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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기(新羅紀)
 성미경  | 2005·09·28 17:18 | 조회 : 2,596
<font size=5>신라기(新羅紀)</font>


사로(斯盧)의 시왕(始王)은 선도산(仙桃山) 성모의 아들이다. 옛날 부여(夫餘) 제실(帝室)의 딸 파소(婆蘇)가 있었는데 남편 없이 아이를 배었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눈수(嫩水)(1)로부터 도망쳐 동옥저(東沃沮)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辰韓)의 내을촌(奈乙村)에 와 닿았다. 이때에 소벌도리(蘇伐都利)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에 데려다 거두어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고 성덕이 있는지라, 진한 6부(2)의 사람들이 존경하여 거세간(居世干)(3)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徐羅伐)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辰韓)으로 하고, 또한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

   1) 눈수(嫩水) : 만주 흑룡강성의 가운데를 세로 흐리는 강.
   2) 진한 6부 :  이곳은 오래전부터 조선의 유민으로 여섯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 금산가리촌, 명산산고야촌으로
      진한 6부이다.
   3) 거세간(居世干) : 진한 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1대 혁거세(赫居世)

1년(BC57) 시조의 성은 박(朴)씨요, 이름은 혁거세(赫居世)이다.

19년 변한(卞韓)이 항복해 왔다.

21년 서울에 성을 축조하여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26년(BC26) 금성에 궁궐을 지었다.

53년 동옥저의 사신이 공물을 바쳤다.

61년 3월 거세간이 승하하여 사릉(蛇陵)에 장사하였다.




2대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1년(AD4) 혹은 자윤(慈允)이라고 한다. 박혁거세의 적자로 어머니는 알영부인(閼英夫人)이다. 7월 낙랑(樂浪)이 금성을 포위하였다 돌아갔다.

7년 탈해(脫解)를 대보(大輔)로 세웠다.

11년 왜인이 병선 1백으로 해변에 침입하자 6부의 경병(勁兵)으로 막았다. 낙랑에서 금성을 공략하다 물러났다.

21년 왕이 승하하자 사릉원(蛇陵園)에 장사하였다.




3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1년(AD24) 남해왕의 태자이다.

5년 백성이 도솔가(兜率歌)를 노래하였다.

9년 6부의 명칭을 고치고 성을 내렸다. 양산부를 양부(梁部)라 하여 이(李)씨라 하고 고허부를 사량부(沙梁部)라 하여 최(崔)씨라 하고 대수부를 점량부(漸梁部)라 하여 손(孫)씨라 하고 우진부를 본피부(本彼部)라 하여 정(鄭)씨라하고 가리부를 한기부(漢祈部)라 하고 배(裵)씨라 하고 명활부를 습비부(習比部)라 하여 설(薛)씨라 했다. 관제를 17관등으로 설정하였다.

14년 고구려 무휼왕(無恤王)이 낙랑을 멸하니 그 나라 사람 5천여명이 투항해와 6부에 나누어 살게 했다.

17년 화려(華麗), 불내(不耐)(4) 두현이 북변을 침공하니 맥국(貊國)의 거수(渠帥)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하서(河西)에서 물리쳤다.

34년 왕이 승하하니 사릉원(蛇陵園)에 장사하였다.

    4) 최리의 낙랑국의 후예로  낙랑의 두 현민으로 추정된다.




  4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1년(AD57) 일명 토해(吐解)로 성은 석(昔)씨로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5)에서 탄생했다. 유리왕의 임종에 유훈으로 왕위에 오르니 왕의 나이 62세 였다.

5년 마한 장수 맹소(孟召)가 복암성(覆巖城)을 들어 항복해 왔다.

9년 3월 금성 서쪽 숲에서 아이를 얻으니 성은 김(金)이라 하고 이름은 알지(閼智)라 했다. 국호를 계림(鷄林)이라 고쳤다.

10년 백제가 와산성(蛙山城)을 빼앗았으나 이내 되찾았다.

21년 아찬(阿 ) 길문(吉門)이 가야군(伽倻軍)과 황산진(黃山津)(6) 어구에서 싸워 이겼다.

24년 왕이 승하하니 성북쪽의 양정(壤井) 언덕에 장사했다.

    5) 다파나국(多婆那國) : 삼국사기에 그 위치가 왜국 동북 1천리라 하였다.  
        현재 탐라국 즉 제주도라 생각되어진다. 현재의 타이완섬을 말한다.
    6) 황산진(黃山津) : 현재의 양산을 말한다.




  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1년(AD80)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다.

8년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의 축조하였다.

17년(AD96) 9월 가야가 남쪽을 습격하니 가성주(加城主) 장세(長世)가 죽었다. 왕이 친히 5천군사로 나가 이를 물리쳤다.

22년 궁성을 쌓아 월성(月城)이라 했다.

23년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실직곡국(悉直谷國)(7)이 국토 논쟁을 벌이니 금관국(金官國)(8) 수로왕(首露王)이 바르게 판결하였다.

29년 비지국(比只國-창령) 다벌국(多伐國-대구), 초팔국(草八國-초계)을 쳐서 합병했다.

33년 왕이 승하하자 사릉원에 장사하였다.

   7) 음즙벌국(音汁伐國)은 안강지방이며, 실직곡국(悉直谷國)은 삼척지방으로 군,
       현을 가리킨다.
   8) 금관국(金官國) : 김수로왕의 금관가야(金官伽倻)로 현재 김해지방을 말한다.




6대 기마이사금(祇摩尼師今)

1년(AD112) 혹은 기미(祇味)라 한다. 왕은 파사왕의 적자이다.

4년 가야를 정벌키 위해 황산하(黃山河)를 건너다 복병에 의해 패하고 돌아왔다.

12년 왜(倭)와 화친하였다.

14년 말갈(靺鞨)이 북변을 침공하여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였다.

23년 왕이 자식도 없이 승하하였다.




  7대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1년(AD134) 유리왕의 장자 혹은 일지(日知) 갈문왕(葛文王)(9)의 아들이라고 한다.

4년 2월 말갈군이 변경을 침공하여 장령(長嶺)의 5책을 불태웠다.

15년(AD148) 박아도(朴阿道)를 갈문왕으로 봉했다.

21년 왕이 승하하였다.

    9) 갈문왕(葛文王) : 신라에서 왕을 추봉하는 경우 대개 갈문왕이라 했는데
                              그 뜻은 상세하지 않다.




  8대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1년(AD154) 일성왕의 장자이다.

12년 아찬 길선(吉宣)이 반역하려다 발각되어 백제로 도망했다.

31년 왕이 승하하였다.




  9대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

1년(AD184) 성이 석(昔)씨로 탈해왕의 아들 각간(角干) 구추(仇鄒)의 아들이다. 아달라왕이 아들이 없어 사람들이 받들어 세웠다.

13년 궁궐을 크게 수축하였다. 4월 왕이 승하하였다.




10대 내해이사금(奈解尼師今)

1년(AD196) 벌휴왕이 손자이다.

14년 포상팔국(浦上八國)이 가라(加羅) 침략을 도모하자 가라국(伽羅國) 왕자가 구원을 청하니 왕은 태자 우로(于老)와 이벌찬(伊伐 ) 이음(利音)에게 이를 치게 하니 8국의 장수를 죽이고 6천명을 빼앗아 돌아왔다.

19년 백제가 요거성(腰車城)(10)에 침입하여 성주 설부(薛夫)를 죽이자 이음이 나가 백제를 물리쳤다.

29년(AD224) 이벌찬 연진(連珍)이 봉산(烽山)(11)에서 백제와 싸워 이기고 봉산성(烽山城)을 축조하였다.

35년 왕이 승하하였다.

    10) 요거성(腰車城) :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으로 추정된다.
    11) 봉산(烽山) : 춘천 서남 강촌의 봉화산으로 추정한다.




  11대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

1년(AD230) 혹은 제귀(諸貴)라고도 하며 성은 석씨로 벌휴이사금의 손자로 아버지는 골정(骨正) 갈문왕이다. 선왕 내해의 유언으로 왕위에 올랐다.

2년 이찬 우로(于老)로 하여금 감문국(甘文國)을 쳐서 파하고 그 땅을 군으로 삼았다.

7년 골벌국(骨伐國-영천)왕 아음부(阿音夫)가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였다.

16년 10월 고구려가 침공하니 우로가 출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마두책(馬頭柵)(12)까지 물러났다.

    12) 마두책(馬頭柵) : 오늘날의 함흥시 북쪽 오로촌고성(吾老村古城)이다.




  12대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1년(AD247) 조분왕의 동생이다.

9년 9월 백제가 침입하여 일벌찬(一伐 ) 익종(翊宗)이 괴곡(槐谷)(13) 서쪽에서 싸우다 죽었다.

15년 달벌성(達伐城)을 축조했다. 12월 왕이 병으로 승하하였다.

    13) 괴곡(槐谷) : 충청북도 괴산으로 추정한다.



  13대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1년(AD262) 혹은 미조(味照)라고하며 성은 김이요. 그 조상은 알지이다. 알지가  5대를 내려와 구도(仇道)를 나으니 즉 미추의 아버지다. 첨해가 아들이 없어 나라 사람이 미추를 추대하였다.

5년 백제군이 봉산성(烽山城)(14)을 공격하자 성주 직선(直宣)이 이를 물리쳤다.

23년 10월 왕이 승하하여 대릉(大陵)에 장사하였다.

    14) 봉산성(烽山城) : 춘천 서남 강촌의 봉화산으로 추정한다.




  14대 유례이사금(儒禮尼師今)

1년(AD283) 조분왕의 장자이다.

4년 왜인이 일례부(一禮部)를 습격해 와서 포로 1천을 잡아갔다.

11년 왜병이 장봉성(長峯城)을 공격하였으나 물러갔다.

15년 12월 왕이 승하하였다.




  15대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1년(AD298) 기립(基立)이라고도 하며 조분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이찬 걸숙(乞淑)이다.

10년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13년 6월 왕이 승하하였다.




  16대 흘해이사금(訖解尼師今)

1년(AD310) 내해왕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각간 우로(于老)이다.

3년 왜국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들의 혼인을 청하니 이찬 급리(急利)의 딸을 보냈다.

37년(AD346) 왜국이 변방 민가에 침입하고 금성을 포위하였다. 굳게 성을 지키니 적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47년 4월 왕이 승하하였다.




  17대 내물이사금(奈勿尼師今)

1년(AD356) 혹은 나밀(那密)이며 성은 김씨로 갈문왕 구도(仇道)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각간 말구(末仇)이다.

9년 4월 왜인이 침입하니 복병으로 이를 물리쳤다.

18년(AD373) 백제의 독산성주(禿山城主)가 백성 3백을 이끌고 투항해 왔다.

37년(AD392) 고구려에 이찬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실성(實聖)을 인질로 보냈다.

38년 5월 왜인이 금성을 포위하였다. 굳게 지키어 적이 퇴각할 때 이를 쳐서 이겼다.

40년 말갈이 북변을 침공하니 실직(悉直)(15) 벌판에서 무찔렀다.

47년 왕이 승하하였다.

    15) 실직(悉直) : 강원도 삼척 땅이다.
  



  18대 실성이사금(實聖尼師今)

1년(AD402) 왕은 알지의 손자요 대서지 이찬의 아들이다. 고구려에 인질로 있다 내물왕의 왕자가 어려 왕위를 계승하였다.

4년 왜병이 명활성(明活城)을 침공하였으나 패하여 퇴주하였다.

11년 내물왕의 아들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냈다.

16년 5월 왕이 승하하였다.




  19대 눌지마립간(訥祗痲立干)(16)

1년(AD417) 내물왕의 아들이다. 실성왕이 자신을 고구려에 인질로 보낸 내물왕을 원망하고 그 아들 눌지를 죽이려 하여 눌지가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2년 왕제 미사흔(未斯欣)이 왜국에서 탈출하여 왔다.

24년(AD440) 왜인들이 남해변방을 침입하였다.

28년 왜인이 금성을 포위하다 물러갔다.

39년 10월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하자 군사를 내어 백제를 도왔다.

42년 8월 왕이 승하하였다.

16) 마립간(麻立干) : 방언으로 궐(말독)을 이르는 것인데, 궐은 곧 시조이며 이것은 자리를 정하는 것으로 왕궐이 주가 되고 신궐이 그 밑에 벌여 있음으로 유래한다.




  
20대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1년(AD458) 눌지왕의 장자이다.

2년 왜군이 병선 1백여 척으로 월성(月城)을 에워싸고 공격하다 이롭지 못해 퇴각하니 왕이 해구(海口)까지 추격하여 적을 섬멸하였다.

6년 2월 삽량성( 良城)에 왜군이 침입하였다. 왜군을 막기 위해 연해변에 두 성을 축조했다.

11년(AD468)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실직성(悉直城)을 습격했다.

17년 일모성(一牟城), 사시성(沙尸城), 광석성(廣石城), 답달성(沓達城), 구례성(仇禮城), 좌라성(坐羅城)을 축조했다. 7월 고구려 거련왕이 백제를 침공하니 백제왕 경이 왕자 문주를 보내어 구원을 청하니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다.

22년 2월 왕이 승하하였다.




  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1년(AD479) 혹은 비처(毗處)로 자비왕의 장자이다.

3년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변을 침공 호명성(狐鳴城)등 7성을 공취하고 미질부(彌秩夫)로 진격하자 백제, 가야국의 원병을 지원받아 이를 물리렸다.

8년 삼년성(三年城)(17), 굴산성(屈山城)을 개축했다.

11년(AD489) 9월 고구려가 북변 과현(戈峴)을 침범하니 호산성(狐山城)이 함락되었다.

16년 장군 실죽(實竹)이 고구려 군과 살수(薩水)평원에서 싸워 패하니 백제왕 모대(牟大)가 원군을 보내어와 적이 물러갔다.

19년 고구려가 우산성(牛山城)을 쳐서 함락시켰다.

22년 11월 왕이 승하하였다.

    17) 삼년성(三年城) : 현재의 보은 지방이다.




  22대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1년(AD500) 성은 김이요 이름은 지대로(智大路)로 내물왕의 증손 갈문왕 습보(習寶)의 아들이다.

3년 3월 왕이 순장(殉葬) 금지령을 내렸다.

4년 국호가 통일되지 않자 왕이 신하의 의견을 따라 신라(新羅)라하였다.

5년 9월 파리성(波里城)(18)등 12성을 축조하였다.

13년(AD512) 이찬 이사부(異斯夫)를 하슬라주(何瑟羅州)(19)의 군주로 세워 우산국(于山國)(20)을 위협하니 6월 우산국이 항복했고 해마다 방물을 바치기로 하였다.

15년 아시촌(阿尸村)에 소경(小京)을 만들었다. 7월 왕이 승하하였다. 신라의 시호제도가 시작되었다.

    18) 파리성(波里城) : 현재 삼척지방이다.
    19) 하슬라주(何瑟羅州) : 강릉지방이다.
    20) 우산국(于山國) : 울릉도를 말한다.




  23대 법흥왕(法興王)

1년(AD514) 이름은 원종(原宗)으로 지증왕의 원자이다.

15년 왕이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불도(佛道)를 믿게 하였다.

19년(AD532) 금관국주(金官國主) 김구해(金仇亥)가 나라를 들어 항복하니 이들을 예우로 맞이하였다.

27년 7월 왕이 승하하니 애공사(哀公寺) 북봉(北峯)에 장사했다.





  24대 진흥왕(眞興王)

1년(AD540) 이름은 삼맥종( 麥宗) 혹은 심맥부(深麥夫)이며 법흥왕의 왕제 갈문왕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왕이 어려 왕태후가 섭정하였다.

9년 2월 고구려가 예인과 더불어 백제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니 백제가 구원을 청하여 장군 주령(朱玲)에게 명하여 나아가 치게 하니 물러났다.

11년 고구려와 백제가 싸움으로 피곤한 틈을 타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과 백제의 금현성(金峴城)을 함락하였다.

12년(AD551) 우륵(于勒)과 그 제가 이문(尼文)이 하림궁(河臨宮)에서 음악을 연주하였다.

14년 월성 동쪽에 황룡사(黃龍寺)를 지었다.

15년 백제왕 명농이 관산성(管山城)을 침공하니 우리군이 이롭지 못하다가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습하여 백제왕을 죽이자 백제군이 무너저 대패하여 돌아갔다.

23년 가야가 모반하니 이사부에 명하여 이를 치게 하니 항복하였다.

27년 왕자 동륜(銅輪)을 왕태자로 세우고 황룡사가 완성되었다.

37년 처음으로 원화(源花)를 만들었다. 미남을 뽑아 화랑(花郞)이라 하고 교육하였다. 8월 왕이 승하하자 애공사(哀公寺)의 북봉(北峯)에 장사하였다.




  25대 진지왕(眞智王)

1년(AD576) 이름은 사륜(舍輪)이로 진흥왕의 둘째 아들이다. 태자가 일찍 죽어 왕위에 올랐다.

4년 7월 왕이 승하하하자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하였다.




  26대 진평왕(眞平王)

1년(AD579) 이름은 백정(白淨)이며 진흥왕의 태자 동륜의 아들이다.

24년 8월 백제가 아막성(阿莫城)을 침입하여 귀산(貴山), 추항( 項)등이 전사하였다.

25년 고구려가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침입했으니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33년(AD611) 백제군이 가잠성( 岑城)을 공취하고 현령 찬덕(贊德)을 죽였다.

46년 백제가 침공하여 봉잠(烽岑), 앵잠(櫻岑), 기현(旗懸) 세성을 함락하였다.

48년 백제가 주존성(主存城)을 침공하니 성주 동소(東所)가 싸우다 전사하였다.

49년 7월 백제 장군 사걸(沙乞)이 서쪽 변방을 침입하여 두 성을 빼앗았다.

51년 김유신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침입하여 함락시켰다.

54년 정월 왕이 승하하니 한지(漢只)에 장사하였다.




  27대 선덕왕(善德王)

1년(AD632) 이름은 덕만(德曼)이며 진평왕의 장녀이다. 왕이 승하한후 아들이 없어 나라사람이 덕만을 왕으로 세웠다.

3년 정월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7년 고구려가 칠중성(七重城)에 침입해오니 장군 알천(閼川)이 이를 물리쳤다.

11년(AD642) 7월 백제 의자왕이 나라 서쪽의 40여성을 공취하였다.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대야성(大耶城)을 공취하였다.

12년 당에 사신을 보배어 원병을 요구했지만 이루지 못하였다.

13년 대장군 김유신(金庾信)이 백제를 쳐 일곱성을 빼앗았다.

14년 황룡사탑이 완성되었다. 5월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하자 3만으로 당나라를 원조하자 백제가 서쪽 7성을 공취하였다.

16년 정월 왕이 승하하자 낭산(狼山)에 장사하였다.




  28대 진덕왕(眞德王)

1년(AD674) 이름은 승만(勝曼)이며 진평왕의 모제 국반(國飯) 갈문왕의 딸이다.

2년 백제 장군 의직(義直)이 서쪽을 침범하여 요거성(腰車城)등 10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김유신을 보내어 이를 물리쳤다.

이찬 김춘추와 아들 무왕을 당나라에 보냈는데 김춘추만 돌아왔다.

4년 비단에 태평송(太平頌)을 지어 김춘추의 아들 법민(法敏)을 보내어 당(唐) 고종(高宗)에게 올리고 당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8년 3월 왕이 승하하자 사량부(沙梁部)에 장사하였다.

  시조 혁거세로부터 진덕왕까지 28왕은 성골(聖骨)이고 무열왕부터 말왕이 이르기 까지는 진골(眞骨)이라 한다.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1년(AD654) 이름은 춘추(春秋)로 진지왕 아들 이찬 용춘(龍春)의 아들이다.

2년 고구려가 백제, 말갈과 더불어 북변을 침공하여 33성을 공취하였다. 이에 당에 원병을 청하니 3월에 당이 정명진(程名振)과 소정방(蘇定方)에게 군사를 주어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6년 백제가 빈번히 군사를 내어 국경을 침공하니 왕이 사신을 당에 보내어 원병을 구하였다.

7년 3월 당 고종이 육,수군 13만으로 백제를 정벌하게 하니 왕이 김유신(金庾信), 김진주(金眞珠), 천존(天存)등과 같이 장병을 거느리고 서울을 출발하였다. 8월 백제의 도성이 함락되었다.

8년 6월 왕이 승하하자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하였다.




30대 문무왕(文武王)

1년(AD661) 이름은 법민(法敏)으로 태종무열왕의 원자이다. 8월 백제의 남은 무리가 옹산성(甕山城)에 있어 설득하였으니 듣지 않자 나아가 싸우니 항복하였다.

2년 정월 당이 고구려와의 싸움에 쌀을 요구하니 이찬 문훈(文訓), 유신(庾信), 인문(仁問), 양도(良圖)로 하여금 평양으로 쌀 2만 2천석을 싣고 떠나게 했다. 탐라(耽羅)는 백제국의 속군인데 항복하여 속국이 되었다.

3년 5월 백제왕자 부여풍(夫餘豊)이 백제민을 이끌고 항쟁하자, 왕이 당군과 합세하여 두릉윤성(豆陵尹城), 주류성(周留城)등 모든성을 함락하자 부여풍은 도망하였다.

6년 고구려 귀신(貴臣) 연정토(淵淨土)가 12성을 들어 항복해 왔다.

8년 9월 모든 군사가 당과 함께 평양성(平壤城)을 포위 공격하니 고구려왕 보장왕이 항복하였다.

10년 당 고종이 신라가 백제의 유민을 거두는 것이 비위에 거슬려 침공하니, 사찬(沙 ) 설조유(薛鳥儒)가 고구려 태대형(太大兄) 고연무(高延武), 말갈병(靺鞨兵)등과 함께 옥골(屋骨)에서 싸워 승리하였으나 계속 당이 침범하자 압록강(鴨綠江)에서 후퇴하였다. 고구려 수림성(水臨城)의 대형(大兄) 검모잠(劍牟岑)이 연정토의 아들 안승(安勝)을 왕으로 세우고, 문무왕께 충성을 맹세하니 국서(國西)땅 금마저(金馬渚)에 살게 하였다.

12년 고구려군과 더불어 당과 싸우니 고보(高保)등이 퇴각하자 이를 추격하다 크게 패하고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晝長城)을 쌓았다.

13년 7월 김유신이 죽었다.

15년(AD675) 9월 당의 이근행(李謹行)이 군 20만으로 매초성(買肖城)에 주둔해 있었으나 이를 쳐 물리쳤다.

16년 사찬(沙 ) 시령(施領)이 병선을 거느리고 설인귀(薛仁貴)와 소부리주(所夫里州)의 기벌포(伎伐浦)에서 싸워 패했지만 다시 침공하여 22회나 싸워 모두 이기었다.

21년 7월 왕이 승하하니 동해구(東海口)의 큰 돌위에 장사했다.




  31대 신문왕(神文王)

1년(AD681) 이름은 정명(政明) 혹은 명지(明之)로 문무대왕의 장자이다.

4년 안승의 족자(族子) 장군 대문(大文)이 금마저에서 반역하다 주살되었다.

12년 7월 왕이 승하하자 낭산(狼山) 동쪽에 장사하였다.




  32대 효소왕(孝昭王)

1년(AD692) 이름은 이홍(理洪)이며 심문왕의 태자이다.

11년 7월 왕이 승하하니 망덕사(望德寺) 동쪽에 장사했다.




  33대 성덕왕(聖德王)

1년(AD702) 이름은 흥광(興光)이며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 효소왕의 동복 아우이다.

2년 일본국 사신이 304명이나 왔다.

32년(AD733) 당 현종(玄宗)이 발해(渤海)가 등주(登州)를 침략하므로 왕으로 발해 남변을 쳐달라 했다. 김사란(金思蘭)이 나갔으나 큰 눈으로 많은 병사가 상해 돌아왔다.

36년 왕이 승하하자 이거사(移車寺) 남쪽에 장사하였다.




  34대 효성왕(孝成王)

1년(AD737) 이름은 승경(承慶)이고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다.

6년 왕이 승하하자 화장하여 동해에 뿌렸다.




  35대 경덕왕(景德王)

1년(AD742) 이름은 헌영(憲英)이며 효성왕의 이복 동생이다.

24년 6월 왕이 승하하니 모지사(毛祗寺) 서쪽 언덕에 장사하였다.




  36대 혜공왕(惠恭王)

1년(AD765) 이름은 건운(乾運)이며 경덕왕의 적자이다. 왕이 어려 태후가 섭정하였다.

4년 일길찬(一吉 ) 대공(大恭)이 아우 아찬(阿 ) 대렴(大廉)과 반란을 일으키니 이를 평정하고 그 9족을 주살했다.

16년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모반하여 왕과 후비를 살해했다. 이에 상대등(上大等) 김양상(金良相)이 이찬 경신(敬信)과 함께 지정을 주살했다.




  37대 선덕왕(善德王)

1년(AD780) 이름은 양상(良相)이다. 내물왕 10대손으로 아버지는 사찬(沙 ) 효방(孝芳)이다. 지정을 주살하고 왕위에 올랐다.

6년 정월 왕이 승하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뿌렸다.




  38대 원성왕(元聖王)

1년(AD785) 이름은 경신(敬信)이며 내물왕 12대손 이다.

14년 12월 왕이 승하하니 봉덕사(奉德寺) 남쪽에 화장했다.




  39대 소성왕(昭聖王)

1년(AD799) 이름은 준옹(俊邕)이고 원성왕의 태자 인겸(仁謙)의 아들이다.

2년 왕이 승하하였다.




  40대 애장왕(哀莊王)

1년(AD800) 이름은 청명(淸明)이며 소성왕의 태자이다.

4년 7월 일본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7년 왕이 불사를 새로짓는 것을 금하고 오직 수리만 허락되며 금은으로 기물을 만드는 것을 금하였다.

10년 왕의 숙부 언승(彦昇)이 아우 이찬 제옹(悌邕)과 더불어 반란하여 왕을 시해하였다.



  41대 헌덕왕(憲德王)

1년(AD809) 이름은 언승(彦昇)이고 소성왕의 동복아우이다. 애장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14년 웅천주도독(熊川州都督) 헌창(憲昌)이 아비 주원(周元)이 왕이 못된 것에 대한 원한으로 반란하니 국호를 장안(長安)이라 했다. 무진(武珍), 완산(完山), 청(菁), 사벌(沙伐)의 4주(州)의 도독(都督)과 국원(國原) , 서원(西原), 금관(金官)의 사신(仕臣) 및 여러 군현(郡縣)의 수령이 복종했다. 이에 일길찬 장웅(張雄), 잡찬(  ) 위공(衛恭), 이찬(伊 ) 균정(均貞)등을 내어 토벌하니 헌창이 웅진성(熊津城)에서 자살하였다.

18년 7월 우잠태수(牛岑太守) 백영(白永)에게 명하여 패강(浿江)을 중심으로 3백리의 장성을 축조했다. 10월 왕이 승하하니 천림사(泉林寺) 북쪽에 장사하였다.



  42대 흥덕왕(興德王)

1년(AD826)  이름은 수종(秀宗)이며 헌덕왕의 동복 아우이다.

11년 12월 왕이 승하하자 유언대로 장화부인(章和夫人) 능에 합장했다.



43대 희강왕(僖康王)

1년(AD836) 이름은 제륭(悌隆)이며 원성대왕의 손자이고 이찬 헌정(憲貞)의 아들이다. 처음 흥덕왕이 승하한 후 왕의 종제 균정(均貞)과 제륭(悌隆)이 모두 왕이 되려 싸우다 균정이 살해되고 제륭이 왕이 되었다.

2년 아찬 우징(祐徵)이 아버지 균정이 살해되자 이를 불평하다 화가 두려워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궁복(弓福)에게 의지하였다.

3년 정월 상대등(上大等) 김명(金明)과 시중(侍中) 이홍(利洪)이 군사를 내어 반란하여 왕의 좌우 근신을 살해하니 왕이 궁중에서 목을 메어 자결하니 소산(蘇山)에 장사하였다.



  44대 민애왕(閔哀王)

1년(AD838) 이름은 명(明)으로 원성왕의 증손이며 대아찬 충공(忠恭)의 아들이다. 시중 이홍과 더불어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2월 김양(金陽)이  군사를 모아 청해진(淸海鎭)으로 가 우징을 만나 김명의 찬위 소식을 전하자 우징이 청해진대사 궁복에게 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군대를 빌리길 바라니 궁복이 군사를 내어 무주(武州)의 철야현(鐵冶縣)에 이르자 왕이 대감(大監) 김민주(金敏周)에게 군사를 주어 싸우게 했는데 궁복(弓福)이 이를 모두 섬멸했다.  

2년 김양(金陽)이 달벌(達伐)의 땅에서 왕군을 크게 무찌르고 왕을 월유택(月遊宅)에서 살해하였다.



  45대 신무왕(神武王)

1년(AD839) 이름은 우징(祐徵)이고 원성왕의 손자이며 상대등 균정(均貞)의 아들이다. 김양(金陽), 예징(禮徵) 등이 민애왕을 숙청한 후 맞아 즉위 하였다. 7월 승하하니 제형산(弟兄山) 서북방에 장사하였다.



  46대 문성왕(文聖王)

1년(AD839) 이름은 경응(慶膺)이며 신무왕의 태자이다.

8년 청해진대사 궁복(弓福)이 왕이 자기의 딸을 맞지 않는 것을 원망하여 청해진에 의거 모반하니 왕이 염장(閻長)을 청해진에 투입하여 궁복을 죽이니 평정되었다.

19년 왕이 승하하니 공작지(孔雀趾)에 장사하였다.



  47대 헌안왕(憲安王)

1년(AD857) 이름은 의정(誼靖)으로 신무왕의 이복 아우이다.

5년 왕이 승하하니 공작지(孔雀趾)에 장사하였다.



  48대 경문왕(景文王)

1년(AD861) 이름은 응렴(膺廉)이며 희강왕의 아들 아찬 계명(啓明)의 아들이다. 헌왕왕이 아들이 없어 그의 딸과 결혼한 응렴을 왕으로 세울 것을 이르고 승하하자 그대로 하였다.

14년 최치원(崔致遠)이 당에서 등과하였다.

15년 7월 왕이 승하하였다.



  49대 헌강왕(憲康王)

1년 (AD875) 이름은 정(晸)이요. 경문왕의 태자이다.

3년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송악군(松岳郡)에서 탄생했다.

11년 최치원이 당에서 귀국하였다.

12년 7월 왕이 승하하니 보제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하였다.



50대 정강왕(定康王)

1년(AD886) 이름은 황(晃)이며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다.

2년 왕이 승하하자 보제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하였다.



  51대 진성왕(眞聖王)

1년(AD887) 이름은 만(曼)이며 헌강왕의 여동생이다. 정강왕이 죽으며 만을 왕으로 세울 것을 이르자 그대로 하였다.

2년 향가를 모아 삼대목(三代目)을 편찬하였다. 왕이 평소 각간 위홍(魏洪)과 간통하였는데 그가 죽자 혜성대왕(惠成大王)으로 봉했다. 그 후 왕이 은밀히 미소년을 궁에 끌어들이니 음탕 문란하게 되었다.

3년 국내의 여러 주군이 공부를 바치지 않아 재정이 궁핍했다.

5년 10월 북원(北原)의 양길(梁吉)이 궁예(弓裔)에게 1백여 명의 기병으로 북원(北原) 동부락과 명주(溟州) 관내를 습격했다.

6년 완산(完山)의 견훤(甄萱)이 주를 점령하고 후백제(後百濟)라 자칭하니 무주 동남의 군현이 항복하여 그에게 소속되었다.

9년 8월 궁예(弓裔)가 저족(猪足), 성천( 川)의 두군을 취하고 철원(鐵圓)등 10여 군현을 쳐서 공취하였다. 10월 왕이 헌강왕의 서자 요(嶢)를 태자로 봉했다.

11년 12월 왕이 승하하니 황산(黃山)에 장사하였다.



  52대 효공왕(孝恭王)

1년(AD897) 이름은 요(嶢)이고 헌강왕의 서자이다.

2년 7월 궁예가 패서도(浿潟)와 한산주(漢山州) 관내의 30여성을 쳐서 송악군(松岳郡)에 도읍하였다.

3년 북원의 양길이 궁예를 꺼려 비뇌성(非惱城)으로 진격했으나 패하여 도망하였다.

5년 궁예가 왕이라 일컬었다. 후백제왕 견훤이 대야성(大耶城)을 침공했으나 항복시키지 못하고 남쪽 변방을 침공 약탈하고 돌아갔다.

8년 궁예가 국호를 마진(摩震)이라하고 연호를 무태(武泰)라하니 패강도(浿江道) 등 10여 주현이 항복하였다.

14년 견훤이 나주성(羅州城)을 포위하고 싸웠으나 궁예가 수군을 내어 급습하자 물러갔다.

15년 궁예가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고치고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라 했다.

16년 왕이 승하하니 사자사(師子寺) 북쪽에 장사했다.




  53대 신덕왕(神德王)

1년(AD912) 성은 박(朴)씨요 이름은 경휘(景暉)로 아달라왕(阿達羅王)의 후손이다. 효공왕에게 아들이 없어 나라 사람이 추대하여 왕이 되었다.

5년 견훤이 대야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6년 7월 왕이 승하하니 죽성(竹城)에 장사하였다.




  54대 경명왕(景明王)

1년(AD917) 이름은 승영(昇英)으로 신덕왕의 태자이다.

2년 궁예의 휘하의 사람들이 태조(太祖)를 왕으로 추대하자 궁예가 궁성을 빠져 도망하다 피살되었다.

3년 태조가 도성을 송악군(松岳郡)으로 옮겼다.

4년 왕이 태조와 수교하였다. 10월 후백제왕 견훤(甄萱)이 1만 병사로 대야성(大耶城)을 치고 진례성(進禮城)으로 진격해 오니 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태조가 장수를 보냈다. 이에 견훤은 스스로 물러갔다.

8년 8월 왕이 승하하자 황복사(黃福寺) 북쪽에 장사하였다.




  55대 경애왕(景哀王)

1년(AD924) 이름은 위응(魏膺)이며 경명왕의 동복아우이다.

3년 견훤(甄萱)의 조카인 진호(眞虎)가 볼모로 고려(高麗)에 와있다 죽자 견훤이 고려사람이 고의로 죽였다 하여 웅진(熊津)으로 진격해 오니 성을 굳게 지키었다.

4년 태조가 친히 군사를 내어 후백제를 정벌하니 왕이 군사를 내어 도왔다. 견훤(甄萱)이 신라 궁성에 침입하여 왕을 자살하게 하고 경순왕을 세웠다. 왕을 남산 해목령(蟹目嶺)에 장사 지냈다.




  56대 경순왕(敬順王)

1년(AD927) 이름은 부(傅)로 문성대왕의 후손으로 이찬 효종(孝宗)의 아들이다.

4년 태조가 고창군(古昌郡) 병산(甁山)에서 견훤(甄萱)과 싸워 크게 이기고 견훤을  참살하였다.

9년 10월 왕이 나라의 땅이 거의 남에게 빼앗기니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에게 글을 갖추어 태조에게 항복하고 개골산(皆骨山)으로 들어가 일생을 마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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