말하기를 “진주는 나의 형이다. 어찌 형에게 동생에게 하는 것처럼 물려 줄 수 있겠는가”하였다. 진주는 이에 화랑을 물러나 병부兵部에 들어갔다.219) 공과 선품은 더불어 낭정을 수행하였는데, 3파를 균등하게 등용하여 중망衆望을 크게 만족시켰다. 선도仙道는 보종을 따르고 무도武道는 유신을 따랐다. (예원공은) 풍월주에 3년간 있다가 선품공에게 물려 주고 예부禮部로 들어갔다가 조부調府로 옮겼다. 선덕대왕이 총애하여 내성사신內省私臣220)으로 발탁하였다. 대왕이 죽자崩, 물러나 양진養眞220)을 행하였다.

[해신의 노여움을 풀다]
그 때 춘추공이 장차 당나라에 들어가려 할 때, 문장 잘 하고 풍채 좋은 사람을 선발하려 하였다. 선화仙花 3인, 승려僧侶 3인이 따라가기 때문에, 그들을 주관하는 사람이 없으면 마땅한 사람을 선발할 수 없었다. 흠순공欽純公이 “우리 예원이 아니면 누가 그것을 감당하겠는가”하니, 춘추공이 크게 기뻐하며 선발하였다. 공이 한가롭게 있으려 하여 사양하니, 춘추공이 말하기를 “이 같은 유사시에 어찌 한가로이 살 수 있겠는가?”하였다. 공은 이에 따랐다. 조정에서는 당나라 사람들이 색을 좋아한다고 하여, 유화遊花 3인을 뽑아 꾸며 태우고 거짓으로 종실 여자라고 이르게 하였다. 공이 “색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도 도가 아닌데, 하물며 골품骨品을 속이는가”221)라고 하며 따졌으나 어쩔 수 없었다.
도중에 풍랑을 만났는데, 뱃사람이 여자를 바다에 빠뜨리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공이 막으며 “인명은 지극히 중한데 어찌 함부로 죽이겠는가”하였다. 그 때 양도良圖 또한 선화仙花로서 같이 배를 타고 있었는데, 다투어 말하기를 “형은 여자를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주공主公222)을 중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만약 위험하면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하였다. 공이 침착하게 말하기를 “위험하면 함께 위험하고 편안하면 함께 편안하여야 한다. 어찌 사람을 죽여 삶을 꾀하겠는가”하였다. 말을 마치자 바람이 고요하여졌다. 사람들은 해신海神이 공의 말을 듣고 노여움을 풀었다고 생각하였다.

[당인과의 문답]
당나라에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은 공이 원광의 조카로서 문장을 잘 한다고 존중하였다. 유향柳享이 신선神仙의 도에 대하여 물었다. 공은 보종宝宗이 그 도를 능히 얻었다고 답하였다. 또한 연서燕書에 대하여 물었는데, 공이 암송하여 주었다. 또 우리 나라의 혼인하는 도道223)에 대하여 물으니, 공이 신의 뜻에 따른다고 답하였다. 어떠한 신이 시조냐고 묻자 “일광日光의 신이다”하였다. 유향이 묻기를 “일광과 금천씨金天氏224)가 같은가?”하였다. 대게 전에 왔던 사신이 우리 나라에서 금천씨를 조상으로 삼는다고 한 때문일 것이다. 공이 반문하기를 “금천씨가 어떻게 신이 되겠는가?”하니, 유향이 답을 할 수 없었다.
또 당나라 재상이 묻기를 “너희 나라와 백제는 서로 혼인을 하였는데, 지금 어찌하여 서로 다투는가?”하니. 공이 말하기를 “백제가 고구려에 쫓겨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우리 나라가 군대와 땅을 빌려 주어 보호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우리에게 신하로서 의지하였는데, 점차 안정이 되자 도리어 우리 땅을 침범하였다. 또한 가야는 본래 우리의 부용국附庸國이었고 지금은 이미 우리 나라에 들어왔는데, 백제가 그 서쪽 땅을 빼앗고 돌려 주지 않는다. 대개 탐욕스럽고 도가 없다. 그러므로 천병天兵을 얻어 토벌코자 한다”하였다. 또 묻기를 “너희 나라에서 건원칭제建元稱帝한 것은 언제부터인가?”하니, 공이 말하기를 “멀리 상고上古부터였다. 먼저 온 사신이 법흥왕부터 시작되었다고 대답한 것은 단지 문자 사용을 말한 것이다”하였다.
또 묻기를 “가야가 너희 나라를 부용국으로 삼았는지, 너희 나라가 가야를 부용(국)으로 삼았는지 어느 것이 옳으냐?”하니 공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한漢 선제宣帝 오봉五鳳 원년(기원전 57)에 섰고, 가야는 한漢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기원후 42)에 섰으니, 누가 옳은지 알 수 있다”225)하였다. 당나라의 재상이 옳다고 여겼다.

[기신의 계책]
돌아올 때 당나라 사람들이 유화가 말이 통하지 않고 풍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아름다우나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유화도 함께 돌아오려고 하였으나, 종자從者가 그들을 버리려고 하였다. 이에 공이 “부모와 형제가 있는데 어찌 버릴 수 있는가”하였다. 도중에 적병이 있는 곳을 지날 때 온군해溫君解로 하여금 기신紀信의 계책226)을 쓰게 하여 벗어났다.

[집사부 대등]
공으로 작爵이 오르고, 다시 품주稟主가 되었다가, 2년 후 예부의 영令으로 나갔다.227) 이어 이부理府의 영令이 되었다. 여러 차례 요직에 있었으며 품品이 이찬伊湌에 이르렀다. 문무제 13년(673) 집사부執事部의 대등大等228)으로 있으며 관아에서 죽었다卒. 나이가 67살이었다. 제帝가 슬퍼하여 상대등上大等의 예로써 장사지내 주었다. 오호! 성인은 진실로 수壽를 누리지 못하는구나. 공의 덕으로서도 상수上壽를 누리지 못했으니, 애석하도다!

[신라의 혼도婚道]
공은 우리 나라의 혼인의 도를 부끄럽게 여겨 신의 뜻에 따른다고 대답하고 돌아와, 의논하여 고치려 하였으나 관습이 오래되어 고치기 어려웠다. 항상 걱정하였다. 자손들에게 다시는 나쁜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훈계하였다. 공의 아들 오기공이 사촌 누이 운명雲明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공이 노하여 보지 않았다. 흠순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선품의 딸이니 네가 마땅히 자식으로 여겨야 하는데, 도리어 노여워하니 무슨 일인가. 산 자는 불안하고 죽은 자는 원망할 것이다. 네가 그것을 삺야 한다”하니, 공은 부득이 허락하였다. 운명은 곧 대문大問의 어머니이다.229) 대문을 낳자 공은 기뻐하여 말하기를 “하늘의 뜻이구나. 아니면 선품이 이 손자를 점지하려고 너희들을 사랑에 빠지도록 하였느냐”하였다. 마침내 다시는 혼도婚道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보리의 자녀들]
공의 딸 온희溫喜는 춘장공春長公에게 시집갔고, 성희星喜는 원수공元帥公에게 시집갔으며, 우희雨喜는 마차공摩次公에게 시집갔다. 서녀庶女는 찰희察喜 ・ 찰연察燕 ・ 찰미察美 ・ 찰해察亥이다. 서자庶子인 찰덕察德 ・ 찰원察元은 모두 출세하였다.

찬하여 말한다 : 선화仙花의 으뜸이요 문장이 뛰어났다. 청빈한 호덕好德을 나라를 위하여 다 바쳤네. 신선을 물으려 하면 공이 아니고 누구이며, 성현을 물으려 하면 공이 아니고 누구인가.

세계 : 아버지는 보리 사문이고 어머니는 만룡낭주이다. 만룡의 아버지는 정숙태자이고 어머니는 만호태후이다. 정숙의 아버지는 진흥대제이고 어머니는 숙명공주이다.


[21세 풍월주 선품공]-------------------------------------------------------------------------------------------------------------------

21세 선품공善品公은 구륜공仇輪公의 아들이다. 예원공을 따라 화랑도에 들어갔다. 용모가 절묘하고 언행이 매우 아름다웠다. 문장을 좋아하고 선불仙佛을 통달하였으니 진실로 높은 골품의 인물이다. 예원공이 누이 보룡宝龍을 처로 삼게 하여,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 주었다. 공은 4년간 풍월주로 있으며 한결같이 예원공의 제도를 따랐다. 부제인 양도공에게 (풍월주를) 전하여 주고, 예원공을 따라 내성內省에 들어갔다가 얼마 후 예부에 올랐다. 인평仁平230) 10년(643)에 왕명을 받들어 사신으로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병을 얻고 돌아와서 곧 죽었다卒. 나이가 35살이었다.231) 왕이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작을 아찬阿湌으로 올렸다.

[선품의 딸 자의와 운명]
후에 공의 딸 자의慈義가 문무제의 후后가 되자 파진찬波珍湌으로 추증하였다. 공의 차녀 운명雲明은 예원공의 아들 오기吳起에게 시집갔다. 3녀 야명夜明 또한 문무제를 섬겨 궁주宮主가 되었다.232) 외아들인 순원順元은 높은 자리에 올라 이름을 날렸다.

[보룡]
처음 공이 죽고 보룡宝龍이 혼자 살았다. 그 때 문명태후가 선원전군仙元殿君을 낳고,233) 보룡에게 젖을 먹여 줄 것을 청하였다. 문무제가 이로써 보룡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하였다. 보룡이 제帝에게 장녀를 허락하고 스스로 여승이 되었다. 제帝가 애석하게 여겼다. 문무가 태자가 되자, 보룡의 딸 자눌慈訥을 비妃로 삼아 궁宮을 세워 자의慈義라 하고234) 보룡에게 명하여 입궁하여 감監이 되도록 하였다. 순원順元235)은 이로써 궁중에서 자랐으며 선원仙元236)과 당원幢元237) 전군과 더불어 같은 예로 작이 올라가니, 영화와 행운이 지극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일러 공의 음덕을 누린 것이라 하였다.

찬하여 말한다 : 보화의 아들이고 진흥대왕의 손자이다. 녹이 있으나 받지 않아 복이 자손에 미쳤다.

세계 : 아버지는 구륜이고 어머니는 보화이다. 구륜의 아버지는 진흥이고 어머니는 사도이다. 보화의 아버지는 진평이고 어머니는 미실이다.


[22세 풍월주 양도공]-------------------------------------------------------------------------------------------------------------------

22세 양도良圖는 모종공毛宗公의 아들이다. 선품공보다 한 살이 적었다. 처음 염장공을 따라 화랑이 되었다. 나이 겨우 12살에 상하의 예를 알았다. 흠순공 때에 이르러 예원공에게 속하도록 명하였다. 선품공이 풍월주가 되자, 예원공의 명으로 부제가 되어 선품공을 섬겼는데, 힘을 다하여 받들고 순종하였다. 풍월주가 되자 전횡이 많아 당시 사람 중에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공의 성품은 사람 섬기기를 잘 하고 일의 추이에 밝았다. 부처를 숭상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공명功名을 중히 여겼다. 문장을 잘 하였고 격검에 능하였다. 늘 강개하여 천하를 말하니, 마치 한 세대의 영웅과 같았다. 상선들에게 몸을 굽혀 존경을 표할 때는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재롱을 떠는 것 같아서 윗사람들의 기분을 다 맞추었다.

[공의 출생]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어머니 양명공주良明公主는 진평대제의 딸이다. 제는 공의 총명함을 사랑하여 늘 궁중에 불러들이고 내사內賜238)를 많이 하였다. 공은 스스로 가지지 않고 번번이 공주에게 바쳐 동기들과 고르게 나누었다. 양명공주는 처음에 미실궁주를 위하여 그의 아들 보종공에게 시집가서 딸 (보라와) 보량을 낳았다. 보종공이 내사內事를 좋아하지 않아, 부제인 염장공과 통하여 아들 장명을 낳았다. 그 때 보종공의 조카 모종공은 곧 하종공의 아들이었는데, 빼어난 용모에다 재주가 있어 보종공이 자기처럼 사랑하였다. 문장과 화법畵法을 가르쳤는데, 공주 또한 더불어 같이 배웠다.
하루는 공주가 꿈에 난새의 상서로움을 얻고 길조吉兆라 여겨 보종공에게 말하고 보종공을 끌어당겼다. 보종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길조가 어찌 홀로 나에게만 있느냐”하고는 반듯이 누워 자 버렸다. 그 때 모종공이 … 옆에서 묵화를 그리다가 갑자기 옷이 더럽혀졌다. 공주가 이에 이끌어 그 옷을 빨아 주었다. 마침내 더불어 (사랑)239)하여 공을 낳았다. 대개 보종공이 공주의 마음이 모종공에게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벼루를 발로 차서 사랑好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모종공은 공주보다 5살240)이 적었다. 공주는 지극히 사랑하여 ‘제공弟公’이라고 불렀다. 공이 태어나자 보종공은 ‘양도良圖’라 이름지으며 말하기를 “그림은 제공弟公의 아들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하였다. 공주가 기뻐하여 그 이름을 허락하였다.

[양도의 진도陳圖]
공은 어려서 뛰어나게 총명하였다. 7살에 이름을 지은 까닭을 물었다. 공주는 대답할 것이 없어 숨겨서241) 말하기를 “네가 그림을 잘 그리기를 바라고 이름지은 것이다”하였다. 공이 이에 분발하여 힘써 그림을 그렸다. 진도陳圖를 잘 그렸는데, 병장기가 매우 정밀하였다. 따라서 일을 하는 것도 몹시 치밀하였다. 마침내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 되었다.

[사신 모종공]
공주는 보종공을 지아비로 하고, 염장공과 모종공을 사신私臣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공은 늘 모종공을 ‘숙공叔公’이라고 불렀다. 커서는 곧 친아버지인 것을 알고 더욱 존경하고 효를 다하였으며, 일찍 알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며 효도하였다. 모종공이 말하기를 “너는 실제로 나의 아들이지만, 적籍은 선부仙父를 이었으니 사랑을 나누지 않는 것이 옳다”하였다. 대개 보종공이 공을 사자嗣子로 삼은 까닭이다.

[사자嗣子]
공은 그러므로 형 장명長明을 뛰어넘어 먼저 낭계郎階에 발탁되었다. 공이 그 형을 걱정하여 양보하려고 하자, 염장공이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집과 나라에는 모두 사자嗣子가 있으니,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비록 형에게 우애롭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게에 죄를 얻을 것이다”하였다. 그리고 장명에게 형으로 처신하지 않도록 타일렀다. 장명은 이에 몸을 굽혀 공을 섬겼다. 공은 한층 더 효도를 하고 우애를 다하였다. 염장공 섬기기를 또한 아버지에 대한 도리로 하였다.

[신국의 도]
처음에 장명의 손위 누이 보량이 진평의 후궁으로 들어가 총애를 받아 전군인 보로宝路를 낳았다. 승만후僧滿后가 질투를 하여 물러나 살 것을 명하고, 장차 종신宗臣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다. 보량은 평소에 공을 사랑하여 다른 곳으로 시집가기를 원치 않았다. 공주가 이에 제帝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만약 보량으로 하여금 양도를 배필로 맞게 하면 곧 보종의 혈통을 이은 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하였다. 제帝가 허락하였다. 보종공 또한 원하였다. 공은 본디 동기간에 서로 결합結合하는 풍습을 싫어하여 따르지 않았다. 보량이 그 때문에 병이 생겼다. 공주가 성을 내어 책망을 하니, 공이 부득이 말하기를 “저는 누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사람들이 나무랄까 걱정이 됩니다. 제가 오랑캐夷狄의 풍속을 따르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누나 모두 좋아할 것이지만, 중국의 예를 따르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누나가 모두 원망할 것입니다. 저는 오랑캐가 되겠습니다”하였다. 공주는 이에 … 공을 감싸안으며 말하기를 “참으로 내 아들이다. 신국神國에는 신국의 도道가 있다. 어찌 중국의 도로 하겠느냐”하였다. 이에 보량을 처로 삼아 아들 양효良孝를 낳았다.

[큰 사랑과 작은 사랑]
공은 보량을 처로 대우한 적이 없고, 섬기기를 더욱 열심히 하였다. 보량이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내가 나이가 많다고 사랑하지 않느냐” 너와 내가 같이 산 지 3년이며, 이같이 아름답고 예쁜 아들을 낳아 부모가 매우 기뻐하고 내가 너를 잠시라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너는 한결같이 나를 누나로 섬기고 존경한다. 내가 불상도 신상도 아닌데, 공경은 무엇 때문에 하느냐? 너는 듣지 못했느냐, 백 말의 공경은 한 되의 사랑만 못한다는 것을 부부 사이에 공경은 해서 무엇 하겠느냐?“하였다. 공이 웃고 보량을 감싸안으며 위로하여 말하기를 ”같은 굴에서 생사를 하는데 어찌 사랑을 하지 않을 까닭이 있습니까. 제가 듣기를 큰 사랑은 공경하기를 신과 같이 하고 작은 사랑은 희롱하기를 옥과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큰 사랑으로 그대와 함께 하기를 원하지, 그대를 큰 누나로 생각하여 그런 것이 아닙니다“하였다. 보량은 이에 스스로 부끄러워 사과하고, 공을 섬기기를 임금과 같이 하며 감히 외설스런 일로 공 앞에서 희롱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의 지아비는 천하에 훌륭한 사람이다. 여자가 되어 이러한 사람을 섬기다 죽으면 더 큰 영광이 없다“하였다. 비록 한겨울이나 한더위에도 반드시 몸소 음식을 조리하여 공의 입맛에 맞추었으며, 조그만 아픔과 작은 병도 걱정하며 정성을 다했다. 늘 보도寶刀를 지니고 다니며 따라서 죽을 뜻을 품고 있었다.

[화주와 낭정]
공이 풍월주가 되자 스스로 아름다움이 쇠하였다고 생각하여, 능보能宝를 뽑아 화주花主242)로 삼으려 하였다. 능보는 본디 보량의 침비枕婢였는데, 승진하여 난방暖房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이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선부仙父의 사자嗣子로 혈통血統을 얻었는데, (진골)정통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화주花主가 아니면 내가 어찌 풍월주가 되겠는가”하였다. 보량은 이에 기쁘게 화주의 지위에 올라 공과 더불어 축하를 받았다. 그 때 공의 나이는 28살이었고 보량의 나이는 33살243)이었다. 공은 낭정을 보량에게 많이 맡겼으나 큰 일은 스스로 맡았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화주244)가 집정하였다고 생각하지만, 공이 실제로 큰 낭정을 결정하였다.

[낭두와 낭도]
풍월주가 된 후 처음에 낭두郎頭245) 7급을 9급으로 하였다. 국초에 서민庶民의 아들도 준수하면 곧 낭문郎門246)에 나아가 (낭)도가 되었다. 13,4살에 동도童徒가 되었고, 18,9살에 평도平徒가 되었으며, 23,4살에 대도大徒가 되었는데,247) 대도 중 입망자入望者는 망두望頭라고 하였다. 공과 재주있는 자를 천거하여 신두臣頭로 삼았다. 신두는 낭두가 될 수 없었고, 오직 망두만이 낭두가 되었다. 대도大徒가 30살이 되면 곧 병부兵部에 속하거나, 또 농공農工에 종사하는 일로 돌아가거나 향리의 장長248)이 되었다.

[입망의 법과 마복자]
입망의 법에는 상선上仙과 상랑上郞의 마복자摩腹子가 아니면 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낭두의 처들은 임신하면 곧 산 꿩을 예물로 하여 선문仙門에 들어가 탕비湯婢가 되었는데, 몇 날 또는 몇 달 만에 총애幸를 얻으면 물러났다. 물러날 때 그 남편은 재물을 들여 예를 갖추고 맞이하였다. 이름하여 사함謝函이다. 아들을 낳아 석 달이 되면 다시 들어가는데, 양과 돼지를 예물로 하였으며, 세함洗函이라고 하였고, 몇 날이나 몇 달 만에 총애幸를 받으면 물러났다. 그 남편은 또 사함謝函을 하여 맞았다. 이로써 낭두가 아이를 많이 낳으면 곧 그 재산이 기울게 되었다. 경박한 여자는 선문에서 놀고자, 임신하였다고 거짓으로 칭하고 들어가 탕비가 되었는데, 임신이 안 될까 염려하여 선문의 예졸隸卒들과 사통하거나, 혹은 선종仙種249)을 얻어 돌아가니 폐단이 더욱 심하였다. 공이 비로소 입망의 법을 개혁해 인재를 뽑고, 사함의 풍속을 금하였다. 낭도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낭두의 등급]
처음에는 낭두에 낭두郎頭ㆍ대낭두大郎頭ㆍ낭두별장郎頭別將ㆍ상두上頭ㆍ대두大頭ㆍ도두都頭의 등급이 있었다. 이에 이르러 공이 그 위에 대도두大都頭ㆍ대노두大老頭를 더하였다. 도두 이하는 각기 별장을 두어 그 벼슬길을 넓혔고 지위를 높였다.

[청례와 옥로의 폐단과 유화]
낭두의 딸은 모두 선문에 들어갔는데, 이름하여 봉화奉花라 하였다. 위250)로부터 총애幸를 받지 못하면 시집을 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다투어 청례靑禮를 하기 위하여 아양을 떨었다. 총애를 받은 자는 ‘봉로화奉露花’라 하였고 아들을 낳은 자는 ‘봉옥화奉玉花’라 하였다. 옥로玉露251)가 아니면 낭두에 새로 오른 자들이 처로 삼지 않았다. 대개 처로 인하여 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봉화는 청례를 하지 못하면 선문에서 늙어 예졸들에게 떨어졌다. 공은 이에 청례와 옥로의 폐단을 금하였다. 서민의 딸들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자들은 낭문郎門에 속하여 유화遊花가 되었고,252) 30살이 되기 전에는 집田舍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공이 또한 그 폐단을 바로 잡으니 향리에서 크게 기뻐하였다.

[서두르면 샌다]
그렇다고는 하나 선문의 완고하고 사리에 어두운 자들 중에는 전횡하다고 생각하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염장공이 (이를) 걱정하여 공에게 지나치게 빨리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공이 직간하여 “미생공은 마복자가 …인이었는데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부주父主께서는 마복자가 백 인이니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하니, 염장공이 웃으며 “저들이 좋아 요구하였으니 또한 가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물을 다스리는 것과 같아, 순리대로 하면 되고 서두르면 물이 샌다”하였다.

[신주의 덕화]
그 때 도두 세기世己의 처 도리道里는 어려서부터 아리땁다는 명성이 있었다. 염장공의 두 아들을 낳고 나와서 세기의 처가 되었다. 세기보다 12살이 많았다. 세기를 노복과 같이 보아서 그 뜻에 맞지 않으면 세기를 매질하였는데, 못하는 짓이 없었다. 세기에게는 첩이 셋 있었는데, 첩이 아들을 낳으면 도리가 질투를 하고 철기鐵器로 세기를 난타하여, 세기는 일어나서 낭무郎務를 볼 수 없었다. 공이 노하여 도리를 잡아다가 막 볼기를 치려 하는데, 도리가 말하기를 “첩의 죄가 비록 중하나 효장曉長과 유장劉長의 어미입니다. 국법에 선종仙種을 낳은 여자가 볼기를 내놓고 매를 맞는 법은 없습니다”253)하였다.
공이 노하여 “너의 죄는 곤장 3대에 해당하나 너의 말 때문에 곤장 3대를 더한다”하고, 그 치마를 내리고 묶었다. 보량이 간하여 말하기를 “염부廉父254)가 알면 마음이 상할까 염려됩니다. 우리들이 어찌 지위로써 사람을 다스리고 도리어 불효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하니, 공이 말하기를 “이 사람을 다스리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징계할 수 없소”하였다. 이에 세기를 불러 꾸짖기를 “사람의 지아비가 되어 처를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너의 죄는 파면해야 마땅하다. 너의 처를 곤장치려 하였는데 화주花主가 중지시켰으니, 마땅히 너를 파면함으로써 너의 처를 징계할 것이다”하였다.
도리는 세기가 파면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울면서 말하기를 “첩이 볼기를 맞을 것이니 지아비를 파면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하였다. 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부부의 의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만약 네가 세기를 나와 같이 섬기고 감히 방자한 행동을 않는다면 당연히 볼기맞는 것을 면하고 너의 지아비를 보호 할 수 있다”하였다. 도리가 이로써 그 지아비에게 굴복하여 방자함이 변하여 순종하게 되었고, 다시는 첩들에게 강새암을 하지 않았다. 그 밖에 다른 낭두의 처들도 모두 선仙255)을 믿고 지아비에게 방자할 수 없게 되었다. 낭두들이 서로 축하하여 말하기를 “신주新主의 덕화가 안방까지 깊이 미쳤다”하고, 공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양도의 전횡과 개혁]
그런데 공은 실제로는 색을 좋아하여 낭두의 처들이 공의 아들을 많이 낳았으며, 폐신嬖臣 찰의察儀가 위로 보량을 범하는데도 금하지 않았다. 낭두들이 사사로운 정으로 많이 일어나 높은 자리에 올랐으며, 낭정郎政의 일이 전횡에서 많이 나왔다. 상선上仙들이 운상雲上에서 의논을 하고, 3파가 막하幕下에서 다투었다. 공은 이에 보량에게 “무리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파리를 쫓고 풀을 뽑는 것과 같다. 오래지 않아 …이 없어질 것인데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에) 보량이 웃으며 “낭군은 무리를 다스리는 데는 능하나, 스스로는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하였다. 공 또한 웃으며 “누가 나의 처를 강새암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나는 낭정에서 물러날 것이다”하였다. 이에 부제인 군관軍官에게 물려 주며 말하기를 “너는 능히 장엄하고 정중하여 자제력이 나보다 뛰어나다”하였다. 공은 4년간 풍월주로 있으면서 오래 된 폐단을 개혁한 것이 매우 많으니 어찌 공이 없다 하겠는가. 공의 사랑하고 미워함은 심히 치우쳐, 마음 속에 성이 나면 종신토록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아랫 사람들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부제위 다툼]
공이 풍월주에 오를 때 문충文忠과 선제善祭 등이 모두 부제의 지위를 다투었는데,256) 공이 홀로 염장공의 아들 윤장을 끌어서 부제로 삼았다. 윤장의 누이 춘화春花가 공의 애첩이었으므로, 윤장은 나이가 어리고 경박하여 총애를 믿고 어기기를 여러 번 하였다. 염장공이 명하여 부제를 그만두게 하였다. 문충文忠ㆍ선제善祭ㆍ천진天眞ㆍ하장夏長 등이 다시 부제 자리를 다투었다. 공이 홀로 군관軍官을 끌어서 부제로 삼았다. 여러 상선上仙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공은 명을 따르지 않고 말하기를 “보현궁普賢宮의 사손嗣孫이 부제가 되지 못한다면 곧 누가 될 수 있습니까?”하고, 곧 그 첩인 천운天雲을 군관의 처로 삼아서 뜻을 공고히 하였다.
처음에 공과 더불어 군관의 누이 명란明蘭이 사(통)하였는데, 공이 이미 보량을 아내로 맞이하였기에 명란이 장명長明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장명이 공만 못하여 그 어머니(昔明)를 원망하였다. 석명은 곧 양명良明의 이부형異父兄이었다.257) 군관은 이에 장명을 설득하고, 명란을 공에게 돌아가게 하였다. 공은 이에 군관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여겨 발탁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비방하여 말하기를 “남의 부인258)을 첩으로 삼고, 중매한 자를 발탁하였다.”하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군관이 침착하고 중후하고 커다란 지략을 가지고 있어 위아래를 다스릴 수 있었으니, 공의 현명함이 어찌 명란에게 구애를 받았겠는가. 이로써 군관은 공을 받들기를 하늘과 같이 하였고, 출입할 때는 반드시 서로 도왔다. 군관은 용기가 있어 전쟁을 잘 하였기에 공의 훈업 또한 군관의 손에서 많이 나왔다.

[신통한 점쟁이]
일찍이 당나라에 사신을 가다가 도중에 점쟁이를 만나, 점을 친즉 말하기를 “두 공은 모두 장상將相의 운을 가졌습니다. 단 비명에 죽겠습니다”하였다. (이에) 공은 웃으며 “대장부가 말가죽으로 송장을 싸야지, 아녀자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당연하다”하였다. 공은 과연 당나라의 옥에서 죽었다.259) 군관은 점이 신통하게 맞는 것을 보고 소심해져서 조심하다가, 마침내 흠돌欽突의 난에 연루되어 명을 받고 자살하였다. 아! 성하고 쇠하고 막히고 통달하고가 문득 또한 운명이구나!

[절의 노비가 된 양도의 자녀들]
공은 일곱 (명의) 아들과 …(명의) 딸이 있었으며, 서자녀庶子女는 각기 10여 명이 있었다. 군관 또한 공의 누이 2인을 아내로 맞아 아들 18인을 두었는데, 흠돌의 옥사에 많이 연루되었다. 공의 처 보량은 공이 전사한 것으로 잘못 듣고 칼로써 자결하였다. 공의 세 아들과 두 딸은 절의 노비가 되었다. 대개 공의 가풍을 알 수 있다.

찬하여 말한다 : 미실의 후예이고 진평의 손이다. 나라를 위한 간성干城이 되어 공은 하늘과 땅을 덮었다. 어려움에 임하여 몸을 던졌고, 만리에서 혼을 불러 장사지냈다. 대인은 기림이 없으니 천자와 더불어 남으리로다.

세계 : 아버지 모종의 아버지는 하종夏宗이고 《어머니는 미모美毛》,260) 양부養父 보종宝宗의 아버지는 설원이다. 어머니 양명良明의 어머니는 보명宝明인데, 지소태후와 침신枕臣 구진仇珍의 사이에 태어났다. 보명은 아름답고 부드러워 향기가 있었다. 세 명의 제帝를 섬겼으나 총애가 쇠하지 않았다. 진평제가 즉위하였을 때 나이가 13살이었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넘쳤다. 사도태후가 보명과 미실에게 명하여 제帝를 도導하도록261) 하였다. 미실은 위가 낮고 골이 천하여 보명에게 상도上導를 양보하였다. 보명은 그 때 석명昔明을 가진 지 3개월이었기에 굳이 사양하였다. 이에 미실이 먼저 사랑幸을 받았다. 제帝는 양기陽氣가 통하게 되자 스스로 보명궁에 이르러 도導할 것을 구하였다. 보명이 감히 어길 수가 없어 사랑幸을 받았다. 이 해 9월 제帝는 보명과 미실을 좌ㆍ우후로 삼았다. 보명은 석명을 낳고 나서 3년간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양명을 낳았다. 양명은 보명을 많이 닮았다. 그러므로 제帝가 매우 사랑하여, 늘 제帝의 곁에 있었다. 나이가 20살이 넘어 비로소 보종공에게 시집을 가서 보량을 나았다. 28살에 모종공과 통하여 공을 낳았는데, 보배로운 난새로 생각하여 어머니의 사랑이 더욱 깊었다. 공 또한 지극한 효성으로 종신토록 명을 어긴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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