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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2)
 알자고    | 2016·11·03 15:52 | 조회 : 77

600년 툴란가한이 죽자 서돌궐의 가한인 달두가한은 동돌궐의 혼란을 이용해 동돌궐을 정벌하여 돌궐 제 1제국의 통합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돌궐을 돕고 있는 수나라를 공격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오르도스 일대를 공격하여 거점으로 삼고 수도인 장안을 위협하게 되었다. 툴란가한이 죽고 난 다음 돌리(突利)가 동돌궐에 입성하여 가한이 되었는데 돌리가한은 수나라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서돌궐의 위협을 받은 수나라의 양견은 서돌궐 내부의 달두가한에 불만을 가진 철륵계 민족들의 반란을 유도했다. ① 먼저 중국의 풍부한 물자와 비단을 제공하여 철륵계열의 민족들의 환심을 샀고, ② 달두가한의 독단적 정치행적에 대해 불만을 획책했으며, ③ 수나라의 군사적인 보호를 보장받으며 서돌궐의 연방에서 이탈을 유도했다. 이와 같은 전략은 돌궐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타 철륵계열의 민심 이반에서 비롯되었고 큰 영토와 다양한 민족들이 존립하고 있었던 서돌궐의 통치력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양견은 이와 같은 부분을 십분 활용했고 결과적으로는 서돌궐의 민족들도 연방에서 이탈하여 반란을 일으켜 내부혼란을 가중시켰다.

이 때 달두가한은 내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수나라에 대한 공세를 멈출 수 밖에 없었고 수나라의 지원을 받은 반란세력들은 토욕혼에서 달두가한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이후 사궤(射櫃)가 달두가한의 뒤를 이어 가한이 되었고 이같은 국내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수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여 쉽게 진압되었다. 이로써 서돌궐은 수나라를 공격하지 못했고 수나라는 서북방지역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서북방의 안정은 동북방의 고구려에 대한 전쟁을 야기함으로써 고구려와 수나라와의 전쟁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편 동돌궐의 돌리가한은 계민가한(啓民可汗)으로 개칭하고 오원(五原) 지방에서 유목지를 얻어 북몽골 지역에 거주하던 철륵(鐵勒)계열 민족들을 지배, 통제하게 되었다. 돌궐의 혼란기에 철륵계열의 각 민족들이 수나라의 지원을 받아 돌궐의 분열을 동참하면서 그들의 세력이 성장하였으나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속에서 동, 서돌궐이 다시 세력을 회복해 철륵계열의 민족들을 다시 재통치하였다. 609년 동돌궐의 가한은 돌리의 아들이었던 시피(Shipi ; 始畢)가 계민가한의 뒤를 이어 가한이 되었고 같은 해 수나라 양제(煬帝)가 침입하여 감숙지방에 있는 토욕혼을 격파하고, 일부는 티베트로 도주하였다. 그리고 타림분지의 하미를 비롯하여 서역으로 향하는 각 오아시스들을 손에 넣고 투루판까지 복속하여 유목민족들의 반란을 최대한으로 억제했다. 이것은 수 양제가 고구려를 침입하기 이전에 진행한 철저한 사전작업이었다.

이로써 중앙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친 수나라를 중심으로 아시아 세계가 개편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돌궐 제 1제국도 그 영향력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동아시아 질서 체계에 반기를 든 고구려와 수의 전쟁은 동아시아 패권 전쟁이었으며 동북아시아의 질서 체제를 구축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규정되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수나라는 그간 구축해 놓았던 아시아권의 영향력을 모두 상실하게 됨으로써 이를 계기로 돌궐과 고구려가 다시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양립하게 되었다.

동돌궐의 시피가한은 수나라의 패배에 편승하여 제국 내에 퍼져있던 한족 문화를 모두 금지시키고 돌궐의 전통 문화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고구려와 동맹을 맺으며 수나라를 압박해 티베트와 청해성(靑海省)까지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서돌궐에서는 사궤(射櫃)가한, 통엽호(統葉護)가한이 영내에 속해 있는 철륵을 이끌고 서방의 페르시아, 북인도의 쿠샨 왕조를 정벌하고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했다. 서돌궐은 실크로드 교역의 중간에 자리 잡았고 동, 서방 문물의 중계교역 역할을 자처해 세력이 크게 신장되었다. 이 때 서돌궐은 불교, 조로아스터교, 네스토리우스교 등의 종교가 전래되었고 동돌궐과 달리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서돌궐의 부흥은 동돌궐에도 영향을 끼쳐 외교적, 문화적으로 고구려와 연대하며 세력회복에 성공했다.

그러자 양제는 다시 동돌궐 내부의 분란을 조장하여 분열에 나섰지만 이전에 비해 돌궐은 시피가한을 중심으로 단합되어 있어 내분을 조장하기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시피가한이 양제의 속셈을 알아채고 수나라를 공격하여 산서(山西)의 안문(安門)에서 양제를 포위하였다. 돌궐은 양제의 친위부대들을 전멸 직전까지 몰고 갈 정도의 대승을 거뒀고 수의 양제는 겨우 빠져나왔으나 중원 각지에 일어난 농민반란과 친위대의 배신으로 살해당하고 향후 10년 동안 중원은 혼란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에 시피가한의 뒤를 이은 처라(處羅)가한은 양견이 동, 서돌궐에 했던 것처럼 수나라에 농민반란 등을 지원하여 중원 진출을 노렸다. 이 때 처라가한의 집중 지원을 받은 세력은 이연(李淵), 이세민(李世民) 부자로서 이들은 당(唐)나라를 건국하여 중국을 재통일하게 된다.


출처 : 참환역사신문 정길선 박사의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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