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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와 장승 & 벅수


도대체 '벅수'가 뭐야? [참한역사신문 - 황준구의 '장승문화'이야기 ]
 알자고    | 2023·02·24 00:15 | 조회 :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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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준구 

    1946년에 태어나, '홍익대학'과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광고 디자인'을 전공하였고, '선경그룹'과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하였다.

     2000년,'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은<'장승''벅수''솟대'>를 공부하고 있다.

    https://blog.naver.com/9339june 

    모든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에는 ‘벅수’法首를 "'장승'長丞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쪽발이’들이 왜곡하여 변질시킨 내용으로 지금까지도 고쳐지지를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본래 ‘벅수’라는 것은 우리의 '전통마을'과 '절집' 그리고 '성문'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우리  '민속신앙'의 ‘뿌리’다.  만약에 ‘벅수’가 정말로, ‘장승’ 이였다 라면 ‘불교’의 ‘화엄경’華嚴經은 엉터리가 된다.  '화엄경'에는 '벅수'가 불법(佛法守護)을 지켜주는 ‘법수보살’法首菩薩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마을 들머리에 '수호신' 기능의 '벅수'를 세워 놓고, ‘길라잡이’(이정표) 역할의 '장승'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배짱좋은 '친일파'들의 '나라'가 되어있다.  꼴불견 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놈들은, 우리의 ‘고향 마을’을 조상 대대로 지켜온 '수호신' 역할의 ‘대장군’(大將軍) 종류 (天下大將軍,과 地下大(女)將軍 포함)의 '벅수'法首 들을 '미신'迷信의 '문화'로 취급하여 업신여겼고, 이미 오래전 '개화기’(1876 ) 때 '갑오개혁'(1984)으로 '역참驛站제도'가 폐지(1895)되어, 우리 땅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고(消滅)없는 ‘길라잡이’(이정표) 기능의 '장승'長뽗을 다시 찾아내어, '장승'에 '벅수'를 억지로 포함을 시켰다.  그리고 '장승'長丞(承)이 '표준말'이다 라고 강제로 지정指定을 하였고 공표公表(1912)를 하여 지금도 우리는 '벅수'를 '장승'으로 알고 있는 한심한 ‘백성’들이 되었다.  (‘조선총독부’의 ‘諺文綴字法’ 公表 참고)

    '벅수'法首라는 것은 '불교'佛敎의 근본이 되는 "화엄경"華嚴經에는 '법수보살'法首菩薩로 표현되어, '수행자'修行者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일십당 '이맥'李陌이 목숨걸고 쓴 '상고시대'의 역사책, "태백일사"太白逸史(1520)의 '개국신화'에는, '선인'仙人이 태어나면 '봉황'鳳凰이 나타나고,- '봉황'과 '벅수'라는 신선神仙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을, "'백아강'白牙岡(地上樂園)이라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벅수선인'法首仙人들이 모여 살고 있는 '백아강'으로 가는 '길'에는 '벅수다리'(法首橋)를 지나야 하며, '벅수'가 세워진 '다리'에서는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 올 수 있는 모든 '악귀'惡鬼와 '유행병'(疫病)들을 자연을 초월한 ‘선인'(신선)들의 '힘'으로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있다 라고 하였다.   ‘백아강’白牙岡’이란,  ‘왕검성’王儉城으로 추측이 되며, ‘몽골’의 ‘셀렝게’ Selenge강(江) 기슭에는 '고을리'(고구려)라는 옛 성(城)터가 남아있다.   그곳에는 '주몽'朱蒙으로 알려진 '고을리 칸'(고구려 왕) 이라는 '벅수’法首(훈누 촐로)도 남아 있다.  (몽골 올란바토르 대학교 ‘발단도르지 수미야바타르’Baldandorj Sumiyabaatar 교수)   ‘벅수'라는 것은 '선인'(神仙)을 뜻하며 '백아강'에는 선인 '왕검'王儉이 살았었고, "단군왕검"이 곧 '선인벅수'仙人法首 임을 뜻한다.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는, '하늘' 아래 동, 서, 남, 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天下大將軍'이라 하였고,  '지하'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地下大將軍'(地下女將軍이 아님) 이라고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벅수'를 뜻하는 표현이다.

    서기 1500년 무렵의 '조선왕조'는  '중국'을 자극 할 수 있는  '상고시대'의 '역사책'들을 모조리 압수하여 불태워 버려라 라는 명령을 내렸고,  "태백일사"는 빛을 보지 못하고 깊숙하게 숨겨져 왔었다.  350여 년 이라는 긴 세월 동안 ‘태백일사’를 숨겨온 '이맥'의 후손, 해학 '이기'李沂에 의해 '개화기'(1876) 때 그의 '제자'들에게 공개가 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을 하였다.  

    '개화기' 때,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베껴지고 베낀 것을 기본으로 하여 또 다시 베껴서 만들어 진 '책'(筆寫本), "태백일사"太白逸史는 1911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 '가지마 노부르'鹿島 昇에 의해 마지막으로 '필사'되었고, 오염된 '일본글'을 원본으로 하여 또 다시 ‘번역’된 것이다.  '필사본'의 내용에는  '필사'를 할 그 무렵의 변화된 사회 환경과 '필사'를 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사상'과 '철학'이 덧붙여 지거나 보태어져 심각하게 변질되고 왜곡하여 오염이 되어 있었다.   ‘地下大將軍’이 "地下女將軍"으로 변질된 것이 그 ‘본보기’(例)다.

     


    (사진 1) 우리나라 최초로  '벅수'의 가슴에 이름(銘文)이 새겨진 돌'벅수'(1689)다.  우리의 토종 '벅수'가 아닌, ‘중국'의 ‘당나라'와 '주나라'의 '장군'을 표현한 것으로, '중국’에서 생겨나 ‘조선땅’으로 밀려오는 '천연두'를 막아 내기 위한 용도로 세운 막강한 힘을 가진 '두창痘瘡 벅수'로, 전라북도 '부안읍성' 서문안, 짐대당산으로 '파견'을 나온 '중국'의 '장수'(장군)를 표현한  돌'벅수' 다.  (2011, 황 준구, 사진).

    (사진 2) ‘조선시대’의 큰 ‘물난리'(홍수) 때 ‘바다’로 떠내려가 '일본'의 바닷가에서 발견된 우리의 ‘두창벅수’痘瘡法首를 묘사한 '그림'으로, 1842년 ‘북월설보'北越雪譜와 1889년 ’동경인류학회지’ 제36호에, ‘두창’(천연두)을 퍼뜨리는 '호귀'들을 막아내는 '신선'들이 모여 살고 있다 라고 하는, ‘아미산’娥眉山(중국 '불교' 성지)으로 가는 '길'의 '벅수다리'(法首橋) 앞에 세워진 상상의 ‘벅수’ 모습과 글귀(銘文)를 표현한 그림이다. 

    (사진 3) 경기도 ‘이천'利川 주변으로 추정이 되는 곳의 '지하대장군’ 부부(1902)의 ‘사진’으로,  '개화기'의 후반(1900) 부터는 유난히 ‘女將軍’이라는 표현의 '벅수'들이 많았다.  까닭(出處)을 알 수 없는 '여장군'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잘못된 묘사描寫다.

    우리나라 '벅수'들 중에서 최초로 '가슴'에 이름(銘文)이 새겨 진 '벅수'는,  전라북도 '부안읍성' 서문안, 짐대당산’의 돌’벅수로 1689에 만들어 졌으며, "국가 민속 문화재 제18호"다.   '上元周將軍'과 '下元唐將軍'이다.  '주장군'과 '당장군'이라는 이름(글귀)은 '중국'의 막강한 '당나라'와 '주나라'의 '장군'(將帥)을 표현한 것으로 '조선땅'으로 파견派遣을 나온 '중국'의 장수(將軍)를 뜻한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벅수'들은 우리 '조상'의 모습이 아닌, '중국'의 '장수'를 표현한 것이 대부분 이다.  '가슴'에 이름으로 쓰여있다.

    그리고  ‘부안’땅 '내소사’의 역사책 "來蘇寺誌"에는 1770년 ‘내소사’ 어귀의 ‘서낭당’에 ‘법수'法守(法首)를 세웠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순천’ 조계산 ‘선암사’仙巖寺의 "석가모니 후불탱화"後佛幀畵(1780)에도 ‘법수보살’法首菩薩과 ‘서방西方법수보살’이라 쓰여있는 '탱화'를 그린 기록(畵記)이 남겨져 있다.  ‘보살’菩薩의 이름이 ‘법수’인 것은 ‘불교’의 ‘바다’가 제아무리 넓고 넓다고 하지만, 이 세상의 ‘법’法이 그 무엇보다도 으뜸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으며,  그곳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법수'다 라는 '불교'의 가르침도 있다.

    '벅수'法首의 '가슴'에 쓰여있는 글귀(銘文)들이 변화된 과정은, 예로부터 주로 '민불'民佛 또는 '미륵'彌勒으로 불리던 '글귀'가 없는 민짜 '벅수'였던 것이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1600년 무렵 부터  '중국'에서 떼(무리)를 지어 몰려오는 '호귀'(잡귀)와 '역병'(천연두)을 막아내기 위해, 주로 ‘중국’의 '당장군'과 '주장군'으로 표현된 '두창痘瘡 벅수'와 '축귀대장군'逐鬼大將軍이라는 이름(銘文)이 나타나기 시작을 하였으며, 1700년을 앞 뒤로 하여 '아미산하교'娥眉山下橋와 '오방신장'五方神將을 표현하였고, '남자'와 '여자'의 나눔(區分)은 본래 부터 없었다.  다만,  '수염'이 그려져 있거나 없는 한 쌍을 주로 표현하였으며, '수염'이 없는 '벅수'가 더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덩치'(‘몸통’의 크기)도 더 우람하였다.  그리고 1900년 무렵부터는 '음양'陰陽의 '조화'(理致)를 따져, 잘못된 억지(固執)의 '地下女將軍' 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을 하였다. 

    '대한제국’(1897- 1910) 때 부터 '벅수'의 이름(銘文)에 굳이 남, 녀의 '성'姓을 구분하지 않았어도, '벅수'의 얼굴 모습과  '관모'冠帽 또는 '수염'으로 확실하게 남, 녀를 서로 나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존여비사상'에 의해 '여자'들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좀 더 천박한 표현을 하기 위해 '이름'을 '地下女將軍'으로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사진 1)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 '낭현마을', '동방청제대장군'과 그의 '부인'을 표현한, '수살맥이' 벅수.  (2003, 황 준구 사진)    

    (사진 2)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농소리,  '오방축귀대장군'과 그의 '부인'을 표현한,  '서낭'의 모습.  (2003, 황 준구 사진 )   

    (사진 3)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굴목마을', '서방백제축귀대장군'과 그의 '부인'을 표현한,  '수살'의 모습.  (2002, 황 준구 사진)

    '地下女將軍'이 아닌,  '天下大將軍 婦人(夫人)' 이라고 점잖게 표현된  '충청도'의 양반 '벅수'들도 있었다.  '충청도'의 정통 '벅수'에는 본래부터 '地下女將軍'이라는 표현은 '애당초' 부터 아예 없었다.  대부분  '地下大將軍'으로 만 표현을 하였었다.  "여장군"으로 표현을 하기가 '천박'하고 '흉'凶하였던 모양이다.  '女將軍'을 대신하여 '天下大將軍 婦人' 또는 '夫人'으로 표현을 한 곳도 여러 곳에서 발견이 된다.  점잖은 ‘양반’들이 살고있는 '고을' 답다.

    1900년 무렵,  외국의 '선교사'들이 기록한 '개화기' 때의 '사진'들 속에는 경기도 '이천'지역에서 '地下大將軍'과 '地下女將軍' 이라는 한 쌍의 '벅수' 사진이 처음으로 발견이 되었고,  경기도 포천 '솔모루, 당산'의 '벅수'에는 '天下女將軍' 이라고 쓰인 '벅수'도 있었으며, 충청도 '청양' 땅에서는 '五方逐鬼大將軍 婦人'도 발견이 되었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조선총독부' 놈들은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의 '벅수'를 모조리 '미신'의 '문화'로 취급하여,  1895년 '역참제도'의 폐지로 우리 땅에서 이미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는 '장승'(길라잡이) 이라는 '표현'을 다시 찾아 내고, '장승'에 '벅수'를 억지로 포함 시켜서 '장승'長丞으로 부르고 쓰도록 강제로 '교육'을 시켰다.  '조선총독부'의 '학무국'이 1912년에 '공개 발표'를 한 '諺文綴字法'의 내용에는,  '장승'長丞(承)이 '표준말'이다 라고 기록을 하였다.  우리 '민속 신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벅수문화'를 '미신의 문화'로 '가치'를 깎아 내렸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 '벅수'는 무조건 '장승'으로 불리게 되었다.

    1970년 무렵까지는 그래도 우리네의 '정통 당산'(서낭당)에서 '天下大將軍'과 '地下大將軍'이 큰 흐름 이였으나, 갑자기 이유없는 '地下女將軍' 이라는 표현이 '봇물'이 터지듯,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을 하였다.  그때에는 미신迷信 추방을 위한 '새마을 운동'이 한창 무르익을 때 였다. 

    1984년, 충청남도 ‘공주’의 ‘소라실’은 '유교儒敎사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마을 제사의식"(洞祭)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공보부에 '출품'하기 위해 '유교식'이던 정통 ‘마을 제사의식'의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흥미'만을 느낄 수 있고, '재미'와 '볼꺼리'를 제공하기 위해 신성神聖해야 할 '마을 제사의식'에 '천박'하고 난잡스러운 '행위'들을 '창작'하여, 덧붙이거나 보탠 것들이 연출이 되어, '마을 제사의식'(洞祭)의 ‘전통’과 ‘품위’는 완벽하게 무너지기 시작을 하였다.  우리의 '민속문화'는 '행정부'(옛, 문화공보부)의 무지無知한 '공무원'들에 의해,  '일제강점기' 때의 수준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장승'의 합궁'合宮이라는 표현으로 '장승'이 '성교'性交를 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저질스러운 '호들갑'도 떨었다.   '조상'의 모습을 '신'(祖上神)으로 만들어 세워 놓고, 그 '후손'들이 강제로 '성교'를 시키고, 구경을 하며 즐기는 모습들이 ‘야만인’을 닮은 꼴불견(可觀) 이였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민주화 운동'을 핑계로 내세워, '입' 찢어지게 벌리고 '악'을 쓰는 모습이 마치 '하품'을 하는 '꼴'로 보여지는 ‘이집트’의 ‘미이라’(mirra)를 닮아 있어, 두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꼴사나운 '시국時局장승?' 세우기가 큰 행사였고, 유행을 한 적도 있었다. (공주시 탄천면 소라실, '장승치기' 검색 참고)

    '女將軍'은 너무나 잘못 된 표현이다. 우리 '조상'들이 정말로 '여자'를 '성곽’城郭의 ‘문'을 지키는 '지킴이' 또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혹은 '절집'에서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하는 '문지기'로 '여자'들을 길가에 세워 놓고,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었을까?.  꼭 '女將軍'으로 표현을 할려면,  '大將軍'은 '男將軍'으로 '이름'을 바꾸었어야 옳았을 것이다.  '이명박'은 '大통령'이고, '박근혜'는 '女통령'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  지금의 '시대'를 잘못 살아가는 "남존여비사상"에 빠진 '정신병자' 같은 판단을 하고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의 짓거리에서 부터 ‘女將軍’ 이라는 엉뚱한 표현이 탄생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민속박물관'이 '민속현장'(堂山)을 조사하여, 1988년 부터 1997년 까지 10년 동안 발행한, 우리나라 전 지역의 "OO지방 장승. 솟대 신앙"이라는 여덟 권의 ‘책’에는, '벅수'가 모두 ‘장승'으로 딱 부러지게(斷乎) 표현이 되어 있다.  '장승' 이라는 표현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놈들이 ‘왜곡’하고 꾸며서 만들어 낸 ‘억지’의 '표준말'이라는 것을 아직도 그들(국립민속박물관)만 모르고 있다.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 진, ‘판소리’의 '노랫말' 속에는 ‘장승’과 ‘벅수’는 명확하게 서로 나눔이 되어져 있다.  ‘변강쇠타령’과 ‘적벽가’에는 ‘댱승’(쟝승)이 표현되어 있고, ‘박타령’(흥부와 놀부전)에는 ‘법슈’로, 확실하게 나눔이 되어 있다.   

    최근들어 ‘충청도’의 ‘마을 제사의식’을 모조리 싸잡아 "노신제’"路神祭라는 표현을 하고, ‘벅수’를  ‘장승’이라고 부르고 있는 싸가지 없는 엉터리 ‘단체’와 ‘민속학자’가 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라는 어리석은 ‘집단’이다.   그리고 '벅수문화'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문화재청'도 문제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놈들이 ”법정동리령”法定洞里令(1915) 이라는 엉뚱한 ‘제도’制度를 만들어,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 온 "자연마을"(宗家)을 ‘천박한 백성’(賤民)들이 모여 산다 라는 "부락"部落이라는 표현으로 폄하貶下를 하여, ‘이웃마을’들과 강제로 합쳐서 새로운 ‘마을’(行政里)을 만들어, 고유한 우리 '전통마을’들의 '역사’를 모두 지워버렸다 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정통正統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맥’脈을 모조리 끊어버린 것이다.   

    ‘조선시대' 본래의  '마을이름'들을 모두 다시 찾아내어, 올바르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쪽바리’들의 '도소진'(道祖神,どうそじん)을 흉내 내어 '벅수'를 '길'의 '신'(路神)으로 표현을 하는 ‘짓거리’도 똑바로 고쳐져야 한다.  우리의 ‘벅수문화’(天下大將軍, 地下大將軍)는 ‘길'의 '신’이 절대로 아닌,  ‘정통마을’(자연마을)을 지켜주는  ‘마을’의 ‘수호신'(洞神) 이다.  '문화재청'이 앞장서서,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쇄신刷新을 하여야 할 것이다.

    '장승‘이란 것은, '나라’의 ‘세금’稅金으로 ‘승여사’乘輿司에서 만들어 세운,  ‘역마을’(驛站)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길라잡이) 였고, ‘벅수'는 ‘마을사람’들이 힘을 모아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洞神)으로 만들어 세운 것이 ‘벅수’다.  똑바로 알자!.


    지금 우리 '민속학자'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판소리' 노랫말 속의 '장승'과 '벅수' 검색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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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3·25
    조회 : 689
    49  갓바위 장승
    경산시 명마산 글자바위 찾아가면서 대구 갓바위를 지나치며 만난 장승들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명마산 글자바위 답...
     알자고
    17·03·25
    조회 : 689
    48  용담서해안로 방사탑
    제주를 여행하보니 이러한 방사탑이 해안가에 많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육지에서는 솟대의 개념을 제주에서는 방사탑이 그 ...
     관리자
    13·07·29
    조회 : 1184
    47  제주 동글동글 돌솟대
    제주에서 하룻밤 묵었던 모텔에서 특별한 공간을 조성해 놓았더군요. 동글동글한 돌들로 특이한 솟대를 쌓았기에 한 컷 했...
     관리자
    13·07·29
    조회 : 1336
    46  제주 솟대 박물관의 솟대들
    제주 솟대 박물관의 외부에 설치된 솟대들입니다.박물관장님과 차를 마시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참 좋은 시...
     관리자
    11·12·24
    조회 : 2145
    45  제주 솟대 박물관의 솟대들
    제주 솟대 박물관의 솟대들입니다.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으로 모두 담지를 못했네요...^^자세한 사항은 답사...
     관리자
    11·12·24
    조회 : 2025
    44  제주 솟대 박물관
    제주도 솟대 박물관 입니다.작품성 있는 솟대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제주 여행하실 때 꼭 들러 보세요....^^자세한 사...
     관리자
    11·12·24
    조회 : 1529
    43  태백산 성황당 장승
    태백산 성황당 장승
     운영자1
    10·12·10
    조회 : 2200
    42  성불암 솟대
    성불암 입구에 세워진 솟대입니다. 다른곳과는 달리 솟대에 고래가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솟대에도 음,...
     성미경
    10·04·04
    조회 : 2265
    41  하동 구제봉 장승
    개인적으로 청암장의 웃음이 마음에 든다.....ㅎㅎㅎ
     운영자1
    10·01·28
    조회 : 2030
    40  하동 구제봉 장승
    지리산 삼성궁으로 가던 길에 만나게 된 장승 군락이다. 장승들의 표정이 모두 각각인데, 모두 재미있다. 천하대장...
     운영자1
    10·01·28
    조회 : 2029
    39  마이산 석탑군
    전북 진안군 마이산 석탑군
     운영자1
    09·09·24
    조회 : 1819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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