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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과 아바르
 알자고    | 2016·11·03 16:30 | 조회 : 94

당시 카스피 해 북쪽에 거주하고 있던 유연의 계파인 아바르(Avar)라는 유목집단이 강세를 떨치고 있었는데 아바르도 세력이 강성함에 따라 돌궐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디자불로스는 직접 아바르에 영내(領內)로 침공을 개시하여 아바르의 대칸인 두야드 칸(Duyart)의 수도를 유린하고 그들을 유럽으로 밀어냈다. 아바르는 두야드 칸의 아들인 바얀(Vayan)칸 시대에 다시 돌궐에 도전했으나 패배하여 유럽으로 밀려났다. 이렇게 유럽으로 밀려난 아바르는 동로마, 프랑크 왕국과 싸워 대승했다.

돌궐과의 쟁패에서 패배한 아바르는 동아시아로의 진출을 접고 유럽을 침공하게 되니 동유럽과 서유럽 전체가 아바르의 침공으로 인해 혼란기를 겪었다. 2대 과라(科羅)가한 때는 동쪽의 유연의 잔존 세력과 거란의 일부 제압하고 3대 목간가한(木杆可汗)때는 서방원정을 추진함에 따라 넓어진 영토와 급성장한 국력으로 인해 보다 효과적인 통치를 위하여 제국을 둘로 나누게 되었다.

목간 가한은 종제인 달두가한으로 하여금 서방의 돌궐을 관할하게 함으로써 디자불로스의 아들과 함께 공동가한을 형성하게 되었다. 디자불로스의 아들이 죽자 달두가한이 서돌궐지역을 다스리면서 페르시아를 공략하여 영토를 넓히며 강력한 통치체제를 구축하였다. 목간 가한 사후 타발가한이 뒤를 이어 동돌궐의 가한이 되면서 중국의 북제와 북주를 위협했다. 그러자 북주에서 먼저 돌궐에게 혼인동맹을 요청하여 타발가한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어 북제에서도 돌궐에 혼인동맹을 요청하였으나 북제의 동맹은 유보하도록 하고 오히려 북주 측에 더 힘을 실어주었다.

라시드(Rashid al-Din)의 『몽고전사(蒙古全史)』에 의하면 돌궐의 목간가한(木汗可汗)은 서위(西魏)로 도망한 유연가한(柔然可汗)인 등숙자(鄧叔子)의 주살을 청원했다 한다. 서위(西魏)의 우문태(宇文泰)는 이것을 허락하고 등숙자(鄧叔子)를 청문외(青門外)에서 죽였다. 이리하여 완전히 유연(柔然)을 멸망시킨 돌궐의 목한가한(木汗可汗)은 중국의 북조(北朝)와 좋은 관계를 맺고, 서로 인척관계를 이룬다. 처음은 북주(北周)과 북제(北斉)의 양국으로부터 구혼을 받았는데 목가가한(木汗可汗)은 북주(北周)를 택하여 보정3년(保定3年 : 563)부터 4년(564)까지 북제토벌(北齊討伐)에 참가했다. 이 전쟁에는 성과를 올리지 못했으나 후에도 돌궐과 북주(北周)의 관계는 좋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제서(北齊書)』에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타발 가한 때로 비정하고 있다. 필자는 『북제서(北齊書)』의 내용을 필두로 시대적 배경을 서술하고자 한다.

북주의 북제정벌에 참가한 돌궐은 북제 정벌에 큰 이득을 얻지 못했으나 북제가 멸망할 때 까지 북제의 북변을 침공하여 갖은 약탈을 감행하게 되었다. 돌궐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는 북제는 여러 차례 강화를 요청한 결과 막대한 재물을 돌궐에 조공하게 되었는데 타발가한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다만 나로 하여금 남쪽에 있는 두 아이(북제, 북주)가 항상 효도하도록 만들었으니, 어찌 가난한 것을 걱정하겠는가." (『북사(北史)』, 卷 九十六, 列傳 第 八十七,「돌궐전(突厥傳)」 只是讓我的, 兩個孩子在南部(北齊,北周), 一直孝順,為什麼你會擔心窮人.)

577년 북제가 북주에게 멸망하자 돌궐은 북주에 대한 외교적 방침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화북지방의 영토분쟁 때문이었는데 북제의 남은 잔당들이 돌궐로 도망하여 의지했기 때문이었다. 돌궐에 발을 돌린 이유는 탁발씨 선비의 무리들과 북제의 고씨(高氏) 황족들이 북주의 우문씨(字文氏)선비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북주로 넘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돌궐로 넘어가서 의탁하는 것은 멸망한 북제를 돌궐이 다시 세워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나 타발가한은 그러한 기대를 묵살하고 북주에 대한 복수의 도구로만 철저히 이용했다.

북제의 잔당들과 함께 북주의 국경을 유린한 돌궐에 대해 북주는 여러 차례 교섭을 진행하여 결국 북제의 잔당들을 돌려 받고 돌궐과 화친에 성공하게 되었다. 마침 북주도 우문씨의 국가에서 양견(杨堅)이 세력을 잡아 국가의 정치적인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581년 양견(杨堅)이 북주의 마지막 황제인 정제(靜帝)에게서 황제지위를 찬탈하여 수(隋)를 건국하였다.

<출처 : 참환역사신문 장길선 박사의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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