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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히타이트 유적 (정길선 박사)
 알자고    | 2016·10·29 21:20 | 조회 : 151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약 45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곳.. 앙카라에서 동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 아나톨리아 고원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곳인데다 주변이 모두 높은 지형의 산지이다. 건물을 세우기 힘든 가파른 절벽과 산봉우리가 많은 지형에 일교차도 매우 심하다. 한 마디로 수도의 조건을 전혀 갖춰지지 않은 곳이다. 특히 고대 수도로써 말이다. 이러한 입지 조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곳에 한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는 것도 미스테리이지만 3,000년 동안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도 희대의 미스테리 중 하나다.

1834년, 프랑스의 학자 샤를 펠릭스 마리 테시에(Charles Felix Marie Texier, 1802-1871)에는 핫투샤와 야즐라카야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터키 여행을 계획했다. 테시에는 터키에서 가장 긴 강인 키질-이르마크 강 인근에 보아즈칼레라는 마을에 도착했고 마을 근처에 수레 바퀴 자국을 우연히 따라가다 거대한 고대 도시를 만나게 된다.

테시에는 고대 그리스, 소아시아 지역의 켈트 족을 비롯한 유목민족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찾고 싶었던 평생의 숙원은 소아시아 지역의 켈트 족이 만든 도시인 타비움(Tavium)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아즈칼레에서 이 거대 도시를 찾았을 때 그는 그곳이 타비움(Tavium)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콜롬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인도를 발견한 것으로 착각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이후 이곳을 자주 들렀고 고대 타비움으로 추정하는 보아즈칼레 유적을 발굴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이 유적들을 로마의 역사가 스트라보가 언급했던 성소인 주피터 신전을 비롯한 타비움 성의 성소들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굴을 거듭 할 수록 텍시에는 이곳이 과연 켈트족,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적인지에 대한 의심이 늘어갔고 발굴하고 있는 지역의 건축물도 그리스, 로마시대의 건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이 어울리다 판단한 곳은 페르시아 지역의 건축들로 여러모로 비교해보아도 고대 페르시아와 아니면 그 이전의 것과 유사성이 많았다.

테시에는 1839년 파리에서 <소아시아 소묘(Description de l'Asie Mineure faite par ordre du Gouvernement francais)>라는 여행기를 발간하면서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의 역사가들은 오스만투르크가 통치하고 있던 소아시아에 기원전 20세기 이전의 강대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믿고 있었고 그 범위를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축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텍시에의 여행기는 고고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보아즈칼레를 자주 방문하게 만들었고 1872년 아일랜드 학자인 윌리엄 라이트(William Wright, 1837~1899)는 오론테스 강 주변의 하마트라는 곳에서 거대한 비석을 발견하고 이 비석의 쐐기문자들을 탁본해가기에 이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시 학자들은 이 문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상형문자 및 쐐기문자보다 더 복잡한 구성의 이 문자에 대한 해독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고문자 (히타이트 쐐기문자) 는 지금도 80%가 미해독 문자로 남아있다고 한다.

19세기 말 영국박물관의 학자들이 유프라테스 강 우측에 위치한 자라불루스라는 지역 근처에서 거대한 유적을 발견했고 기존의 메소포타미아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아시리아 사료에 명시된 카르케미시(Karkemish)라는 도시로 밝혀내게 된다. 이 카르케미시 유적에서 기존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쐐기 문자와 다른 문자를 발견하게 되고 시리아와 타우루스의 기념물과 스미르나 근처에서도 같은 문자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들이 텍시에가 발견한 야질리카야의 문자들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면서 점차 히타이트 제국의 흔적으로 잠정 결론 짓게 된다.

히타이트 제국은 킴메르의 일족으로 남하하여 이 지역에 정착했다. 그리고 소아시아에 들어오면서 광대한 철광 산지도 장악했다. 이미 기존에 있었던 철제 제련은 주로 무기와 농기구, 유목에 사용된 기구에만 한정되어 이용되었다. 왕실과 귀족층, 제사장들이 여전히 생활 용품으로 사용했던 것은 바로 청동, 구리 제품들이었다.

히타이트의 정복 속도는 매우 놀라웠다. 아나톨리아 고원일대를 거의 정복했고 간간히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평원 및 사막 지대로 내려와 약탈을 감행하기도 했다. 히타이트에게 고원은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는 천연의 요새이면서도 같은 계통의 부족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통일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한 히타이트도 최대의 적수가 있었으니 이는 이집트 람세스 2세(Ramses II, B.C 1303 ~ B.C 1213)였다.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벽에 상형문자로 새겨진 람세스 2세(Ramses II)와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대왕(Hattushili Ⅲ)이 맺은 조약문이 발견되면서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관계, 히타이트의 남하를 저지시킨 이집트와의 카데시 전투 등의 실상이 밝혀졌다.

카데시 전투 이후로 히타이트의 남하는 저지되었지만 이후 300여년 동안 계속 히타이트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과 아나톨리아 고원을 아우르는 강대국으로 지위를 유지했다.

출처 : 정길선 박사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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