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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선비족의 기원(1) _ 정길선 박사
 알자고    | 2016·10·30 18:37 | 조회 : 158


탁발선비는 선비의 씨족 중 가장 많은 씨족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들은 기존의 단 선비나 모용선비와는 기원지가 달랐으며 대부분 평원과 산을 의지하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동굴에서 부족의 기원이 시작되었는데 이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에는 흉노의 침입으로 동호가 멸망하였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탁발의 씨족들은 당시 동호를 탈출하여 흉노의 지배를 피해 북방 내몽골 호륜패이(呼倫貝爾) 동북쪽 아리하진(阿里河鎭) 자거다치(加格达奇)로 도망하여 알선동(嘎仙洞)이라는 동굴에 숨어 살았다.

그러나 흉노는 멀리 북방으로 도망간 탁발의 씨족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탁발의 씨족 알선동 동굴에서부터 유목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 선비가 세력이 강화되고 단석괴가 전체 선비의 영도자(大人)이 되자 단석괴에 귀속하였다. 단석괴에 귀속된 탁발씨는 남하하여 오르도스 동쪽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단석괴의 사후, 선비는 다시 분열하였고 대부분의 씨족들이 선비산으로 들어갔고 탁발씨 역시 알선동으로 다시 돌아와 재기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 서북쪽으로 세력을 확대하자 탁발씨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알선동이 확대된 고구려 세력의 인근이었기 때문에 탁발씨와 고구려는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탁발씨는 고구려와 충돌보다는 고구려에 복속되기를 원했다. 그것은 전쟁에서 이미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부족을 연명하기 위해서는 같은 동족 계열인 고구려에 복속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에 복속된 탁발씨는 고구려와 함께 정복전쟁에 참가하여 전투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그러면서 힘을 기르게 된 탁발씨는 5호 16국의 혼란기 때 중원에 잠입하여 북위(北魏)를 건국하고 화북을 통일하게 된다. 여기까지 탁발씨의 기원부터 북위 건국까지 간단한 연대기이다.

탁발선비의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탁발씨에 대한 주장은 중국 문헌사료에 의하면 동호의 유민들이라 보고 있다.그리고 유목민족이라 일부 서유럽의 사학자들은 동호가 몽골계의 성격이 강한 부족이었다. 그러기에 탁발선비를 몽골계에 가까운 부족으로 본다고 주장한다. 반면 터키의 역사가들은 탁발선비를 타브가치(Tabgachi), 본연의 혈족으로 보고 흉노계, 터키계로 판단하여 보고 있다. 터키의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유는 타브가치가 터키계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탁발선비는 국제인류학학회에 정식으로 선비계로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탁발선비가 스스로 문헌적 사료를 통해 명확히 밝히기 시작한 것은 북위를 건국하고 부터이다. 이전에 문헌 사료적으로 남아있는 기록만으로는 현재 선비계로 등록되어 있고 필자도 이를 참고하여 정리하였지만 실제로 탁발선비의 계통적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탁발선비가 영위하던 곳은 동북산악지대이고 북방의 강력한 유목세력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변방이었다. 탁발씨들은 알선동에서 부족수를 늘리고 외침으로부터 안정된 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수렵 생활을 영위했다. 알선동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고구려와의 접경지역으로 고구려와 가까운 생활습관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와 주로 교역을 했을 것으로도 쉽게 추론 가능하다. 알선동은 주변 다른 유목민족들과는 거리가 멀고 고구려와는 가까우므로 주로 고구려에는 식량과 비단을 얻었고 유목에 필요한 물품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탁발선비의 수장인 추인(推寅)이 알선동을 떠나 서남쪽으로 이동하여 호룬(呼伦)호수가 있는 호룬패이(呼伦贝尔) 대초원에 정착했다.『위서(魏書)』에는 대택(大澤)으로 남천 했다고 나오는데 대택(大澤)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호룬호수(呼伦浩水)로 보인다.
(昔黃帝有子二十五人,或內列諸華,或外分荒服,昌意少子,受封北土,國有大鮮卑山,因以為號。其後,世為君長,統幽都之北,廣漠之野,畜牧遷徙,射獵為業,淳樸為俗,簡易為化,不為文字,刻木紀契而已,世事遠近,人相傳授,如史官之紀錄焉。黃帝以土德王,北俗謂土為托,謂后為跋,故以為氏。)

탁발씨가 이동을 하게 된 것은 첫 번째, 점차 인구가 증가하는데 있어 삼림에서의 수렵이 부족민들을 부양하기 힘들어져 이동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당시 중원이 후한 말기로 조조가 실권을 잡고 있었던 군웅할거(群雄割據)의 혼란기였다는 것에도 크게 작용했다. 이 때 후한 변경을 약탈하여 생활하면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출 수 있을것으로 보았다. 세 번째, 오환이 짧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로 당시 오환보다 약한 세력인 탁발씨가 오환의 군사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했다. 그리고 오환과 함께 다니며 후한 국경과 토욕혼 지역을 약탈하여 제정을 충당할 수 있었다.




출처 : 참환역사신문 페이스북 장길선 박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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