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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23세 풍월주 군관공~32세 풍월주 신공)
 성미경  | 2009·09·03 08:31 | 조회 : 2,829
[23세 풍월주 군관공]-------------------------------------------------------------------------------------------------------------------

23세 군관공軍官公은 동란공冬蘭公의 아들이다. 어머니 석명공주昔明公主이니 진지제의 딸이다. 양도공보다 세 살이 적었다. 인품이 넉넉하고 후덕한 것이 지소태후의 전형典型이 있었다. 15살에 활을 잘 쏘았고 힘이 세서 당할 자가 없었다. 병서를 읽는 것을 좋아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 그릇이 크다고 하였다. 석명이 말하기를 “내가 해마海馬의 꿈을 꾸고 이 아이를 낳았다. 반드시 우리 집의 천리구千里駒262)가 될 것이다”하였다.

[삼생의 형제]
공은 어려서부터 양도공을 따라 노는 것을 좋아하였다. 석명이 일찍이 진평의 후궁으로 있을 때, 양명과 더불어 함께 살며 삼생의 형제가 되기로 약속하고 아들을 낳으면 함께 아들로 삼기로 하였다. 이에 이르러 석명이 양명에게 “우리 자매의 마음을 이 아들이 꿰뚫었다”하고는, 공에게 명하여 양도공과 더불어 삼생 형제三生兄弟가 될 것을 약속하게 하였다. 양도공이 위가 오르면 반드시 공을 자기가 있던 자리에 이끌어 앉혔다. 그 때 윤장 또한 양도공의 사랑하는 아우弟로서 공과 나란히 경쟁하였는데, 공은 스스로 그 세를 당할 수 없음을 알고 일마다 윤장에게 양보하였다. 윤장은 공과 같은 나이인데 한 달이 빨랐으므로 공은 형으로 섬겼다. 윤장은 색을 좋아하였고, 재물을 탐하였으며, 종녀宗女나 유화와 간음을 많이 하였는데, 여자의 사사로운 말을 듣고 죄 없는 사람에게 허물을 씌웠다. 소문이 궁중에 퍼졌다. 염장공이 그것 때문에 대죄待罪하였다. 양도공이 이에 공을 이끌어 부제로 삼고, 보량과 더불어 낭정을 함께 다스리도록 명하였다. 공은 일을 신중히 처리하였고, 한결같이 양도공의 마음 쓰는 법을 따랐다.

[폐신 찰의]
그 때 양도공의 폐신 찰의察儀가 미모로 아양을 잘 떨어 보량과 내통하고 전횡을 많이 하였다. 공이 검을 뽑아 참하려 하자, 찰의가 낭하로 달려 들어가 나오지 못하였다. 보량이 말하기를 “이 피라미를 죽이면 누累가 우리 부부에게 미칠까 걱정입니다”하였다. 이 때부터 찰의는 감히 다시 낭정에 대하여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겼다.

[선덕제와 군관]
공의 성품은 주색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감히 그 사생활을 엿볼 수 없었다. 보량이 늘 “군관은 진정으로 우리 부부의 신하다”하였다. 선덕제善德帝가 일찍이 궁정의 연회內宴263)에서 조용히 보량에게 일러 말하기를 “듣건대 너의 폐아嬖兒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 아름다움이 과연 어떠한가?”하였다. 보량이 대답하여 “신이 듣건대 천자는 신하의 내사內事를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폐하가 굳이 물으신다면 신첩에게 한 명의 사신이 있으니, 보여드리겠습니다”하였다. 다른 날 군관軍官을 데리고 뵈었다. 대개 제帝의 뜻이 찰의에게 있었는데, 군관을 뵈게 한 것이다. 제帝가 군관에게 “사람들이 말하기를 네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무슨 재주가 있느냐?”하고 물으니, 군관이 답하기를 “신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지 않고 단지 마음 속에 있습니다”하였다. 제帝가 “네 마음 속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는가?”라고 하자, 군관이 말하기를 “신은 보량 부처를 위하여 죽기를 원하고, 보량 부처는 폐하를 위하여 죽기를 원합니다. 소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단지 이것뿐입니다”하였다. 제帝가 그 착함을 칭찬하며 음식을 내리고, 보량을 보며 말하기를 “네가 데리고 있는 한 아이가 나의 열 아이보다 낫다. 잘 기르기를 바란다”하였다.

[부제 천광]
처음에 염장공의 누이 천장낭주天長娘主는 수품공水品公에게 시집가서 딸 천운天雲을 낳았는데, 천운은 경국지색傾國之色264)이 있었다. 천운의 동생 천광天光 또한 얼굴이 아름답고 재주가 많아 양도공의 폐신嬖臣265)이 되었다. 양도공이 마음으로 천운을 좋아하여 천장낭주에게 몸소 청하여 첩으로 삼고, 사랑하여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보량이 그것을 걱정하였다. 공이 이에 처첩의 도道로써 간하니, 양도공은 천운을 공의 처로 삼도록 하였다. 공이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천광 또한 공에게 소속되었다. 공이 풍월주가 되자, 양도공이 천광을 부제로 삼으라고 명했다. (이에) 공이 “처의 동생을 이끌어 주었다는 여론이 있을까 염려됩니다”하니, 양도공이 말하기를 “네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바로 내가 명령한 것이다”하였다. 공은 부득이 천광을 부제로 삼고는 천운에게 말하기를 “너는 화주가 되었고 너의 동생은 부제가 되었으니, 낭도들이 반드시 내가 사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여 믿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천운이 웃으며 “낭군 또한 주군266)의 첩의 동생이 아닙니까? 우리의 살갗 한 점, 머리털 한 오라기도 주군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찌 감히 주군의 명을 어길 수 있습니까? 낭군은 단지 조심하며 명을 받들면 됩니다. 그리고 천광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면 또 옳지 않겠습니까?”하였다. 공이 “그대의 말이 옳다”하였다.

[화주 천운]
공은 풍월주로 4년간 재위하며 오로지 명 받드는 것을 주로 하여 한결같이 양도공의 구정舊政을 따랐으며, 낭두를 쫓아 내고 승진시킬 때 조그만 변화도 없이 부드럽게 지나갔다. 그런데 양도공의 낭정은 모두 보량에게서 나왔다. 천운이 비록 화주의 자리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빈 그릇을 끌어안고 있는 것과 같았다. 불평하는 낭도들이 노래를 지어 비방하기를,

  부량의 문 안에는 사람이 구름 같고
  천운의 집 위에는 흰 구름이 지나간다

하였다. 천광이 매번 보량이 사사로움을 행하고 낭두들이 불평하는 실상을 말하면, 곧 천운이 꾸짖어 “네가 감히 은혜로운 주군의 흠을 말하는가?”하였다. (이에) 천광은 “그 은혜를 갚고자 하기 때문에 흠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하였고, (군관)공이 천천히 위로하여 말하기를 “네 누나의 견해와 나의 견해가 같다. 머지 않아 네가 풍월주가 되면 네 마음대로 하겠지만, 지금은 우리 부부의 흠을 보지 않는 것이 좋다”하였다. 이로써 천광은 감히 한 가지 일도 말하지 않았다. 공은 장엄하고 정중하며 큰 뜻이 있어 조그만 일에 얽매이지 않았다. 진노하면 천둥 번개가 이는 것 같았으나, 마음은 실로 부드럽고 온후하여 부인을 감읍하게 할 수 있었다. 부부가 대단히 화목하여, 역대의 풍월주들이 모두 낭두의 처와 딸들을 거느렸으나, 공은 홀로 한 번도 사랑幸을 하지 않았다. 그 때 사람들이 노래하여 이르기를,

  천운은 높고 높아 인간의 비가 되기 어렵다

  하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공과 양공良公이 모두 선덕제善德帝를 입시入侍하여 작위를 뛰어넘어 받았기 때문에 식자識者들이 그것을 잘못으로 여겼다.

  찬하여 말한다 : 보현공주의 후손이고 금륜왕의 손이다. 양도공에게 한결같이 의지하였고, 생사도 같은 근본이다. 빛나는 공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원통함을 머금었다. 오호! 푸른 하늘이여, 이 무슨 업의 뿌리인가.

  세계 : 아버지는 동란冬蘭이고, 할아버지는 동종冬宗이다. 증조는 오종五宗이다. 오종공은 사실공주梭失公主의 아들이다. 보현공주가 어렸을 때 법흥대제와 사랑和好하여 사실공주를 낳았다. 법흥대제가 사실을 입종공入宗公에게 시집보내어 오종공을 낳았다. 오종공은 곧 진흥대제의 이모 형異母兄이다. 오종이 비차부比次夫의 딸 비란比蘭을 아내로 맞아 딸 오란五蘭을 낳고, 황종공荒宗公의 아들 동종冬宗을 데려다 아들로 삼아 오란을 배필로 삼게 하여 동란을 낳았으니, 공은 실로 보현과 사실의 적사嫡嗣이다. 석명공주가 처음에 진평제를 섬겨 두 딸을 낳고 출궁하였다. 동란공은 그 때 음성서音聲署의 장長267)으로 향가鄕歌를 잘 하였다. 석명이 동란공에게 가무를 배웠다. 마침내 서로 사랑하여 딸 석란昔蘭을 낳았다. 제帝가 허락하여 혼인을 하였으나, 동란공은 감히 처로 대하지 못하고 군君으로 섬기며 자녀를 계속 낳았다. 공은 그 네 번째이다. 석명의 어머니는 보명인데, 금륜제金輪帝를 섬겨 현조玄鳥268)에 대한 꿈을 꾸고 석명을 낳았다. 그러므로 공은 실로 황종의 증손이고 구진仇珍의 외예外裔가 된다.


[24세 풍월주 천광공]-------------------------------------------------------------------------------------------------------------------

24세 천광공天光公은 수품공水品公의 아들이다. 얼굴이 아름다운 꽃과 같고 교태는 마치 부인과 같았다. 말은 친절하고 거동은 단아하였다. 그러나 마음은 협기가 있어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왔으며, 자신의 뜻을 과감하게 실행하여 상선上仙으로 인하여 동요하지 않았다.

[천운과 양도]
공은 나이 14살에 흠순공이 풍월주로 있을 때 화랑이 되었는데, 양도공이 보고 좋아하여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았으며, 그 아래에 소속되어 폐신嬖臣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양도공이 여러 번 공의 집에 와서 잤다. 공의 어머니 천장낭주는 곧 염장공의 누이로서 공의 누나 천운과 더불어 양도공을 맞이하여 밤을 새워 이야기하며 즐겼는데, 날이 밝아 오는 것도 알지 못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천운은 마침내 양도공에게 시집을 갔다. 양도공은 천장의 은혜를 갚고자, 군관공에게 공을 부제로 삼도록 명하여 공이 부제가 되었다. 양도공이 공에게 춘화春花의 누이 윤화尹華와 결혼하라고 명하여 공은 그를 아내로 삼았고, 이에 이르러 윤화는 화주花主가 되었다. 처음에 윤장의 아우 하장夏長이 공과 더불어 부제가 되려고 경쟁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는데, 이 때 이르러서야 양도공이 공에게 명하여 하장의 아우 춘장春長을 부제로 삼았다. 춘장은 곧 윤화의 형이다. 윤화의 어머니 하희는 곧 하종공의 딸이다. 그 어머니 은륜공주는 사도태후의 딸이어서 많은 사재私財가 있었다. 윤화가 그것을 얻어 공에게 시집을 갔기에, 곤란한 사람을 도우는 데 쓰기에 넉넉하였다.

[염장공의 마복자와 낭정]
염장공 이후 낭정이 가야파에게 많이 돌아갔으므로,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에는 출세하지 못한 자들이 많았다. (이에) 공이 개탄하여 발탁하여 주었다. 양도공과 군관공 때에 낭두들은 염장공의 마복자들이 많이 등용되었다. 이 때에 이르러 공이 그들을 많이 물리치며 말하기를 “낭두는 낭정에 중요한 자들이다. 어찌 내 옹翁269)만이 홀로 중하고 낭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하였다. 쫓겨난 자들이 모두 염장공을 찾아가 공의 허물을 말하니, 염장공이 웃으며 “너희들이 새 풍월주를 따르지 않는데 나 또한 어쩌겠는가?”하였다.

[가야파 대노두 찰인]
그 때 가야파의 우두머리 찰인察忍은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아직 대노두로 있었고, 처첩과 자녀가 백을 헤아렸으며, 출입하고 거동하는 것이 완전히 상선과 같았다. 그 아들인 찰두察斗와 찰석察石이 모두 도두가 되었는데 <찰두는 계해년(603) 생이고 찰석은 을축년(605) 생이다>, 각기 첩이 수십 인이었다. 낭두들이 그 아들과 사위에서 많이 배출되었고, 대도두 당보 또한 찰인察忍의 사위였으며, 그 막내아들 찰의察儀가 양도공의 폐아嬖兒가 된 것 등, 그 권세를 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찰인의 처 옥두리玉斗里는 절색으로, 역대의 상선을 섬긴 까닭에 높은 지위에 올랐던 것이다. 공은 본디 찰인을 미워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먼저 찰인을 파면시키고, 진골 정통의 구두舊頭 만덕萬德을 대도두로 삼고, 당보도 대노두가 되었다. 당보唐甫는 곧 당두唐斗의 아들로, 대원 신통파였다. 그러므로 가야파가 크게 놀라 다투어 상선에게 가서 보호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낭두의 연령 제한]
공은 우뚝 서서 들어 주지 않고, 규칙을 새로이 정하였다. 대노두는 60살까지로, 대도두는 55살까지로, 도두는 50살까지로, 대두와 상두는 45살까지로, 낭두와 대낭두는 40살까지로 한정하였다. 별장別將은 각기 그 지위에 따르게 하였다. 사람은 3파를 고루 써서 사리사욕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였고, 망두望頭는 재주와 그릇의 바탕에 의거하고, 마복자를 논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신진의 문을 크게 열었다. (이로) 인심이 크게 흡족하였다.

[비담의 난 진압]
그 때 국사國事가 점차 어려워졌다. 공과 여러 낭두들이 낭도를 거느리고 친히 활 쏘고 말달리는 것을 익혔는데, 모인 자들을 선발하여 병부에 보충하였다.270) 공이 5년간 풍월주의 지위에 있는 사이에 낭정은 무사武事로 많이 돌아갔다. 선덕제의 병이 몹시 위독해지자, 비담毗曇271)과 염종廉宗이 모반을 하였다. 유신공이 신주新主272)를 받들어 전쟁을 독려하였다. 그 때 서울京師의 군대가 적어 공이 낭도를 모두 동원하여 먼저 그 진으로 돌격하였다. 비담이 패하여 달아나고 난이 평정되었다. 공은 그 공功을 발탁되어 호성장군護城將軍이 되었다.

[중흥 28장]
곧 풍월주의 지위를 부제인 춘장에게 전하여 주고, 오로지 왕사王事에 힘써 변방에 나가서는 장군이 되고, 조정에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며出將入相, 많은 공적이 있었기에 중흥 28장將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가히 공경 할 만하지 않은가! 공의 성품은 외유내강하고, 사리를 분명히 살펴으며, 사민士民을 사랑하고 구휼하여 옷을 벗어 주기도 하였다. 술은 즐겼으나 많이 마시지 않았고, 색을 좋아하였으나 방사房事에 어지럽지 않았다.

[3파 통합]
윤화낭주가 자녀 7명을 낳았다. 공은 첩이 5명이었다. 진수眞凁는 진복공眞福公의 누이이다. 효월孝月은 효종공孝宗公의 딸이다. 경화京華는 윤화의 누이이다. 찰언察言은 찰의의 누이이다. 만수萬水는 만덕萬德의 딸이다. 각기 자녀가 있어 일문이 크게 번창하였다. 찰인은 비록 그 지위를 잃었지만 딸을 공에게 바쳤고, 공이 지극히 공적이고 사심이 없는 것을 알았기에 감히 원망하거나 허물하지 않고 그 자손을 타일러 말하기를 “신주는 진실로 세상에 드문 영웅이다. 우리들이 어찌 일시의 잃음을 가지고 원망을 마음에 두겠는가. 기쁜 것은 이 훌륭한 선仙을 얻었으니 우리 외손을 낳아서 기르면 나의 집안이 또한 번창할 수 있는 것이다”하였다. 이로써 3파가 화합하고 좋아하여 서로 혼인하고, 모두 공의 덕을 칭송하였으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계 : 아버지는 수품水品 상대등273)인데 곧 구륜공仇輪公의 아들이다. 구륜공이 반야공주를 아내로 맞아 수품공을 낳았다. 반야의 어머니는 미실궁주이고, 구륜의 어머니는 사도태후인데, 모두 진흥대제가 아버지다. 수품공은 천주공의 딸 천장낭주를 아내로 맞았으니, 곧 지도태후의 사생私生이다. 천주공 또한 진흥대제의 아들이다. 세계는 염장공조에 자세하다.

찬하여 말한다 : 대원 신통에서 나왔고 가야파에 들어갔다. 세 화랑을 도왔고 국가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오직 공의 맑은 덕은 만세에 바야흐로 빛날 것이다.

[25세 풍월주 춘장공]-------------------------------------------------------------------------------------------------------------------

25세 춘장공春長公은 염장공의 셋째 아들이다. 공의 성품은 너그럽고 어질고 덕을 좋아하였으며, 윗사람을 받드는 데 지성으로 하고 자기의 뜻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천광공天光公의 누이 천봉낭주天鳳娘主를 아내로 맞아 화주로 삼았다. 낭정郎政은 한결같이 천광의 명에 의거하여 행하였고, 천광공의 명으로 찰두察斗를 대도두, 만덕을 대노두로 삼았으므로 가야파의 세력이 점차 다시 창성하게 되었다. 부제 진공眞功은 천광공의 애첩 진수眞凁의 아우이다.

[바쁨과 한가함]
공은 낭정을 진공과 찰두에게 맡기고, 매일 낭주와 더불어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낭주가 말하기를 “내 형이 풍월주로 있을 때는 아침부터 밤까지 바빴는데, 낭군이 풍월주가 되고는 낮에도 일이 없으니 무슨 까닭 입니까?”하니, 공이 웃으며 “바쁘다면 자체가 바쁜 것이고, 한가하다면 자체가 한가한 것이지, 어찌 추호의 가감이 있겠소”하였다. 그러나 공은 집에서는 근검으로 자제를 훈계하였다. 늘 낭주와 더불어 낭두의 처와 딸들을 독려하여 정포征袍를 만들어 출전한 낭도들에게 보냈다. 몰래 서울과 시골로 다니며 가난하고 고달픈 사람을 구흉하였다. 인망이 크게 돌아왔다.

[집사부 중시]
풍월주로 6년간 있다가 진공眞功에게 물려 주고 창부倉部에 발탁되어 들어갔다. 곧 집사부執事部로 옮겼는데, 그 일이 맞았으므로 여러 번 승진하여 중시中侍가 되었다. 공은 늘 스스로 겸손히 말학를 “나 같은 사람을 가히 일러 행운아라 한다. 한 가지 재능도 없이 단지 부형과 상선上仙들의 음덕에 의지했을 뿐이다”하였다. 공적을 내세운 적이 없었다.

[선문의 사표]
기상이 천주공과 닮은 점이 많았다. 그러므로 천장이 늘 천봉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의 지아비는 아형阿兄274)을 닮지 않고 나와 몹시 닮았다. 너는 너의 아버지를 닮았고 나를 닮지 않았다. 너의 부부는 도리어 나의 부부와 흡사하다”하였다. 그 말이 대개 빈 말이 아니었다. 공은 일찍이 보종공의 청결함을 사모하여 덕을 세우는 표준으로 삼고, 틈이 생기면 반드시 화주花主와 같이 몸소 그 사당에 나아가 절하며 기도하고 돌아왔다. 보량을 섬기기를 어머니를 섬기는 것과 같이 하여, 청하는 것은 들어 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 보량은 이에 그 딸 양시良時를 공에게 주어 첩으로 삼았고, 다른 잡스런 여자는 없었다. 공의 행실은 선문仙門의 사표師表가 될 만하다.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찬하여 말한다 : 천주의 후예로 이 같은 성인이 있다. 마음가짐이 깨끗하고 …을 하는 데 어질었다. 내조가 짝이 되어 아름답고 복록이 날로 새롭다.

세계 : 아버지는 염장공이고, 어머니는 하희인데 곧 하종공의 딸이다. 하희의 어머니 은륜공주는 진흥대제의 딸이다.


[26세 풍월주 진공]-------------------------------------------------------------------------------------------------------------------

<진공眞功은 임오년(622)생이고 임자년(652)에 화랑이 되었다>275)

26세 진공眞功은 사린공思隣公의 아들이다. 처음 미실궁주가 진흥대제를 섬겨 반야공주를 낳았다. 천광공은 반야공주의 적손嫡孫이다. 또 수종전군壽宗殿君을 낳았는데 후에 사진思眞으로 고쳤다. 그 아들이 곧 사린이다. 그러므로 진공과 천광공은 재종 형제가 된다. 반야가 일찍이 수종에게 “어머니는 자녀가 많은데 같은 아버지의 형제는 오직 너와 나뿐이다”고 말하고, 대대로 서로 저버리지 않기를 약속하였다. 그러므로 수품공 또한 사린 사랑하기를 같은 배에서 난 형제처럼 하였다. 사린의 어머니 호린好隣은 곧 호림공虎林公의 누님이다. 사린은 처음에 임종공林宗公의 대사大舍가 되었는데, 임종공의 첩 호명好明과 득통得通하여 딸 진수眞凁를 낳았다. 임종공이 곧 호명을 사린의 처로 삼게 하여 진공을 낳았다.

[진공의 탐욕]
(진공은) 문장에 능하였고 풍채가 있었고 기묘한 꾀를 좋아하였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였으며, 또한 굳세고 용맹스러워 무리를 다스리기에 족했다. 그러나 색을 좋아하였고 마음이 탐욕스러웠고 사사로운 비밀을 많이 행하여, 인망人望을 얻지는 못했다. 찰두察斗와 결탁하여 찰두의 딸 셋을 첩으로 삼았다. 또한 찰두 아들 승昇의 처 대씨大氏를 첩으로 삼았다. 찰察과 대大 양족의 처와 딸 중 아름다운 자들은 모두 색공色供 장부에 올랐다.

[진공과 흠돌의 무례]
이에 앞서 진공과 달복공達福公의 아들 흠돌欽突이 사이가 좋았다. 흠돌의 누나인 흠신欽信이 보로전군宝路殿君에게 시집가서 두 딸을 낳았는데 아름다웠다. 진공과 흠돌이 꾀를 써서 흠신의 두 딸과 정을 통했으나, 흠신과 보로전군은 알지 못했다. 흠신의 어머니 정희政姬는 곧 유신공의 누이인데, 진공의 무례함에 노하여 유신공에게 고하여 벌을 주려 하였다. 흠돌은 크게 두려워하여 곧 찰의에게 귀중한 뇌물을 주고 보량을 설득하게 하였다. 보량은 이에 알아듣고 정희를 제지하며 말하기를 “폭로하면 단지 내 자녀가 상처를 입지만 감추면 곧 물방울처럼 스스로 없어질 것입니다. 어찌 생각을 깊이 하지 않습니까?”하니, 정희가 곧 멈추었다. 이 때부터 진공은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다.

[흠신]
흠신은 또한 진공이 출중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하여, 보로를 버리고 진공에게 가려고 하였다. 진공은 이에 사람을 시켜 보로를 설득하기를 “흠신은 병이 있으니 버리고 다시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것이 좋다”하였다. 보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곧 유신庾信의 삼녀 작광酌光을 맞이하여 처로 삼았다. 진공은 이에 흠신을 처로 삼았고, 풍월주가 되자 화주로 삼았다. 논자論者들이 옳지 않게 여겼다. 진공은 개의치 않고 아울러 흠돌을 부제로 삼았다. 흠돌은 마음이 험악하고 간사한 꾀가 많아 사람들이 모두 꺼렸다.

[자의의 아름다움과 흠돌]
그 때 가야파가 크게 성하여 찰씨察氏 일문에서 낭정을 모두 장악하였다. 찰의는 도두별장都頭別將인데 대도두로 행세하였다. 흠돌은 찰의와 죽음을 같이할 친구가 될 것을 허락하고, 보량과 득통을 하고 진덕제眞德帝를 알현하였다. 제帝는 그의 작爵을 올려 주고 총애하였다. 이에 앞서 흠돌은 자의慈義의 아름다움을 듣고, 보룡宝龍이 홀로됐음을 업신여겨 (자의를) 첩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보룡이 막았다. 얼마 안 있어 보룡이 당원 전군幢元殿君을 낳았다. 흠돌은 사람을 시켜 보룡의 추함을 떠들게 하여 위협하였다. 대개 보룡에게 왕의 총애가 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의가 태자비가 되자 흠돌은 장차 화가 미칠가 두려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의가 덕이 없다고 험담을 하여 궁지로 몰았다. 그 때 흠돌은 문명황후文明皇后의 조카였다. 그러므로 권세가 내외를 압도하였다. 자의궁慈儀宮은 마음을 졸이며 조심하였다. 흠돌이 문명후文明后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자의가 후일 후后가 되어 아들을 (태자로) 세우면 대권이 진골 정통에게 다시 돌아갈 것이므로 가야파는 위태로울 것입니다. 신광信光을 일찍 태자비로 삼아 우리 집안族을 편안하게 함만 못합니다”하였다. 신광은 유신공의 딸로, 태자의 첩이 된 사람이다.


[27세 풍월주 흠돌]-------------------------------------------------------------------------------------------------------------------

<흠돌은 정해년(627) 생이고 병진년(656)에 화랑이 되었다>

[흠돌의 악행]
신광信光의 형 진광晋光은 곧 흠돌의 처였다. 그러므로 흠돌은 유신공의 공功을 핑계대서 말하였으나, 마음 속으로는 그 무리를 굳세게 하려 하였다. 문명후는 거의 기울었으나 태자가 받아드이지 않아 흠돌의 계책은 마침내 깨어졌다. 진공은 풍월주의 지위에 5년간 있다가, 흠돌에게 물려 주었다. 그 때 태손太孫 소명전군昭明殿君276)이 이미 태어났고, 무열제는 자의慈義의 현속함을 매우 사랑하였다. 흠돌은 감히 다시는 그 계책을 말하지 못하였다. 이에 보룡궁宝龍宮에 정성을 바치고, 그 딸을 순원順元의 첩으로 들일 것을 청하였다. 보룡궁은 속임수를 두려워하여 좋은 말로 거절하였다. 흠돌은 다시 사람을 시켜 야명궁夜明宮과 나의 아버지 오기공에게 정성을 바치고 전에 저지른 악행을 덮으려 하였다. 그 때에 야명夜明 또한 인명전군仁明殿君을 낳았는데, 준수하고 용봉龍鳳의 자태가 있었다. 태자가 매우 사랑하니, 흠돌이 스스로 말하여 인명仁明의 신하 되기를 원하였다. 야명夜明이 부득이 받아들였다. 그 때 순원공順元公이 흠돌에게 속아, 비밀히 흠돌의 딸과 사통하였다. 그리하여 흠돌을 위하여 야명을 설득한 것이다. 무열제武烈帝가 죽고崩 문무제가 즉위하자, 자의慈義를 황후로 삼았다. 자의는 흠돌의 악함을 알았으나, 문명태후에게 효도하였으므로 한 마디 말도 발설하지 않았다.

[삼간과 오기공]
이에 앞서 흠돌은 호원공好元公의 아들 흥원興元을 부제로 삼았다. 애초에 태양공주太陽公主가 진평대제를 섬겨 태원太元과 호원好元을 낳았는데, 제帝를 닮지 않았다. 공주는 어려서 금륜태자金輪太子를 섬겼는데, 사신私臣을 좋아하였다. 제帝를 섬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양 군(태원과 호원)은 통統을 얻지 못하였다. 흥원은 제통帝統이 자기에게 있다고 혼자 생각하여 조정을 원망하고, 누이를 흠돌의 첩으로 삼아 결탁하였다. (흠돌은) 야명궁에 정성을 바치게 되자 선위仙位를 나의 아버지 오기공에게 전하고자, 흥원을 계책으로 꾀어 양보하게 하였다. 아버지 낭정郎政이 무너졌기에 받지 않으려 하였다. 진골 정통파의 낭두들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고, 피를 흘리며 따져 말하기를 “공이 나아가지 않는다면 신臣등이 장차 자멸할 것입니다”하였다. 자의慈義 황후 또한 나아갈 것을 권하여 마침내 (풍월주의 지위를)받았다. 흠돌은 풍월주로 7년간 있고 나서 [28세 오기공조로 연결]


[28세 풍월주 오기]-------------------------------------------------------------------------------------------------------------------

<오기는 계사년(633) 생이고, 임술년(662)에 화랑이 되었다>

[삼간의 전횡]
아버지가 비로소 풍월주의 위에 나아갔는데 실제 28세(풍월주)다.
이 때 낭정郎政이 이미 어지러워졌기에 급작스럽게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진공眞功, 흠돌欽突, 흥원興元 등도 모두 낭도 사병私兵을 거느리고 위에서 낭정을 전횡하였다. 아버지는 바로잡을 수 없음을 알고 3년간 재위하고 부제 원선공元宣公에게 물려주었다.


[29세 풍월주 원선공]-------------------------------------------------------------------------------------------------------------------

<원선元宣은 병신년(636) 생이고, 갑자년(664)에 화랑이 되었다>

원선공元宣公 또한 4년간 재위하고, 역시 군관공軍官公의 적자 천관天官에게 물려 주었다.


[30세 풍월주 천관]-------------------------------------------------------------------------------------------------------------------

<천관은 기해년(639)생이고 정묘년(667)에 낭郎이 되었다>

천관天官의 처는 곧 흠돌의 딸이다. 그리하여 낭정郎政이 다시 흠돌의 무리들에게 돌아갔다. 천관은 8년간 풍월주의 지위에 있었다.


[31세 풍월주 흠언]-------------------------------------------------------------------------------------------------------------------

<흠언은 을사년(645) 생이고 갑술년(674)에 낭郎이 되었다>

그리고 (흠)돌의 아들 흠언欽言이 대신하였다. 대개 그 첩이 언원言元의 소생이기 때문이었다. (흠언은) 흥원興元의 조카로 흥원의 딸을 화주花主로 삼았다. 흠언은 5년간 (풍월주로) 있다가[32세 신공조로 연결]


[32세 풍월주 신공]-------------------------------------------------------------------------------------------------------------------

<신공信功은 기유년(649) 생이고 무인(678)년에 낭郎이 되었다>

진공의 아들 신공이 대를 이었는데, (신공은) 흠돌의 조카로서 또한 흥원의 딸277)을 화주로 삼았다.

[삼간 수중에 들어간 낭정]
수년 내에 낭정郎政은 한결같이 삼간三奸의 손으로 들어갔다. 흠돌은 아첨으로 문명태후를 섬겼다. 이에 그의 딸이 유신공의 외손이므로 태자에게 바쳤다. 태자와 모후母后는 흠돌의 딸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소명태자昭明太子는 무열제의 명으로 흠운欽運의 딸을 아내로 맞기로 약속하였으나, 일찍 죽었다. 흠운의 딸은 스스로 소명 제주召命祭主가 되기를 원하였으며, 자의후慈義后가 (이를) 허락하였다. 이것이 소명궁召明宮이다. 태자와 더불어 모후가 자주 소명궁으로 거등하였다. 태자가 소명궁을 좋아하여 마침내 이공전군理恭殿君278)을 낳았다. 후后가 이에 소명궁에게 명하여 동궁東宮으로 들어가게 하고, 선명궁善明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총애함이 흠돌의 딸보다 컸다. 흠돌의 딸이 투기를 하였다.

[흠돌의 반란]
문명태후가 죽자崩, 흠돌 등이 스스로 그 죄가 무거운 것을 알고 두렵고 불안하였다. 게다가 흠돌의 딸이 총애를 잃었다. 흠돌 등이 이에 모반을 하였다. 야명궁夜明宮을 핑계로 삼아 인명仁明을 옹립하였으나, 실제로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것이다. 문무제의 병이 크게 악화되자 (나의) 아버지 오기공이 북원北原으로부터 들어와 호성장군護城將軍이 되었는데, 실제로는 자의황후의 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때 진공이 호성장군으로서 인부印符를 내어 주지 않으며 말하기를 “주상主上이 병으로 누웠고 상대등이 문서를 내리지 않는데 어찌 중요한 직職을 가벼이 넘겨 주겠는가?”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대개 적들의 모의가 이미 치밀했기 때문이었다. 제帝가 죽었으나崩 비밀에 부쳐 발설하지 않고, 사람들을 시켜 비밀리에 경외京外의 군대를 입성시켜 흠돌 등이 군사를 동원하여 야명궁과 군관공의 집을 포위하고 난을 일으키려 하였다.

[반란의 진압과 오기공]
오기공의 심복인 낭두가 그 모의를 공에게 발설하였다. 그 때 시위 삼도侍衛三徒는 적 편에 많이 서 있었다. 자의황후가 걱정하였다. 오기공이 이에 순지順知279)ㆍ개원愷元ㆍ당원幢元ㆍ원수元帥ㆍ용원공龍元公 등과 더불어 비밀히 사병을 불러 들어가 호위하고, 삼도의 대감을 모두 파면하여 다스렸다.280) 흠돌 등은 이에 크게 놀라 진격하여 대궁大宮281)을 포위하였다. 서불한舒弗邯 진복공眞福公이 수병手兵282)을 이끌고 포위를 깨고 들어와 말하기를 “경외京外의 병력이 크게 이르렀다. 너희들은 적신賊臣에게 미혹되었으니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하였다. 그 때 흠돌 등이 그 무리를 속여 말하기를 “상대등 군관軍官과 각간 진복이 제帝의 밀조密詔를 받아 인명을 즉위시켰다”하였다. 그러나 군관이 움직이지 않았고 진복은 포위를 깨뜨렸으므로 무리들이 의심하여 서로 다투었다. 이에 큰 소리로 왕에게 충성할 자는 오른쪽, 적을 따를 자는 왼쪽으로 서라고 선포하였다. 그러자 무리 중에 오른쪽으로 간 자들이 많았다. 흠돌 등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포위를 풀고 물러가려 하였다. 오기공 등이 병사를 풀어 대파하였다. 경외의 병력이 또 이르렀다. 적은 이에 3간을 사로잡아 바쳤다. 반란이 비로소 평정되었고 삼도 중에는 이로써 죽임을 당한 자가 매우 많았다.

[화랑도의 폐지와 부활]
자의태후가 화랑을 폐지하라고 명하고, 오기공으로 하여금 낭도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모두 병부에 속하게 하고 직職을 주었다.283) 그러나 지방의 낭정은 옛날 그대로 스스로 남아 있었다. 실직悉直이 가장 성하였다. 오래지 않아 그 풍속이 다시 서울에 점점 퍼졌다. 중신들이 모두 오래 된 풍속을 갑자기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태후가 이에 득도하여 국선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284) 화랑의 풍속은 그리하여 크게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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