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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알자고    | 2016·11·02 17:00 | 조회 : 156
<사진:동, 서돌궐을 가르는 알타이 산>

수나라의 반란 세력을 지원한 동돌궐은 당(唐)이 건국되는 동안 끊임없이 중국의 분열을 획책했다. 그러면서 동돌궐은 반란 세력의 지원 및 든든한 고구려라는 우방확보와 중국 북변을 약탈하면서 얻은 재원을 바탕으로 당나라와의 초기 관계에서도 군사적, 외교적인 우위를 점했다. 그리고 이연에 의해 당나라가 건국되었음에도 동돌궐의 약탈은 끊이지 않았다.
힐리가한(頡利可汗)은 당나라의 국경지대와 장안 인근까지 침입하여 약탈하자 후일 태종이 되는 이세민이 군을 이끌고 번번히 격퇴하지만 동돌궐의 세력은 거의 약화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제대로 된 타격이 없었고 동북방의 고구려와도 연합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나라 입장에서는 쉽게 동돌궐을 정벌할 상황이 되지 못했다.
마침내 고조 이연에 이어 627년 아들인 태종 이세민이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되었고 태종은 북방의 돌궐과 고구려에 강경 외교책을 구사하여 북방을 견제하면서 정벌계획을 세웠다. 당 태종에게 가장 문제 직면한 국가는 동돌궐의 세력으로 태종의 북방정책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이 힐리가한의 잦은 침공 때문이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태종이 즉위한지 19일만에 수도인 장안성과 인접한 위수(渭水)에 힐리가한이 이끄는 10만의 동돌궐군이 진출해왔고 여기에 이들이 보루와 각장을 설치하자 당의 수도 장안성은 돌궐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당황한 당 태종은 힐리가한에 굴복하여 맹약을 맺었고 위수에 설치되었던 보루와 각장이 철폐될 수 있었다. 태종은 맹약 이후 강한 기병을 양성하기 위해 서역에서 말을 사들였고 서돌궐과 동맹을 추진하여 그들과 무기를 교역하였으며 힐리가한의 동생인 돌리가한(突利可汗)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두 가한의 사이를 이간시키는 등의 공작을 펼쳤다. 그것은 동돌궐을 무너뜨리려면 동돌궐이 구성하고 있는 철륵계열의 이반이 필요했고 이를 철저히 수행한 사람이 돌궐계 출신의 무장인 계필하력(契苾何力)이었다.
627년 돌궐을 구성하고 있던 철륵계 민족인 설연타(薛延陀)가 반기를 들자, 철륵계열의 5개 부족이 동돌궐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힐리가한의 동생인 돌리가한(突利可汗)이 이들 5개 부족을 지휘하게 되자 당 태종은 이에 적극 지원하여 군을 파병하였다. 그리고 돌리가한(突利可汗)과 연합작전을 구사하여 629년 병부상서 이정(李靖)을 행군총관으로 삼고 장공근(張公謹)에게는 돌리가한을 돕게하여 동돌궐을 공격하게 하니 발야고(拔野古), 복골(僕骨), 동라(同羅), 해(奚)의 동돌궐 소속 소부족(小部族)들이 항복하였다.
630년 설연타의 족장인 이난(Inan)이 힐리가한을 공격하여 크게 타격을 입혔고 당 태종은 이정(李靖)과 이세적(李世勣)으로 하여금 힐리가한을 공격하게 하여 마침내 대가한을 사로잡고 동돌궐을 멸망시켰다. 동돌궐이 멸망한 이유는 돌궐 자체가 내분에 휩쓸렸고 피지배 부족들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정작 당나라와의 전쟁 때 돌궐을 배신하고 당나라에 예속되었으며 이들이 철륵계열의 소부족에 불과했다는 것은 철륵계열민족의 개별적 부족이 소부족과의 연관성이 각별했음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동돌궐이 지배층 내에서의 권력 다툼은 멸망을 더욱 가속화하게 되었고 이러한 돌궐의 상황을 당나라가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해 서북방을 쉽게 안정시킬 수 있었다. 동돌궐의 패배는 당시 북방기마유목민족 세계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의미했다. 그것은 북방의 패자가 돌궐에서 당(唐)으로 이양됨을 말하는 것이었고 추후 동북방에서의 패자를 두고 다투게 되는 고구려와의 맞대결은 동아시아의 시대적 구분을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도기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이를 두고 동돌궐에 대해 깊이 연구한 일본학계에서는 동아시아 대륙의 시기적 구분을 고, 당 전쟁으로 보았고 고구려의 패망은 고대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고구려가 동북아시아 뿐 아니라 동아시아 세계의 주인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이는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의 시기적 구분을 형성하는데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하지만 돌궐과 고구려, 당나라와의 격전을 시대의 과도기적 시각으로 보는 도식적인 이해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그것은 돌궐이 아직 완전히 멸망한 것이 아니고 682년 돌궐 제 2제국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적 부분과 고구려 다음으로 대진국(大震國 - 발해)가 등장하는 배경적인 시대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제 2의 과도기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빌게가한비문(毗伽可汗碑文)』 에 의하면 "튀르크 배그들은 중국 칭호를 받아들여 중국 황제에게 예속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50년 동안 봉사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동쪽으로는 해 뜨는 곳에서 뷔클리 카간까지 출정하였다고 한다. 서쪽으로는 테미르 카프그까지 출정하였다고 한다. 중국 황제를 위하여 이렇게 정복하였다고 한다."라고 했다. 이는 당나라가 돌궐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들을 기미지배하게 되었는데 서방으로 팽창함에 있어 돌궐인들을 군사적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 태종은 돌궐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고구려를 제외한 모든 북방기마유목민족들에게서 천가한(天可汗)이라는 칭호를 받았다.이후 당은 기미지배를 통하여 돌궐을 통제하였으며 태종 이후 고종(高宗)도 천가한 칭호를 받아 북방기마유목민족을 지배하는 지배자로 군림하려 하였다. 그러나 당의 이러한 기미지배는 동북방의 강국(强國)인 고구려와의 일전과 대진국, 말갈(靺鞨)과의 일전으로 중앙아시아 및 서방과의 연결이 단절되면서 약해졌고 결국 일테리쉬가한(骨咄祿可汗)에 의해 돌궐 제 2제국이 탄생되면서 동, 서로 강대국들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출처 : 정길선 박사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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